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배저

[블랙배저] 아미 없는 윤

윤이... 웃어?

파도타기 by 율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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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현."

"왜요?"

"윤이 아미랑 떨어져 본 적 있어?"

"혼수상태도 포함된다면 있긴 한데요..."

웬만하면 그때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네요. 예현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잔뜩 묻어나는 듯한 건 착각이 아니었다.

"잠 얼마나 오래 못 잤어?"

"힐데. 저 쪽잠 자주 자니까 괜찮아요."

"말 돌리지 말고."

"들으신 적 있는 걸로 아는데, 1차 전쟁 끝나고 2년 동안 아미가 혼수상태였어요."

"말 돌리지 말라니까?"

"윤이 아이돌 춤 추는 거 상상해 본 적 있어요?"

"뭐?"

뭐라고? 힐데는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하려고 했던 말도 잊어버렸다. 얼른 침대에 가서 이불 덮고 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뭐? 윤이 아이돌 춤?

커피머신 돌아가는 소리가 아늑한 공간을 채웠다. 힐데의 반응이 웃겼는지 예현이 숨길 생각도 않고 쿡쿡 웃었다.

"그게 그렇게 안 믿기세요?"

"내가 아는 윤은 그렇지 않던데..."

"아미가 부탁했으니까요. 저 사실 이거 힐데라서 말하는 거에요. 다른 사람한테 말한 거 알면 윤이 아마 제 입 청테이프로 막아버릴지도 몰라요."

아무튼간에, 아미 없는 윤은 힐데가 뭘 상상하시든 그 이상일 걸요. 웬만하면 아미가 윤 옆에 있기를 바라는 편이 좋을 거에요.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의 끝이 흐려졌다. 예현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점점 희미해진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모양이었다.

"궁금하시면 말해 드릴게요."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들어도 되는 거 맞나?"

"너무 깊은 것까진 말 안 할 거니까 괜찮을 거에요, 아마."

그때의 윤은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어요. 보통의 사람이 느낄 법한 슬픔이 모조리 분노로 치환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두 손을 모은 예현이 중얼거렸다. 저는 윤을 정말 아껴요. 그래서 그 시간은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네요. 걔한테도 가혹한 시간이었으니까...

*

최윤은 모든 것이 끝난 다음 눈을 떴다.

아직도 코 끝에 매캐한 화약 냄새, 피비린내가, 자욱한 죽음의 냄새가 맴도는 것 같은데. 눈을 뜨기도 전에 손 끝에 만져진 건 빳빳한 이불 자락이다. 윤은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 끝났구나.

다 끝났어...

끝이 보이지 않는 전장이라 여겼다. 지난한 전쟁의 종지부를 제 눈으로 볼 날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살아 있다. 운이 억세게 좋았군.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어 소리를 내려고 시도했다. 다 나간 목에서는 웬 이상한 짐승 소리 비슷한 것이 났다.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고 지랄이야... 강화신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윤은 짜증스럽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내 엄청난 고통이 그의 허리를 강타해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병실을 돌던 파란 눈의 의사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들린다.

아미랑 예현은 살았을까?

생각이 이어질 틈도 없이 윤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자 침대 옆에 서 있는 마른 형체가 보였다. 제 얼굴에 내리꽂히는 시선의 주인을 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눈을 뜨고 가만 시선을 마주한다.

예현은 놀란 듯 눈을 크게 키웠다.

"윤."

"...예현."

"전쟁이 끝났어."

"그 빌어먹을 전쟁이 끝났으니 태평하게 병실에 누워 있을 수 있겠지..."

예현이 입고 있는 환자복을 힐끗 쳐다본 윤이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너도 아직 돌아다닐 상태는 못 되는 것 같은데. 사람 신경쓰이게 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어. 안 그러면 여기 의사가 존나 화낼걸...

'오빠, 안 돼! 아무리 상황이 뭣같아도 비속어는 쓰는 거 아니랬엉!'

맹랑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린다. 퍼뜩 정신이 맑게 깨었다. 설마, 아니겠지. 시체밭에서 살아 돌아온 나도 있는데 설마.

"아미는."

"...그 말 하려고 온 거야."

아미는 살아 있어. 그런데 혼수상태래.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고 그랬어.

예현은 말없이 아미의 군번줄과 작은 녹음본 하나를 건넸다.

보통 전투기에는 블랙박스가 없다. 당시의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녹음기 정도나 있을 뿐이다.

- 안녕! 그간 고마웠어!

