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는 좀 더 서로이기를

4314자, 악귀멸살 타입

그 무렵의 시나즈가와 겐지는 묘하게 나카하라 스미에게 더 친절했던 것 같다. 나카하라 스미 또한, 시나즈가와 겐지 앞에서 겐야의 형제이니 난폭할 거라고 덜덜 떨었던 적 없었다는 양 시나즈가와 겐지를 곧잘 따랐다. 시나즈가와 겐야는 그런 겐지의 편애를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정확히는 자신이 알아서 깨달을 거라고 생각했다. 겐지는 어릴 때부터 야무졌고 똑똑했으니까. 그건 구 월 말의 어느 늦여름이었고 시나즈가와 겐지의 작은 편애는 큰 파도가 되어 그들을 덮쳤다.

"자, 스미스미. 연어 좋아하지?"

"저··· 겐지 씨."

"응?"

"저는 연어를 좋아하지 않는데요. 다른 아이와 착각한 건 아닐까요?"

"·········아."

그냥 헷갈렸다고 얼버무리면 될 것을, 시나즈가와 겐지는 답지 않게 할 말을 잃어서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나비 저택을 서성거리던 시나즈가와 겐야가 그 상황을 마주치기 전까지, 계속.

"스미.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네, 무슨 일 있어?"

시나즈가와 겐야가 몸을 숙여 나카하라 스미에게 질문하며 겐지에게서 스미의 주의를 돌렸다. 스미는 방긋 웃음짓고 말했다.

"겐야 씨! 오랜만이에요. 정기 검진 받으러 오셨어요? ······딱히 걱정되는 건 없지만요, 겐지 씨가 요즘 들어 자꾸만 헷갈리시는 모양이에요."

"···그거 말인데. 요즘 겐지에게 인사해주는 마을 꼬마가 있거든. 워낙에 스미랑 닮아서 헷갈리는 모양이야. 그치, 겐지."

"아···. 응. 자꾸만 스미스미 생각이 나서."

"그러셨군요······! 저랑 닮은 아이라니, 그 아이도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소개시켜 주세요. 겐야 씨, 겐지 씨!"

"그래. 연어는 이왕 받은 김에 나비 저택 식구들이랑 나눠 먹어. 겐지는 찾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데려갈게. 언제나 수고해, 스미."

"두 분 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조리된 연어 요리를 겐지에게서 받아들고 몸을 돌려 좁은 보폭으로 톳톳 걸어가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에 괜스레 자신이 한 일도 아니면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겐야였다. 이윽고 시나즈가와 겐야는 시나즈가와 겐지를 돌아보았다. 겐지는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어딘가 곤란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비중이 큰 감각은. 그저, 그저······ 이런 본인이 낯선 것 같은, 그런 묘한 생각을 하는 중인 것 같은 표정. 겐야는 겐지의 손목을 잡은 채 나비 저택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여름이 끝나간다지만 여전한 더운 공기. 구 월의 끝자락임에도 불구하고 내리쬐는 후끈한 태양빛. 그 아래서 겐야는 먼저 입을 열었다.

"너, 그거 실례야."

"뭐가?"

"편애하는 거. 티 난다고."

"···티가 나나?"

"겐지, 전에 네가 가르쳐줬잖아. 다른 사람을 기반으로 한 채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은 언젠가 나쁘게 끝나게 되어 있다며. 저 애는 나카하라 스미야. 시나즈가와 스미가 아니라."

"알지."

"아는데?"

"티 안 날 거라고 생각했어."

"···."

"그리고 너도 편애 쪽에서는 할 말 없지 않나······."

"윽."

시나즈가와 겐지가 아픈 곳을 찔렀다. 시나즈가와 겐야 또한 나카하라 스미에게 유독 잘해주었고, 그 이유는 겐야와 겐지의 동생들 중 나카하라 스미와 이름이 같은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내는 거기서 거기인 셈이었다. 시나즈가와 겐지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을 기반으로 한 채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은 언젠가 나쁘게 끝나게 되어 있다.

그것의 의도가 자기만족이라면 더더욱.

죽은 연인을 겹쳐보며 새로운 연인을 만들고 죽은 연인에게 못해준 만큼 친절을 베푼다던가, 하는 일. 그건 새로이 생긴 연인에게 실례일 뿐더러, 언젠가는 연인에게 들켜버리고 그 연인의 신뢰마저 잃을 것이 분명하다. 연인은 속상해하다가 이별을 통보하겠지. 

그런 이치였다. 아무리 자신한테 친절해도 그 친절이 자신이 아니라 저 너머의 '다른 스미'를 위한 것이었다면 나카하라 스미는 분명 크게 실망하고 슬퍼할 것이다. 겐지도 물론 그걸 알고 있었고, 겐야도 그걸 알고 있었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잠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겐지 오빠, 겐지 오빠! 손질은 언제 다 되는 거야?"

"조금 있으면 돼. 칼 쓰는 중이니까 가까이 붙으면 안 된다?"

