어플러나티즘을 위한 협주곡 2번

Concerto No. 2 : for aplanatism

“넌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게 될 거야.”

녹음을 찬란하게 물들이던 낮의 빛이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해 질 녘이었다. 아직 온전한 황혼이 찾아오지 않았는데도 밀폐된 이 공간에만 황혼이 있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 똑바로 이쪽을 응시하는 붉은 시선이 부드럽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빛나는 모습이 당연한 듯 어울리는 그인데도 두 눈만은 황혼의 색이었다.

“주문呪文인가?”

“주문이라. 그것도 인간의 기원이 담긴 멋진 말이지만, 묘론파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않아.”

“그럼?”

두 손을 뻗어 뺨을 감싸는 조심스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주저하며 닿아 오는 손끝이 조금 차가웠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빛으로 충만한 실내에 머무르는 동안 피부가 상기되었기 때문일까. 마주한 붉은 눈에 맺힌 모습은 매일 거울로 보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지척에서 응시하는 그에게는 어떤 식으로 보이고 있을까.

“이건 명령어야.”

타인을 의식하는 건 처음이다. 누구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지, 어떻게 생각되든지 상관없었다. 그의 ‘명령어’가 벌써 효력을 발휘하고 있거나, 혹은 예전부터 이미 입력해 두었을지도 모른다.

“넌 반드시 내가 말하는 대로 되는 거지.”

“자신만만하네. 근거는?”

“네가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근거야.”

“…….”

이번에는 받아칠 수 없었다.

 

 

몇 달 전의 그날,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본 그가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걷고 있어서, 바로 맞은편에서 다가가며 점점 거리가 좁혀지는 동안에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아서, 그게 평소와 달라 일상에 이변이 생긴 것 같아서.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기 전에 그가 먼저 성큼성큼 다가와 높다란 목소리로 말을 걸지 않아서, 귓속에 파고들던 그 목소리를 기대하다가 좌절되는 생소한 감각이 초조해서.

스쳐 지나가 등 뒤로 사라져버리기 전에 손을 뻗어 멈춰 세웠을 때, 올려다보는 눈에 처음 보는 빛이 떠올라 있어서. 그래서 먼저 말을 걸 수 없어 그의 팔을 붙든 채 그저 내려다보던 자신의 얼굴이 그의 눈에 맺혀 있는 광경은, 이상하게도 기분 좋게 느껴져서.

“……놔.”

그러나 짧은 침묵이 흐른 끝에 드디어 목소리를 내려는지 두 번인가 달싹이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거절이었다.

“오늘은 너 상대할 기분 아니니까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

처음 들어보는 나직한 목소리가 신선했다. 타인의 표정, 음성의 높낮이, 평소와 다른 움직임 등을 신경 쓰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라 이대로 그의 팔을 놓아서 보내주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지도 모른다. 놔달라는 요구대로 풀어주고,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모양이니 푹 쉬어라’ 같은 안부 인사를 적당히 던진 뒤 그를 뒤로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투적인 겉치레 및 어중간하게 배려하는 일은 맞지 않았으며 할 생각도 없었기에, 팔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인 배려보다 궁금증 해소가 우선이다.

붉은 홍채와 동공에 드리워진 어두운 빛 위로 비치던 자신의 모습 역시, 평소와 다소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에 떠오르는 빛의 색이 바뀔 때 생기는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싫었다. 변하는 감정에 일일이 휘둘린다는 걸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에게 영향받았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동요이다. 낯선 불쾌감에 정의를 내린 그때, 꺼질 듯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파…….”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돌려 눈을 내리깔았다가 이내 다시 시선만으로 올려다본다. 잡힌 팔목을 작게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그래도 놔줄 기색이 보이지 않자 팔을 세게 흔들어 빼내려 한다.

“윽…….”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어야 하는데. 그는 차갑게 쏘아보며 모진 말을 던지고 끝내는 손도 뿌리쳐야 했다. 오늘 그는 명백히 이상하다.

“아프잖아………….”

