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마리] 그 후에
시즌 1 기준
호크모스의 미라큘러스를 빼앗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방을 메운 수 많은 흰 나비들이 차례차례 창 밖으로 날아올랐다. 햇빛에 따라 금빛으로, 때론 붉은 빛으로 빛나는 자그마한 날개들이 날아올라 창공으로 사라져갔다. 패배해 쓰러진 호크모스의 목덜미에서 미라큘러스를 빼낸 것은 레이디버그였다. 미라큘러스를 빼냄과 동시에 호크모스의 발끝 부터 검은색 구름들이 피어올라 공기속으로 흩어졌다. 변신이 풀려가는 호크모스를 바라보며 레이디버그가 낮게 말했다.
"이건 내가 가져갈게. 넌 호크모스를 봐줘."
"응."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그 말이 장난스런 말 한 마디도 못 붙이게 만들었다. 레이디버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호크모스의 미라큘러스를 올려놓았다. 사용자와 분리된 미라큘러스는 연보라빛 광택이 나는 나비모양 팬던트에서, 그저 까맣고 자그마한 둥그런 팬던트로 변했다. 커다란 창 너머로 주홍빛으로 일렁이는 하늘이 보였다. 레이디버그가 천천히 걸어 검은색 창 틀 위에 섰다. 요요를 두 번 감는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이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렸다.
"또 보자."
레이디버그가 요요를 던지기 위해서 팔을 뒤로 내뺐을 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 레이디버그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레이디버그의 눈동자는 태양의 그림자 속에서도 푸른색 남초롱꽃 색으로 부드럽게 빛났다. 레이디버그가 미소를 지었다. 삼 년 내내 봐왔던 바로 그 미소였다. 비록 오늘 싸움으로 인해서 많이 지쳐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 밤하늘에 떠오른 은하수처럼 찬란했다.
"그래. 우리 야옹아. 또 보자."
그녀의 말이 바람처럼 귓가를 스쳤다. 웃음기가 섞인 밝은 목소리였다. 마음 한 구석이 아릿했다. 그리고 레이디버그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쓰러진 호크모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 *
또 보자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 그 만남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다음날 플렉이 호크모스의 미라큘러스를 돌려받았으니 자신도 이제 원 장소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플렉을 따라 간 곳은 시내 구석의 허름한 동양식 마사지 가게였다. 가게의 주인은 중국 노인이었다. 미닫이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방 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한 채로 명상을 하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문을 열 때 까지만 해도 눈을 감고 있다가 발을 안으로 들이자 바로 눈을 떴다. 어딘가 친근한 모습의 할아버지였다.
"어서오시게, 블랙캣이여."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 이름을 부른 그는 고생이 많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플랙을 바라보자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에서 천천히 반지를 빼냈다. 반지의 매끈한 측면이 약손가락을 훑으며 빠져나갔다. 노인이 반지를 받더니 오래된 오리엔탈 축음기로 다가갔다. 안녕, 블랙캣.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노인이 미라큘러스를 붉은색 팔각 상자에 넣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반지가 올려지는 태극무늬의 칸막이 안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반짝이는 무당벌레 귀걸이를 발견했다.
"레이디버그도 왔나요?"
나는 누군지 모를 레이디버그가 자신의 귀에서 귀걸이를 빼고, 그걸 상자 안에 넣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덜미와 귀부분과 그 팔, 손가락 만 생각날 뿐 그녀의 얼굴은 검은 안개가 뿌옇게 낀 것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노인은 반지를 귀걸이 바로 옆 칸막이 안에 조심스럽게 얹어놓았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레이디버그는 어제 호크모스의 미라큘러스를 돌려주면서 같이 반납했네."
"그렇군요."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짧게 답했다. 노인은 상자의 뚜껑을 닫고 다시 축음기 속으로 집어넣었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 약지에 손을 가져갔다가 횡량함에 숨을 삼켰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은 이대로 사라졌다. 레이디버그도 나와 같은 허전함을 느낄까? 문을 열고 다시 그 장소에서 벗어나기 전, 나는 마지막임을 직감하며 노인에게 물었다.
