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상어의 이가 녹으면

다정한 상어의 이가 녹으면 1.5

카레라이스

우리를 위해 by 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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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수증기가 올라오며 끓던 물. 띵. 즉석 밥이 데워지는 소리기 미세하게 들리던 전자레인지. 말없이 내 등만 보고 있던 여운. 창가로 새어들어오던 당근빛 노을. 2인분의 카레가 데워지던 시간 3분. 무슨 말을 꺼내면 저 애가 웃으며 대답할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여운은 가스레인지 앞에 서 끓는 물을 바라보고 서있던 내 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궁금했다. 그 애가.

“차여운 카레 싫어해요.”

“맛있다고 했는데….”

오빠가 주니까 먹은거겠죠. 걔 내가 준 카레 먹고 화장실에서 토하던데? 시아의 말이 귀에서 웅웅 울렸다. 숟가락 담뿍 떠지던 카레. 여운의 그릇 속 모자랐던 카레의 양, 담뿍 퍼먹던 맨밥. 눈을 접어 미소짓던 얼굴.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에서 게워내는 내내 여운이 깨끗이 비워냈던 접시가 눈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부터 카레를 먹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소리와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떨며 눈을 떴다. 병원이다. 그리 낯선 공간은 아니다. 쓰러진 것은 처음이지만. 소독약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깜빡이다 옆을 돌아보았다. 침대에 기대어 잠든 사람이 있다. 이불 속 손을 꺼내어 머리를 쓰담아 보려다 그만 두었다. 검은 머리칼이 부드러워보였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아닌 뒤통수라도 오래 쳐다볼 수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좋으니.

어느새 하늘이 어둑했다. 여운의 뒤통수 뒤로 지는 노을에 익숙한 장면이 겹쳤다. 이 애 뒤통수를 보고 있던 시간들.

낮도 밤도 아니던 하늘이 어두워지던 시간. 위태로이 서있던 여운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내게로 쏟아지던 여운은 무거웠다. 여운은 내게 늘 무거운 사람이었다. 팔딱팔딱. 손에 잡힌 팔목에서 느껴지던 여운의 세찬 맥박. 미약하게 떨리던 손.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눈빛. 떨리는 손이 여운의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마주했을 땐, 울고 싶어졌다. 안아주고 싶었다. 목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울 것 같았다.

가지 않겠다는 애를 억지로 끌고 나왔다. 짜증스러운 표정을 보며 무언가 느끼는 감정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놓으면 도망이라도 칠까 꼭 그애의 팔을 붙들었다. 여운은 고맙다는 말도, 구태여 변명도 하지 않았다. 돌아누운 여운의 등이 작아보였다.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그 온기가 그 애를 따뜻하게 데워주길 바랐다.

여운의 뒤통수는 여전히 가깝지만 멀다.

“그만 봐요. 뚫어지겠네.”

“어… 깼어?”

“잔 적 없어요.”

그럼 나 좀 봐주지. 여운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기척을 느낀건지 여운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잡을 틈도 없이 긴 다리로 응급실 복도를 휘적휘적 걸어 사라진다.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멈추었던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탁자에 태강의 지갑이 있었다. 또 신세를 졌나보다.

의료비를 생각해보는데 태강이 마침 응급실로 들어왔다. 여운도 함께였다.

“고마워요. 또 형한테 신세졌네.”

“아니. 고마워할 건 아니고. 일때문에 가봐야하거든. 혼자 있을 수 있지? 수액만 다 맞고 가라.”

태강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안 가면 안 돼요?”

다급히 태강의 옷을 붙잡으며 올려다본다. 바쁜 사람을 구태여 붙잡고 있고 싶진 않았지만 태강이 떠나면 여운도 가버릴 것 같았다. 태강이 난처한 얼굴로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여운을 흘깃 바라보았다. 태강이라면 알아채겠지. 못난 짓이라도 어쩔 수 없다. 아프니까 어리광부리는거라고 봐주겠지.

“혼자 있기 싫은데….”

“그럼 여운씨가 좀 같이 있어줄래요? 후배라며. 나 진짜 급해서. 부탁해요. 연락할게.”

쏟아내듯 내뱉고 떠나는 태강의 뒷모습을 웅시하다 웃어버렸다. 여운이 내게 있다. 하얀 침대보를 내려다보다 표정을 갈무리하고 바라본 여운은 나를 노려보듯 하고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제는 꾀병일지도 모를 것을 핑계로 이조차 모른척할테다. 나는 여운의 팔목을 붙잡았다. 여운이 움찔 떤다. 화를 내기전에 어서 놓아주고 누워 눈을 감았다.

“저 바빠요.”

“조금만.”

“아니,”

“부탁이야. 조금만. 있어주라.”

정말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자라난 네 얼굴을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만.


곤히 잠든 얼굴 위로 긴 그림자가 진다. 여운의 조각같은 얼굴이 달빛에 부서진다. 더 근사해진 여운은 자고 있으니 찌푸린 미간의 흔적도 없이 유순하기만 하다. 뽀얗던 피부는 여전했다.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새로 생겼을까 이로 깨물어 안에 피가 터져 있다. 과거 위로 흘러간 시간이 덧씌워진다. 내 기억엔 없는 여운이 못내 궁금하다. 내겐 길고 긴 시간이었는데 여운에게도 그랬던지 궁금하다.

오래 바라보고 싶었는데 여운의 휴대폰이 울렸다. 훔쳐보던 걸 행여 들킬세라 눈을 꾹 감았다. 기지개를 켠 여운이 전화를 받았다. 여운은 그렇게 병원을 떠났다.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기를 잠시. 베드를 비워주어야 해서 쫓겨나듯 나왔다. 병원 앞 벤치에서 여운을 기다렸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진짜 갔구나. 말 없이. 하지만 그렇게 떠난 것은 나도 마찬가지니 서운해하지도 않기로 했다.

상원을 통해 최근에 애인을 사귀었다고 들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운이 고백을 받아서 만나보기로 했다고. 얼굴이 좋아보이는 게 그런 이유일까. 상원은 내내 내 눈치를 보았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어서. 그랬는데, 울었다. 상원은 내게 소주잔을 내밀었다. 여운의 욕을 마구 해대서 웃어주며 울었다.

애인이었을까. 전화를 받는 게 반가워 보였던 것도 같다. 괜히 심술이 나서 바닥을 발로 쿵 찼다. 머리가 띵 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슈퍼를 들러 오랜만에 카레를 골라 집었다. 하늘은 해가 지고 당근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봉지가 손목에서 달랑거렸다. 여운과 손을 잡던 거리가 떠올랐다. 노란 가로등 아래 발맞춰 걷던 길. 여전히 기억하는 속도로 혼자 발 맞춰 걸었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카레 두 팩. 두개의 즉석밥. 두개의 그릇. 두개의 숟가락. 의자도 없는 맞은편에 여운의 몫을 내려놓았다. 그때 그랬듯 여운의 밥엔 조금 모자라던 카레. 카레와 밥을 비벼 입에 한가득 욱여넣었다. 입 안이 가득찬 느낌이 불쾌했다.

“맛없다. 그치 여운아.”

카레는 짜고 썼다. 열심히 입에 욱여넣고 겨우 비워냈다.

접시를 씻어내다 화장실로 달려가 전부 게워냈다. 안에 있는 게 전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눈물이 또 다시 울컥울컥 쏟아졌다. 카레를 맛있게 먹던 여운의 얼굴만이 계속해서 눈 앞을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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