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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e5S0 by 이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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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선물, 아이는 기쁨, 아이는 축복.

부모인 자들에게 아이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에 으레 나오는 답은 서 씨 집안 자녀들에게 답이 아니었다. 부모의 대충인 육아는 이름 짓기부터 나타났다. 한강, 한중, 한라. 첫째의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그 강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며 둘째의 이름은 그저 어감이 멋있게 지었으며 막내 이름은 부부가 학생 때에 수학여행을 갔던— 첫째를 가진 산에서 따왔다.

이러한 작명의 무성의함처럼 그들의 육아 또한 무성의했다.

그들은 치기 어린 십 대 소년·소녀 쾌락의 부산물이었다. 단칸방에서 자란 세 남매는 부모의 부재에 익숙이었다. 그들은 죽이지 못하기에 기르는 것일 뿐 애가 칭얼대고 칭얼대다가 옆집이나 윗집에서 조용히 하라고 쾅쾅대면 그제야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그들은 세 남매가 죽길 바라였으니 그들 또한 죽은 것처럼 자랐다. 세 남매는 전부 연년생이었다. 청소년이 피임도 안 하고 한 관계에서 배운 것이 없던 것이기도 했고 두 쪽 다 애를 잘 갖는 체질인 것도 한몫하였다. 남매는 가끔 깽값, 주운 것, 스삐또 당첨금 등등 조금씩 몇 전을 던져주고 가면 그 돈으로 몇 달을 살았다.

그들은 숨을 죽였다. 종종 천장에서 새는 물을 모아 마시고 기저귀를 뜯어먹기도 하였다. 수돗물마저 끊겼을 때는 혹여 목이 안 마를까 오줌을 계속 참다가 옷에 실수를 한 적도 많았다. 그들의 아버지는 굶주림이었고 어머니는 가난이었다. 아무도 몰랐다. 이 곳의 누구도 그들이 어떤 비극에 마주해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옷도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장녀가 조그마한 손으로 세탁을 하려 해도 실력은 서툴고 느렸으며 옷이 더러워 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였다. 둘째가 새까매진 빤쓰만 입고 동네 놀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혀를 차고 더럽다며 눈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들은 지독한 방치 속에서 자랐다. 때는 아동복지도 제대로 안 되고 하필이면 집에 오던 사회복지사도 대충 식이라서 그들은 가난하고 외로웠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자랐다.

“…그러니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던 것도 언니 덕입니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쏟아진다.

서한라. 이제는 37세, 중견 기업 CEO. 희게 빛나는 얼굴과 또렷하고 날카로운 눈매는 그에게 이지적인 인상을 남겨주었으며 까맣고 윤기 나는 컬을 넣은 단발머리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의 진주 귀걸이가 백열등 아래에 빛났다. 그러나 흑요석 같고 젊은이같이 열정을 품어 반짝이는 눈동자보다는 아니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옅게 미소 지었다. 서한라는 결코 젊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중년이라 하기에도 애매하였고 그 애매한 걸친 나이에 살짝 낀 주름이 성숙하고 보는 이로써 기대게 하고픈 인상을 주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자 한숨부터 나왔다. 서 씨 세 남매의 아버지는 굶주림이었고 어머니는 가난이었다. 서한라의 팔할은 언니가 키웠으며 나머지는 오빠였다. 그들은 한라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진 못하였다. 어쩌면, 아니— 당연하게도 한라보다 더 큰 불행이던 것이 언니와 오빠이다. 부모님이 집에 안 들어오던 것은 한라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 즉, 언니가 10살 즈음이었다.

서한라는 고급스러운 아파트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그의 집은 그의 성공을 자랑하는 양 넓고 화려하였으나 정작 공허하게 느껴지었다. 가방을 내려주고 소파에 누워 집 한켠에 걸린 삼남매서 찍은 사진을 보았다. 저 사진도 10년이 지나 색이 다 바래있었다.

집이 너무 조용했다. 사람의 부재가 느껴졌다. 이번 설에는 한파가 사그라들 것이라고 기상캐스터가 말하나 한라에게는 상관이 없는 날이었다.

…언니는 한 때에 포주에게 속아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였다. 오빠는 장기를 털릴 뻔하거나 어디 노예 살이 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나온 또 다른 비극의 삶이 명절을 알리는 뉴스에 더욱 머리를 아프게 하였다. 그에게는 조카가 둘 있었다. 손을 못 쓰고 있는, 자신이 어떻게 못하고 있는 조카가.

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룬 것은 많았고 자랑할 것은 없었다. 부모의 양육방식을 자식이 대물림 하지 않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오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고 하였던가, 언니와 오빠는 얼마나 자신이 고통이었는지 알면서도 부모의 양육방식을 대물림하였다. 비극 이후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이야기— 일테면 해리포터나 신데렐라, 콩쥐팥쥐에서 구박받는 부분이 지났고 하이라이트도 지났으니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이야기는 이제 결말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제하와 서영원의 존재를 안 순간에 아직도 비극 한 가운데에 있다는 감각이었다.

