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구완에는 온기가
4708자, 악귀멸살 타입
시나즈가와 사네미가 우부메라는 혈귀와 대치한 후, 그는 하현의 1을 토벌했다는 이유로 기둥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를 아는 모두가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그는 딱히 즐겁거나 기분이 들뜨지 않았다. 이유인 즉슨 그 혈귀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그의 동생인 시나즈가와 겐지가 크게 상처를 입고 말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나즈가와 겐지가 평범하지 않은 체질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형이 자신의 동생이 상처입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겠는가.
시나즈가와 겐지가 자주 쓰러지게 된 건 그 날을 기점으로부터였다. 회복하는 일부터 고역이었고, 회복을 한 이후에도 앓는 일이 잦았다. 물론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시나즈가와 겐야가 자신도 귀살대가 되겠다며 했을 땐 겐지 스스로가 앓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시나즈가와 사네미 또한 시나즈가와 겐야가 귀살대에 들어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죽음이 늘 곁에 도사리고 있는 직업. 눈 잘못 깜빡이면 혈귀라는 괴이한테 잡아먹히는 직업. 하지만 시나즈가와 겐야의 고집은 완강했고, 결국 치열한 기싸움 끝에 사네미와 겐지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시나즈가와 겐야는 호흡을 쓸 수 없는 몸으로 꾸역꾸역 혹독한 훈련을 하고 선별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시나즈가와 겐야가 퍽 미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됐다. 귀살대로 지내다가 십이귀월이라는 존재를 만난다면? 아니, 그 전에. 귀살대로 지내다 호흡도 못 쓰는 몸 때문에 혈귀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한다면, 아니, 그 전에.
선별 시험에서부터 탈락해버리고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면?
뒤늦게 불안한 생각이 시나즈가와 겐지를 스쳤다. 겐지는 역시 안 되겠다면서, 시나즈가와 사네미가 안 보이는 사이 열이 오른 몸으로 비틀거리며 이미 떠난 겐야를 붙잡기 위해 일어섰다. 하지만 무리다. 너무 늦게 마음을 돌렸다. 자신의 쌍둥이 형이 떠난 시간은 자그마치 이레가 지난 채였고, 겐야는 이미 잡아먹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훌륭히 선별 시험을 통과해서 올 거라는 가정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만약에'라는 것이 같이 존재하지 않는가.
선별 시험을 치르는 후지카사네 산에서는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험장을 관리하는 일도, 부정 행위를 감시하는 일도, 하다 못해 탈락자들의 시체를 이송하는 일도.
시나즈가와 겐지는 겁이 났다. 안 그래도 무거운 몸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역시 내가 허락하지 말아야 했어. 역시 내가, 끝까지. 내가.
"······"
"············! ······."
"······겐지! 맞지? 시나즈가와 겐지!"
익숙한 목소리다. 하지만 제 쌍둥이 형은 아니었다. 형보다는 얇고, 또랑또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거기다, 조금 더 성숙해지고, 뭐랄까. 어릴 때 봤던 여자애가 다 자라면 이런 목소리일 것 같은.
"니, 니아. 같이 가···."
이번엔 정말로 익숙한 목소리였다. 제 쌍둥이 형이다. 듣자마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니아?
시나즈가와 겐지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 흐린 시야에 두 명의 인영이 담긴다. 다소 엉망이고 흙투성이인 모습이었지만 저 멀리서 달려오는 인영은 분명히 시나즈가와 겐야, 자신의 쌍둥이 형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어라. 여자?
와락! 상황 파악을 할 새도 없이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 힘껏 안겨버린 시나즈가와 겐지였다. 두 눈을 끔뻑이고 자세히 살펴보면, 별빛이라고 할 수 있는 회색 머리카락. 마치, 요코하마에서 봤던 바다처럼, 푸르른 눈동자···.
"니아?!"
"헉, 기억하고 있네?! 맞아, 나야! 사시하라 니아!"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시나즈가와 겐야는 체력이 떨어진 채 달린 탓에 한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옷 소매로 흙투성이인 얼굴을 닦으며 겐야는 입을 뗐다.
"선별 시험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어. 그동안은 나비 저택에서 지냈다는데···"
"용케 못 봤네······."
"아무렴 어때? 지금이라도 만났잖아! 아~ 겐지 군. 키가 완전 컸네! 사내가 다 됐어!"
"니아야말로 머리카락, 많이 길었네···."
얼떨떨한 목소리로 사시하라 니아의 말에 대답하는 시나즈가와 겐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겐지의 대답은 콜록거리는 소리로 인해 멈추었다.
"겐지 군, 감기 걸렸어?"
연신 기침하는 시나즈가와 겐지를 조심히 일으켜 세우며 겐야가 대신 대답했다.
"아니, 모종의 사유로 몸이 약해져서······. 그나저나 겐지 너, 왜 나와 있는 거야? 형님이 화낼 거라고."
