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비

괜찮아요.

대관절 뭐가 괜찮다는 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그러나 후회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달변가처럼 말하는 재주는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또다시 길게 침묵했다.

당신은 어쩌다가 나비의 모습으로 살고 싶어했나. 당신을 감화시킨 사람들을 어떤 이들이었을까. 그는 당신의 삶의 궤적을 모두 알고 이해할 수 없다. 설령 직접적으로 들었다 해도 그러하리라. 다만 그것이 소통과 공감의 단절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당신의 삶을 겪어본 적 없기에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했다.

스스로를 사랑해도, 그래서 행복해져도 괜찮아요.

그는 자기혐오의 깊이를 안다. 한 번 그것에 발을 들이고 나면 바다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사실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것에 빠진 상태가 익숙해진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같은 상태에 처한 이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또한, 필연적으로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만다. 그는 당신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아, 그럼 나도 행복해져도 괜찮을까…. 이윽고 자신의 모습을 덜어내면 영겁처럼 긴 세월을 자책과 함께한 당신만이 남는다. 감히 이해할 수 없을, 그럼에도 헛된 시도나마 해 보고 싶게 만드는.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갉아먹다 보면 고독해진다. 그 고독 속에 당신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그 또한 그곳에 갇혀서는 안 되었다.

저도 좋아해 보려고요. 저 자신을요. 괜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해도, 습관적으로 제게 넌더리가 난다고 해도….

그러니 당신 또한 스스로에게 너그러웠으면 한다고, 그래도 된다고. 말처럼 쉽지 않을 테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거대한 운명에 갇히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상처받고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그 순환을 끊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것보다 긴 영원 속에서 사는 당신이 걱정되었다. 당신이 그곳에서 한 발자국만 나올 수 있다면, 과정이 아주 느리고 고통스럽더라도. 그리하여 언젠가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삶을 떠받치는 건 결국 거대한 사랑일 테니까, 그는 당신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럴 수 있다면 그 또한 당신 몫의 작은 사랑 한 점이 되고 싶었다.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것밖에 해줄 수 없어서. 이것이 당신이 괜찮아지는 일련의 과정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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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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