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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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진, 진급 및 전역을 신고합니다. 충성.”

“그래, 수고 많았다. 괜찮아지면 연락한 번 해라.”

“..예. 감사했습니다.”


네가 마련해준 집

딸랑-

“안녕히가세요~”

마트를 나온 남자는 무뚝뚝한 얼굴로 거리를 지나갔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차키를 빼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연한 밀빛의 남자와는 대비되는 검은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내달렸다.

끼이이이익-

자동차가 어느 주택 앞에 멈추어섰다. 남자는 느리게 차를 돌려 저택의 작은 주차장에 차를 안치했다. 담진이 도착한 집은 앞마당을 포함해 60평 정도 되는 작은 집이다. 본래라면 어릴 적 입대해 10년 가까이 군대에 있었던 담진은 얻을 수 없는 집이었지만, 막역한 친구의 가족들이 힘써주었다.

담진은 죄송한 마음에 몇 번이고 거절했다. 하지만 부모자식은 닮는다고 제 아들을 닮아, 아니 그 아들을 키워낸 부모님은 고집이 강했다.결국 못 이긴 척 집을 구하는데에 도움을 받고, 집 대금만큼은 제 손으로 내려했지만 담진은 그 싸움에서조차 이기지 못했다.

담진은 마당에 가만히 서서 하나부터 열까지 제 친구의 어머니의 손길을 탄 집을 바라보았다. 지붕은 햇볕을 잘 반사할 수 있도록 하얀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그 남자의 머리색과 닮은 외벽은 2층에 조그만 다락방에 창을 내고, 아래에는 거실 전체에 볕이 들어오도록 큰 구멍을 냈다.

마당에는 어떻게 찾은 건지 담진의 머리칼을 닮은 곱슬곱슬하고 옅은 색의 꽃들이 봉우리를 내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당의 한켠에는 작은 창고가 있다. 분명 마당을 다듬을 도구가 들어있으리라 담진은 예상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바로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의 옆벽면을 타고 뒤뜰로 들어갔다. 담진의 집 뒤뜰에는 미리 업자를 시켜 만들어놓은 작은 텃밭이 있다. 아직 만들어지기만 해 심어저있는 것은 작은 토마토 묘목 뿐이다.

그는 뒤뜰에 서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햇빛이 잘 들어오니 흔들의자를 하나 사서 가져다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묻어두었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르려해 그는 눈을 떳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마트에서 산 식재료를 아직 정리하지 않았다

집이 생긴 담진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식재료를 정리하고, 식기들은 한 번 씻어 말렸다. 가구의 위치를 조정하고 청소를 하고 침구정리까지 끝내니 오전 중에 시작한 일은 오후가 지나서야 끝났다. 담진은 조금 상쾌해진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창밖너머 노을이 지고 있다. 어제 잠들때도 노을을 보고 잤는데… 졸음에 둔해진 머리가 생각을 거부했다. 나는 머리의 되도않는 어리광을 받아주고 그대로 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탁상위 시계를보니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숫자들이 보였다. 정말 하루를 꼬박 잤군. 이사하는데에 원래 에너지가 많이 들던가? 안타깝게도 나는 이번이 첫 이사였기에 알 수 없었다. 그냥 원래 이사는 힘든 일인걸로.

나는 뭉그적중그적 몸을 일으켰다. 적당히 샤워만하고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는 게 좋겠다. 나는 침대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땅에 한 발을 딛는 순간, 시야가 추락했다. 어? 바닥에 코를 제대로 박았다. 그러고보니 몸에 힘이 없다. 전역한지가 얼마라고 벌써 생활패턴이 망가졌나보다.

몸을 일으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나는 가만히 누워 전역한 뒤의 생활을 천처히 되짚어보았다. 사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전역하고 이틀은 그 녀석 친가에 잠시 머물렀다. 이삿짐이 집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와서 장을 보고, 짐정리를 했다. 되짚어보니 밥을 안 먹은지가 좀 됬다. 어머님이 밥은 굶지 말랬는데..