가슴에, 어깨에 가벼운 충격이 걸리고 몸에 가해지는 무게를 느낀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충격이라고 할 것도 못 되었다. 그는 그저, 뿌리치기를 포기하고 몸을 살짝 틀어 기댔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날카롭게 대하던 상대에게 몸을 기댈 정도로 막다른 곳에 몰린 걸까, 그는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논문 하나를 내놓을 때마다, 발표할 때마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눈앞에 날아와 신경질적으로 토를 달고 반박하고 쏘아붙이고, 성격이 마음에 안 든다느니 넌 사람답지가 않다느니 학업 외의 주제로도 시끄러워서 이제 상대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이성과 마음과 몸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책에 적힌 다른 사람의 인생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은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그의 팔을 잡아 멈춰 세워서는 안 되었다. 온전히 체중을 기대지 않아서 어깨와 가슴에 가해지는 그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그래도 무겁게 느껴졌다. 교복의 천으로 침투하여 피부에 스며드는 체온과 작은 떨림과, 목덜미의 얇은 피부를 간지럽히는 섬세한 머리카락이 전부 무게가 되어 온몸에 얹히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 내게 의지하고 있다──어째서? 심적으로 우울하여 마침 기댈 곳이 필요했던 참에 우연히 눈앞에 있던 사람이 나라서? 그 정도로 막다른 곳에 몰려 있어서? 매일같이 논쟁을 하다 하다 유치한 싸움으로 끝나는 일도 종종 생겼으니, 그 안에서 나름대로 친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심리상태를 유추하는 사고는 불필요한 것이다. 주관적인 의견이 크게 개입하는 만큼, 무엇보다 정확성이 떨어진다. 당사자에게 묻는 것이 가장 정확한데, 정작 그는 멋대로 안긴 채 말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달래줘야 할까. 하지만, 어떻게? 말을 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내가 말할 때마다 화를 내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그와는 나름대로 양질의 토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언쟁의 끝은 대개 감정의 마찰이다. 다른 이들은 내 말을 몇 마디 듣고 곧바로 말 섞기를 단념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매번.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말의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 변수이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의 무의식 속에 새겨진 기억은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도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할 행동은 틀림없이, 몸을 기대어 오는 그에게 들려줘야 할 ‘정답’일 것이다.

양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타인을 감싸 안기 위해 두 팔을 들어본 경험은 없다. 낯선 행동을 하느라 머뭇거리는 기척이 그에게는 조심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누군가의 등에 그저 손을 얹는 이 행위를, 그는 좋아할까. 안심할 수 있을까, 내 몸에 걸린 그의 감정적인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질까.

마침내 두 손이 그의 등에 닿았을 때, 천 아래로 작게 튀어 오르는 잔근육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거부하는 기색은 없다.

역시 정답이었다.

 

 

그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민하다 결국 데려온 곳에 그가 멋대로 찾아오게 되었다. 아카데미아의 한구석에 자리한 작은 유리온실은 잘 관리되지 않아 식물들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에 유리가 가려져 바깥세상과 단절되기 딱 좋았다.

사람들을 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이곳으로 오면 이따금 그가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별말 없이 그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말을 섞는 일도 없었고, 그래서 그가 언성을 높이는 일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온실 안에서는 침묵이 지켜졌다. 언젠가 침묵을 깨고 왜 계속 이곳에 오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대답했다. 그때 네가 위로해줘서 그런 것 같다나. 그날 그가 우울해했던 이유는 결국 나의 기준으로 별것 아닌 일이었던 데다 딱히 위로해준다는 의식을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었으나, 그의 기분이 나아져서 평소와 다름없이 대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렇게 편안한 침묵이 쭉 이어진다면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온실을 찾는 이유를 묻고, 거기에 그가 대답을 들려준 이후부터 조금씩 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침묵은 깨졌지만 이 안에서는 그가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일이 없었다. 기묘하다.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 장소에 따라서 하는 대화와 함께하는 분위기가 이토록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가 말을 꺼내면 내가 대답하고, 그렇게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잠깐의 침묵이 찾아오고. 자연스러운 침묵 위에서 미끄러지듯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답하다 보면, 어쩌다 한 번씩 서로의 목소리가 한데 겹칠 때도 생겨났다. 정체된 따스한 공기와 대기에 충만한 빛과 풀의 향기와, 그 안에서 겹쳐지는 음성은 증폭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크게 귀를 파고들었다. 나와는 다른 진동을 가진 목소리, 높고 낮은 음성이 뒤섞여 각자의 대역帶域조차 애매모호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체온이 맞닿아 왔다. 어느새인가 얽혀 있는 손을 의식하면서 서로의 호흡도 음성도 삼키는 순간이 싫지 않았다. 접촉한 점막으로 느껴지는 그의 잔떨림과 온기가 기분 좋았다. 신경을 통해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이성을 둔하게 만드는 대신에, 그것은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었다.

