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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결사] 한겨울의 소나기

던전앤파이터 팬픽 / 공미포 2,664

‘난 네가 간 길을 따라 걸을 테니, 그곳에서 계속 지켜봐 줘.’


차가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거리에 걸어둔 깃발들이 곧장 날아갈 것 같이 거센소리와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하늘 위로는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아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꽤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아라드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웨스트코스트는 이곳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맑고 푸른 바다와 선명하고 투명한 맑은 하늘이 어우러지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푸른 도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검고 묵직한 먹구름이 도시의 색을 다 빼앗아 간 것처럼 흐린 하늘이 곧장 소나기나 눈을 내리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은발의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의 입가에 머무르던 하얀 입김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듯 사라져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시간이….’

소년은 항구 한편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았다. 비행선이 뜨려면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했다. 소년은 잠시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추운 바람을 피해 다른 이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소년은 그러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시릴 만큼 추운 날씨였을지 몰라도 빙결사의 길을 걷는 소년에겐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추위를 타지 않는 신체인 것도 한몫했으나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이 많은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요즘과 같은 추운 날씨 속에 자신이 내뿜는 한기가 가장 큰 이유였다.

소년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던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냉기를 견디다 못해 피하는 모습을 자주 바라봤었다. 자연스레 사람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마계에서도 가장 추운 곳에서 태어나 날카롭고 차가운 마법을 사용하며 자랐지만, 소년은 지금처럼 차가운 겨울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후회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에 소년은 흠칫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소년은 단순히 착각이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수평선이 드넓게 펼쳐진 항구쪽을 바라보았다. 또 다시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소년은 그 목소리의 출처가 골목에서 항구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장난을 걸며 말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추워! 괜히 나왔어.”

“저기 안으로 들어가자. 얼른!”

소년은 자신의 눈동자 속에 저들의 모습을 담았다. 저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소년은 저런 일상을 마주한 것이 꽤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같이 들린 것은 그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괜한 생각이었을지도.”

작게 중얼거리며 내쉬는 한숨에는 수 많은 감정들이 뒤섞였다. 소년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아마도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오른 탓에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저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소년은 문득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아주 어릴 적 고아로 지내던 그때, 갈 곳을 잃어 방황하던 자신을 거둬주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날도 지금처럼 딱 추운 겨울이었다. 아는 사람조차 없는 곳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가며 살아가던 그때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던 그 사람을 떠올렸다.

가장 기초 마법밖에 모르던 그 당시에 처음으로 마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던 그 사람은 자신을 모아라고 부르라고 했으며 그날 이후로 소년은 모아를 따라다니며 마법을 익혀갔다.

한 날은 마법을 다루는 것이 벅차던 적이 있었다. 좀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를 할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괴감에 빠지는 날이 길어져 갔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은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기에 한날은 자괴감에 시달려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평소라면 울다가 지쳐 잠들기도 했을 텐데 그날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지쳐있을 때였다. 공허한 눈빛으로 마계의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자연스레 제 옆으로 모아가 다가왔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너 많이 지쳐 보이는데 괜찮아?”

나긋하고 다정한 말투로 대답하면 소년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언제나 제 기억 속의 모아라는 사람은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강한 자에게는 굽히지 않고 맞서 싸우고 약한 자에겐 언제나 손을 내밀던 모습을 떠올렸다. 긴 침묵 끝에 모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안되면 잠시 내려놓고 쉬면 돼.”

“그럴 순 없어. 여기선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

“지금 네 모습을 봐.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남들보다 강해지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수련하는데 힘을 지나치게 쓴 것은 물론 한 날은 몸살을 앓으며 누운 적이 있었다. 소년을 향해 모아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의 모습을 말했고 소년은 그제야 자신이 해온 일들이 잘못됨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난….”

“이봐, 넌 충분한 재능이 있어.”

“….”

“너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언젠가 네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후회하게 될 테니까.”

“알겠어.”

소년은 그 대답을 끝으로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주눅 들고 있을 때면 모아는 항상 간결하고 단호한 말투로 소년에게 조언했고 그다음에는 다정한 말을 덧붙여 위로를 해주곤 했다. 과거엔 모아가 한 말과 태도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소년은 귓가에 맴도는 빗방울 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어두워진 먹구름 아래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겨울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현재 소년이 앉아있던 곳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천장이 있어 비를 맞진 않았다. 

‘다시 돌아볼 때 후회하지 말라는 말….’

소년은 모아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막막했던 계획들이 그제야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에게 말해준 대답이 이런 뜻이었구나.’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라는 그 말을 인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간단한 말의 뜻을 왜 인제야 깨닫게 된 걸까 하는 생각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생각에 한창 잠기고 있다 보니 서서히 비가 그쳐가기 시작했다.

비가 서서히 그쳐가는 것을 확인한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타야 할 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항구에 도착하기 전과는 달리 마음이 홀가분함을 느낀 소년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볍고 빨랐다.

겨울비가 내린 뒤에 부는 바람은 서늘하고 차가웠지만 빙결 길을 걷는 소년에겐 아무렇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에게 불어오는 이 추운 바람도 언젠가는 따스한 봄바람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알았다. 곧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배에 올라탔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며 다음 여행지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다 얼어붙을 겨울일지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길 끝에서 행복하게 미소 지을 수 있을 그날을 떠올리며.

* 아래는 해당 글의 기반이 된 빙결사 캐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읽지 않아도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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