좋아. 할 일을 정했다. 나는 곧장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볍게 세수만 마치고,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사둔 계란과 빵을 꺼냈다. 적당히 요리해 잼을 바른 빵과 함께두니 그럴듯한 요리가 완성됐다. 빵과 계란을 포개 물 흐르듯 먹고 물도 한 잔 마셨다.

설거지와 양치도 끝내자 할 일이 떨어졌다. 이젠 뭘하지. 거실의 소파에 철푸덕 앉아 멍하니 생각했다. 기상시간과 훈련없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처음이라 적응할 수 없었다.

원체 생각이 없는 성격이라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다. 너라면 남는 시간에는 뭘 했을까. 운동을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풋볼이나 야구같은… 끌리는 선택지는 아니다. 나는 별 수 없이 다시 침대로 가 누웠다. 침대에 눕자 긴장이 풀리면서 눈이 감겨왔다.

이제 막 전역한 군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꿈에서 네가 나왔던 것 같다.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했다.


오늘은 간만에 아침에 눈이 떠졌다. 근 이주만에 보는 햇빛에 눈이 아프다. 익숙하게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깨뜨렸다. 다 떨어진 빵대신 배이컨을 굽고 치커리도 조금 씻었다.

식후에는 물을 한 잔 마시고, 샤워를 한다. 이주간 익숙해진 일일 루틴이다. 씻고 나면 옷을 갈아입고 뒤뜰로 나가 어머님, 그러니까 내 친구놈의 어머니께서 부탁하신 작물들을 돌본다. 해를 받아서 그런지 토마토잎에 맺힌 이슬이 반짝였다. 뒤뜰을 한 번 보고나면 앞뜰로 나가야한다. 앞뜰에는 할 일이 없지만 제발 운동좀 하라며 잔소리 해대던 친구가 떠올라 조금씩은 움직였다.

45분. 아침먹고 운동까지 끝내면 딱 45분이 지나있다. 내 하루 일과는 다 끝난 샘이다. 나는 해가 들어오지 않는 거실로 들어가 선반 옆 소파에 몸을 기댔다.

선반에는 오직 상자만 외롭게 놓여있다. 상자를 들어 손안에서 굴려본다. 안에 있는 것들이 중력에 따라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 상자는 죽은 군인의 유품으로, 특진으로 나보다 한 계급이나 높아진 친구님의 선물이다.

최전방도 아니고 전쟁이 소강상태일때 있던 숙소에서 발견된 상자였다. 한참 전부터 안에 뭔가를 넣어놓고 잠가두었다는 건데, 정작 하루 온종일 붙어있던 나도 모르게 만들었다. 만든 목적도 과정도 모르고 아는 건 내 앞으로 돌려놓은 물건이라는 것 하나뿐이다.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있는 상자의 열쇠는 아마 시체가 들고 있을거다. 그때즈음부터 그 놈이 목에 뭘 걸고 다니기 시작했다. 작은 팬던트였는데, 그 속에서 잘그락 소리가 나던 걸 기억한다.

근데 이러면 뭐해. 상자는 열 수 없고 그 놈은 죽어버렸다.

그 놈은 가족도 없고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따위 모르는 고아새끼하나 살리려고 죽었다. 그 날 그 때,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맛본 에 얼굴에는 숭고함이나 고양감따위는 없었다. 너는 안도와 기쁨으로 가득찬 눈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길 기대하는 청년을 얼굴이었다. 도무지 8년을 전쟁터에서 구른 정예군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티없이 맑은 감정들을 네 눈에서 보았다.

그 희망 하나로 넌 죽기 직전까지 반짝였다. 차라리 네가 아니라 내가 그 희망을 먼저 발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죽었어야 했다. 너는 돌아갈 곳도, 기다리는 사람도 많으니까, 둘 중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 내가 죽는 게 좀 더 나았을거다.

그래, 차라리…

차라리 지금이라도 내가 죽으..

“싫어!!”

창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설마 적군이 여기까지?