  

  

“아무 말 없는 걸 보니 너도 동의하나 보네, 알하이탐.”

“…….”

이 온실에서는 이상하게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이곳은 혼자만의 비밀 공간이 아니었으며 그는 온실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이 난잡하고 은밀하고, 따스하고 눈부신 공간에 잘 어울렸다.

“……하기 전에 부탁이 있어.”

“뭔데?”

“반드시 들어줘야 해. 안 그러면, 오늘 마음먹고 여기에 온 내 마음을 저버리는 셈이니까.”

“…….” 

“알았지?”

온실 안의 작은 석제 탁자 위에 앉은 그가 내려다보면서 확인하듯이, 어르듯이 말끝을 올렸다.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이 곤란하다는 듯 살짝 내려가 있어서, 말하기를 주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름은 많이 불러줘야 해.”

“……카베?”

“지금 말고.”

“그럼, 언제?”

“내가…….”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던 손끝이 귀를,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어깨에 닿는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힘을 넣어서 감싸 쥐는 감촉이 곧바로 전해졌다. ──매달리는 것처럼.

“내가, 중간에 불안해하거나 아파하면.”

“……알았어.”

굳이 목소리를 내어 대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 목소리를 들려줘야 할 것 같았다.

“너도 나도 처음이니까 다소 아픈 건 각오했지만, 그래도…… 내가 너로 인해 상처입지 않게 해줘. ──아, 부드럽고 정중하게 대해달라는 뜻이야.”

“참고할게.”

“후후……. 고분고분해서 좋네.”

“평소에도 이러면 귀여울 텐데”라고 나직하게 중얼거린 카베가 한 번 심호흡한 뒤, 이번에는 깊게 목을 끌어안았다.

카베를 마주할 때 항상 코끝에 희미하게 머물던 플로럴 향이 훅 다가왔다. 온실에 핀 꽃의 향기와 다르게 훨씬 달콤하고, 그리고 긴장해서인지 짙어져 있었다.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어르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도 심장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타인의 심장 박동을 이렇게 가까이서 듣는 경험도, 그 소리를 듣고 함께 고양되어 가는 온몸의 신경을 의식하는 것도 처음이다.

말이 없어도 고막을 통해 언어가 흘러 들어왔다. 그의 소리가 체내에 스며들어 스위치라도 누른 것처럼, 심장이 카베의 고동에 맞추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역시 그가 자신에게 어떠한 명령어라도 입력한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현관을 열고 들어선 거실에 펼쳐진 광경은, 다소 황당하다는 감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 왔어?”

“뭐 해?”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다가 움직임을 멈추고 선 채 시선을 피하는 카베는 아카데미아 교복 차림이었다. 졸업했을 때보다 몸이 더 자라서인지, 원래 품이 넉넉하고 긴 교복이 짧게 딱 맞았다.

“짐 정리하다가 찾아서……. 이런 걸 찾으면 입어보고 싶어지잖아,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지 않아?”

“정리하는 중에 쓸데없는 데 신경 쓰는 건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일이지.”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어? 사기당해서 상심한 선배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도 못 하는 거야?”

