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구름

명운

 당신의 안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지, 명은 알 길이 없었다. 드러나는 것으로만 그저 추측할 뿐이었고, 어렴풋이 당신이 바라보는 것이 자신이 아님을 짐작했다. 과거는 종종 현재, 나아가 미래도 알게 해 주었으니. 제 눈 앞의 상대를 파악하는 것 쯤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명은 개의치 않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오롯이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명은 그런 시선이 익숙했고, 또 불쾌하지 않았다.

 “나도 그리웠어. 자네가 무척.”

 다가오는 당신의 뒤로 밝은 달이 비춰지었다. 언제쯤이었을까, 무심코 신경이 닿은 당신을 조금 기억하기도 한다. 웃으매 웃질 못하던 어린 당신을, 그저 숭배받던 어린 신을. 

 “자네의 장난기도, 이 미소도.”

 고작 삼 주라는, 그들에게 있어 그저 찰나에 불과한 시간임에도. 명은 영운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글쎄… 그 손길에 명이 어떤 것을 떠올렸을지. 지금의 영운은 알기 힘든 것일지도 몰랐다.

 “많이 보고 싶었어.”

 그 말이 뱉어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작 몇 초 남짓. 그 찰나의 시간이야말로 명에겐 제 만년의 생이 다시 한 번 지나간 것만 같았다. 또 제 만년의 생이 이토록 찰나처럼 느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제 머리칼처럼, 눈처럼 새하얀 당신의 피부가 제 살결에 닿을 때에는 숨이 멎는 듯 했다. 이제껏, 그 긴 생에 이런 손길은 결코 처음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그것이 당신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럴 심산은 아니었겠지, 싶지만… 썩 속이 아려왔다. 당신이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나? 닿은 살결 위로 전해지는 온기가 명의 생을 상기시킨다.

 곱디 고운 미소가 저를 향하면, 명은 쓰게 웃는다. 당신의 이 미소가 어째서 저를 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제 가슴팍에 닿는 당신의 머리를 가만히, 그리고 단단히 안아주었다. 천천히 쓸어내리는 머리칼은 달빛을 받아 조금 노랗게 빛난다. 그것은 명의 색이다. 아래로 갈 수록 백색을 띠는 그것은 또한 명의 것과 닮아 있었다. 날카로운 맹수의 눈동자는 부드럽게도 당신의 연홍빛을 담아낸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영운의 색이었다.

 “미안하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까. 명은 그의 본능과도 같은 밀어냄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혹여 당장이라도 그를 떠나버릴까,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더는 제게 기대어 온 이를 밀어내지 않는다. 그것이 당신에게 있어 떠나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명은, 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서슴없이 저지를 만큼 차가운 이는 아니었기에.

 “날이 차지 않은가. 자네 받아간 접선은 어찌하고.”

 괜히 장난스레 웃으며 당신을 안은 팔을 조금 내려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꽤나 차려입지 않은, 수수한 모양새의 당신의 옷은 여전히 얇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떤 변덕이었을지는 모르나, 어디선가 불어온 훈풍이 당신을 감싸안는다.

 호명이 걸쳤던 답호는 어느새 당신의 위에 덮여진다. 짙은 암청색의 천은 밤의 당신과 꽤나 어울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명의 눈에는 썩 마음에 들진 않았으리라.

 “자넨 역시, 어두운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희게 웃으며 당신의 머리칼에 고개를 묻는다. 어두운 것은 명이다. 다만 그런 어둠에 어울릴 것은 자신 하나면 족했기에. 제 품 안의 당신만큼은 더없이 밝기만을 바랐다. 어둡기 그지없는 자신과는 달리.

 당신에 덮인 옷가지를 톡- 건드리면, 그 손길부터 시작된 파동은 어느새 암청색의 그것을 연하늘색으로 탈바꿈시킨다. 그제서야 만족스럽게 웃는다.

 “지난번에 말했던가? 하늘색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 역시 구름은-”

 하늘에 있어야지. 하는 말은 속으로 삼켜낸다.

 “하늘의 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말이야.”

 다만 지금의 하늘은 명과 같은 암청색이었다. 어둡기 그지없는. 그 암청색의 하늘에도 구름은 떠다녔다.

 “... 날이 차군. 기와가 많이 비었는데, 오랜만에 불 좀 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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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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