문이 부서져라 뛰쳐나가니 어느 아이들이 짐 앞뜰까지 들어와 놀고 있다. 아, 전쟁은 끝났다. 쪽팔려. 쥐구멍에 숨고 싶어졌다. 이대로 문 닫고 들어가면 모른 척 해주려나. 꼬마들도 벙쪄서 못 보지 않았을까? 내가 모른 척 집안으로 들어가려하자 한 꼬마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요정님이다!‘

…잘 못 들었습니다?

“요정님?”

“응, 엄마가 그랬어,여기서 놀면 이 집에 사는 요정님이 밤마다 나와서 정리해준대. 그래서 엄마가 공놀이는 여기서만 하래”

“우와...진짜?”

“진짜로! 봐봐, 지금 요정님이 나왔잖아”

생각치도 못한 단어에 벙쩌있는 사이 말끔하게 생긴 여자애가 나 대신 남자애에게 말을 걸었다. 게다가 여기서만 놀라니… 어떻게 봐도 좋은 의도로는 안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사한 뒤에는 주변 집에 작은 선물을 가지고 인사를 가야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인사는 커녕 밖에 나오지도 않았으니 미움을 샀을 수도.

그나저나 애들한테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하지. 그 놈은 처음보는 애들한테도 잘만 말 걸던데.. 난 울리지 않은 횟수를 세는게 훨씬 효율적일 거다. 일단 되는데로 질러볼까. 아니야 또 그랬다가 울리면… 당연하게도 난 애 달래는데 재능이 없다.

친구놈아 나에게 힘을 줘…


꼬맹이들은 돌아갔다. 다행히도 한 여자애의 부모가 자식을 데리러온 덕분이었다. 전형적인 민간인 여성이었는데, 내가 이제껏 본 민간인들과는 좀 달랐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 뭐냐면 얼굴에 수심이 없다.

손은 무기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태가 났고 하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법을 몰라 아이 하나 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나는 저 가정이 전쟁과는 거리가 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익숙하게 다른 아이들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죄송해요. 이 짐 들어오신 분 맞죠? 주인있는 집인데 놀지 말라고 해도.. 집이 너무 오래 비워져있어서 아이들이 잘 몰랐나봐요.”

갑작스레 꼬마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내게 사과를 건네시는데 사실 이해 못 했다. 왜 사과하시는 거지. 사유지 무단점거? 성인도 아니고 꼬마들한테는 바라는 거 아니라고 들었다. 잘 모르는데 저저번 격전에서 죽은 아저씨가 그랬다. 나한테 구라친 거 아니겠지?

“아닙니다. 애들인데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며칠 목을 안 썼더니 목이 잠겼다. 이제는 누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글렀나. 이상하게 여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담은 좋은 사람일 수도.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하시던 일을 이제 끝난 건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집을 오래 비워둘리 없죠.”

하려던 일? 전쟁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이 집을 소유한 적이 없다.

“..예. 전쟁이 끝났으니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얼마전에 산 건물입니다. 전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착각하셨습니다.”

“군인이셨군요. 이름이 담진아니신가요? 이 집은 3년전부터 계속 당신 소유였어요. 제가 그 때 이사와서 확실하게 기억해요.”

“…잘 못 들었습니다?”

내가 여자의 말에 얼타고 있는 사이 여자의 품에 안겨있던 꼬맹이가 징징대기 시작했다. 실로 부자연스럽고 당황스런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더 정확히는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것 같은데.

“엄마, 엄마. 내 장난가암! 내 건축 세트 사라졌어. 찾아줘!!”

꼬마가 여자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탓에 여자가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다리도 흔들기 시작한 것이 계속 두면 넘어지겠군. 어제부터 정원한 쪽에 놓여있던 모종세트를 말하는 건가. 앞에 이상한 함정도 놓여있다. 멧돼지용 함정을 만들어 놓았는데 생각보다 잘 만들어서 그냥 뒀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멧돼지는 못 잡겠지만.

