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상어의 이가 녹으면 0
여운명하
주제 파악에는 3단계가 있다. 첫번째, 가질 수 없는 것을 인지하기. 두번째, 가질 수 없음을 인정하기. 세번째,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지 말기. 욕망을 거세당하는 것. 나같은 사람은 그런 것에 아주 익숙했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 무엇도 탐내본 적이 없었다. 욕심도 승부욕도 무엇도 없는 무력함. 나는 그렇게 마트에 진열된 물고기처럼 죽어가듯 살아갔다.
숨죽이며 잘 죽어가던 나는 차여운을 발견했다. 나와 같은 물고기. 여운을 볼 때면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겨우 숨만 쉬던 아이에게 물을 주고 싶었던 게 잘못이었던걸까. 그 아이는 나와 같으면서도 달라서 세상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것도 이내 손에 쥐고 있고는 했다. 여운이 다가올수록 나는 물러섰다. 가까워질수록 겁이 났다. 여운은 그래도 뒤돌아서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차여운은 그렇게 내게 파고들었다.
"헤어지자.“
차여운이 울었다. 나는 그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만 싶어져서. 여운이 들어보지도 못한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손을 놓고 돌아섰다. 끝내 여운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같이 우는 소리를 냈다. 나는 애써 모른체하며 가로등마저 위태로이 깜빡이는 긴 골목을 쉬지도 않고 걸어갔다. 여운은 내가 저 멀리 점이 될 때까지도 내 등을 바라보고 우두커니 서 있음을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여운은 물고기가 아니라 더 넓은 바다에서 헤엄쳐야 할 상어임을 깨달은 날이었다.
내 손바닥에는 점이 하나 있다. 어릴 적 옆집 담벼락을 넘어 뻗어나온 장미 덩쿨을 만지다 파고든 가시를 빼내지 못해서 남아버린 흔적. 이제는 아프지도 않았지만 종종 점을 매만지며 아직도 파고든 피부 아래 깊숙이 숨어 있을까 생각했다.
셔터 소리에 맞춰 포즈를 취하는 여운을 멀리서 바라본다. 그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여타 스탭들 뒤로 물러섰다. 여운의 성숙해진 얼굴이 이전보다 더 날카롭다. 모니터 안의 여운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생경해질 즈음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언제나 그랬듯 그 눈이 나를 보고 있다. 검은 눈동자가 심장을 꿰뚫는 것만 같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저 눈은 내게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너무 오래 그를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어서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을까. 여운의 눈빛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마주친 시선이 착각이길 빌었다.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고 달리시나요?”
리포터의 질문에 여운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대답하길 바랐는데 금세 굳은 표정의 여운이 카메라 너머 나를 응시한다. 불가항력처럼 눈을 피할 수가 없다.
“도망가는 누군가를 따라 뛰어가는 상상이요. 전 계속 그 사람 등을 보면서 달리는거에요. 아무리 달려가도 멀어지거든요.”
여운은 그날 밤 얼마나 오래 서 있었을까. 물어보지도 못할 질문을 곱씹었다. 내 손바닥에선 식은 땀이 배어나왔다. 울지 못한 눈 대신 손이라도 울고 있는걸까. 손을 허벅지에 문질러 닦으며 자꾸만 불규칙해지는 숨을 골랐다.
“예전엔 누가 끝에서 기다리는 상상을 했어요. 잠시였지만.”
결국 여운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눈꼬리가 축 쳐진 슬퍼보이는 눈. 그건 나만 알아볼 수 있었다. 사소한 습관까지 기억한다는 걸 여운은 알까. 알아봐야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
누가 끝에서 기다리는 상상…. 여운의 말이 어지럽게 귀에서 맴돌았다. 고개를 치켜들어야 비로소 마주볼 수 있을만큼 큰 여운도 작아보이던 넓디 넓은 운동장에서 여운을 얼마나 기다리게 했을까. 아무도 없이 홀로 텅 빈 집이 싫었던 여운에게 내가 없던 운동장마저 그렇게 다가왔을까.
인터뷰를 하던 여운은 내내 여유로워 보였지만 나는 알았다. 무엇때문인지 불안정한 상태였다는걸.
“금메달 축하해. 오랜만이야. 벌써 10년이네…. 잘지냈니?”
“못 지냈어요. 누구 때문에.”
“그래….”
날선 말이 심장을 푹 찌른다. 여운의 눈길이 차다. 처음 만난 그때처럼. 차마 다시 말을 걸 용기도 없어서 그저 어딘가 변해버린 여운만 눈에 담았다. 바래진 기억 속의 여운은 한없이 따스하기만 해서 화가 난 얼굴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프게 느껴지는 거겠지. 달가워하지 않을거란 걸 알면서도 다가간 벌은 무겁다.
“아는 척하지 말라면서요.”
“여운아.”
“다정하게 이름 부르지 마요. 우리 그럴만한 사이 아니잖아요.”
“그렇지….”
여운을 보내기 위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구나. 여운이 인사도 없이 내 곁을 스쳐지난다. 코 끝을 간질이는 몸이 기억하고 있는 여운의 냄새. 어른이 된 여운은 어떨지 늘 궁금했는데, 여전히 짠 바다냄새가 났다. 입 안에서 소금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바다에 가지 못하던 이유를 상기시키며 멀어지는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달려가 여운의 손목을 붙잡았다.
“미안해.”
“이제와서요? 하지마세요. 안 받을거에요.”
여운의 눈 끝이 붉다. 울기 전엔 꼭 눈가가 빨개졌었는데. 잊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를 울게 만든다는걸. 그래서 미안한 기억만 남았다는걸. 나때문에 울 때면 이름의 운-자가 눈물과 연관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많이 웃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나는 웃긴 농담조차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운의 에이전시로 갈 일이 생겼다. 내심 반가웠지만 회사에서는 여운을 전혀 모르는 체 했다. 그저 업무만 수행하러 가듯이 굴었지만 어쩌면 그를 볼 수도 있다는 기대에 설레어 쓰지 않던 향수까지 뿌렸다. 우연히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락 한번 주세요. 다음엔 저희가 회사 찾아뵐게요.”
“아뇨! 괜찮아요!”
오바스럽다고 할 만큼 양손을 거세게 흔들었다. 이렇게가 아니면 여운을 조금이라도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최소한의 기회라도 있어야 했다.
“저희가 가야죠. 오는 길에 선수님들 사인도 좀 받고. 하하.”
조금 더 말을 꾸며낼 줄 알게된 후부터는 모든 게 편했다. 둘러댈 말 따위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입이 먼저 뱉고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차여운 어디 있나요? 지만 서류를 챙겨들고 일어서며 만나서 반가웠다는, 아까 했던 말을 또 했다.
받아가는 자료까지 품에 끌어안고 긴 복도를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먼 듯한 아득한 느낌. 언제나 혼자였지만 이렇게 어른이 되어도 소란한 곳에서 순식간에 고요해진 순간을 맞이하면 여전히 지구에 혼자 남겨진 듯 느껴졌다.
퍽. 멍하니 서 있다 누군가와 부딪힌 어깨에 서류와 함께 와르르 앞으로 엎어졌다. 여운의 사진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흩날렸다. 바쁜 사람이었는지 사과 후에 급히 사라졌다. 그 걸음에 여운의 사진들이 혹여나 누군가한테 밟힐새라 손에 집히는대로 주워 모았다. 순서도 분류도 엉망이 되어버린 종이들이 눈 앞에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여운과 나의 시간처럼.
댓글 1
상상하는 알파카
잘 봤습니다🫶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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