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큘러스 전력

그림자

레이디버그 전력 416회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 많은 파리 시민들 가운데 아드리앙도 끼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드리앙은 엄청 빛나는 존재니까 누군가를 동경하거나 사랑해본 적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자신을 구해준 적도 있는 레이디버그에게는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나가다 아드리앙과 만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사실은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아드리앙의 앞에서 바보 같이 구는 건 마리네뜨일 때만으로 족했다. 결국 우연과 운명 사이, 행운으로 타협하기로 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네요."

"···그러게요! 정말 행운이에요."

설마 아드리앙도 같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마리네뜨는 손에 들어온 행운마저 날려버리는 불운을 가졌지만 레이디버그는 다른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드리앙과 한산한 거리를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파리에선 유명인이다 보니 번화가를 걸으면 시선이 몰려들었다. 블랙캣과는 주로 지붕 위에 올라갔었다. 아드리앙은 지붕 위에 올라갈 능력은 없었지만 능숙하게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을 찾았다.

"이런 길도 있었군요."

"저도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니에요. 평소엔 항상 차를 타고 이동하거든요. 정말로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빠 몰래 빠져나와서 산책 하는 곳이에요.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과 함께 오는 건 처음이네요."

"그런 곳에 절 데려와도 괜찮은 거예요?"

"물론이죠, 레이디버그."

레이디버그는 아드리앙의 비밀 산책로를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항상 혼자 다니는 길에 멋대로 끼어들게 되었다는 죄책감에 눈을 굴리느라 아드리앙의 얼굴이 설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당신은 특별하잖아요. 당신은·····, 영웅이잖아요? 파리를 지켜주는."

"그건 제 임무니까요.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걸 이유로 당신에게 호의를 강요할 수는 없어요."

"괜찮아요. 당신과 함께 걷는 건 오히려 행운이죠."

그게 아니라 나는 당신을 동료로서 신뢰하고, 당신은 파리 뿐만 아니라 날 구원해줬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고 싶고 더한 비밀도 공유하고 싶다. 그런 말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아드리앙은 주워 담지 못 할 말을 삼켰다. 그러나 한 구멍을 막으면 다른 구멍이 터지 듯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새어 나왔다.

"사실 혼자 산책하는 건, 너무 외로워서예요. 이상하죠? 외로워서 혼자가 된다니. 친구들이나 아빠와 있을 때는 정말 행복하지만 그 사람들이 원하는 저는 진짜 저와는 많이 달라요. 항상 신중하고, 완벽하고, 순종적이어야 하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면 외로워져요. 진짜 저는 사람들이 보는 후광 뒤의 그림자에 가려진 것 같거든요."

"······."

"아, 괜한 얘기를 했네요. 어쨌든 레이디버그, 당신과 함께 걸어서 기뻐요. 제 입장에서는 당신이야말로 우러러볼 대상이니까 오히려 부담을 주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과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이해해요. 저도 레이디버그가 아닐 때는 특별함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다 실수도 많거든요. 정체도 그렇지만, 그런 것도 들키면 안 돼요. 영웅은 약점이 없어야 하니까요. 여태까지 파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건 블랙캣의 덕이 커요. 항상 여유로워서 저까지 편하게 해주거든요."

레이디버그의 말에 아드리앙이 살짝 웃었다.

"그러니까 제가 하려던 말은··· 당신을 외롭지 않게 해줄 사람도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이 보여준다면 진짜 당신까지도 사랑할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레이디버그는 자신도 그 중 한 사람이라는 말을 억눌렀다. 아드리앙도 그게 당신일 거라는 말을 참았다.

"고마워요."

비밀이 너무 많은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걷느라 생기는 자박 거리는 소리나 바람에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부딪쳐 내는 소리 보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크게 느껴졌다. 말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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