“ 저 나무 아래에 있는 모종세트 말하십니까?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여기 계십시오”

“앗, 감사합니다.. 어 사라야 잠시만, 엄마 넘어져. 사라도 바닦에 쿵 한다?”

예의 나무 앞으로 가자 모종세트와 어제보다 커진 멧돼지 함정이 보였다. 나무를 둘러싸게 만든 걸 보니 누가 걸리길 바란 모양이다. 아쉽게도 나는 알아챘지만.

…어. 그럼 내가 이거 당해줘야 하는 건가? 뒤에서 꼬마가 킼킼 웃는 소리가 들렸다. 기대에 찬 숨소리도 같이. 나는 전전번 전장에서 죽은 부하를 떠올렸다. 아저씨. 꼬마들한테 당해주기는 어디까지 포함입니까. 이런 것도 당해줘야하는 겁니까..? 아저씨가 당연하지! 외치는 환상이 들려왔다. 존나 한결같은 늙은이… 나는 함정을 한 가운데로 발을 내딛었다.

푹.

“엌.'”

기껏해야 날카로운 유리조각이나 독있는 벌레가 들어있겠지. 운이 좋으면 진흙으로 끝날 수도 있고. 나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꼬마의 환호성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잠시 놀라다가 자식의 반응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저거 네가 만든거니? 세상에.. 죄송해요! 어떡한담..”

여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려했다. 거기 멧돼지 함정 하나 더 있습니다. 내 발에 닿는 느낌으로 보아 위험한 건 아니겠지만 굳이 함정에 빠질 필욘 없지. 당하는 사람은 나 하나로 충분해 보인다.

“괜찮습니다. 발 밑 조심하십시오.”

함정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의 정체는 진흙이었다. 생각보다 착한 아이들이었나보다.흣차. 어젯밤에 소나기가 내린 탓인지 약간 무거웠지만 어렵잖게 발을 빼낼 수 있었다. 구덩이가 얇게 파진 탓에 진흙이 얼마 없는 덕도 있었다.

나는 그대로 걸어가 여자의 손에 모종세트를 넘겨주었다. 꼬마는 내 다리를 보며 킬킬 웃고 있다. 좀 감격스러운게, 내가 어린애를 상대하면서 울리지 않은 건 8살 이후로 처음이다. 그 땐 나도 꼬맹이였으니까.

이것 참 기념비적인 날이군.


마지막 꼬맹이까지 돌아가자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고보니 전역하고 나서는 온통 새로운 것 뿐이다. 한 공간에서 숨소리를 내는 것이 나 하나뿐인 것도. 아무리 자도자도 깨우러 와줄 사람이 없는 것도. 피 냄새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일도 처음이다.

새롭지만 딱히 좋진않다. 이상하지. 군대에 있을 땐 제발 숨소리 좀 내지 말라고 배게를 집어 던지는 게 일상이었는데. 누가 죽은 것 처럼 느껴지는 건 배게를 맞을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죽은 건 한 명뿐인데 꼭 온 세상 사람이 다 죽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대로 들어가 씻지도 않은 채 몸을 뉘었다. 죽음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나도 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쾅! 쾅쾅!!

“진씨! …씨! 계십…! 안 나오……니다!”

시끄러워… 자는 사람은 왜 불러… 내가 야간근무 설 짬밥이야? 미친새끼들.. 걔 시키면 되잖아. 내 파트너. 걘 부지런해서 이미 일어나 있을텐데 왜…

아, 넌 지금 없나?

너무 깊게 잠들었었는지 머리가 아프다. 눈을 뜨는 것도 한참만인지 뿌옇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생각이 돌아오자 이미 전역한지 한 달 가까이 되어간다는 게 떠올랐다. 그리고 여기는 군대가 아니라는 것도.

“…가겠습니다! …하나, 둘…!”

퍽!

집처럼 여겼던 곳에서 더는 잘 수가 없어서 내가 도망쳐 나왔다. 네가 온 뒤로 야간근무를 선 적이 없는데 다시 서려니 너무 힘들더라. 도망치면 그런 거 할 필요없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 딱히 그런 건 아니였지만.

