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마키 - 처음

마키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신인은 옷코츠 유타, 마키의 남자 친구였다. 마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아, 여보세요. 마키?"

유타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환희에 차 있었다. 마키는 유타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눈 앞에 선할 정도였다.

"어. 나야.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그, 목소리 들으려고 전화했어."

두 사람 사이엔 오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오늘로 연애 7일 차를 맞이한 풋풋한 커플이었다. 게다가 지금 하는 통화는 사귄 후 처음 하는 것이었다. 연인이 되기 전엔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아 곤란할 정도였는데, 친구 앞에 겨우 두 글자가 붙었다고 입이 딱 붙어버리니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데이트하자, 마키."

적막을 깬 건 유타였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임에도 긴장감이 담겨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뭘 그렇게까지 긴장해서 말해. 당연히 하지. 그, 사귀는 사이니까.."

마키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유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덧붙인 말끝이 흐려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엔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유타는 지금 당장 마키를 품에 꽉 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마 금요일 저녁에 도착할 것 같아."

유타는 엊그제부터 오키나와로 출장을 간 참이었다.

"그럼 2시쯤 나가서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는 편이 좋으려나?"
"마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특별히 없는데."
"토요일까지 시간 있으니까 찾아볼까?"
"아, 저번에 노바라가 좋은 곳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디였더라?"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통화를 이어가며 데이트 코스를 짰다. 두 사람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데이트 당일 날, 마키는 어제 노바라와 함께 골라둔 옷들을 다시 걸쳐 걸쳐보는 중이었다. 평소 입는 것처럼 캐주얼하게 입을지, 아니면 나름 멋을 부려볼지 고민이 되었다. 신경 써서 입고 나가다 누구라도-특히 판다와 이누마키- 마주친다면 그 자리에서 그 둘을 반쯤 죽여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신경 안 쓴 것처럼 입고 싶은 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어제 노바라가 골라주었던 대로 청바지와 하얀 블라우스, 그 위에 니트 뷔스티에를 입었다. 계절을 생각해서 얇은 카디건을 걸쳤다.

"선배. 잘 어울려요. 역시 제 안목, 좋죠?"

나가던 길에 마주친 노바라는 의기양양하게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턱에 댔다. 마키는 귀여운 후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짧게 전했다.

그 시각, 유타는 판다와 이누마키를 불러 코디를 확인받는 중이었다. 마키와 달리 미리 코디를 생각하고 말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판다는 시종일관 히죽이며 마키는 뭘 입어도 좋아해 줄 것이라고 했다. 판다의 말대로 마키는 유타가 무슨 옷을 입든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명색이 첫 데이튼데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요란스러운 회의 끝에 청바지에 흰색 니트, 검은 재킷을 입었다.

두 사람에게 후다닥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정문을 향하던 유타는 저 멀리 보이는 마키를 보고 속력을 높였다.

"왜 뛰어. 약속 시간 좀 남았어."
"보고 싶어서."
"넌 그런 말을 참 쉽게 한다니까."

마키는 입을 삐죽 내밀고 유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유타의 옷차림을 훑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차림새가 비슷했다.

"진짜 데이트하는 것 같네."
"응? 진짜 데이트 맞잖아."
"아니, 옷. 비슷하게 입어서."
"옷?"

유타는 그제야 자기의 옷과 마키의 옷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곤 빙긋 웃으며 통했다, 라고 읊조렸다. 두 사람의 첫 목적지는 영화관이었다. 인기리에 상영 중인 로맨스 코미디 영화가 그들의 선택이었다.

영화 내용은 신선하진 않지만, 누구나 좋아할 만한 요소로 가득했다. 전반적으로 코미디 영화 같았는데, 그래서 불쑥불쑥 들어오는 로맨스가 유난히 돋보였다. 두 주인공이 설렘을 느낄 때마다 두 사람도 괜히 간질간질해지는 것이었다.

마키는 이런 미묘한 분위기가 싫었다. 평소처럼 굴려고 할수록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했다. 유타도 어색한 분위기가 썩 좋진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다 같이 모여 같은 장르의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봤었는데, 라고 탄식했다. 마키는 이미 키스도 한 사이에 뭐가 문제냐고 자문했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화는 멈추지 않고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은 남자 주인공의 대사를 듣곤 흠칫 놀랐다. 마키가 했던 고백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

1년 전, 주술계엔 큰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마키는 그 사건으로 낫지 않는 상처를 얻었다. 마키는 거울을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올랐다. 진하게 남은 화상 자국도 촉매제였지만, 거울에 비친 얼굴의 역할이 가장 컸다.

죽은 여동생을 위해 주술고전 입학을 선택한 마키였다. 어쩌면 여동생의 바람대로 함께 낙오되었다면, 손을 놓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시계는 함께 흐르고 있을 테였다. 그러나 마키는 가정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이따금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 웅얼거렸다.