지직거리는 소리 틈으로 밝은 목소리가 들린다. 녹음본은 거기까지였다.

윤은 아미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보았다. 본인의 죽음을 상정한 말이다. 멍청한 놈이, 자기 죽어도 다른 사람은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나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아미의 유품하고 유언이 될 수도 있단 말이지.

빌어먹을 세상 따위 다 망해 버려. 잠깐이지만 윤은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씨발 내가, 내가 무슨 일 있었어도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공군에 쳐들어가서라도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놨어야 했는데. 애초에 가족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자들을 믿었으면 안 됐는데. 제발 나가지 말라고, 나갈 필요 없다고, 나갈 필요 없다고...

너는 책임질 필요 없다고. 인력 부족하다고 해서 사지에 뛰어드는 게 네가 될 필요는 없다고. 네가 안전하면 됐다고, 그러니 제발 안전하라고... 어디 가둬서라도 못 나오게 했어야 했는데.

얘가 앞장서서 사지로 뛰어들 걸 내가 몰랐나? 씨발 그랬겠냐?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보다도 앞서 제 몸을 불태울 아이였다. 곁에서 얼마나 오래 봤는데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책임질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귀한 희생을 자처할 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에 부르면서 죽는 순간에는 기어코 웃을 아인데.

웃음기가 묻어나는 녹음본의 끝부분을 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물기가 어려 있다. 아미가 아무리 무모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두려웠을 텐데.

보통 사람이 느낄 법한 절망감과 슬픔을 윤은 모조리 분노로 치환해 살았다.

*

하늘은 왜 파랗고 지랄이지.

식당 밥맛은 왜 좆같고 난리야.

왜 사람이란 것들이 한 명 빼고 지능이 침팬지만도 못 해?

최가 그 돈만 많고 쓸모없는 새끼들은 무슨 애 하나 못 막고 가만 놔둬? 씨발 오히려 나가라고 푸시한 거 아니야? 그랬겠지? 진짜 개좆같은 새끼들이...

윤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부러 분노를 다른 곳에 돌린 쪽에 가까웠다. 안 그러면 당장에라도 에이택 회장가에 쳐들어가서, 아미를 사지에 몰아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인간 말종 새끼들의 목을 따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미가 있을 때면 유해지던 모습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블랙배저 본부의 사람들은 윤이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무기질을 닮은 새까만 눈 너머로 감정이 읽히지 않는 신경질적인 남자.

대부분의 사람이 윤을 두려워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유해지던 부분은 이전보다도 날카로워졌고, 매사에 일절 타협하지 않았으니.

주변 사람들은 예현에게 눈치를 주곤 했다. 네가 좀 어떻게 해 봐. 쟤가 네 말은 조금이라도 듣잖아. 원래대로라면 굳이 주변의 요청이 없었어도 그리했으리라.

하지만 예현은 웃으며 전부 무시했다.

윤이 좀... 일에 있어서 비협조적으로 굴긴 하지. 지난번 임무에서는 작은 실수를 한 동기를 한 시간 내리 갈궜다고 했던가. 과학동 사람들 무시하는 걸 숨기려고 들지도 않고. 사실 그게 윤의 원래 모습에 가깝다고 예현은 생각한다.

그야 아미가 없으니까.

윤의 심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예현일 텐데 속도 모르고 편한 소리를 하고 앉았다. 그는 타협의 정의를 잊은 사람처럼 굴었지만 업무적인 면에서 문제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윤이 변한 이유를 알기 때문에 예현은 그를 저지하지 못했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쪽에 가깝긴 하다.

아직까진 괜찮아.

예현은 허용되는 선까지 윤을 봐줄 작정이었다.

*

"윤."

"왜."

"...아니야. 나 내일부터 일주일 간 출장 간다고. 알려주려고 왔어."

"호위는 몇 명 정도 붙냐?"

"두 명 정도? 그 정도면 차고 넘치지."

줄곧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하던 윤이 예현을 응시했다. 여느 사람들이라면 무감하다 말했을 눈에서 예현은 수없이 얽힌 감정을 읽는다. 분노, 짜증, 그 틈에 살짝 내비치는 걱정.

예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호위들보다도 센 거 알지? 난 무사히 돌아올 거야.

윤은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면 그 사람들 귀 한쪽씩 날려버릴 거니까."

과학동 문 앞에서 멀어지던 예현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래야 한다.