"미라큘러스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노인은 내 질문에 축음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맑은 풍경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노인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이상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가지고 멀리 떠날 생각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틈새 사이로 플렉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허전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 쪽에서만 손가락을 감싸는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 * *
레이디버그는 빠르게 잊혀졌다.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들이 있었냐는 듯 빠르게 평화에 익숙해졌다. 물론 몇 가지 사고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은 영웅들의 존재를 그리워하곤 했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이 있으면 좋을텐데, 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 쪽으로 향했다. 알리야의 블로그는 갱신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영상 조회수는 꾸준히, 아주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알리야 대신 블로그의 조회수를 체크하고 매일 두 번씩 동영상들을 전부 돌려봤다. 알리야는 가끔씩 블로그에 접속해서 레이디버그에 대한 기억을 풀어놨는데, 그 때마다 스크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웅들이 사라진 뒤 며칠, 몇날이 지나도 오른손의 공허함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오른손을 바라볼 때마다 그곳에 없는 반지자국이 보였다. 레이디버그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한동안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의 귀만 뚫어져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자국같은 것은 남지 않았기에 레이디버그를 찾을 수도 없었고, 오히려 오해만 사고 끝났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여태 그녀를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며 그녀의 흔적들을 쫓았지만 아주 약간의 단서밖에 얻을수 없었다. 그 마저도 그녀가 아마 우리 동네 우리 학교에 다녔던 동갑내기 여학생일 수 있다는 정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레이디버그는 옛 이야기가 되어갔다. 레이디버그에 대해서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아 맞아. 그런 때도 있었지!'라면서 맞장구를 쳤다. 우리의 활약은 사람에 따라 부풀려지기도, 그리고 축소되기도 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고, 그저 영웅놀이에 빠진 사람이었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들을 가치가 없는 말들이었다. 종종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너도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을까, 들으면서 나처럼 웃고 넘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것처럼 너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또 보자고 했으니까 너도 나와 또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지. 매일 이 생각을 했다. 널 또 보고싶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은 약해졌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어쩌면 지나가다가 우연히 지나쳤을지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절망은 우리가 그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 *
고1 발렌타인 데이는 특별한 날이었다. 레이디버그에게 보냈던 편지의 답장이 왔었으니까. 그게 레이디버그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였는지 알 수 없지만 비어있는 이름과 날아온 무당벌레가 그녀라는 확신을 줬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녀에게 보낸 시의 답시라는 것이 그렇게 믿는 근거가 되었다. 방 한 구석에 붙혀놓았던 편지는 이제 종이가 헤질까봐 앨범 사이에 끼워두고 있었다. 문득 편지를 보다가 사실 그녀가 내가 쓴 시의 내용을 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같은 반으로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겠지. 사실 내 편지를 보고 답시를 쓴 사람이 그녀라는 보장이 없지만 작은 실마리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뿔뿔히 흩어졌던 터라 그 날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 날이 발렌타인데이였다는 것이고, 또 빌런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킴과 클로이에 대한 감사함이 솟아났다. 생각난 김에 바로 강의가 끝나자마자 메신저로 아이들과 연락하면서 그 날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니노는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예상외의 곳에서 소득이 났다. 클로이가 그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까 그 때 마리네뜨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지 뭐야? 아직도 왜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그 뒤로도 어떻게 손을 쓰레기통에 넣느냐 그런 말들이 이어졌지만 나는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마리네뜨. 나는 가만히 마리네뜨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애썼다. 어쩌면 버려야 할 것 대신에 중요한 것을 쓰레기통에 넣었을 지도 몰라.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마리네뜨가 레이디버그일 거라는 가능성보다 그렇지 못할 변수가 더 많았다. 나는 다시 앨범에서 편지를 꺼내서 천천히 읽었다. 태양같은 머리, 행운을 부르는 녹색 눈. 마음 속에서 뭉클하고 무언가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마리네뜨가 레이디버그일까. 늘 당당한 모습의 레이디버그와 달리 마리네뜨는 이상한 부분이 많은 아이였다. 나는 마리네뜨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서 레이디버그의 영상을 동시에 틀어놓았다. 눈색과 머리색이 놀랄만큼 흡사했다. 그렇다면 마리네뜨가 레이디버그가 맞는 걸까. 하지만 정말이라면 알리야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지고 있던 이어폰을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리고 마리네뜨가 최근에 찍은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고보니 같은 반이었지만 졸업한 이후로 연락이 그대로 끊겨서 최근 뭘 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영상 속 마리네뜨는 환한 햇볕을 받으며 캠퍼스 안을 걷고 있었다. 풀잎들이 싱그럽게 빛났다. 마리네뜨가 미소를 지었다. 학교에 있는 분수대로 걸어가며 마리네뜨가 영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삭제해버릴거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 모습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리네뜨는 그대로 봄기운을 만끽하듯, 영상 촬영자와 대화를 나누며 분수대에 앉기도 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을 보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나는 알리야가 찍었던 레이디버그의 영상을 틀었다. 레이디버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레이디버그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마치 무당벌레처럼, 반짝이는 발랄한 목소리가 살포시 날아올라 귓가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눈이 시렸다.
