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해적 파르페

크리스마스 로즈

합법해적 파르페 스승님 모카, 그리고 파르페

또 다시 눈 와서 쓴 조각글...


스승님. 겨울은 삭막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겨울엔 생명이 죽어요. 꽃도, 나비도, 짐승도 없습니다. 모두 죽고, 잠에 들어요. 눈이 집어삼킨 세상은 꼭 어둠 같습니다.

 

폭설. 온 세상을 덮어버릴 각오로 쏟아지는 눈은 마치 벌떼 같았다. 눈송이는 바람과 섞여 이리저리 휘날렸다. 파르페의 새까만 눈동자는 아름다운 눈, 그리고 동시에 역설적으로 스러져버린 황량한 들판을 담았다. 떨어진 낙엽은 재가 되어 땅에 가라앉고, 나무 사이를 뛰놀던 짐승은 기나긴 잠에 빠져들었다. 아름답게 피어난 꽃잎은 저물고, 그들을 찾는 벌과 나비도 사라졌다. 울적해 보이는 시선. 파르페는 조용히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파르페가 모카, 라고 부른 파르페의 스승은 파르페를 위로하는 대신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눈을 닮은 새하얀 백발이 느리게 휘날렸다. 흐트러진 머리칼 속 눈발을 응시하는 백안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바라보는 이마저 가라앉힐 만큼.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 모카의 손이 조심스럽게 파르페의 손을 덮었다. 파르페는 고개를 들어 모카를 응시했다. 따스한 순백색 눈동자. 들판을 집어삼킨 하얀 눈과 대비되는 온기가 주위를 포근하게 감쌌다.

 

정말로 전부 죽는다고 생각해요?

…… 죽거나 사라집니다. 이렇게 차가운 세상은 싫어요.

후후. 파르페. 뒤를 봐요.

 

한 지점을 가리키는 모카의 손가락. 손가락은 곧게 뻗어 파르페의 어깨 너머를 향했다. 도르륵. 파르페의 눈동자가 그와 함께 굴렀다. 옅게 미소 짓는 모카의 입꼬리. 그리고 재촉하듯 흔들리는 손가락. 파르페가 마침내 뒤를 돌았을 때 마주한 건 잔뜩 쌓인 눈뿐이었다. 파르페의 미간이 좁아졌다. 원망스럽다는 듯 쏘아보는 눈에 모카가 손사래를 쳤다.

 

……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에요. 잘 봐요. 파르페라면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분명히 있어요. 이 눈 속에서도 싹을 틔운 생명.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별안간 파르페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모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차디찬 세상, 폭설이 지배한 싸늘한 세상 속에서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강인한 식물. 푸른 자연의 색을 잃지 않고 잔뜩 머금은 채 고개를 숙인 꽃 한 송이가 파르페의 시야에 들어왔다. 수수하지만 곱게 피어난 꽃.

 

…… 꽃이 있군요. 정말 예쁩니다.

후후. 예쁘죠?

스승님을 닮았습니다. 하얗잖아요.

 

침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점점 명랑해졌다. 다시금 빛을 되찾은 파르페의 눈동자가 일순간 반짝였다. 넋을 놓고 꽃을 응시하는 눈동자. 어여쁘기도 하지. 모카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파르페를 시야에 담았다. 스승님을 닮았다, 라. 모카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엷게 웃는 얼굴. 아주 자그마한, 파르페에겐 닿지 않을 마음의 소리. 모카의 입술 새를 비집고 나간 나지막한 읊조림은 눈발과 함께 바람에 휩쓸렸다.

파르페. 이렇게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정의와 의지를 잃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강인해요. 사랑스러운 아이. 당신이 눈발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나가길 함께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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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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