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마키 - 평범한 삶

평범하게 살고 싶다. 경우에 따라선 아무 욕심 없는 미련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유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주술계였다. 아침에 웃으며 인사한 동료를 저녁에 울며 보내는 경우가 허다한 곳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멀쩡히 10년을 보냈다는 것은 참 감사한 것이었다. 사실 유타는 10년 전에 이세상을 떠나려 했다. 사랑했던 사람을 저주한 대가로 그녀를 따라가려 했다. 마음도, 몸도, 미래도 전부 리카에게 주려했다. 하지만 리카는 유타를 이곳에 남게 했다. 그래서 유타는 이 세상에 남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잔뜩 있는 이 세상에 남았다. 자신을 주술계로 이끈 고죠 선생님,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 마키, 이누마키, 판다, 귀여운 후배들, 그 외 수많은 동료들까지 있기에 유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유타에겐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유타는 리카를 잊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었다. 유타는 이를 이해해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어 리카 외의 여자를 만나겠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유타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 생겼다. 처음엔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닮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점점 그 사람의 옆자리를 원하게 되었다.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않고 그 욕구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마키가 유타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마키가 꿈꾸는 미래에 자신도 있었으면 좋겠다, 마키의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마키와 함께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이 생각은 더 이상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결국 마키에게 전해졌다.

“나는 마키랑 같이 있고 싶어. 평생!”

“야, 그건 프러포즈잖아? 난 아직 미성년자인데다가 애초에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거든?”

유타의 고백을 들은 마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타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유타의 고백이 청혼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유타 이 자식은 마음이 너무 무거워, 마키는 그 말을 침과 함께 삼켰다. 마키는 유타의 어깨와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음을 보았기에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무시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분명 처음 만난 유타는 하찮은 주령을 보고도 놀라 지금처럼 온몸을 벌벌 떨었었는데, 이젠 웬만한 주령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경지를 넘어 겁을 먹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 마키로선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일으켰다. 주령뿐만 아니라 동료 주술사들도 유타를 보면 서늘한 분위기에 지레 공포에 떠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런 유타가 마키 앞에선 순한 개가 된다는 사실은 일부 사람들에겐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연애 쪽으론 영 감이 없는 마키조차 알아챌 정도니 가타부타할 필요가 없었다.

“유타. 한 가지만 약속해줄래?”

“응. 마키. 뭐든지.”

마키는 한숨을 푹 쉬고 떨리는 유타의 손을 잡았다. 마키의 온기가 유타에게 전해졌다. 유타는 마키의 손을 자신의 볼에 갖다 대고 눈을 감았다. 마키는 순간 움찔했지만 목을 가다듬고 하려던 말을 이어나갔다.

“유타 넌 내 곁에 가장 오래 남는 사람이 되어줘. 나도 그럴 테니까.”

마키의 긴 머리는 유타만큼 짧아졌다. 마키의 몸 이곳저곳엔 화상 자국이 있었고, 더 이상 안경을 쓸 필요가 없었으며 애용하는 주구도 바뀌었다. 마키의 반쪽은 마키의 마음속에만 살아있었다. 마이가 있을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이 삶을 선택했는데, 그곳이 자신의 마음속이 될 것이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던 마키였다. 강한 마키였기에 꿋꿋하게 이겨냈지만 불쑥 밀려오는 괴로움과 외로움은 감당하기 벅찰 때가 있었다. 유타는 마키의 옆에서 마키를 계속 봐왔기 때문에 마키의 말에 담긴 의미를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마키의 마음도 유타의 마음 못치 않게 무거웠다. 유타는 마키의 손에 입을 맞췄다.

“응. 약속할게. 정말로.”

“그래. 뭐, 이미 알아. 네가 그럴 거란 건..”

마키는 유타의 손을 잡는 힘을 더 세게 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손을 잡고 있었다. 말 한마디 오고가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졸업을 한 두 사람은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주술사들이 아무리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있다 할지라도 두 사람은 특히 죽음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강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강했기 때문에 상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적었다. 결혼 6년차에 접어드는데도 여전히 애틋한 신혼 같았다. 집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무리 극한의 상황일지라도 삶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유타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유독 재촉하고 있었다. 유타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명 더 늘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어느 날 유타가 무의식적으로 꺼낸 말이었다. 이에 마키가 애초에 평범한 삶은 무엇이냐며 반문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고민했다. 평범함은 너무 어려웠다. 평범함의 기준은 사회, 집단, 개인마다 다르고 어떤 기준에선 평범했던 것이 다른 기준에선 비범한 것이 되기도 했다. 비술사들의 기준에선 우린 이미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마키가 말했다. 주술사들의 기준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엔 끼지 못한다고 유타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마음대로 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마키가 해답을 내놓았다. 유타와 마키가 내린 평범한 삶의 정의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무한정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아이에게 온 정성을 쏟는 중이었다. 유타는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더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다정하고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랐다. 아이는 존재 자체로 유타를 강해지게 만들었다. 아이는 마키보다 유타를 더 닮았다. 유타는 내심 마키를 더 닮길 바랐으나 마키는 유타를 닮아서 좋아했다. 아이는 유타가 저를 사랑한단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유타의 얼굴만 봐도 방긋방긋 웃었다. 유타도 아이를 따라 덩달아 헤벌레 미소를 지었다. 마키의 핸드폰에는 유타와 아이가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매일매일 찍혀있었다.

지금은 가족과 의절했지만, 유타는 한때 자신이 아이에게 줬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랬기에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에 익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마키는 그런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다. 아이를 정말 사랑했지만 전달하는 방법이 미숙했었다. 자신이 힘 조절을 잘못해서 아이를 다치게 할까 종종 걱정하곤 했던 마키가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했던 말이 유타의 머리속에 계속 맴돌았다.

“안녕, 아가. 난 솔직히 널 어떻게 사랑해야 할진 모르겠어. 그치만 넌 우리가 사랑해서 태어났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해줄게. 이건 저주야.”

유타가 반했던 그 쾌활한 미소와 함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주를 논하던 마키가 뚜렷하게 남았다. 유타는 마키에게 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마키와 아이 둘만의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멀리서 그 저주에 힘을 실을 뿐이었다.

주술사로 살기로 결정한 이상 삶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은 유타도 마키도 단단히 각오한 것이었다. 다만 두 사람에겐 마음속에 묻은 사람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으며 그 집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단 사실이 모든 불안을 상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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