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 익스프레스 1~3

아마사와

HQ by juj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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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완결낼 수 있길 바라며…

"만약에 사와무라가 아침에 눈을 떠."

"네."

"근데 내가 바퀴벌레가 된 거야."

"⋯⋯."

"그럼 어떻게 할 거야?"

"⋯⋯."

"어떻게 할 거냐니까?"

"집중 좀 해 봐요. 우리 지금 겨울 휴가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이거 말해주면 집중 할게."

버릴 거야? 하고 천연하게 묻는 얼굴에 주먹을 꽂는 건 도리가 아니니까 사와무라는 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대체 몇 번짼지, 비시즌을 기점으로 인터넷 중독 아마히사 코세이는 온갖 밈이며 숏폼 콘텐츠를 죄다 섭렵하는 걸로 모자라서 슬금 사와무라에게 핸드폰을 드밀기 시작했다. 사와무라 이거 봐. 이거 웃기지. 안 웃겨? 이거 웃긴 포인트가 뭐냐면 (아 진짜!!!!!) 우리도 해 볼까? 스폰서 들어오면 좋겠다. 그럼 난 다 너한테 양보할게. (됐다구요!) 기어이 옷방으로 피신하게 만드는 그 집요함에 근 몇 주간 사와무라의 신경은 토시쨩의 투 핑거만큼 날카로워져 있었다. 오늘도 어쩜 다를 게 없는지. 사와무라는 내심, 프로로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올해를 둘이 오붓하게 축하할 수 있길 바랬건만 연상의 남자친구 입에서 튀어나온 건 바퀴벌레였다. 그래서 평소 같았음 되지도 않는 말에 되지도 않는 말로 받아나 칠 텐데, 마음만은 아직도 고등학생인 남자 둘은 그만,

"버릴 거야."

"진짜?"

"바깥에 내다 버리고 새 사람 만날 거라구요."

"⋯⋯."

"바퀴벌레 코세이는 잘 살든가 말든가."

"나도 그럴 거거든?"

"네에."

"집 바퀴 내다 버리고 더 예쁘고 귀여운 바퀴 데려와서 같이 살 거야."

"그러시라구요."

"야!"

아마히사가 큰 소릴 낸 게 얼마 만이지? 사와무라는 놀라서 흠칫 튀어 오른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척 아마히사를 본다. 형이 먼저 물었어요. 뭐가 억울하다고 씩씩거리지? 빨리 취소해 너. 싫어요. 취소해. 나랑 안 놀고 폰이나 만지다가 이제야 나한테 말 거는 사람한테 뭘 어떻게 더 예쁘게 말을 해 줘요. ⋯⋯ ⋯⋯ 그건 그거고, 빈 말이라도 할 수 있잖아. 아, 좀.

으아아아. 짜증이 치밀어서 고개를 팍 젖히자 가벼운 갈색의 앞머리가 넘어가며 동근 이마가 드러난다. 사와무라는 온통 거꾸로 보이는 거실을 바라본다. 어쩌면⋯, 이거 기회가 아닐까? 저 얄밉고 괘씸하고 가증스러운 여우 같은 말주변에 넘어가는 건 항상 사와무라였다. 아마히사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이를테면 재활용 버리는 날을 까먹었을 때) 이리저리 변명이면 변명, 애교면 애교, 적반하장이면 적반하장으로 늘 죄인 되는 쪽은 사와무라였단 말이다.

이거다. 나도 화나면 무섭다는 걸 당신도 알아야 해. 어디 어리고 잘나가고 잘생긴 남자친굴 두고 핸드폰이나 만질 생각을 하냔 말이야. 이렇게 30분 뒤면 또 풀려서 시시덕거릴 거 뻔히 아니까, 타이밍이 있다면 지금뿐이다. 사와무라는 덮밥에 올릴 토핑을 정할 때만큼 단호했고 또 단연하다. 됐어요. 형은 저보다는 핸드폰 갖고 노는 게 더 좋겠죠. 비시즌 잘 보내세요. 저 없이!!!!!!!!!!!!!!!!!!!!!!!!!!!!!!!!!!!!!

쾅!

옷방 문이 닫힌다. 아마히사는 있지도 않은 앞머릴 쓸어 넘기려다 멋쩍게 목이나 긁고 만다. 다시 문이 열린다. 결연한 표정의 사와무라는 외출할 때만 입는 후드 집업-아마히사가 호시탐탐 내다 버릴 기회만 엿보는-에 패딩까지 단단히 챙겨 입곤 질질 끌며 등장했다. 외출 준비? 거기에 손에 캐리어? 아마히사는 반사적으로 튀어 오르듯 소파에서 일어난다. 너 어디 가?

