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born...what?
드라큘라군x투명신사
"이제 일어났네."
때마침 기다림에 지쳐가던 때였다. 확실히 해가 저물자마자 일어나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일어나자마자 제가 던진 인사에 비몽사몽하던 표정이 저를 보고는 무슨 무단 침입자냐며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이 저택 앞에 걸려있던 누구나 환영한다는 의미의 판떼기는 어쩌고. 개를 부르길래 발치에서 개껌을 씹으며 노는 늙은 개를 가리켰더니 이번에는 저쪽이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딱히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서 관에서 이제 막 일어난 이를 다시 불러 서두부터 꺼내기로 했다. 시간 낭비는 적을 수록 좋으니까.
"저기, 흡혈귀라고 해서 왔는데. 맞아?"
"맞네만?"
"얼마나 살았어?"
…자네도 나를 괴롭히러 온 겐가?
어쩐지 힘이 팍 죽어버린 목소리인지라 카이지는 붕대로 감겨있음에도 제 뒷통수를 긁적였다. 그냥 뭐 좀 물어보러 온 건데. 툭 던지듯 답을 던져주면 무엇을 원하느냐 묻다가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만, 뱀파이어와 던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주기도 싫고, 알려줄 수도 없다며 질색팔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규모의 난동 아닌 난동을 진정시키고 오해아닌 오해를 푸는 것에 든 시간이 수십 분 되시겠다. 겨우 진정한 흡혈귀는 식사부터 대접해 주겠다며 컴컴한 지하를 올라가 호화로운 방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받고 싶어서 온 건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손님 대접이나 집주인으로서의 생각은 확고한 듯 싶었다.
"일단, 제대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는 살았다네. 자네는?"
"응?"
"자네는 미라 아닌가."
아, 이런 오해가 남아 있을 줄이야. 그것을 부정하면 그럼 제 종족에 대해 묻길래 인간이라고 답해주었다. 인간? 썩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카이지는 다시금 긍정해주었다. -물론, 평범하지는 않고, 투명한 몸뚱아리지만 말이야. 장갑과 선글라스를 벗고, 붕대를 풀며 답을 이어주니 뭐냐며 다시금 파하하, 웃는 흡혈귀가 시야에 들어왔다.
"투명 인간이라면 안심이네!"
"아니, 인간이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당신이나 진짜 투명 인간 같은 이종(異種)이 아니라, 인간에서 투명 인간이 된 케이스라고,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일 때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잠깐씩 따라 흔들렸지만 그는 눈 앞의 흡혈귀가 납득하기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전부 설명하기에는 걸리는 시간이 짧지 않으니, 카이지가 택한 것은 요약이었다. 일본에는 풍신 일족이라는 닌자 일족이 있고, 그들에 의해 인간의 몸에서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몸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매우 짧고도 짧은 요약이었으나 흡혈귀는 그 이유를 물었다. 자원한 것이냐는 질문에 카이지는 보일 리 없는 쓴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원을 했다고 한다면 풍신 일족이 와해된 지금 즈음, 기쁜 마음으로 여탕을 훔쳐보거나 은행을 털거나 하고 있으리라.
"그랬으면 이러고 있겠어?"
"그럼?"
"강제로 당한 거야. 지금은 원래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중이고. 어느 풀이 필요한데, 이 T국에서 구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허탕만 치던 와중에…. 목적 하나 없이 파스타 면만 휘감던 포크가 흡혈귀에게 향했다.
"흡혈귀의 소식까지 들었지."
"나는 피를 마시지, 풀을 먹지는"
"아무도 흡혈귀가 풀먹는다고 생각 안해. 물어보러 온 거야, 투명한 몸을 원래대로 돌려주는 약초라던가, 그 비슷한 거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느냐고."
생각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려 꺼낸 본론이었지만 일단 입 밖으로 내뱉었으니 된 일이다. 답을 기다리며 눈 앞의 흡혈귀가 기억을 더듬는 듯 고민하는 걸 보고 있자니 포기했던 희망도 조금씩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제발 알고 있기를.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가도 들었다, 이리저리 옆으로 기울이다가 허리까지 숙이던 흡혈귀는 눈썹을 늘어뜨린 채로 망토를 휘감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른다는 결론이 그에게서 도출된 것이리라. 동시에, 카이지는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알았어, 실례했어, 집주인."
"아, 가기 전에 피 좀 기부하고 가면 좋겠는데. 최근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싱싱한 생피는 구경도 못했다네."
"나는 흡혈귀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서 말이야."
"물린다고 다 이 몸과 같은 흡… 아, 그렇지. 자네는 원래 인간이었다고 그랬던가."
"…일단 허탕이어도 정보는 정보니까 대금은 지불할게. 수혈팩 같은 걸 구해다주면 되는 거지?"
그래, 수혈팩이 어디냐. 제 저택 내에 있는 저장고는 슬슬 팩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온갖 수모를 당한 기억이 떠오르자 바로 초췌한 얼굴이 되었지만 흡혈귀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몸의 저택 근처에도 희귀한 풀들은 잡초들과 함께 자라나는 경우가 있으니, 그걸 채집해가도 좋네! 대신 이 몸을 보호해준다는 조건으로…!!"
"…보호?"
…흡혈귀를?
그 무슨 어처구니 없는 요구인가. 아니, 제안이려나. 어느 쪽이라도 별 상관은 없지만 그 조건이 매우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붕대를 얼굴에 두르고 선글라스를 끼기 전 흡혈귀를 바라보면 보이지 않을 텐데도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정말 간곡한 어조로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하겠다며 온갖 것들을 다 실험했고, 언제 그 여자가 또 올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힘은 댁이 더 세지 않아? 그 여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네! 아, 울겠다. 울겠어. 표정은 아니었지만 목소리 만큼은 그러했다.
"아, 하지만 조심하게. 그 여자가 아는 이 중에는 진짜 투명 인간도 있으니."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 고마워."
"늑대 인간도 있지만, 인간의 똘마니가 되어버린 그런 것들은 별 상관 없고… 일단 부탁만 들어준다면 이 저택 주변의 모든 풀들을 마음대로 해도 좋고, 물론 흡혈귀로 만들지도 않을테니까."
후자는 협박인가.
"아, 확실히 보지도 못했던 풀이 몇 종류 있는 것 같긴 하더라."
뭐, 거래 성립이네. 그 한 마디에 눈에 띄게 밝아진 흡혈귀의 표정이 왜 이리 안쓰러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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