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부재
적막한 공간에서 오로지 시계 초침 소리만이 났다.
그는 그 초침 소리를 처음 들었다. 소리가 나는 시계인 줄 처음 알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집에서 제법 오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한 번 자각한 위화감은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려, 그는 문득 자신이 자리한 공간 자체가 낯설었다. 원래 이렇게 집이 넓었나.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나 잠깐 느꼈던 감상이었다. 별 하나 뜨지 않은 밤은 원래 이렇게 길고 아득했었나. 지독한 고요함을 홀로 견딜 생각을 하거든 돌연 쓸쓸해졌다. 아, 혼자 되는 일은 원래 이렇게 막막해지는 거였던가… ….
밤이 길었으나 그는 우두커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얼 해도 집중할 수 없을 게 뻔했다. 하다못해 잠을 잔다 해도 얼마 못 가 깨고 말리라. 그렇기에 다만 생각에 골몰했다. 돌아오시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테다.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으나 이 시간에 불러낼 정도면 사소하다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대도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니까. 언제나 그랬듯 생각의 끝은 당신을 향한다. 당신이 걱정되는 걸까, 그런 것 같았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왜 잠들지 못하고 있는가, 당신이 잘 해내리라 믿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역시 밤이 길어서 그래.
간단한 결론을 내놓았다. 여전히 밤이 깊었다. 여전히 시계 초침 소리가 컸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조금 더 외로워졌다. 시곗바늘이 기울듯 생각의 끝이 당신에서 당신의 부재로 넘어갔다. 그는 당신의 부재가 낯설었다. 당신이 없는 밤이 너무 길다. 당신 없는 공간의 공기가 지나치게 무겁다. 당신의 소리 한 점 섞이지 않은 적막이 버거웠다. 찌르는 듯한 형광등 불빛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눈을 감았다. 고작 잠깐의 부재일 뿐인데 어찌 이리 버거운가.
그는 명백하리만치 당신이 그리웠다. 곧 돌아오리라는 공허한 확신 같은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당신의 곁에 있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그는 문득 놀라고 말았다. 주제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여기서 더 원해서는 안 되었다. 괜한 생각은 않기로 했다. 체념하는 데 익숙한 삶이니 내일이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대도 지금 당장의 그리움까지 걷어낼 수는 없었으므로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리움은 제아무리 가지치기를 해도 결국은 제 멋대로 뻗어나가는 성질을 가져서,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밤이면 당신도 내 생각을 할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그랬다. 그 바람 때문에 가슴이 저미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 나에게 과분한 존재이니 주제넘은 바람이니 따위의 생각은 집어치웠다. 지금껏 그는 당신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고 생각했다.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것들을 겪은 존재에게 고작 몇 년간 함께한 이가 중요할 리 없었다. 알면서도 바라게 된다. 당신도 불현듯 내 생각을 했으면. 당신도 문득 나의 부재를 느꼈으면. 그걸 깨달을 적에 조금 쓸쓸해졌으면.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 사실 그보다는 많이. 아니, 나만큼 공허해진다면 좋겠다. 역시 당신이 이만큼 아프기를 바라면 안 되겠지, 나는 당신이 없으면… …
그는 눈을 떴다. 찌르는 듯한 불빛을 피해 창밖을 보았다. 어둠이 짙었다. 그는 당신을 닮은 어둠을 손에 쥐고 싶었다. 당신 또한 이 어둠 안에 있으리라. 누군가는 그 사람과 같은 하늘 아래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좋다고 했다. 오래 전 그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던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그 정도로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명백하게도,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자각했을 때 그는 사무치게 깨닫고 말았다. 당신의 부재가 나의 고독이 되었을 때 나는 오래도록 감추어둔 욕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사랑은 욕심의 형태를 띤다.
… 곁에 없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에요. 다만 언젠가 직접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나보다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랬기에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불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외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꺼뜨리지는 못해서, 제가 그 감정을 다시 돌아보았을 적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의 성질이란 본디 그러한 것이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제 행복에 당신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그 반대이길 바랐으나,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삶은 본디 뜻대로 흘러간 적이 없기에. 나는 당신을 갈망하고 이 감정이 오롯이 저만의 욕심인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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