"갈 거예요."

"가긴 어딜 가? 시간 늦었어."

"갈 거라구요."

"어딜 가냐고 묻잖아."

"나가노."

나가노. 사와무라가 나고 자란 곳. 겨울이면 하늘에서 구멍 뚫린 것처럼 눈이 쏟아지는 곳. 도쿄에선 무려 편도로 세 시간 왕복으론 여섯 시간인 그 곳. 나가노라니. 아마히사는 그 발음을 따라 입 밖으로 낸다. 허. 골치가 팍 아파져 미간을 문지르다 사와무라의 안색을 살폈는데 짐짓 단호한 얼굴을 한다. 진심이구나. 고집쟁이 독불장군이 나가노에 가겠다고 하면 나가노에 가는 거다. 아마히사는 사와무라의 손목을 붙잡으려다 그대로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갈 건데. 들어나 보잔 심정으로 던졌는데 사와무라는 거기다 운전해서요, 하고 덥석 물고 말았다. 너 운전도 서툰데 어두워서 어떻게 가려고. 이거 봐요, 지금도 애 취급 하면서 사람 말 안 듣잖아.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빠르게 쏘아대듯 쏟아졌다.

"애 취급이 아니라 걱정하는 거야. "

"⋯⋯."

"가지 마."

"⋯⋯."

"나랑 있자."

"갈 거예요."

"시즌 시작하기 전까지 핸드폰 안 볼게."

눈에 띄게 흠칫한 어깨가 와중에 동그랗다. 저걸 붙잡고 끌어 당기면 어떻게든 잡아둘 순 있겠지만 그건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사와무라는 크게 숨을 들이쉰다.

"잘 지내세요."

"아니다. 잘 지내지 마세요."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마히사는 소박 맞은 사위 꼴로 사와무라가 떠난 현관의 불이 꺼질 때까지 아주 오래 서 있었다. 


아마히사는 바퀴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좋아하지?) 바퀴벌레를 비롯하여 반짝이는 키틴질 외골격의, 작고 다리가 많고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는 생명체라면 종을 불문하고 피하려 애썼다. 그건 외관에서 오는 공포보단 예측 불가할 수 없는 무지에의 두려움에 가까웠다. 저건 크기도 좆만한 게 왜 자꾸⋯ 집채 만한 인간한테 깝치는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속내를 알 수 없는 것들은 곁에 두지 않는 게 이롭다. 이를테면, 변덕스럽게 굴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애인이나, 제구가 되지 않는 투수가 던지는 공 같은 것들.

처음 야구공을 쥔 날을 기억한다. 넌 키도 크고 운동도 괜찮게 하니까 야구 한 번 해 보자. 예의상 건넨 야구부 고문의 칭찬을 아마히사의 부모는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방과후에 늘상 사고만 치고 다니는 막내아들의 바람잡기 프로젝트로, 아마히사 코세이는 축구와 수영과 테니스를 거쳐 야구장에 발을 들였다. 축구는 일주일, 수영은 3일, 테니스는 3주를 갔으니 이번 야구는 한 달만이라도 지속된다면 선방이라는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제 의사와 무관하게 추진된 일에 아마히사의 얼굴은 제법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 상태에서 겉멋만 잔뜩 들어 휘두르는 배트질이 고문 선생의 눈에 들 리가 없었다. 금방 마운드로 올려보내진 아마히사는 그제사 손에 쥐인 야구공을 들여다본다. 경식도 아닌 연식 공은 또래 중에서도 큰 축인 아마히사의 손에 가득 들어찼다. 축구공보단 가볍고, 테니스공보다 무겁고, 어느 공이나 그렇듯 모난 데 없이 사방이 둥그런 야구공은 말랑하고 약간의 고무 냄새와 약간의 흙냄새가 풍겼다. 그닥 유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아마히사는 그것을 바닥에 몇 번 통 통 튀겨본다.

힘있게 지면을 받아치고 다시 손아귀로 돌아오며 느껴지는 진동.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 포심이랬나 투심이랬나, 가라로 알려준 그립을 어설프게 흉내내어 쥔다. 목표는 정면에서 포수 가드를 잔뜩 장비한 채로 들고 있는 고문 선생의 미트. 처음부터 잘 던지는 사람은 없으니 긴장 풀고, 시험 삼아 던지라고 했던 야구부 고문의 격려가 오만한 아마히사 코세이를 되려 자극했으므로 아마히사는 드물게 집중한 눈빛을 했다. 그리고 되는 대로 뿌린 공은 고무와 가죽끼리 부딪히며 나는 경쾌한 미트 소리와 함께 목적지에 꽂힌다. 지니어스 -럭키- 보이라는 이명만큼 운이 좋았던 순간, 그 순간의 감상평은⋯, 재밌다, 이거!