오빠의 아들, 첫째 조카인 제하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고모로서 이리 말하는 것은 미안하나, 직설적으로 말해 양아치였다. 그것도 잘 나가는 양아치도 아니고 그저 겉멋 뿐인, 형광 바지를 늘 입고 다니니 교통사고 걱정은 없을 거 같은 부류였다.

그 역시 남매와 비슷하게 성장을 했다. 지긋한 방치를 당하였으며 어머니는 어려서 집을 나갔다고 하였다. 흔히 말하는 기초생활수급자에 편부가정. 그가 자랄 때는 사회복지사가 열정적이었으나 그의 반항적인 기질만 키우고 말았다. 그러니 한라가 뒤늦게 도움을 주려 하여도 손을 쳐내고 동정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그는 손을 쓰지 못하였다. 사춘기 남자아이의 마음을 몰랐다.

서한라는 또다시 병원을 찾았다. 세는 것이 지긋하였다. 제하가 또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갔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그의 보호자가 한라 외엔 없었다.

“크게 다친 거 아니에요. 그냥 몇 주 조심하며 지내면 금방 나을 겁니다.”

의사는 침착하게 말하였다. 진짜 별거 아니라고 흘려 말하는 제하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어디서 받아온 건지 모를 사이비의 선전 전단을 보고 있었다. 그가 비극 속에 있다는 것을 아나 분노는 분노였다. 그의 손에 있던 전단을 뺏자 손이 베였는지,

“아, 쓰읍….”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입가에 가져다 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

서한라는 아침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몸을 천천히 떴다. 핸드폰에는 아침 일정을 빼곡히 기록해둔 캘린더에서 알림이 옥 있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커다란 통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은 그의 성공을 대변하는 듯하였으나 그 속에 있을 수많은 인생들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언제나처럼 주방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조카의 문제를 곱씹었다.

“또 병원….”

한라의 목소리는 자조적이었다. 지난 밤 병원 접수를 하고 돈을 대주고 밤사이 지켜주려고 말씨름이었던 피로가 자면서도 다 풀리지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제하는 그걸 거절 할 뿐이란 게 더욱 힘들었다. 그의 생은 비극 이후에 있었다. 조카의 삶이 아직 비극에 가까워 지는 중에 있다면 거기서 저지하고 싶었다.

한라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첫 일정을 되새기었다. 새로 합류한 직원들 오리엔테이션. 그는 평소보다도 단정한 차림으로 나설 준비를 하며 어릴 때부터 있던 버릇,

“서한라, 힘내. 아자아자… 파이팅.”

거울에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한림그룹은 국내 유수의 중견기업으로 IT, 마케팅, 금융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이었다. 본사 건물은 49층의 고층 빌딩으로 도시 중심에서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한라는 회사와 이름이 비슷한 건 단지 우연일 뿐, 창립자가 아니었다. 그는 고졸 출신이라는 벽을 깨부수고 창립자의 뒤를 이어 CEO의 자리에 오른 첫 외부 인사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실행한 구조개혁과 사업 다각화로 과거의 보수적이고 먼지 묵은내 나는 거 같다는 한림 그룹의 이미지를 젊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 시켰다.

대규모 로비에 들어서자 한라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걸음을 느리게 걸었다. 조형물 따위는 로비에 없었고 스테인리스 가벽에 방문객들이 쪽지를 남기게 해두었는데 퇴근하고 싶다 같은 쓸모없는 한탄도 많았으나 그 중 대다수는 한림 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거나 받았던 이들의 감사 편지였다. 이건 전 대표부터 쓸데없는 조형물 설치할 돈 있으면 후원이나 더 하라는 말이 있었고, 한라가 어릴 적 가끔 익명의 후원자가 있을 제 감사를 꼭 표하고 싶던 것을 반영하여 둔 것이 그의 의도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었다. 카페테리아에서 나오는 직원들은 한라를 보고도 경직되지 않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웃어 보였다.

대회의실은 한림 그룹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최첨단 장비들로 채워져 있었다. 거대한 스크린과 자동화된 프레젠테이션 장치, 그리고 벽면 전체에 걸린 미디어 디스플레이가 눈에 끼었다. 신입사원들은 기대와 긴장, 기쁨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서한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준비되었습니다.”

비서가 조용히 알리자 한라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보폭이 큰 걸음걸이게 단정한 정장, 여유로운 미소 사원들은 경외에 찬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개 내내 한라는 카리스마 있고 프로 패셔 평범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것이 그녀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증명하고 있었다.

소개가 끝나갈 무렵, 그의 시선에 한 신입사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긴 생머리와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손을 입가에 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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