그날로부터 마음에 쌓아온 말들을 하나씩 하는 마키였다. 그 끝은 유타를 향한 마음이었다. 유타 혼자 앉아있던 빈 교실에 마키가 들어왔다. 창밖은 해가 가라앉으며 남긴 붉은 빛으로 가득했다. 아무 말 없던 책상에 걸터앉은 마키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유타. 좋아하고 있어. 줄곧 말하고 싶었어."

고해성사에 가까운 고백이었다. 담담하게 전한 진심은 유타에게 고스란히 닿았다. 유타는 마키가 그 말을 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알고 있었다.

"마키,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워."

마키는 유타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묵묵히 유타의 말을 들었다.

"내가 앞으로 잘할게."

뒷말은 예상치 못했던 마키는 고개를 벌떡 들어 유타를 바라보았다. 유타는 어느새 마키의 앞에 서 있었다.

"나도 마키를 좋아하고 있어."

마키는 유타의 반지로 시선을 옮겼다. 유타는 마키의 시선을 따라갔다. 유타에게 리카는 처음 생긴 사랑하는 사람이자 소중한 사람이다. 몸도, 마음도, 미래도 주려고 다짐했고 그 증거로 리카를 해주한 날로부터 단 한 번도 반지를 빼지 않았다. 또한 생이 다할 때까지 그럴 셈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유타는 언제부터 마키를 좋아하게 됐는지 확답할 수 없었다. 처음엔 친한 친구니까 같이 있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은인이니까 꽃보다 나비보다 정중히 대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마키와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 순간이 생겼다. 그때 자각했다. 마키를 좋아하는 거라고.

마키와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키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유타가 마음을 자각한 시기는 주술계를 뒤집어 놓은 사건으로 이래저래 시끄러운 시기였다. 그런 연유로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지내던 유타에게 마키의 고백이 어떤 의미였을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테였다.

"마키, 내 말 어떤 의민지 이해했어?"

유타는 다시 마키에게 시선을 돌려 마키에게 물었다. 마키는 한숨을 짧게 내뱉고 유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응. 알아."

유타의 눈 안엔 마키가 담겼고, 마키의 눈 안엔 유타만이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속에는 영원히 사랑할 사람이 있었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아줄 수 있었다. 유타는 마키를 품에 안았다. 마키는 유타의 등을 감쌌다.

"유타, 키스해도 돼?"

마키는 유타를 슬쩍 밀어내며 물었다. 유타는 마키의 손을 잡아 자기 얼굴로 가져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키는 유타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김과 동시에 앉아 있던 책상에서 일어나 더욱 유타에게로 가까이 갔다. 짧게 입을 맞추고 멀어지는 마키를 유타가 다시 잡아당겼다. 어느새 창밖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무심코 팝콘 통으로 손을 뻗은 마키는 유타와 손이 닿았다. 연습할 때마다 몇 번이고 닿았던 손이었는데 그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마음이 통한 날도 기숙사로 같이 돌아가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질 못했던 둘이었다. 고백이 부끄러웠던 게 아니라 첫날부터, 그것도 빈 교실에서, 키스를 한 것이 부끄러웠다.

유타의 눈치를 살피던 마키는 유타의 손을 잡아 들어 두 사람 사이의 팔걸이에 올렸다. 유타는 동그래진 눈으로 마키와 손을 번갈아 보다 자기 손 아래에 있는 마키의 손가락 사이로 자기 손가락을 끼워 넣어 깍지 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였다.

-

학교로 돌아와 기숙사로 향하며 두 사람은 첫 데이트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카페에 가서 서로를 그려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 후엔 저녁 시간까지 시간이 떠서 근처 가게를 구경했다. 가챠샵에서 쓸데없는 피규어도 몇 개 뽑고, 친구들과 나눠 먹을 목적으로 먹음직스러운 간식을 샀다.

"오늘 재밌었어. 처음 가보는 곳도 많았고, 처음 해본 일도 많았고."
"열심히 계획했으니까. 저녁 먹은 식당은 나중에 또 갈까? 다른 것도 먹어보고 싶어서."
"응. 그러자."
"오늘 못 갔던 거기도 다음에 가자. 재밌어 보여서 가보고 싶었거든."

유타는 방긋 웃으며 말을 이어가는 마키를 바라보았다. 첫 키스, 첫 데이트, 그렇게 쌓여갈 수많은 처음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처음의 떨림은 언젠가 익숙함으로 바뀔지 몰랐다. 그것마저도 두근거리는 유타였다.

"뭘 그렇게 실실 웃어? 뭐 묻었어?"
"아니. 다음 데이트 땐 어디 갈지, 뭘 하면서 놀지 생각하는 게 좋아서."
"싱겁긴."

유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소를 짓는 마키를 보았다. 마키도 앞으로 유타와 보낼 시간이 기대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오늘따라 기숙사까지의 거리가 짧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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