*

윤은 애정과 소유욕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단순히 제 것이라 정의한 것을 다른 이가 탐내는 것뿐만이 아니다. 윤은 자기 선 안에 들어온 사람을 건드리는 일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뿐이면 다행이지, 만약 모욕까지 간다면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놨을 것이다. 이는 윤을 오랫동안 봐 온 예현이 내린 결론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잘못은 그 개자식들이 먼저 했다. 윤은 단지 여느 때처럼 저를 뒤에서 씹는 이들의 말을 조용히 녹음하고 있었을 뿐이다.

"예현이 그 소시오패스랑 같이 찍힌 사진 봤냐? 둘 다 게이라는 점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자기 동생 혼수상태랍시고 평소에 지랄하는 거 꼴 보기 싫지 않아? 전쟁통에 가족 안 죽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유난이야?"

"걔 법적으로 성인 되자마자 강화신체 이식받았다고 했지? 어리니까 그냥 강화신체 받고 싶어서 전쟁 나간 거 아니야? 누가 나가랬어? 솔직히, 생각해 봐. 책임질 필요 없는데 사지에 제 발로 뛰어드는 미친년이 어딨냐?"

"최아미? 이름부터 군대에 갈 상이었네... 걔 오빠가 지랄하는 것도 모르겠지? 언제 죽는다냐? 새뮤얼한테 가서 물어봐. 그래야 윤 그 새끼 지랄도 끝나는..."

탕!

임무에 다녀온 직후였다. 윤에게는 권총이 있었고, 그는 저도 모르게 아미의 죽음을 입에 올린 배저의 한쪽 귀를 쐈다. 장전한 총의 방아쇠를 당기기까지의 과정을 윤은 모두 기억했다. 일부러 그랬으니까.

목숨이 아까우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날 뒤에서 씹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그 둘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감히 아미가 어떤 앤 줄 알고 함부로 아가리를 놀려? 예현은 또 어떻고?

저딴 것이 감히 입에 올려 더럽혀도 되는 이름들이 아니었다.

윤은 센터코어 안에서도 손꼽히는 전투력을 가진 이였으므로 뒤는 뻔했다. 그들은 윤의 손에 반쯤 죽었다.

*

전대 총사령관은 강주를 인사부장 자리에 앉혔다. 평소 그의 행실 때문에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곧 인사人事 관련된 부분에서는 강주를 따라갈 자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 방면에서 강주의 재능은 천재적이었고 사람 보는 눈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인사부장이 보기에 윤은 위험한 자였다. 매우, 매우, 어쩌면 크리처보다도. 대부분의 크리처는 인간보다 지능이라도 낮지, 윤은 고지능 소시오패스다.

현재까지 눈에 띄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건수 하나라도 잡혔다면 강주는 그를 바로 정신병원에 처넣었을 것이다.

예현은 뭘 보고 그를 옆에 두는 걸까. 줄곧 풀리지 않던 의문을 떨쳐 내려 애쓴 강주는 사물함 옆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피로 범벅된 배저 둘과 그들을 무덤덤한 얼굴로 패는 윤을 발견했다...

*

강주가 윤을 정신병원에 집어넣은 일은 예현이 출장에서 돌아오며 일단락되었다. 출장이 끝났더니 곧장 큰일을 마주한 그로서는 안타깝게 된 일이었다.

예현은 피곤한 얼굴로, 윤 없이 뮐른만 과학동에 있으면 연구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과 그만한 인력을 정신병원에서 썩히는 건 크나큰 손실이라는 사유를 들어 윤을 정신병원에서 빼냈다.

배저 본부 내에는 금세 소문이 퍼졌으나 그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처박혀 있던 윤이 나가자마자 본부 내 마이크를 해킹했기 때문이다. 그는 녹음해 두었던 파일 뒤에 발언자들의 이름을 덧붙여 한 시간 동안 송출되게 내버려 두었다. 윤이 그랬다는 증거는 없었다.

반죽음이 된 배저들은 동정받지 못했다. 어차피 강화신체를 이식받았으므로 금방 회복하리라. 그리고 가족을 잃은 배저들은 윤의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먼저 넘은 건 그들이다.

시간은 계속 흘렀으나 일분일초가 지독히 느렸다.

윤은 아미의 병실에 꽤 자주 들렀다. 이십대 초반에 멈춰 있는 제 동생을 보고, 여전히 동글동글한 정수리를 몇 번 쓰다듬어 보다가 머리가 길면 잘라 주었다. 아미가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좋아하던 노래를 틀어 둔다.

