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회지 수록용
산토리니는 평화로운 섬이었다. 시라, 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르겠군. 공식적인 이름은 그것이니,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곳에서 사는 주민이니까. 이 곳의 여름 아침은 잔잔하게 시작되어, 점심에는 잠시 멈췄다가, 저녁 즈음이 되어서 다들 뜨겁고 잔인한 태양을 피하여 조용하고 고요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우리도 그러하다. 우리도 이 곳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처음엔 이방인이었던 우리도, 영웅이었던 우리도, 이제는 이 섬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 축복받을 일이다. 우리의 결혼식 말이다.
결혼식 드레스는 퀴빌라가 디자인했다. 우아하게 떨어지는 라인의 머메이드 드레스. 그의 몸에 딱 붙어 떨어지는 아름다운, 누가 봐도 새 시작을 축복해 줄 최고의 드레스.
내 의복도 그가 디자인했다. 검은 색에 세로 라인이 들어간, 복잡하지 않은 정장. 에스에게는 이게 어울릴 것 같았어. 너무 심플한가? 라고 하는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나는 네가 해주는 거라면 뭐든 좋은걸, 그리고 단순한 게 좋아, 나는. 짧은 대화 중에 오가는 입맞춤이 잦다.
결혼식 저녁에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신부의 얼굴을 미리 보는 건 좋지 않다지만 집 앞에서 가볍게 치를 작은 결혼식, 혼주도, 부부 어느 쪽의 가족도 오지 않고, 올 수도 없는 아주 작은 결혼식. 보통의 예법은 통하지 않으리라. 통할 이유도 없고.
그 전날 밤에 끊임없이 생각한다. 내가 무엇이라도 실수하지 않을지, 혹여나 잘못될 것은 없는지. 주례를 부탁한 친구의 말에 대답하는 순간 혹여나 떨지 않을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아주 휘저어놓는다.
“얼른 자. 새 신랑 얼굴이 피곤으로 움푹 패이는 꼴은 보기 싫답니다?”
“...너무 걱정되는 걸. 내가 무언가 망치면 어떡하지? 내가 무언가 잘못하면?”
“그런 일은 없어.”
“한 번 뿐인 결혼식이잖아. 평생에 한 번 뿐인.”
“그래도 난 널 사랑할거야.”
“그건 알지만.”
“쓸데없는 생각 말고~ 얼른 주무세요, 내일 아침도 내가 깨우게 두지 마시고요, 잠꾸러기 왕자님.”
“네에.”
작은 버드키스와 함께 쓸모없는 걱정을 다 내다버리고, 에스체트는 퀴빌라를 품에 안고 잠에 빠져든다. 어떠한 꿈도 꾸지 않고, 달게.
아침이 밝았다. 지중해의 여름해는 길고, 가혹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점심 전에 끝내지 않으면 모두 타는 듯한 더위의 희생양이 되리라. 신부 화장을 하러 간 퀴빌라를 생각한다. 신랑 대기실 대신으로 쓰인 베이스 방에서 에스체트는 초조함과 긴장감에 제 손을 매만졌다. 굳은 살이 박인 손, 짧은 생을 전쟁에 소모한 삶. 그러나 이제, 이제는 오로지 일상 뿐이리라... 그리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영원하기를, 그리하여 우리 둘 다 평화 안에서 잠들기를...
신랑과 신부의 입장을 알리는 선언이 엄중하고도 경쾌하게 울려퍼진다. 모순된 두 삶이 얽힐 차례다. 어쩌면 갈등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늘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갈등이란 등나무와 칡이 얽혀 풀어낼 수 없는 상황이지. 둘은 결국 얽혀 하나되리니, 헤어짐은 없을 것이다. 감히 확신하건대.
신부가 부케를 들고 버진 로드를 걷는다. 그리고 신랑이 입장한다. 그 둘은 손을 잡는다. 푸른 지붕이 가득한 골목길을 버진 로드의 카펫이 덮고 있었다. 눈이 부시다, 에스체트는 제 태양을 응시한다. 언제나 들었던 감각이다. 그를 바라볼 때 마다 드는 감정.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나만의 검은 태양...
오로지 나만의.
신랑과 신부는 나란히 서서 주례를 듣는다. 주례는 짧다. 주례사는 가볍지만 단어 하나 하나에 무게가 실린다. 자, 이제 두 사람을 모두 축복해주셔야 할 겁니다... 이들이 세상을 구하지 않았습니까, 보답을 하셔야지요... 농담 섞인 축사에 하객들의 웃음이 만발한다. 괜히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 정말로, 우리는 공적인 동반자다.
신랑, 신부를 영원히 사랑하기로 맹세하세요.
네.
신부, 신랑을 영원히 사랑하기로 맹세하세요.
네.
맹세의 의미로, 신랑, 신부에게 입맞추십시오...
가볍게 두 입술이 맞닿는다. 베일 아래에서, 그리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이. 온 세상이 둘을 축복할 겁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빚을지지 않았습니까? 사회자의 가벼운 농담이 맑고 무겁게 울려퍼진다.
그리고 던져지는 흰 부케. 누군가가 붙잡고, 또 다시 그들에게도 축복의 말들이 쏟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가 여기 있으니,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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