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큘러스 전력

보름달

레이디버그 전력 425회

해도 달도 별도 매일 뜨고 지지만 어떤 날은 갑작스러운 영감을 선사해주고는 한다. 마리네뜨는 평소처럼 방에 불을 켜놓고 작업하는 대신 달빛 아래서 영감을 받아보기로 했다.

"뭔가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

"그러게, 오늘 감이 좋아 보이는데?"

거침 없는 손놀림과 반짝 거리는 눈. 공책 가장자리에 앉아 응원하는 티키. 그러나 순조로울 줄 알았던 작업에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으악!"

어둠을 헤치고 나타난 인영에 마리네뜨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깜짝이야···! 블랙캣? 갑자기 여긴 무슨 일이에요?"

마리네뜨의 비명에 선수를 빼앗겼던 블랙캣이 뒤늦게 인사했다. 티키는 이미 몸을 숨기고 난 뒤였다.

"순찰 중에 보이길래 인사라도 하러 왔지.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 괜찮아?"

인사 두 번 하다가는 기절하겠네. 블랙캣의 손을 잡고 일어난 마리네뜨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괜찮아요. 근데 혼자예요? 레이디버그도 없이?"

"자발적 추가 근무지. 달이 아름답길래."

블랙캣이 눈을 찡긋했다.

"그럼 보름달이 뜰 때마다 '추가 근무'를 하는 거예요?"

2주 전에 일이 있다고 먼저 가버린 블랙캣을 기억하는 레이디버그, 아니 마리네뜨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레이디버그란 건 몰라도 찔리는 게 있긴 한지 블랙캣이 눈을 피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래도 그런 날이 있잖아? 더 감성적 여지는 날이. 조금 더 나에게 솔직해지고 싶고. 그렇지 않아?"

"그런 날에는 오히려 더 진짜 모습으로 있지 않아요?"

"이게 내 진짜 모습인 걸."

마리네뜨로선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레이디버그와 마리네뜨 중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둘 다 진짜라고 하겠지. 그러나 더 자신에 가까운 쪽은 마리네뜨였다. 미라큘러스가 준 힘은 온전히 제 것이라 하기 어려웠고 영웅이라는 감투는 때때로 '마리네뜨 답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반면 블랙캣은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지금의 모습이 더 진짜라고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길래? 직업이 배우라도 되는 건가?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은 서로를 알아선 안된다. 보여주는 모습 외에 뒷면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달과 다를 바 없기는 했다. 그의 그림자로 짐작만 할 뿐이다.

정작 눈앞의 블랙캣에게는 그림자가 거의 없었다. 그의 대부분이 어둠에 먹힌 채였으니까.

"오늘 추가 근무는 언제까지예요?"

"글쎄, 동한 마음이 사그라질 때까지, 아니면 동이 트기 전까지?"

"농담 재미있네요. 그래도 그건 너무 늦지 않아요?"

가볍게 웃은 마리네뜨가 자리를 조금 옮겼다. 한 사람 정도 더 넉넉하게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자리가 났다.

"보름달을 주제로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조금 봐줄래요?"

"물론이지. 난 패션에 있어선 전문가거든."

블랙캣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빛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의 어둠과 동화된 옷보다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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