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스독] 이웃집 다자이 2
다자이 오사무 네임리스 드림
현재 시각 오후 1시 반. 몇 시간 전과 다르게 주변 풍경을 볼 여유가 생겼다. 하늘이 새파랗다. 날이 참 좋다. 뭐, 그런 감상뿐이지만.
나는 지금 이번 학기 시간표를 환상적으로 잡아서 오전 수업만 듣고 바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점심을 같이할 친구 같은 건 없어서.
하나 생긴 줄 알았던 친구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나조차 걔를 친구라고 여기지 않았으니까 피차일반일지도 모르겠다. 걔를 생각할 때, 늘 ‘동기’란 단어를 먼저 떠올렸으니까.
며칠 전 동기 모임에 나를 부른 애. 오라고 해놓고서 이미 파했다고 미안하다고 한 그 애를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자네 친구가 있나?’
당시 신나서 걔를 만나러 가려던 내게 다자이가 하려던 말. 나한테 친구가 있었던가.
나는 어디까지를 친구라고 여기면 될지 늘 고민했다. 수업 끝나고 점심 같이 먹는 사이. 따로 약속해서 만나는 사이. 아무일없어도 그냥 연락하는 사이.
마지막 정도면 친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걔는 아니었나보다.
생각해보면 별 대단한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거겠지.
나 혼자 걔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잰 거다. 나 혼자 거리감 측정에 실패한 거지.
주차장을 지나다 세워진 자동차를 무심코 바라봤다. 보는 것보다 가까우니 주의하시오. 자동차 측면 거울에 적힌 글귀의 반대. 보는 것보다 머니 주의하시오.
인간관계는 어렵다. 늘 어려웠다.
시선을 차창으로 돌려 거기 비친 나를 빤히 보다가,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 화면을 켰다. 그리고 보이는 메시지의 문구.
“취업 면접 특강 신청…, 하….”
현실이 들이닥친다.
대학교 고학년생의 현실이다.
취업 준비. 면접 특강도 신청해야 하고, 첨삭도 부탁해야 한다. 쓸데없는 말로 점철된 내 자기소개서를 생각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우울감이 느껴졌다.
“시발….”
친구가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 관계의 집약체, 사회. 거기 나갈 생각을 하니 너무 우울하다. 고작 친구 생각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답답함에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내 기분도 모르고 더럽게 파랗다. 현실의 무게에 고개가 다시 바닥에 처박힌다. 발끝만 보며 내린 전철역. 계단을 오르고, 또 내려 걷다가 지나가던 자전거에 치일 뻔했다. 눈깔 바닥에 두고 걷던 내 잘못이라 생각해 사과하려했다.
“죄, 죄송…?”
사과를 다 잇기도 전에 자전거가 지나갔다.
“뭐야, 왜 저렇게 급해….”
중얼거리면서 상대가 향하는 곳을 보니 역 앞의 커다란 마트다. 타임세일 시간인가. 시계를 보다가 그러고 보니 나도 생필품 몇 가지를 사야 한단 사실을 떠올렸다.
“돈 써야겠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좀 많이 써야지.
알바 그만두고 돈이 좆도 없긴 하지만, 기분 전환을 해야 한다는 핑계가 생겼다. 흥흥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카트를 끌고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 뭐가 또 부족하더라? 이곳저곳을 빙글빙글 돌면서 기억나는 것들을 하나씩 카트에 넣다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다자이가 하도 가져가서 식량도 부족한 것 같다.
식료품 코너에 가서 인스턴트 음식을 주워 담다가 문득 너무 간편 조리 식품을 데워먹기만 하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이러다 훅 가지.
오늘은 요리를 해볼까. 파스타 면이 집에 있었던 게 생각나서 소스를 고르기로 했다. 어떤 걸로 할까.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맛의 소스 병이 벽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가장 먹고 싶은 맛을 고르는데 그런 의문이 들었다. 다자이, 점심 먹었을까.
아니, 아침은 먹었을까.
흠. 확신이 없다.
여전히 거의 매일같이 배가 고프다고 우리집에 오는 걸 보면 그가 요리에 재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당최 뭐 하고 사는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잘사는 것 같진 않았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굶어 죽겠단 말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남은 파스타 면이 이인분 양이 되던가. 고민하다가 고른 소스 병과 함께 면도 하나 더 사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까.