잘 하는 거니까 재밌는 거야. 부모는 이상한 곳에서 객관적이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는 걸, 아마히사는 재능이 있었다. 아마히사는 공이 가지는 불확실함이란 특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제 계획대로 투구가 흘러간단 점에서 야구를 퍽 재밌어했다. 아마히사의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갔다. 말했듯 그 타고난 즉흥성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았던 탓이다. 어렸을 때 그려본 인생사 그래프처럼 입학 후 예쁜 여자친굴 사귀고, 야구부의 에이스 자리를 꿰차는 건 오로지 아마히사의 실력 덕분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테니까.

고등학굘 다니며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일은 딱 셋이었다. 코시엔에 가지 못한 것, 졸업 후에야 사와무라가 고백을 받아준 것, 그리고 야구부 부실으로 자꾸 벌이 침입했던 것. 야구부 부실에 도대체 어떤 구멍을 통해서 침입했는지 짐작조차 어려운 뒤영벌을 내쫓아내려 꺄악거리며 야구화를 던져대는 땀내나는 빡빡이 남고생을 목도하는 건 진심으로 계획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벌레를 잡는 건 자신의 역량 밖이므로 조용히 퇴장을 택했던 아마히사는 어쩐지 저 조그맣고 웽웽거리는 주제에 존재감 하나 충만한 곤충이 사와무라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마히사는 오늘조차 철저히 계획한 바가 있었다. 사와무라에게서 지극히 의도 다분한 질문으로 자기가 바퀴벌레가 되더라도 사랑하겠다는 지극히 진부한 대답을 듣고 한바탕 침대에서 좀 뒹굴다가 미리 예약해 둔 고급 호텔의 부킹 페이지를 슬쩍 들이미는 거였다. 그럼 사와무라는 어떤 표정을 할까? 감동한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다가 부끄러워서는 괜히 화를 내겠지. 역시 너무 귀엽다.

그러나 침대는 고사하고 사랑할 거란 말조차 듣지 못한 채로 혼자가 된 휴일 첫 날을 맞이했다. 현관의 불이 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는 빡빡이는 조금 웃긴 꼴이라서, 아마 사와무라가 보았더라면 화가 조금은 풀렸을 테지만 이미 늦었다. 거실의 홈패드로부터 들려오는 출차 알림이 사와무라의 가출(지극히 아마히사의 입장에서)에 쐐기를 박는다. 난 사와무라가 바퀴벌레여도 괜찮은데. 내가 진짜 다 먹여 살려줄 건데. 아무리 형이니 선배니 해 봤자 6개월 오래 더 산 쪽이 이다지도 유치해서는 쫓아나갈 생각도, 이 사단의 시발점이 본인이란 자각도 없이 아주 아쉬울 휴일의 시간들을 속절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아, 사와무라를 사랑하고부터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없다.


아마히사는 사와무라에게 지는 법이 없었다.

 딱 한 번을 제외하면.

사와무라는 아마히사의 등을 기억한다. 넓고 처량했고, 이치다이산 야구부의 무거운 책임감을 둘러 쓴 에이스의 눈물. 당신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죄책감보다 결승에 진출한다는 기쁨에 나는 결국 당신에게 향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바보처럼 상대의 경기를 챙겨 보며 투구나 평가해주던 사이에서 아주 많은 노력과 시간이 흘러 서로의 미래에 함께 하자는 입맞춤을 한 뒤에도 그 경기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일종의 버튼 같은 거였다. 뻔히 있다는 것도 알고 어쩌면 그 일이 우리에게 있어 몹시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결말이 너무 잘 보여서.

그래서 아마히사는 그 한 번을 제외하고 사와무라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와무라는 연신 손바닥에 맺히는 땀을 허벅지에 벅벅 문질러 닦았다. 아마히사가 우기고 우겨서 옵션으로 넣은 고급 가죽 핸들은 이럴 때는 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선루프도 달자는 걸 내가 어떻게 말렸는지. 짜증이 팍 치밀어 오르다 못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고속도로에선 자살행위나 다름 없으니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참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졸음쉼터에 차를 대곤 눈가를 벅벅 닦았다.