우두두두두두두…

계단과 신발 밑창이 부딫치는 소리가 메아이쳐 울렸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손은 소리도 진동도 막기 못 했지만 계속 귀를 막았다.

“진씨! 살아있어요?”

“다니엘!. 진씨 살아계셔? 진씨. 갑자기 들어와서 죄송해요.”

“비람누나. 이 분이 당신이 말한 그 사람 맞아요? 주무시는 것 같은데.”

“어. 맞아. 진씨, 일어나보세요! 저 기억하세요?”

앏은 손이 내 몸을 흔들었다. 귀찮아. 깨우지 마. 계속 잘 수 있었는데… 계속 흔드는 손이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결국 손을 내치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있습니다.”

“죄송해요. 집 안에서 안 나오시는 것 같길래 걱정되서 와봤어요.”

걱정되는 마음에 남의 집 문을 곡괭이로 부수고 무단침입을 했다? 내 이름은 진도 아니야. 생각이 너무 일차원적인거 아닌가? 됐다. 겨우 한 번 본 사람한테 할 이야긴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십시오.”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엄청 낮게 나왔다. 들렸을지조차 모르겠다. 내 알바인가.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일어난 지 얼마나됐다고 벌써 피곤했다.

“잠시만요. 진씨. 며칠 째 아무것도 안 드셨다면서요. 일어나서 뭐라도 드셔야죠! 진씨를 찾아온 분도 계세요.”

“그래요. 일어나서 좀 씻고 움직이세요 진씨. 누워있다고 뭐가 해결되진 않아요.”

나는 나를 부르는 헛소리를 뒤로하고 계속해서 잠을 청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그것도 무시했다. 아픈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인기척이 하나 더 느껴지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잘 수 있었을 거다.

아픈 머리에도 선명히 잡히는 소리는 구두소리였다. 구두소리의 주인은 방 문 앞에서 멈춰서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입을 염과 동시에 나는 몸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그 자식의 어머니시다.

“진은 새로운 애칭이니? 좋은 이웃이 생겼구나.”

나는 그녀의 앞에서 영원한 죄인이다. 나는 그녀의 자식을 죽음으로 떠민 악인이고, 그녀는 자식을 죽은 자를 용서하는 걸로도 모자라 도움까지 준 피해자였으니까.

“아…”

갑작스레 몸을 들어올린 탓에 두개골이 안에서부터 깨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에서 내려가지도 못한 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갑구나. 뭐라도 좀 먹었니?”

“…괜찮습니다.”

귀로 들어온 말이 머리로 흐르지 않아 그녀 말을 알아듣기 위해선 온 정신을 집중해야했다. 지금 상태로는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다. 내가 짚고 있는 것이 바닥인지도 잘 모르겠다.

“안 먹었다는 이야기구나. 음식을 좀 해왔으니 괜찮아지고 나면 뭐라도 먹으렴.”

“..감사합니다. 꼭 먹겠습니다.'”

“무리할 필요 없단다. 아가. 잠시 아줌마보련?”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초첨이 맞지 않아 제대로 보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녀 내 왼손을 들어올렸다. 손 안에 작은 금속이 들어왔다. 그녀의 체온만큼 따뜻한 금속이었다.

“그 애의 시체를 찾았다고 하더구나. 이건 그 애가 가지고 있던 열쇠야. 네게 전달하랬단다.”

시체…? 누구의? 나에게 전달할 유품이 있는 사람이 누구지? 너무 많은데. 설마. 아니야. 아닐거야. 네가 죽었다는 증거는 망가진 나 하나면 충분하잖아. 그렇지?

하지만 담진. 이 분의 아이는 한 명 뿐인걸 알잖아.

“누..누구….입니까?”

제발. 제발 부정해줘요.

“내 아들. 서리. 네 친구야. 담진아. 그 애가 죽어서 너에게 유품을 남겼어.”