고른 면을 던져 넣으며 카트가 가득 찼단 걸 알았다. 그리고 대부분을 채운 인스턴트 식품을 보면서 또 다자이를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이타적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게 이타적인 걸까. 그냥 걜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날 밤 업혔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낮게 웃던 소리, 입가에 감돌던 미소, 그리고 그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 나를 업느라 내게 닿았던 다자이의 손은 남자답게 컸다.
미친. 생각이 너무 많다. 눈을 꾹 감으며 피어오르는 어떤 감정을 지워냈다. 이런 감정으로 만나러 가면 어색할 테니까.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며 계산대에 갔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계산한 봉지 둘에 가득 담긴 물건들. 아슬아슬하게 들고 갈 무게는 될 것 같단 생각에 배달을 부탁하지는 않았다. 가져가서 바로 점심 해 먹어야 하니까. 먹여야 할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집에 오는 길 내내, 가볍게 내렸던 결정을 후회했다. 존나 무겁네. 겨우 집에 도착해 식탁 다리 옆에 봉지를 두었다. 길고 넓게 빨간 줄이 나 있는 손바닥을 비볐다. 아픔을 지워내려는 노력이었디.
나는, 진짜 고생을 사서 하는 타입이다. 내가 나라서 짜증날 정도로.
툴툴대면서 주저앉아 봉지 안을 살폈다. 파리처럼 비벼댄 덕일까. 아픔이 조금 가셔서 물건들을 꺼내 대충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가득 찬 식료품 보관 선반이 만족스럽다. 즉석밥이 가득한 찬장도 흐뭇하게 보다가 먹던 파스타 면의 양을 확인했다. 일 인분도 채 안 남아 있어서, 새로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슬슬 다자이가 집에 있는지 확인해야지.
물을 가스레인지 약불 위에 올려놓고, 다자이네 집 문 앞에 섰다. 처음이다. 노크하면 되겠지.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그를 찾은 적은 없었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몇 번 노크를 했는데 반응이 없다.
집에 없나. 하필 잘해주려는데 없냐. 아쉬운 기분이 든다. 발을 돌려 집으로 가려는데 안에서 미약한 말소리가 들렸다.
뭐지.
귀를 문 가까이 대자 다시 한번 들리는 목소리가 전달하는 문장은 이랬다. “문 열려 있어어어-”
다 죽어가는 목소리다. 길게 늘인 말꼬리가 그가 힘이 없음을 전한다. 뭐야, 얘 왜 이러는 거야.
손잡이를 돌리자 그의 말대로 열려있어 낡은 문이 끼-익 열린다. 그리고 보이는 건 우리 집과 비슷한 구조의 실내.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거실이라 하기도 민망한 작은 공간이 있었다. 이것도 우리집과 같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엄청나게 다르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고, 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내가 이사를 하기 전과 같은 모양새였다. 깔끔함을 넘어서 생활감이 없는 모습에 낯설어 두리번거리기만 하는데 조금 더 명확히 목소리가 꽂힌다.
“나 여기 있어….”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가 문이 살짝 열린 작은 방 안에서 들려왔다. 길게 가는 틈새 너머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천천히 다가가 방문을 열어 근원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있었다.
다자이가 이불을 편 바닥에 붙어 있었다. 주변에 술병과 통조림을 잔뜩 장식하고서. 아, 그런데 술 냄새 진짜 지독하다. 냄새 탓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배고파서 죽어가는 중이야.”
“…혹시 그, 자살 시도하는 거야?”
“아사로 죽을 생각은 없어. 그게 얼마나 괴로운데.”
아픈 건 딱 질색이야. 하면서 뒹굴 몸을 돌려 나를 보는 다자이. 그럼 뭐 하는 건지. 가만히 그를 보다가 물었다.
“혹시 환기시켜도 되니?”
“으응.”
숨을 참고 방에 들어가 커튼과 창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빛도, 산소도 방안에 쏟아진다. 맑은 공기를 느끼며 다시 뒤를 돌자 답도 없는 한량이 다시 보였다. 시발, 내가 저런 새끼를 좋아한다고? 절로 미간이 좁아진다.
술병이 대체 몇 개야. 저 통조림 캔은 도대체 뭐고. 슬금슬금 다가가 장식된 그 재활용 쓰레기들을 확인하는데 다자이가 말한다.
“따뜻하네.”
“봄이니까.”
“봄은, 따뜻하구나.”
“…”
그러면서 미소 짓는 표정엔 햇살이 감돈 것만 같다. 뭐라 해야 할까, 예쁘다.
괜히 시선을 돌려 무릎 근처의 통조림을 들어 내용물이 뭔지 확인했다. 게살 통조림이네. 비싼 거네.