이러니 편도 3시간의 거리가 5시간이 되는 건 예삿일이었다. 운전도 못 하면서, 밤길에, 눈물 줄줄 매달고 운전하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닌데 더 열받는 건 아직까지도 아마히사로부터 한 통의 연락이 없다는 거였다. 평소에는 그렇게 귀찮게 굴면서. 시간만 나면 라인 메세지 날려댔으면서. 아니, 핸드폰 하루종일 붙잡고 있는 거 내가 다 뻔히 아는데. 푸우우, 사와무라는 복잡한 심정으로 허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오는 조악한 모루카 키링은 공연히 성질을 돋구기만 한다. 

당연한 거지. 아마히사가 팀원들과 회식이니 뭐니 해서 데리러 갔던 날이었다. 운전도 초보인데 그 복잡한 시내를 데리러 오라고? 술도 적당히나 마시지 얼마나 마셨음 데리러 오라고⋯⋯. 부루퉁한 얼굴로 사와무라는 부지런히 제 남자친굴 찾는다. 다행히도 번화가에서 큰 신장과 덩치에 짧게 깎은 머리의 남성을 찾기는 퍽 쉬운 일이라, 사와무라는 가까운 길에 정차하려 방향지시등을 켰다. 창문을 내려 아마히사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간 분명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테니 대신 전화를 걸었다. 저 왔어요. 건너편에 차 보여요? 으으으음. 거기 말고. 어엉. 봤으면 빨리 와요. 사와무라 멋있다⋯⋯. 남자친구도 데리러 오고. 못하는말이없어빨리뛰어와욧!!!!!!! 부끄러움과 당혹감으로 빽 소릴 지르고 전활 끊으니 저 멀리에서 아마히사가 배를 붙잡고 웃고 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건데? 얼씨구 제대로 걷지도 못해. 열어달라고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걸 콱 무시할까 싶다가 잠금을 푼다. 그러자 주정뱅이 빡빡이는 조수석에 무거운 몸을 어떻게 어떻게 움직여 퍼질러 앉더니 빨개진 손으로 롱패딩 주머니에서 한참을 꼬물거리고 있었고, 그러다 꺼낸 게⋯⋯ 저거였지. 무늬 페인팅이 묘하게 빗겨나간 걸로 봐서는 진품은 아닐테고 또 어디 가차샵에서 돈 좀 날렸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노려보고 있으니 아마히사는 괜히 우물거리며 키링을 룸미러에 달았다.

"아니⋯⋯, 지나가다가 봤는데 너랑 닮았잖아 얘가⋯⋯."

"닮았다고요? 모루카가? 이, 이⋯ 팔다리도 없는 애랑 대체 어디가?"

"귀여운 거."

그리고선 주책맞게 볼에 입술을 무작정 부비려는 아마히사를 핸들을 잡지 않는 손으로 간신히 막아내고,

"저기요, 저 이제 성인이라고요!!!!!"

"뭔 상관이야⋯⋯ 성인은 귀여우면 안 돼?"

음믐므므므. 뻔뻔함에 말문이 턱 막힌 나머지 받아치기에 실패한 사와무라는 그대로 왼쪽 볼을 2년차 프로선수에게 헌납하고야 만다. 알코올만 들어가면 체통이 뒤져버리는 남자친구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리고 밖에선 웬만하면... 남자친구다 뭐다 그런 소리도 하지 마시고요."

"너⋯, 내가 부끄러워?"

사와무라는 상처받았다는 듯 과장된 몸짓을 하는 아마히사를 가볍게 무시했다.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요? 스캔들 한 번 나 볼까요? 화제성 면에선 어벤져스도 이기고 좋겠네."

"근데 난 사와무라가 진짜 좋은데 어떡해."

"⋯⋯."

"난 너한테 거짓말 못 해."

룸미러로 비치는 아마히사의 얼굴이 또 답잖게 진지했다. 서툰 U턴으로 덜컹이는 차체에 사와무라도 아마히사도 모루카 키링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 그랬지. 

어쩐지 마음이 약해진 사와무라는 괜히 모루카 키링을 노려본다. 좋아, 널 봐서 기회를 딱 한 번만 더 줄 거야. 백을 셀 동안 연락이 온다면 나가노 안 갈게. 운, 운전이 힘들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아마히사 상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진짜 딱 백 센다. 지금부터. 백. 구십구. 구십팔. 구십칠. ⋯⋯ 셋. 두우우우우우울. 하나.

세상에서 가장 긴 백 초가 지날 동안 사와무라의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사와무라는 아주 가볍고 조금은 울적한 마음으로 다시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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