"나 한 조각만 먹으면 안 돼?"

"생으로 먹으면 배탈 나. 이따가 애들 몰래 한 조각 줄 테니까 들키지 않게 숨어서 먹어."

"있잖아, 겐지 오빠."

"응?"

나는 다른 가족들도 좋지만 겐지 오빠가 유독 좋은 것 같아. 시나즈가와 겐지가 시나즈가와 스미한테 그 말을 들은 날도 구 월 말이었고, 연어가 철인 때라 외삼촌께서 큼지막한 연어를 사 들고 왔던 날이었다. 시나즈가와 겐지도 다른 형제들을 사랑했지만,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형을 제외하면 자신의 바로 아래 항렬의 아이에게 마음이 유독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겐지는 세상 떠나가라 울던 갓난아기의 작고 뜨거운 손을 처음으로 잡았던 날을 기억한다. 

여름이 끝나간다지만 여전한 더운 공기. 구 월의 끝자락임에도 불구하고 내리쬐는 후끈한 태양빛.

···


"오빠도 스미가 좋아."

"네?"

뒤늦은 대답이었다. 나카하라 스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 즉 동명이인한테 전하는 말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나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은 연어 사건에서 며칠이 지난 후, 겐지의 정기 검진일이 아닌가. 충주이자 의원인 코쵸우 시노부가 부재중인 바람에 스미가 대신 겐지의 열을 재고 있는데 겐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열이 나는 중이신 건 아닌데. 나카하라 스미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미안, 스미스미. 나도 모르게···. 검진 계속해줘."

"아, 아. 네!"

순식간의 병실이 고요해졌다. 나카하라 스미는 땀을 삐질 흘린 채 계속해서 시나즈가와 겐지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고, 시나즈가와 겐지 또한 구태여 입을 열지는 않았다. 침묵을 깬 건 검진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테라우치 키요였다. 

"자, 스미! 센베이 좋아하지? ···헉. 검진 중이었구나. 죄송해요, 겐지 씨."

"괜찮아. 끝나가는 참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스미스미는 센베이를 좋아하나 봐."

"······네! 좋아해요. 아오이 씨가 시장에 가면 꼭 저희 몫을 사와주세요."

연어가 아니라 센베이. 연어가 아니라, 센베이를 좋아하는구나. 그리 곱씹으며 시나즈가와 겐지는 나카하라 스미를 바라보았다. 테라우치 키요는 센베이가 담긴 바구니를 놓고 마저 검진을 하라며 문을 닫고 나간 후였다. 테라우치 키요가 나간 진료실은 아까 전처럼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시나즈가와 겐지가 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려는 순간 나카하라 스미가 선수를 쳤다. 그것도 상상도 못 한 문장으로.

"죄송해요, 겐지 씨. 겐야 씨에게도요."

"응? ···왜?"

"겐지 씨와 겐야 씨에게서 아빠를 겹쳐봤어요···. 따스한 눈웃음과 부드러운 손길이 좋아서 계속 받아들였어요. 나비 저택에 온 이후로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겐지 씨와 겐야 씨가 내미는 친절이 아빠를 생각나게 해서. 그래서······."

"스미."

"전 정말 나쁜 아이예요. 화내셔도 괜찮아요, 겐지 씨."

"스미."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요······. 반성할게요."

"스미!"

"······네, 넷?"

"나야말로 미안해."

시나즈가와 겐지의 사과의 나카하라 스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물이 맺힌 눈은 아슬아슬하게 낙루하지 않고 있었다. 스미는 두 손으로 제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슥슥 닦고 시나즈가와 겐지를 보며 물었다."

"뭐가요···?"

"여동생이 있었어. 시나즈가와 스미. 이름이 같지······. 연어를 좋아했는데. 그 애를 스미랑 겹쳐서 봤어. 작고, 신나면 활짝 웃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는 게 꼭 내 동생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알아. 시나즈가와 스미가 아니라 나카하라 스미잖아. 나카하라 스미는 작지만 손은 또래보다 크고, 신나면 활짝 웃지만 굳이 웃음소리를 내진 않고,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걸 즐기지만 남을 경청하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연어보단, 센베이를 좋아해요······."

"맞아."

"저희는 둘 다 소중한 사람과 서로를 겹쳐본 거네요."

"그래. 그러니까······ 우리, 이번 일은 서로 사과했으니 이만 끝내지 않을래?"

나카하라 스미가 다시금 울먹인다. 두 동그란 눈동자에 눈물방울이 맺히지만 낙루하진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로를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서로로 보기로 결정한 것이 나쁘지 않은 듯 했다. 시나즈가와 겐지는 눈썹에 힘을 풀고 따라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그의 쌍둥이 형인 시나즈가와 겐야가 웃을 때와 퍽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스미스미, 슬슬 진료실에서 나갈까?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겠다."

"네······. 겐지 씨! 그 전에, 이 센베이 드셔보시지 않을래요? 지난번에 주신 연어의 보답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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