“이러니까 밥 사 먹을 돈이 없지.”
상대를 한심해하는 어투가 숨겨지지 않는다. 그에 다자이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얼굴을 마주 보다가 결국 시선을 살며시 돌리며 본론을 꺼냈다.
“점심 먹으러 와.”
“정말?”
그래도 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다자이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조금 생기있었다.
“응, 크림 파스타 할 거야. 아, 불 올려놓은 거 잊었다.”
그를 부르러 오기 전에 물을 끓이고 있었단 사실이 기억났다. 물 다 쫄은 거 아냐? 걱정되는 마음에 벌떡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데 다자이가 쫄래쫄래 따라온다. 급하게 현관을 지나 가스레인지 앞에 서니 다행히 보글보글 끓는 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옆에 꺼내둔 파스타 면을 냄비에 넣었다.
“있지…,”
“왜?”
파스타 면이 타지 않게 잘 냄비 안에 구겨 넣는데, 뒤에서 다가온 다자이가 묻는다. “재료는 이게 다야?”
“응.”
“뭔가 좀 부족하지 않나?”
그 말에 조리대를 훑었다. 파스타 면을 담은 냄비, 프라이팬, 그리고 크림소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레토르트 카레의 영양분이 더 알찰 것 같은데.”
“먹기 싫음 나가든가.”
“상이라도 치울까?”
금방 태세를 전환하는 모습이 박쥐 같다. 인간이 저렇게 살아서야. 혀를 차며 냉장고 구석 서랍에 처박혀있던 베이컨을 꺼냈다.
“상미 기한 지난 거 같은데 이거라도 넣을까?”
“…됐어. 자네 말대로 그걸로 충분한 듯해.”
다자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뒤돌아 어지러운 식탁 위의 소품들을 열심히 한쪽으로 밀어냈다.
“걔네 버리면 안 돼.”
“자리 만드는 것뿐이야.”
한자리 겨우 있던 식탁에 두 사람은 앉을 만큼의 공간을 뚝딱 만들어낸 다자이가 봤지? 하는 표정을 지어냈다. 그리고 곧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다리를 흔들며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본다.
나, 좋은 구경거리가 된 것 같은데.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사람처럼 약간 뚝딱거리는데 다자이가 말했다.
“나 신경쓰지 말고 해.”
시선이 느껴지는데 신경이 안 쓰이겠냐고. 그렇게 말하려다가 마주한 얼굴에 헤실대는 웃음이 가득 담겨있어서.
나는 그만 마음과 다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응.”
그만 쳐다보라고 했어야 했는데. 괜히 어색하게 반응할 각이 서서 짧게 대답해버렸다. 그 탓에 다자이의 시선은 끊임없었고,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요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적당한 그릇에 파스타를 담아 건네기까지.
완벽하다. 긴장 끝에 몰려온 열기.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던 내게 다자이가 물었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요리야?”
“불앞에 서니까 더워서 그래.”
대충 넘기고서 내 자리에 앉으니 잠깐 갸웃하던 다자이도 결국 “잘 먹을게,” 하고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는다.
말마따나 잘 먹는다. 배 많이 고팠나 보다. 우물거리는 볼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맛은 괜찮아?”
“응? 응. 맛있어.”
입안 가득 면이 있는데도 또 면을 마는 것에 집중하던 다자이가 이어 말한다.
“내가 한 요리보다야 훨씬 나은걸.”
최소한의 레시피로 만든 파스타였다. '훨씬'까지 갈 일은 아니었다. 이 자식, 얼마나 요리를 못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다자이 집엔 요리한 흔적이 없긴 했다.
“너 요리 못해?”
“할 수는 있는데에,”
말하는 걸 방해하던 입안의 파스타 뭉치를 삼킨 다자이가 다시 말했다.
“완성하면 맛도 색도 이상해져. 내 친구는 그걸 먹고 사흘간 기절했다니까.”
“뭐야, 그게….”
“그러니까아- 나도 영문을 모르겠어.”
옅게 웃으며 동의하는 다자이를 보며 생각했다. 네가 만들고 네가 모르면 어떡하냐.
그나저나 그 정도면 음식 가지고 실험하는 수준이다. 눈앞의 세상에서 가장 심플한 파스타를 멀거니 쳐다보다가 나도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았다.
천천히 포크를 돌리는데 그가 한 말이 맴돈다. 친구, 라고.
친구가 있었구나. 동지라고 생각했는데. 살짝 거리감이 느껴진다.