그건 말로 이루어진 절규였다. 보지 않아도 그녀의 얼굴과 내 얼굴을 같은 표정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차가운 금속이 따뜻해질 때까지 쥐고 있었을 부모의 마음을 감히 알 수 없다.

내 왼손을 보았다. 손을 피니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열쇠가 식을까 다시 손을 말아쥐었다. 그건 열쇠였다. 아마도 잘난 친구님의 유서가 들어있을.

보고싶지 않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 뭐라도 뱉어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침대가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를 발견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가자 책상에 도시락이 놓여 있다. 어머님이 해주신 걸까. 천천히 책상에 앉아 음식을 본다. 음식은 이미 다 식어있었다. 이미 식은 것 조금 더 놔둬도 문제 없을 듯 싶다.

나는 거실로 걸어갔다. 소파 옆의 서랍 앞에 서서 한동안 가만히있었다. 내 왼손에는 여전히 열쇠가 들려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주먹 쥔 손을 폈다. 열쇠는 계속 따뜻하다.

서랍 위에 놓인 상자를 들어 열쇠를 끼우자 경쾌한 소리가 난다. 열쇠는 저항없이 돌아간다.

찰캌.

상자 안에는 종이 뭉치 하나가 돌돌 말려 들어있다. 종이를 묶어놓은 노끈을 잡아당겼다. 노끈을 저항하나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종이를 조심히 펴서 가장 첫 장을 보았다.


밥 먹고 와


응…? 첫 장에는 밥 먹고 오라는 말 한 마디만 적혀있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같은 문장이다. 뭐지. 이거, 유서가 아닌가..? 떨떠름한 눈빛으로 종이를 들여다봐도 대답이 나오지는 안았다. ..일단 밥 먹을까.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 식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딱딱해진 베이컨은 씹을 수 없어 다른 것들을 골라먹었다. 기름이 굳어 하얗게 변한 것도 있고 샐러드는 소스에 숨이 죽어 얇은 비닐을 씹는 느낌이다. 맛이 없지도, 있지도 않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손을 깨끗이 씻었다. 설거지까지 마치고나서 나는 다음 종이들 들었다. 서리는 항상 설거지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다.


밥 먹었어? 설거지는 안 한거 아니지?

설거지는 항상 먹은 직후에 끝내야해. 미뤘다간 짐 안에서 파리떼를 볼 수 있다고.

설거지까지 끝냈으면 이제 씻고와.

접시도 깨끗한데 너만 더러울 수는 없잖아.

더러운 손으로 이 종이 만지지 마!

머리 꼭 말리고!


…이 새끼 진짜 뭐지? 내가 얠 이제껏 잘못알고 있었나. 장난스럽긴해도 이 정도인 놈은 아니였던 것 같은데 이 글을 뭘까.

…나는 다시 종이를 내려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며칠만에 머리에 물을 묻히는지 샴푸를 여러번 해야했다. 다리에 묻은 진흙은 떨어지지가 않아서 단단한 피부가 벌겋게 변할 때까지 문질러야했다.

머리까지 말리고 나니 꽤 상쾌해져서 그제야 더러운 거실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청소를 먼저할까. 편지를 먼저볼까.

설마 편지에 청소하라고 적혀있진 않겠지?


머리까지 말렸으면 청소도 좀 하는 게 어때?

이건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살아


……

청소 먼저 하자.

거실은 평소에 잘 쓰지 않아서 쌓인 먼지를 걷어내기만하면 됐다. 환길를 시키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집안을 훑었다. 바람결에 그나마 남아있던 잠결도 날아가 정신이 아주 말끔해졌다. 겨우 남겨놓은 방어기제였는데.

남은 편지는 소파에 앉아서 보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남은 종이가 얼핏봐도 15장은 넘어보였다.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꽤 오랜만이네

담진아. 내가 준비한 집은 잘 받았을까?

이 전쟁의 여파가 크지 않으면서도 오지랖 넓은 이웃이 많은 곳을 찾으려고 고생 꽤나 했어.