괜히 낯이 홧홧해졌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대답 없이 풍주 저택의 침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사시하라 니아가 온 이후로 풍주 저택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는 것이다. 언제나 기운 넘치고, 방긋방긋 웃는 열 아홉의 여인. 사네미 형은 조금 곤란해하는 것 같았지만 겐야는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그렇게 좋나, 짜식······ 우릴 보면서도 그렇게 웃어줘야지.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시나즈가와 겐야와 사시하라 니아의 계급은 계癸를 훌쩍 넘어 정丁이 되었고, 가끔 심하게 다쳐서 나비 저택에서 가료를 하는 일 또한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지령에 갔다 오면 작은 상처만이 전부인 채 복귀하는 게 일상이었다. 일상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사네미 형은 강하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니아와 겐야도 서로가 있는 이상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었다. 막연히 모든 게 괜찮을 것만 같아서 시나즈가와 겐지가 경계를 풀 때 쯤이었다.
시나즈가와 겐지가 심한 독감에 걸려버렸다.
그 해 가을에는 유독 독감이 유행했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에서 갑자기 예고 없이 한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누군가는 치료를 받을 돈이 없어서 독감에 걸린 채 계속 일하다가 독감이 심해져 죽는 일도 있었댄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하현의 1 사건 이후 꽤나 앓기 쉬운 몸이 되어버렸고, 원래도 면역력이 낮은 몸이었기 때문에 유행하는 독감을 피하는 방법은 전무했다. 하루하루 힘겹게 기침하고, 움직이지 못해 앓아눕고,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따뜻한 물과 죽 뿐인 생활. 나비 저택에 가도 약과 증상만 확인할 뿐 딱히 호전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사시하라 니아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본인도 지령으로 바쁘면서 형제들이 할 일을 자기가 전부 대신 하겠다며 나섰다. 기둥인 사네미는 지령으로도 바빠서 동생을 돌볼 틈이 없을 테고, 겐야는 안 그래도 근심거리가 많은 사람이니 자신이 하는 게 딱 좋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독감에 걸린 겐지의 병구완은 전부 사시하라 니아의 몫이 되었다.
사시하라 니아는 지치거나 힘든 기색 없이 매일 시나즈가와 겐지의 병구완을 해나갔다. 이마에 얹을 물수건을 갈아주고, 죽도 직접 만들고, 춥다고 하면 제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었다. 밤이면 밤마다 곁에 앉아 시나즈가와 겐지를 지켜보았고, 겐지의 기침이 심해지면 따뜻한 물을 떠다주었다. 사시하라 니아 덕분에 시나즈가와 사네미와 시나즈가와 겐야는 지령을 편히 다닐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시하라 니아의 지령은 늘 시나즈가와 겐야와 같이 내려오는지라 겐야 쪽에서 지령을 해결하면 니아도 병구완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날은 늦은 새벽이었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감각에 문득 눈을 떴다. 보통 열이, 손까지 퍼지나······? 그런 의문을 갖고 옆을 보면, 사시하라 니아가···.
"으아악!"
"꺅! 왜 그래, 겐지 군?! 무슨 일이야?!"
시나즈가와 겐지는 어느새 사시하라 니아의 손을 뿌리치고 저 멀리 방 구석으로 떨어진 채였다. 안 그래도 작았던 눈동자가 더 작아졌고, 놀란 탓에 심장은 마구 뛰었다. 방금, 방금 뭐였지? 니아··· 니아가. 내 손을 잡고, 옆에 누워······. 내가 헛것을 본 건가?! 시나즈가와 겐지는 혼란스러웠다.
"아니······ 옆에······. 니아가 있어서. 니아, 잠버릇이야? 그런 거라면···."
"잠버릇 아닌데?"
"으헉."
시나즈가와 겐지가 웃긴 소리를 냈다. 사시하라 니아는 뭐가 문제냐는 듯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겐지 군은 손을 잡고 옆에 누워주면 잘 자거든. 끙끙 앓던 것도 멈추고 편안하게 숨을 쉬더라고. 그래서 계속 그렇게 해주고 있었는데······ 문제가 될까?"
"내가 그랬다고?"
시나즈가와 겐지는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평소에는 잘 당황하지 않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창피하고 곤란한지. 아직 온기가 남은 제 손과 사시하라 니아를 번갈아 보면서 겐지는 두 눈을 당황스럽게 두어 번 깜빡였다. 문제가 될 건 없지. 그래, 문제가 될 건···
"···미안. 무서운 꿈을 꿔서 상황 파악을 못 했네."
"뭐야아. 그런 거면 말을 하지! 자, 손 잡아줄게. 겐지 군이 아침 해를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시나즈가와 겐지는 땀을 삐질 흘리면서 이부자리로 기어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다시금 제 손을 잡고 눕는 사시하라 니아를 보고 곤란한 웃음을 짓는 겐지였다.
겨울의 끝자락이다. 아니, 어쩌면 봄인가. 가을 내내 앓았던 시나즈가와 겐지는 어느새 멀끔히 나아서,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사시하라 니아의 곁에 앉아있었다. 시나즈가와 겐야가 먼저 회복 후 일어나고, 그 다음으로 시나즈가와 사네미가 일어났다. 하지만 사시하라 니아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자는 듯이. 조용히··· 어쩌면 환자가 아니라 공주님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종국면이 지나고 여러 무덤이 생겼다. 살아남은 이들은 하나 둘씩 정신을 차려가는 중이었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나비 저택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벚꽃나무를 보며 아직 깨어나지 않은 사시하라 니아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
"손 잡아줄게. 니아가 아침 해를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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