“가끔 나가는 거, 그 친구 보러 가는 거야?”
어쩐지 멀어 보여 눈치를 살피며 던진 질문이었다. 그에 다자이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웃음소리를 흘린다.
“응, 가끔은.”
“좋은 사람인가 보네.”
“맞아. 정말 좋은 사람이야, 오다사쿠는.”
친구 이름이 그대로 오다사쿠, 일 리는 없고…. 별명인가 보다. 정말 많이 친한가 보네.
‘자네 친구가 있나?’
다자이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나랑 선을 긋는 말이었을까. 본인과는 다르게 친구 없어보였던 걸까.
이래저래 좀 서운하단 생각을 하며 파스타를 말기만 하는데 이어진 그의 말에 그대로 굳고 말았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럼, 보러 간다는 건…,”
“성묘 가는 거야.”
말실수했다. 이번엔 바로 알았다. 눈치를 살피는데, 그의 예쁘게 접은 눈에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없다. 괜찮은 거 맞나. 웃을 일은 아닐 텐데.
그릇 딸각이는 소리만이 공간을 메운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다자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쳐다보자 “잘 먹었어.” 하고 말하는데 여전히 호의가 가득하다. 다행히도 별생각 없었던 걸까.
내가 빤히 쳐다보는데도 다자이의 태도는 나와 다르게 자약하다. 다 비운 그릇을 개수대에 두면서 그가 말했다.
“뒷정리는 자네가 할 거지?”
“…얻어먹었으면 정리정도는 해.”
“자네 집이잖아. 자네 그릇이고. 고작 손님이 함부로 건들 순 없지.”
장난스런 말투. 그에 옮은듯 대꾸했다.
“너한텐 허락할게.”
내 말에 다자이가 후후, 하고 웃더니 고무장갑을 끼고선 개수대의 물을 틀었다. 달각거리는 소리 끝에 깨끗해진 그릇.
설거지하는 다자이가 묘하단 생각을 하면서 보는데, 그가 툭 말한다. “언제까지 먹을 거야?”
“응?”
“모처럼 정리해주려는데 말이야.”
다자이가 내 앞의 파스타를 턱으로 가리켰다. “당장 안 먹으면 정리는 여기서 끝이야.”
“지금, 지금 먹을 거야!”
잠깐만 기다려, 하고서 입에 파스타를 욱여넣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시켜먹을 찬스를 이렇게 놓칠 순 없었다. 급하게 먹는데 다자이가 “늦었어.” 하고서 고무장갑을 벗는다. 그리고 식료품을 보관해둔 찬장을 살피다가 레토르트 카레와 즉석밥을 꺼낸다. 그리고 말했다.
“가져갈게?”
이 자식, 진짜. 본인 먹은 거 정리한 것뿐이면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는 듯 당당하게 식량을 가져간다.
입안 가득 파스타가 들어서 아무말도 못하는 사이, 다자이는 품삯 아닌 품삯을 들고 우리집을 나갔다.
또, 끼-익 소리만 남았다.
이후로 다자이를 씹으며 설거지를 하고서, 전공책을 좀 들여다봤다. 그러다 눈이 아파서 고개를 드니 해가 질 무렵이었다. 분홍색 하늘이 나를 반긴다.
바람을 좀 쐴까 싶어 문밖에서 색이 짙어질 하늘 구경을 하려는데, 마당에 다자이가 서 있는 게 보인다. 뭐 하는 거지?
차마 떨어질까 난간에 기대지는 않고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곧 뒤를 돌더니 또 웃어 보이는 다자이. 거의 진 노을에 물들어 온통 분홍빛에 젖은 그가 내게 “꽃놀이 다녀왔어?” 하고 묻는다.
벚꽃축제 다녀왔냐는 말이었다. 이 시기에 하는 흔한 질문. 뚱하니 그를 보다가 대답했다.
“그냥 오가며 봤어. 지금 널린 게 만개한 벚나무잖아.”
“봄에만 즐길 수 있는 건데. 그걸론 아쉽잖아.”
“늘 오는 봄인데, 뭐.”
“…낭만이 없네.”
낭만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잖아. 그런 말을 가슴에 담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공백 동안 다자이가 잠시 턱에 손을 얹고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하는 것 같더니, 묘안이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럼,
“지금 보러 가자.”
“곧 밤인데 무슨 꽃구경이야.”
“밤 벚꽃이 더 예뻐.”
응? 가자. 하고 웃는 얼굴이 예뻐서,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었다.
그가 멀리 떨어져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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