* * *
레이디버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할까. 언제나 생각했다. 만약 플렉이 봤으면 닭살돋는다면서 도망갔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만큼 그녀에게 내 감정을 말해주고 싶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녀의 흔적을 쫓았다. 월식날 달을 찾는 것처럼 덧없다 느껴지는 감정들을 잊으려고 애썼던 날들이 떠올랐다. 많은 시간동안 깊은 숲 속에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홀로 내버려진 것 같았다. 그런 날에는 단서찾기에 더더욱 몰입했다.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릿 속에도 레이디버그가 잊혀질까봐 기록된 모습들에 매달렸다. 나는 사람들에게 영웅이었지만, 그녀는 내게도 영웅이었다. 너에게 뭐라고 말할까. 레이디버그? 있죠, 사실 제가 블랙캣이에요. 그럼 그녀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상상할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이 이제 또렷하게 떠올랐다.
마리네뜨. 내가 너를 그리워 한 만큼 너도 나를 그리워했을까?
캠퍼스는 영상 속 모습과 동일했다. 버릇처럼 가방에 넣은 까망베르치즈가 움직일 때마다 덜그럭거렸다. 마리네뜨가 어딨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이 시간대 쯤 학생식당에 있지 않을까 해서 무작정 들어왔다.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모두 상관 없었다.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건 레이디버그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학생 식당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마음이 서서히 구름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예전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눈부신 햇볕을 받으면서 함께 건물 지붕을 뛰어다니고 검은나비를 정화시키고, 손을 맞댔다. 영상을 계속 보아도 오래된 렌즈로 보는 것처럼 뿌옇던 그녀의 모습이 식당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또렷하게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왜 못 알아봤는지 의아해질 정도로 그녀와 마리네뜨는 닮았다. 더 빨리 눈치챘다면 그대로 헤어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마음 한 구석이 살짝 아렸다.
학생식당은 넓었고, 학생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녀의 흔적을 쫓았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지나갈 때마다 길에 밟혔다. 불안함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이 곳에 왔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록 아드리앙의 모습이지만 내가 그녀를 알아봤던 것처럼 그녀도 나를 알아봤으면 했다.
"아드리앙…?"
세 번째 테이블까지 돌고 계속 그녀의 흔적을 쫓을 때 소음을 뚫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번째 테이블 저 끝에서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비록 머리 스타일은 전과 달랐지만, 밤하늘 같은 머리와 남초롱꽃 같은 눈 색은 그대로였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심장이 서서히 크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헤치면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양해를 구하는 목소리 뒤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덕분에 그 초롱꽃처럼 맑은 눈동자가 더 잘 보였다. 누군가 심장을 세게 움켜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쏠렸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다시 일상적인 소음이 주변을 채웠다.
"아드리앙?"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준비해왔던 말들은 모두 쓸모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적어뒀던 원고를 찢었다. 심장이 마치 드럼 치는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왜 여태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마리네뜨는 레이디버그였다. 블랙캣은 레이디버그에게 할 말이 하나 밖에 없었다.
"찾았어, 마이레이디."
마리네뜨의 얼굴이 잠시 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서서히 물감을 탄 것처럼 발그레해졌다. 마리네뜨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리네뜨가 얼어붙은 것처럼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블랙캣…?"
그건 정말이지 레이디버그의 목소리였다. 그 날 이후로 꿈에서밖에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였다. 매일 밤 다시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꿈꾸며 잠들고, 일어나서는 꿈이라는 사실에 애통하게 만들던 목소리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난 뭉클함이 빠르게 뛰는 심장을 따라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졌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몰랐네. 다시 만나서 다행이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눈가가 축축해졌다. 눈물이 그대로 뺨을 쓸고 밑으로 떨어져내렸다. 머릿속을 휘감는 모든 감정들이 눈시울에서 섞여서 흘러내렸다. 그녀가 당황한 듯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뺨에 살짝 닿았다. 그녀는 그대로 멈췄다가 손을 들어 내 뺨을 쓸었다. 그녀가 미소짓고 있었다. 빛 아래서 물기가 어린 그녀의 눈망울이 맑게 빛났다.
레이디버그. 나는 말을 삼키고 대신 웃었다. 이제 헤어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이제 할 이야기보다 더 많은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다. 뺨이 축축했다. 그녀가 아주 천천히 내 볼을 어루어만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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