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아노] 시선
두 사람이 갈라진 날
- 칠흑의 반역자 : 5.3
- 효월 다 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해보는 뇌절
- 설정이 좀 가물해서 동인적 망상을 가득 섞어봤다
- 에메아노라 쓰긴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싸우기만하는 둘. 조디아크 소환에 관한 토론 당시 둘의 대판 싸움을 보고 싶긴했다
- 공미포 2,850자
생명을 창조할 줄 안다고 해서 우리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듯한 발언이군요, 에메트셀크.
꽃을 닮은 입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만큼 서늘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여자는 말한다. 지금껏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신을 빚어야한다 주장하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그 중 두줄의 반원이 그려진 붉은 반가면을 쓰고 있던 남자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여자의 반대가 심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런 언사까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14인 위원회. 아모로트에서 가장 뛰어난 14명의 사람들. 그 중 여자는 '생명을 가꿔 그 삶을 유지시키는' 것이 특기인 유지의 권능을 가진 자였다. 그녀는 새로운 생명을 빚는 아모로트를 떠나 세계를 여행하고 탐구하며 그들이 창조하지 않은 생명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해 남겼다. 그러나 이건 그녀의 특기고 권능인 것이지 아모로트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권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그녀가 남자의 정면에서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았냐 발언한 것은 가히 시비와도 같았다.
잠시간의 정적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깨졌다. 언사가 지나치다는 말이 대다수였으나 여자는 가면 너머 푸른 눈으로 남자의 금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남자는 그 시선에 온 몸이 죄는 기분을 느끼며 발언을 위해 일으켰던 몸은 채 의자에 구겨넣지 못한채 서 있을 뿐이었다. 누가 그에게 그녀와 생명에 관해 의견 충돌이 없었던 적이 있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 답할 것이다. 아모로트 내에서 사이가 좋은 이들이라 불리는 둘만큼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창조된 생명이라 할지라도 생명이기에 결코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주장하는 여자와 창조된 생명은 말 그대로 창조생물일 뿐 결코 '우리'와 같은 선상에 서있을 수 없다 주장하는 남자. 모든 이들이 말하지 않았으나 여자와 남자는 이 토론장에서 반드시 싸울 것이었다. 한가지 문제라면 이 주제를 미리 알고 있던 남자는 예상했지만 여자는 이 부분에 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는 거였다.
남자는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입을 가장 늦게 연 여자의 비난을 제외하고 토론장의 여론이 점점 조디아크 소환 계획에 관해 찬성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여자가 반대를 한다는건 14인 위원회와 당장 척을 지겠단 뜻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걸 그녀가 몰랐을리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부러 허리를 피고 여자를 향해 말했다.
"동포를, 더 나아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마땅히 하려는 일이다. 생명 경시라는 비난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여기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죠".
자신은 이 곳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잘라내는 말. 시끄러웠던 토론장은 어느샌가 고요해졌고 사람들은 둘의 대화를 주시한다. 정확히는 여자를.
"조디아크를 소환해 세계를 구한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습니다. 현 인류의 반을 제물로 바쳐야하는 조디아크가 사람을 구한다고요? 그리고 그들이 바쳐지고 난 후에 세계를 구하면 다시 살려내면 된다고? 이런 발언을 하는 자가 감히 에메트셀크의 좌에 앉아있었다니 아모로트가 많이 위태롭긴 하나보군요."
"아젬, 말이 지나치군."
"좋아. 말길을 못 알아들으니 직접 말해줘야겠지."
그 말과 함께 여자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하나의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옆으로 손을 옮겨 무언가를 만들자 꽃에서 에테르가 흘러 옆에 무언가의 형상을 만들며 사라진다. 사람들이 여자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에 시선을 옮기자 무언가의 형상은 다시 꽃의 에테르를 뱉어 꽃을 피운다. 이 짧은 동작 끝에 여자는 다시 입을 연다.
"조디아크가 야수를 멸하고 사람들을 다시 살릴 때 그들은 과연 우리가 아는 자들이 맞을까요? 그들이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까? 애당초 조디아크가 그들을 다시 재창조하거나 혹은 반환해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나요? 조디아크의 힘을 제어할 수 없거나 그것이 뱉어낸 사람들이 이전과 외형은 같으나 속은 다른 이들이라면 세계를 구한 후 아모로트의 혼란도 볼만하겠습니다."
아모로트에서 말이란 그 사람을 증명하는 것.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히 하며 뜻을 관철한다. 그에 반해 남자는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회의장에 있는 다른 위원들 사이에 묻어 지우고 싶은 것처럼. 하지만 여자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도망치지 말라는 듯이.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죠, 에메트셀크. 그럼 우리의 동포 한명을 핵으로 삼고 수많은 동포들로 이루어진 창조생물 앞에서 당신은 우리를 살려달라 빌 수 있습니까?"
"....."
"동포와 동포들의 공포를 잡아먹어 몸을 불리고 있는 야수와 동포를 핵과 그릇, 힘으로 삼아 움직이는 조디아크와 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군요."
"....."
"아주 간단한 대조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여기서 제 말을 반박하면 됩니다.
"....."
"보아하니 이곳에 있는 13인의 위원들께서는 조디아크의 소환에 찬성하시나보네요."
침묵은 긍정이라고 하던가. 13명의 붉은 가면들 중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저는 끝까지 반대할겁니다. 여러분께 제 의견에 찬성하고 이해해달라는 말는 하지 않겠습니다. 기대 조차도 하지 않고요."
기대했다면 이 토론장에 앉아있지도 않았겠죠.
달칵, 끝에 앉아있던 14번째 가면이 벗겨져나와 탁상에 놓인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분위기가 일순 사위를 감싼다. 에메트셀크라 불린 금안의 남자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여자를 홉뜬 눈으로 바라본다. 가면 아래 가려져있던 선명한 분홍빛의 머리칼 사이로 푸른 눈이 남자를 바로 마주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을 둘러싸고 앉은 가면들에게 말한다.
"저는 오늘부터 <아젬>의 좌를 버리겠습니다."
-!!!
가면들의 질탄 사이로 남자가 절규와도 같은 목소리로 여자를 부른다.
여자는 꽃을 닮은 입술로 웃었다.
잡담
효월 다 밀기 전에 어떻게든 빠르게 선동과 날조의 뇌절을 시도하는 변방 오타쿠...출퇴근길에 생각나는 장면과 단어를 문장으로 엮는걸 하다보니까 두서없고 매끄럽지가 못해서 아쉽지만...이 감정과 떠오른 장면을 흘려보내는게 더 아쉬워서 어떻게든 써본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며 사람을 희생해서 만든 창조된 무언가한테 살려달라고 비는게 그 사람들의 절박함을 나타내기더하지만 동시에 소름끼친다고도 생각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죽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 22.05.10 (효월 ing)
와 우리집 원형이 그만둘 때 한 말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쓰는 것만큼 무가치한 계산도 없으니 더이상 당신들과 생명을 논하지 않겠다.> 였는데 캐해석 성공함. 공식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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