“그건 자업자득이잖아. 그리고 내 집에 살도록 허락해줬는데, 더 뭔가가 필요한가?”

“응, 필요해. 위로해줘.” 

위로해줄 것을 요구하는 카베에게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 말 없이 응시한다. 아카데미아를 졸업한 후로 각자의 일을 가졌으니만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에 마주치는 곳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며칠 전 카베를 집에 들인 후부터 어느 정도는 시간을 공유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학생 때 생각이 나는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정리하다 교복을 찾았다며 덥석 그걸 입다니. 덕분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온실에 틀어박힌 채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답지 않은 생각을 하던 그때.

 

「넌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게 될 거야.」

「이건 명령어야.」

  

그 말의 효력에 대해 재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당당하게 선언한 대로, 지금도 그가 이곳에 함께 있으니까.

서 있는 곳에서부터 카베에게 이르기까지 불과 몇 걸음. 평소의 보폭으로 걸으면 몇 초도 걸리지 않을 짧은 거리이다. 그러나 그는 위로해달라고 말했다. 원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주는 건 내키지 않지만, 천천히 다가가 조심스럽게 닿았을 때의 기분 좋은 침묵을 기억한다. 조용히 한 걸음씩 다가가되,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는 발소리가 융단에 전부 묻혀버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절해서. 점점 좁혀드는 거리와 소리를 그가 언어로 치환하고 받아들여 긴장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멈춰 서 있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베의 머리카락에 맺혀 있던 빛이 결을 따라 흘러내렸다. 동요를 내비치지 않으려 했겠지만, 은은한 빛으로 충만한 이 공간 안에서는 작은 움직임에 의해 반사되는 빛의 입자도 아주 잘 보였다.

“……부드럽고 정중하게?”

카베의 바로 앞까지 다다른 알하이탐이 낮게 질문하자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손을 입가로 가져가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움직임을 따라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가, 이내 다시 알하이탐을 올려다볼 때는 눈매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걸 묻는 건 그다지 정중한 일이 아니야. 잘 기억해둬.”

“까다로운 학생이군. ……참고할게.”

먼저 오른손 끝부터, 약간 상기되어 붉은기를 띠기 시작한 뺨에 닿을 듯 안 닿을 듯 기척으로 간지럽히다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넘긴다. 그렇게 귀의 윤곽을 타고 내려가다 귓불을 가볍게 쥐어 문지르고 손끝으로 목을 덧그리고, 손을 펴서 어깨를 감싸쥐고 나면, 그대로 팔을 더듬어 내려간 곳에서 손을 마주 잡는다.

“서기관님이 학생을 건드리는 건 어떻게 생각해?”

“……맞는 말이야. 그런데 학생 쪽이 먼저 개인면담을 요청해서 어쩔 수 없네.”

남은 왼팔을 카베의 허리에 감고 거리를 조금씩 조금씩 더 좁혀간다. 호흡이 섞일 정도로 지척에 이르렀을 때, 카베의 눈에 비친 자신을 의식하면서 나직하게 속삭인다.

“그러니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군요, ‘선배’.”

“너 취향 한번 고상하다.” 

유쾌한 웃음소리가 달콤하게 흘러든다. 웃느라 가늘게 좁혀지는 눈꺼풀 사이로 맺힌 자신의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깊게 끌려 들어간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과 대기에 수놓인 빛과, 귓가에 들리기 시작하는 고동이 점점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있었다.

“칭찬해주시니 영광이야.”

아직도 작게 웃으며 흘러나오는 호흡을 덮는 것처럼 가볍게 입술을 겹치자, 카베의 허리를 끌어안은 왼팔에 머뭇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손끝으로 더듬어 올라오다가, 이내 손을 펴서 꼭 감싸 쥔다. 그 움직임은 신호나 다름없었다. 흐려지는 이성과 대조적으로 예민해져 가는 신경을 의식한다. 초점이 맞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그의 눈에 맺힌 자신의 형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카베의 몸을 깊게 끌어안고서, 알하이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내게 입력한 명령어는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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