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후 여선 殞候 茹善

몽야 夢夜

물가엔 달이 차올라, 구름 한 점 없는 밤

심해 by L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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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ground Music

Yutaka Hirasaka - Letter


「촬영 끝나면 숙소 가지 말고 내 집으로 와.」

  새로운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땅거미가 질 무렵에 받은 문자는 퍽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풋, 웃음이 나와 정신을 차려보니 문자를 보관함에 넣고 있더라. 이모티콘 하나 없는 텍스트의 나열이었음에도 그 이 타자를 치며 찌푸렸을 얼굴이 눈에 훤했다. 늦게 들어가면 뭐라고 하려나. 피로함에 절어있던 기분이 달큰하게 녹아 나지막한 허밍을 굴렸다. 간이 의자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곤 매니저에게 알아서 운전해 가겠다고 알리고 얼른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벌써 저녁이 다 되어 밤을 향해 달려가는 하늘이 눈에 띄었다. 이런.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문자를 꺼내 수신된 시간을 확인하자 마음이 퍽 조급해지며 가슴을 두드렸다. 아, 빨리 보고 싶다.

  지하에 주차해뒀던 차량을 끌고 문자대로 제 숙소보다 그의 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적막함으로 가라앉은 밤 공기가 열린 창문 새를 비집고 흘러들어와 머리칼을 어지럽혔다. 물가엔 달이 차올라, 구름 한 점 없는 밤.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였다. 밤 특유의 맑고 시린 향이 코끝에 어렸다. 언젠가 그와 함께 유럽 혹은 야경이 예쁜 곳에 가서, 마음껏 놀아보는 것도 좋겠다. 막연하고도 행복할 미래를 남색 하늘에 덧그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딘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차선을 비추는 주황빛 가로등을 스치며 속도를 높였다.

  “바로 오라고 했잖아.”

  “정말이지. 바로 온 거야.”

  삑, 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어찌 알았는지 바로 다가와 찰싹 붙는다. 가까이 밀착되는 체취가 따스하게 다가왔다. 뺨을 간질이는 새하얀 머리칼과 온기에 그간의 긴장과 피로가 녹진하게 풀어지는 듯했다. 부루퉁한 그의 뺨 위로 가벼이 버드 키스를 남기며 조그만 웃음소리를 냈다. 덩치는 한참 큰 주제에 하는 짓은 꼭 대형견 같다. 문자 보고 펑크내고 싶었던 걸 얼마나 참았는지 몰라. 상이라도 줘야 한다니까. 그리 투정과도 같은 속살거림을 아이마냥 건넸다. 어느덧 제 걸음걸이에 익숙해진 걸음이 샤워실까지 따라오려던 것을 겨우 말리곤 재빨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긴 머리는 이게 문제라며 물방울 묻은 머리칼을 투덜투덜 씻고 나올 적에 문득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그가 눈에 띄었다.

  “영화 보고 있어?”

  “응. 네가 나오는 영화.”

  내가?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옮기니 배우로서는 신인이었을 적 영화가 틀어져있었다. 낯간지러운 부끄러움이 들어 그가 앉아있는 소파 뒤에서 그의 시선을 두 손으로 가렸다. 고개가 들어올려져 내 얼굴을 보려는 듯했지만 손을 치우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부끄럽잖아. 진짜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고. 그리 덧붙이자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분명 재밌어하는 모습이었다. 점차 올라온 큰 손이 제 손목을 잡아 벌리자 그의 수려한 얼굴이 낱낱하게 드러났다. 같이 보자.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즐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왜 잘생겨선. 그 때 홀린 사람처럼 끄덕여버린 게 화근이었다. 결국 불을 끄곤 같은 소파에, 그의 품 안쪽에 앉아서 영화를 계속 틀었다. 제 신인이었을 적 연기가 나올 때쯤이면 온몸으로 부정하며 그의 팔 안쪽에 고개를 묻었고 그는 도리어 재밌다는 듯 제 반응을 즐겼다. 아, 죽겠다… ….

  그렇게 몇 편의 영화를 다 보고 크레딧이 올라올 적에 어깨 위로 툭 떨어지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니 제 몸을 꼭 안은 채 아이처럼 새근새근 자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제 잠은 다 깨워놓고 이리 곤하게 자니, 확 깨우고픈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그보단 사랑스러운 감정이 더 커서. 소곤소곤 그의 귓가에 잘자, 속삭이며 쪽 입맞춘다. 말랑하게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침대가 더 좋긴 하지만. 소파에서 자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넓은 가슴팍에 고개를 기울이며 그의 숨소리와 심장박동을 자장가 삼아 고요히 눈가를 감아내린다.

  꿈속에서, 반짝거리는 밤내음이 얼핏 맴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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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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