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캣마리] 여기, 이곳에서

고등어조림님과의 연성교환

KOR Archive by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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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네뜨는 늘 블랙캣을 동정했다. 그도 그럴께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정확히는 레이디버그에게- 고백을 하지만 차이는 처지가 아니던가. 몰론 그 동정할만한 이유를 만드는 건 마리네뜨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남자인 블랙캣을 밀어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짝사랑.

그래, 그녀 역시 짝사랑의 열병 속에서 고통받는 중이었다. 마리네뜨는 아드리앙 아그레스트를 처음 본 그 날에 그에게 반했다. 마음 속에 딴 남자를 품고 다른 남자를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큰 죄였고, 마리네뜨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 중 하나인 거짓말을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하아아...'

그러나 블랙캣에게 최근에 마음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리네뜨는 그런 자신을 크게 자책했다. 두 남자를 동시에 마음에 품었다면 그녀는 무엇을 해야하는 가. 아직까지는 아드리앙에게 마리네뜨의 마음의 추는 좀 더 기울여져 있었지만, 이대로 점점 더 마음이 흔들리다보면 정말로 두 남자를 동시에 품게 될 것만 같았다.

그게, 마리네뜨가 방금 한숨을 쉰 이유였다.

'뭐야? 우리 공주님, 왜 한숨을 쉬어요.'

'블랙캣?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떤 소녀팬을 위해 팬서비스하러 왔다고 할까? 하튼,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한숨을 쉬어?'

마리네뜨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할 수가 없었다. 차마 블랙캣에게 두 남자를 동시에 마음에 품게 된 것 같은데 그 중 한 명이 블랙캣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마리네뜨는 그저 블랙캣의 말에 하하 웃어넘기며 아무것도 아니였노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블랙캣은, 아니 아드리앙은 최근에 큰 마음속의 폭풍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두 여자를 동시에 마음에 품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 그 이유였다. 첫사랑이자 우상인 레이디버그. 그리고 첫친구인 마리네뜨. 두 사람은 닮은 듯 하면서도 달랐고 각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드리앙은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부정해왔다. 내가? 마리네뜨를?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아드리앙 아그레스트는 마리네뜨 뒤팽-챙에게도 사랑에 빠졌다고.

그 사실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불편했다. 자신을 그렇게 뒤흔들던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마리네뜨를 보고싶다는 충동이 쓰나미처럼 아드리앙 마음 속에 내리쳤다.

'안되겠어, 플랙, 가자!'

'뭐? 나는 싫어.'

플랙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후 아드리앙은 블랙캣이 되어서 곧장 마리네뜨 집으로 달려갔다.


'블랙캣 오늘 순찰 도는 날이에요?'

'아니.'

마리네뜨는 당황했다. 도데체 왜 블랙캣은 자신을 찾아온걸까. 심란한 마음을 더 심란하게 하려고 찾아온 것은 아닐까. 마리네뜨는 다양한 생각에 빠졌다.

'그럼.. 저희 집엔 왜 온거에요?'

'글쎄..'

블랙캣이 말꼬리를 흐리자 마리네뜨의 눈이 찌푸려졌다. 무슨 일이길래 그녀의 집엔 왜 온 것이며 그 이유를 그녀에게 말하지도 못하는 걸까. 마리네뜨는 항상 블랙캣을 동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했다. 블랙캣이 자신에게 -레이디버그한테 이지만- 계속 고백하고 차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음에 상처라도 입진 않았을까 하면서.

'블랙캣이야말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 블랙캣이 민간인 모습에서 있었던 일도 궁금했고, 민간인으로 지낼 때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마리네뜨는 이 모든 생각이 단지 자신이 블랙캣을 동정해서라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블랙캣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글쎄..'

'글쎄라고만 하지말고, 대답해줘요.'

'우리 공주님은 그게 왜그렇게 궁금할까?'

'그야.. 전 블랙캣 팬이니까요?'

'흠..'

블랙캣은 긴 정적이 지나간 끝에서야 입을 열었다.

'사실, 레이디버그를 포기할까봐요.'

'네? 왜요?'

마리네뜨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블랙캣이 레이디버그를 포기한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마리네뜨는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휩쓰는 것을 느꼈다. 이럴줄 알았으면 마음을 예전에 받아줬어야한건가? 마리네뜨는 무슨 말을 꺼내야할 지도 생각하지 못한채 그저 멀뚱멀뚱히 블랫캣을 바라보기만 했다.

'공주님?'

'블, 블랙캣..'

