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버그 소설 재업

[캣마리] 부재

시즌 2 기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이러다 나무에 달려있는 모든 잎사귀들이 떨어져 다시 겨울이 될 것만 같았다. 블랙캣은 어깨를 감싸안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시큰거리는 푸른 하늘이었다. 햇볕이 부드러웠지만 바람이 너무 차서 도저히 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저 멀리서 빌런이 된 마리네뜨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닿는 곳마다 그녀가 입은 정장과 똑같은 분홍빛 물방울 무늬와 남색으로 뒤덮였다.

언젠가 마리네뜨 또한 빌런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자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레이디버그는 언제 오는 거지? 블랙캣은 멀리서 마리네뜨의 행동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마리네뜨가 빌런이 된 지 세 시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레이디버그에게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블랙캣은 다시 레이디버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지금 우린 에펠탑을 향해 가고 있어. 레이디버그, 어디에 있는 거야?" 검은나비를 정화하려면 네가 필요하단 걸 알고 있잖아. 블랙캣은 뒷말을 잇는 대신 자신의 입술을 씹었다. 이전에 찍었다는 반 단체사진처럼 복사꽃 머리핀으로 머리를 틀어올린 마리네뜨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가를 둘러싸고 있는 남색과 분홍빛 꽃들 때문에 가끔씩 그녀가 레이디버그처럼 보였다. 블랙캣은 고개를 저었다.

"블랙캣, 내려오지 그래요?"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블랙캣은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레이디버그인가 싶어서 바로 고개를 들었지만 눈이 마주친 건 그녀가 아니라 검은나비에 잠식당한 마리네뜨였다. 마리네뜨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유없이 속이 거북해졌다. 닮아도 너무 닮았는데. 블랙캣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리네뜨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서."

블랙캣은 다시 한 번 메세지를 체크했다. 답은 커녕 읽었다는 표시도 뜨지 않았다. 결국 블랙캣은 지붕에서 뛰어내려 마리네뜨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레이디버그가 오기 전까지 검은나비가 어디있는 지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나름 커다란 광장이었는데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블랙캣이 순순히 걸어오자 마리네뜨가 싱긋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분명히 반쯤 접혔음에도 계속 바라보는 게 느껴저서 섬뜩한 눈웃음이었다. 전혀 웃고 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블랙캣, 모두를 용서하고 남들을 구하는 게 피곤하지 않아요?"

"전혀요. 그나저나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지는 몰랐는데."

"마리네뜨가? 아니면?"

마리네뜨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블랙캣은 눈가를 찌푸렸다. 아니면이라니. 마리네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블랙캣은 대답하는 대신 마리네뜨를 빠르게 훑었다. 검은나비가 그녀에게 들어갔을 때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마리네뜨에게 항상 있었으며, 현재도 그대로 있는 걸 생각하려 노력했다. 바로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작은 가방. 블랙캣은 마리네뜨의 허리춤을 확인했다. 그녀가 항상 가방을 메던 곳에 보라색 나비날개 모양의 코사지가 달려있는 것이 보였다.한 번에 찾았다고 생각한 사이에 마리네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블랙캣 이거 기억나요?"

어떤……? 블랙캣은 시선을 올려 마리네뜨와 마주했다. 마리네뜨가 블랙캣 앞에서 수줍은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뭐가 기억나냐는 건지 혼란스러워하던 찰나에 마리네뜨가 자신의 옆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마리네뜨의 귓가에서 반짝이는 검은 귀걸이가 보였을 때 블랙캣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레이디버그를 찾고 있나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저건 검은 귀걸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변신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반지가 은색이었던 것을, 그리고 지금 레이디버그에게 큰 일이 생겼다는 것을. 블랙캣이 주춤하는 사이에 마리네뜨가 서서히 그에게 다가왔다. 검지손가락 하나 펴 입술을 장난스럽게 두드리던 마리네뜨가 다른 쪽 팔로 그의 어깨를 감쌌다. 마리네뜨가 속삭였다.

"불쌍한 우리 야옹이."

낮게 깔린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팔을 휘감았다. 블랙캣은 얼어붙은 채로 자신의 히어로와 마주했다. 그녀의 눈망울이 물기를 잔뜩 머금은 물망초색으로 반짝였다.

"블랙캣, 반지 줘. 우리 이제 히어로 같은 건 하지말자. 너무 힘들었잖아, 그렇지?"

여전히 블랙캣의 어깨를 감싼 채 마리네뜨가 그대로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심장이 떨어져내릴 것 같았다. 블랙캣은 입술을 깨물었다. 말도 안돼. 레이디버그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블랙캣은 눈을 감았다. 어떤 게 말이 안 되는 걸까 레이디버그가 검은나비에게 잠식당한 게? 아니면…, 그녀가 마리네뜨라는 게. 방금 전까지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블랙캣……."

가슴팍이 축축해졌다. 마리네뜨의 손이 그의 어깨에서 서서히 그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블랙캣은 여전히 얼어붙은 채로 그녀에게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정화시켜야 했지만 레이디버그 없이 어떻게 자신 혼자서? 예상할 틈도 없이 가장 최악의 악몽이 그를 덮쳤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마리네뜨가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나비날개처럼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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