헛된 희망을 가지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문득 떠오른 적도 있다. 직후 윤은 헛웃음을 지었다. 저와 헛된 희망이라니, 그만큼 안 어울리는 단어들이 있나 싶었지.

윤은 사실에 기반한 가설을 믿었다. 새뮤얼은 아미의 경과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강화신체 보유자 중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난 사례가 많았다. 그들은 회복력이 여타 민간인에 비해 월등하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미가 전투기 추락을 겪어 뇌에 손상을 입긴 했지. 하지만 괜찮으리라. 괜찮아야 했다...

윤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그는 계속해서 희망을 가졌고, 그건 헛된 게 아니었다. 누구도 아끼는 사람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헛되다 치부할 순 없으므로.

*

아미는 따뜻한 날에 눈을 떴다.

윤이 가져다 둔 스피커에서는 디즈니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가 마법을 걸며 부르는 노래.

-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아미는 꼭 그 때에 맞춰서 눈을 반짝 떴다.

- I'll do magic believe it or not~ bibbidi-bobbidi-boo~...

오빠. 살아서 다행이다. 깨어난 아이는 다 나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동그란 눈을 예쁘게 접고서.

윤은 그때 제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아미를 한참 동안 끌어안고 있던 건 확실했다.

최아미,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조용히 대꾸하며 형편없이 떨리는 손으로 작은 등을 감쌌다.

사지에 제 발로 뛰어든 애가 이리도 작았던가. 너무 작았다. 전쟁에 나갈 각오를 하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살아서 다행이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만큼.

*

아미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1년 간은 제대로 걷지 못했다. 2년 동안이나 누워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윤은 시간 날 때마다 아미의 재활 훈련을 지켜보러 갔다. 기구를 짚고 걷는 아미는 꽤 자주 비틀거렸는데 늘 말없이 받쳐 주는 손이 있었다. 그때면 아미는 윤을 보고 말갛게 웃었다.

예현은 아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전부 뒤로 미루고 병실로 달려왔다. 환히 웃으며 저를 부르는 아미를 끌어안고 예현은 한참 울었다. 옆에 있던 윤이 핀잔을 줘도 깨끗이 무시하고, 그저 정말 다행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자 아미는 본부 내를 활기차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본부 사람들은 이내 어린 참전용사를 좋아하게 되었다.

당연하지. 아미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팔불출 같은 생각을 자주 했다.

본부 사람들이 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까지 알았다면 분명 기절했으리라. 애초에 그들은 윤의 변화 때문에 이미 차고 넘치도록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아미가 윤에게 장난을 걸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 주었다.

아미 옆의 윤은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장난에 어울려 주기도 하고 제 동생을 웃긴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부의 누군가는, 재활 목적으로 아이돌 춤을 추는 아미를 따라하는 윤을 본 적 있다고도 증언했다...

과학동 사람들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졌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2년 간 쌓은 통계에 따른 기분 수치를 따져 봤을 때 윤은 유례없는 최고치를 찍고 있었다.

윤이... 웃어?

머리를 쓰다듬어 줘?

장난을 받아 줘?

애초에 오빠일 수 있는 사람인가?

최윤 밑에 최아미 같은 동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입양아라던데 혈연이 아닐 가능성은 없을까???

아미 없던 2년은 끝났고, 정말 잘 된 일이었다. 윤에게도, 예현에게도, 무엇보다 최윤에게 시달린 모든 이들에게도.

*

"힐데 안녕! 초콜릿 먹을랭?"

힐데베르트는 전날 예현에게서 얘기를 들은 이후로 줄곧 심란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입가에 초콜릿을 묻히고 제게 하나를 건네는 동글동글한 선임을 마주친 것이다.

복복복복복.

힐데는 아미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아미의 머리를 잔뜩 쓰다듬고 말았다.

"아미... 정말 다행이에요... 초콜릿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힐데 울어?? 도대체 뭐가 다행인데! 초콜릿이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거야??"

사소한 오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힐데는 제 사랑스러운 선임이 소중한 사람들 옆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마음 깊이 바랐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충 5000자 쯤에서 끊으려고 했는데 정신없이 갈기다 보니까 약 7800자가 되었네요... 며칠 동안 끌어안고 있던 과거날조 드디어 방생~~~!!!!!!!

전에 썼던 썰을 기반으로 완성한 글입니다. 캐해에 있어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원작수혈이나 하러 가야지

부족한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2024/3/6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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