마리네뜨는 몸이 굳은채로 어찌할 바를 몰라 가만히 있었다. 마리네뜨는 단 한 번도 블랙캣이 레이디버그를 포기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보같이 자신이 마음을 확정짓기만 하면 그때서야 블랙캣의 마음을 받아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마리네뜨는 극심한 후회에 휩쓸렸다.

'레이디버그를.. 왜 포기하는 거에요?'


블랙캣은 그저 본능대로 마리네뜨 집에 도착했다. 마침 마리네뜨네 집 테라스에 마리네뜨가 서있었다. 블랙캣은 가슴이 수줍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리네뜨는 어쩜 달빛을 받아도 이렇게 이쁠까. 마리네뜨의 콧잔등으로 떨어진 은은한 달빛이 마리네뜨의 얼굴이 한층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하아아..'

블랙캣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용히 마리네뜨를 지켜보다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리네뜨의 한숨소리를 들은 순간 블랙캣을 마리네뜨에게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마리네뜨 앞에 나타난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아니 반 친구가 고민하는 게 있으면 그걸 들어주는 게 친구의 도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블랙캣이야말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정곡을 찔렀다. 그래, 정곡을 찔렸다. 레이디버그냐, 마리네뜨냐 하는 희대의 문제에 블랙캣은 봉착해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순간 블랙캣의 마음은 마리네뜨에게로 좀 더 기울여져 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마리네뜨에게 얘기했다.

근데 마리네뜨의 반응은 왜그럴까. 자신이 레이디버그를 더이상 안좋아한다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블랙캣의 머릿속에 위험한 추측이 떠올랐다. 만약 마리네뜨가 레이디버그라면? 그렇지않고서야 이 말에 충격받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블랙캣은 서둘러 머릿속에 떠도는 이 추측을 털어내려 애썼다.


'그냥.. 지치기도 했고..'

'그게 이유의 전부에요? 더 말해줘요.'

'아, 우리 공주님. 왜이렇게 호기심이 많을까..'

'네? 블랙캐앳..'

'사실, 마음가는 상대가 더 생겼거든요.'

'네? 진짜요?'

마리네뜨는 평생 살면서 지금보다 더 놀란 적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블랙캣에게 마음가는 다른 상대가 생겼다니,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마리네뜨는 자신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블랙캣이..'

'왜 그렇게 놀라요?'

'아, 아뇨 그냥.. 블랙캣이 레이디버그를 좋아한다는 건 유명하잖아요.'

'마리네뜨.'

'네?'

마리네뜨는 블랙캣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얼굴이 딜아오르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블랙캣이 새로 마음에 품은 대상은 바로 나, 마리네뜨가 아니였을까. 그런 착각마저 들만큼 달콤한 목소리였다.

'말할게 있어요.'

둘의 눈이 맞닿았다. 둘은 기분좋은 긴장감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를 열기가 그들을 감싸안았다. 마리네뜨는 이 열기가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슨.. 할 말이요?'

'여기, 이곳에서.'

'이곳에서?

'우리, 춤을 춰볼까요?'


뜬금없는 말. 단지 충동이었을 따름이었다. 달빚 속의 마리네뜨는 너무나도 이뻤고 블랙캣의 몸은 근질거렸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함도 있었다. 블랙캣의 마음은 마리네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뛰고있었다.

블랙캣은 당연히 레이디버그를 좋아한다. 이 명제를 가지고 묻는 마리네뜨가 조금은 미웠다. 잠깐, 나.. 블랙캣은 마리네뜨의 그 말에 자신의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깨달았다.

그러자 갑자기 이 마음을 뱉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블랙캣은 간신히 마음을 억누르고 고백대신 춤요청을 건냈다. 거절할거란 블랙캣의 예상과는 달리, 마리네뜨는 선뜻 블랙캣의 손을 잡았다.

'블랙캣.'

'마리네뜨.'

'먼저 말해요.'

'아니, 공주님이 먼저.'

'사실 고민하던거, 그거였어요. 난 아드리앙을 좋아하는게 맞는걸까..'

'공주님, 아드리앙 좋아했어?'

'그랬었죠. 근데.. 블랙캣이 이렇게 뜬금없이 춤을 추자고 하니까..'

블랙캣의 마음이 방망이질을 했다. 혹시 마리네뜨가 하려던 말, 고백은 아닐까. 그럼 내가 먼저 해야지. 이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좋아해요, 공주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거, 공주님이에요.'

'네?‘

'그 말 하려던 거 아니였어요?'

'아니, 맞긴 한데..'

'그래서, 대답해줘요.'

'블랙캣, 좋아해요.'

블랙캣과 맞잡은 손을 축으로 빙그르르 돌던 마리네뜨를 블랙캣이 안아들었다. 둘은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럼, 오늘부터 1일인거죠?'

'당연하지,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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