네가 집에서 내 유서를 읽을 때쯤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겠네.

집은 엄마가 구해주신다고 했겠지. 사실 그 집 옛날부터 네 명의였어.

딱히 숨겨서 미안하진 않아. 세상에 직접 집도 사주는 친구가 어디있다고.

그것보단 사회경험은 실상 처음일텐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옆에서 잔뜩 놀려줬어야하는데, 안 그래?

서론은 이쯤하고, 네게 이 편지가 너무 늦게 전달되지 않았으면 해.

넌 내 죽음에 울어줄거잖아. 울지 말라고 열심히 썼는데 이미 웃고 있는 너에게 전달되면 우습지 않겠어?

나는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느니 이제껏 고마웠다느니 하는 인사는 바라지도 않아.

너만큼 그런 게 안 어울리는 사람도 없지. 너 평소에 인사하는 것도 그냥 습관이지?

감정에 진심을 담을 줄 모르는 새끼…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겠지만 이제 좀 바뀌어봐.

솔직히,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 지 고민했어.

별로 좋은 생각이 안 나서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낫겠더라고.

넌 아직도 한 참 어린 애새끼야. 아까 말한 것도 그렇고,

부대 에이스주제에 혼자 못 자, 새벽에 깨우면 못 일어나고 짜증이나 부리지.

자기 맘대로 안 되는 일 있으면 다른 건 안보고 그것만 신경쓰는 놓치는 일도 많잖냐

내가 널 키운 건 아니지만 나 정도면 이런 말 할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걸 독립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진 모르겠다만 집도 생겼겠다 독립 좀 해.

어째 내 여친보다도 너를 챙겨 다닌 기억이 더 많아…

이 기분은 네가 챙겨줘야하는 사람을 만나봐야 알거야…

아 그렇지.

애라도 한 명 데려와서 같이 살아.

그러다보면 생활패턴 같은 것도 잡히겠지.

좀 큰 애면 같이 여행도 가고, 자격증 시험도 같이 준비하고 그래봐

어떻게든 사회인처럼 살란 소리야.

책임질 건 책임지고 부담은 나누고 기쁨은 함께하면서 그렇게 살아

그리고

그리고 만약에 아무한테도 나누어 주기 싫은 감정이 생기면 날 찾아와

너무 많이는 말고 1년에 한 번쯤?

특별히 네 이야기라면 뭐든 들어주마 듣기 힘들면 다시 너한테 떠넘기지 뭐.

참. 나 어디있는 지는 아냐?

아마 그 집 근처에 있을거야. 가끔 찾아와.

그 땐 너 사람답게 사는 이야기 꼭 들고 찾아와라.

어이없게 실수한 이야기,

새로운 걸 경험한 소감,

기적적으로 성공한 일

너무 화나서 참을 수 없었던 이야기,

연애 이야기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사후에도 도파민은 있어야지.

그럼 진짜 안녕. 파트너! 천천히 와라!

Ps: 1년에 한 번 이상 찾아오면 죽여버린다


편지는 길지 않았다. 낭만을 좋아하는 어느 눈꽃이 장에 문장을 3개도 넣지 않는 기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친새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했다. 기운이 없어 힘빠진 바람만 잔뜩 뱉어낸 나는 소파에 몸을 구겨넣었다. 눈물도 나올까했는데 거기까진 도저히 기력이 안되더라.

결국 미친 사람처럼 소파에서 힘빠진 웃음만 내는 사람이 되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진짜 미친 놈 아니야….”

나 주려고 집을 진작에 구해놨다고? 호구가 따로 없지. 그럴 돈이 있으면 효도나 할 것이지 만난 지 꼬랑 몇년 된 놈 집을 사주고 있어..

아 힘들어…

힘들었어

앞으로도 힘들거라니 진짜 절망적이네

그래도 어쩌겠어. 친구님께서 나 사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데 들려드려야지.

일단, 한 숨 자고 일어나서.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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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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