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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까마귀가 울던 곳

던전앤파이터 팬픽 / 공미포 : 2,222

예로부터 내가 살던 곳에서는 까마귀는 죽음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전해져왔다.


꽤 오랜 시간 해상열차를 타고 웨스피스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무렵, 내리쬐는 햇살과 열을 받아 뜨겁게 타오르는 이곳의 열기에 눈앞이 아득해져 갔다.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늘 하나 보이지 않는 지독한 열기 속을 걸으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괜히 온다고 했나?”

의뢰가 있어 도착한 웨스피스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짧게 신세 한탄을 하던 그때였다.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이 무언가 이상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 하며 뿌옇게 무언가가 날리는 듯한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모래폭풍이 한번 지나가려는 모양이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 폭풍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눈앞에 방치된 지 꽤 오래된 듯한 건물이 보였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경계 태세를 갖추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 칸 정도의 작은 건물이었고 다행히 위협이 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 했던 대로 모래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사방이 벽돌로 막혀있는 이 건물은 은신처로 쓰기 딱 좋아 보였다. 자연스레 벽에 기대어 털썩하고 편히 앉았다. 어차피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을 뚫고 강행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한숨 돌리며 쉬어가는 것이 더 나았다.

자연스레 코트 안에 넣어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담배를 물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내뱉었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머물다가 서서히 흩어져가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마치 방아쇠를 당길 때 총구 너머로 피어오르던 연기처럼 한곳에 머무르다 서서히 흩어져갔다.

언제나 무법지대에선 총소리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살기 위해 총을 겨누고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다. 다른 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고 동시에 내가 성장해오던 방식이었다.

나 또한 살고자 총을 들었다. 총의 반동도, 매캐한 연기에 연신 기침하면서까지 직접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갔을 땐 한동안 악몽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총을 잡을 때면 눈앞에서 싸늘하게 죽은 채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 모습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살아남기 위해 다시 총을 들고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 삶을 이어 나가길 반복했다.

평소라면 살아있음을 느끼며 피우는 담배가 최고의 축배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번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찢어질 듯한 비명이 환청처럼 귓가를 파고들었고, 태양 아래에 말라 죽어버린 물고기의 모습처럼 생기를 잃어버린 그 눈빛과 그 모습이 눈 앞을 가렸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아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땅에다 비볐다. 그리고 갖고 있던 리볼버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으악!”

어린아이의 비명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려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바라보았다. 대여섯명쯤 되는 사람들이 아이를 둘러싸며 살기를 내뿜는 듯했다. 그들 사이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흙먼지와 상처들로 뒤덮여 형편없었다. 아이를 둘러싼 저들을 더 자세히 더 바라보았다. 예전 소탕 작전으로 와해한 카르텔의 잔당들이었다. 망설일 필요 없이 저들을 향해 총구를 겨냥했다.

탕-!

재빠르게 방아쇠를 당기자 아이를 둘러싸던 한 놈이 맥없이 쓰러졌다.

“뭐야!”

“저놈이다! 저 새끼 죽여!”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며 적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형편없는 저들의 실력에 절로 비웃음이 나왔다. 물론 처음부터 살려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저들이 살아있는 한 누군가를 괴롭히며 골치 아프게 할 게 뻔했으니까. 방아쇠 너머로 사람들이 맥없이 쓰러져갔다. 쓰러진 저들의 생사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어린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것보다 아이의 상태가 굉장히 심각했다. 계속된 굶주림에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좀 전에 저들에게 쫓기던 탓에 여기저기 상처가 심했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는지 나를 보고도 겁에 질린 채 온몸을 떨던 떨고 있었다. 그런데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바로 일어서서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다.

“이봐. 괜찮아?”

총을 다시 제자리에 넣고는 적이 아니라는 뜻으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접고 아이의 눈높이를 맞췄다. 아이는 그제야 진정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기껏해야 열 살 조금 넘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어렵게 식량을 구해 돌아가던 길에 그런 모진 일을 당한 모양이었다.

겁에 질린 아이를 다독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렸다. 빗발치는 총성을 피해 달아나며 원치 않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그 빼앗은 목숨으로 생을 이어가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목표가 떠올랐다. 발버둥 치며 처절하게 버티고 살아야 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깍-, 깍-.”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치 내 생각을 읽고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짧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예로부터 까마귀는 죽음을 뜻하는 상징이라고 그랬다. 반대로 또 어딘가에서는 까마귀가 울던 자리에는 행운이 찾아온다고 그랬던가. 정확히 어디였더라. 잠깐 사색에 잠기다가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다시 자리를 일어섰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

그리고는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이의 표정도, 지금 하고 있을 생각도 알진 못했다.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 내가 가야 하는 길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카르텔을 청산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에 희망이 오길 바랐다. 허망하고 실없는 소리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에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면 난 망설임 없이 다시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황량한 사막 속 지독한 열기를 뚫고 계속해서 걸어가기로 한다.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금 가슴속에 새기며.

* 아래는 결제상자입니다. 해당 글 관련 캐해석이 조금 있으나 읽지 않아도 무관한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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