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4010자, 악귀멸살 타입

​히메지마 교메이는 맹인이었기 때문에 앞을 보지 못했으나, 그에게 상대에 대해 알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견과는 알맞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많은 감각이 있다. 가령 후각이라던지, 촉각이라던지. 청각도 있고. 풍겨오는 냄새가, 맞닿는 피부의 감촉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히메지마 교메이는, 촉각을 사용하는 것을 애호했다. 

물론 그는 귀살대 최강의 기둥(柱). 기척만으로도 충분히 타인을 감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을 알아볼 때 굳이 일일히 촉각을 사용하며 응수하지는 않는다. 더 정확히는, 그의 반려인 키사라기 루리와의 밀회를 즐길 때 촉각을 사용하는 것을 애호했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그녀와의 만남을 가질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키사라기 루리의 왼 볼에 자신의 큰 손을 올려 엄지손가락으로 루리의 얼굴과 흉터를 동시에 쓸어내리곤 했는데, 이 감각이 퍽 나쁘지 않았더랬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린 순간이었다.

"그대는 언제부턴가 내 얼굴을 만지는 행위를 퍽 아끼게 된 듯해."

"음."

"틀린가?"

"아니. 되려 정확하지. 그대가 불쾌했으면 사과하겠다."

"불쾌하지 않아. 단지 어쩌다가 시작된 행위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키사라기 루리의 말에 히메지마 교메이는 기억을 되짚어 본다. 언제쯤에 시작된 행동이었을까, 이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과거인 것 같은데. 

"······대. 그대."

"·········."

짝! 허공을 가르며 손과 손이 맞닿는 소리가 들렸다. 키사라기 루리의 행동이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히메지마 교메이의 기억을 되짚는 일은 멈추었다.

"그대, 집중하길 바라."

"······미안하다."

​키사라기 루리는 자신과 교메이의 밀회를 방해하는 것들을 싫어했다. 설령 방해하는 것이 자신과 상대가 될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그대는 볼 필요가 없으니 호롱불은 이만 끄는 게 좋겠어."

"그러지."

호롱불이 꺼지는 순간 방 안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키사라기 루리는 히메지마 교메이의 어깨에 의지해 머리를 기댔다. 히메지마 교메이 또한 자신에게 기대오는 루리의 머리에 제 머리를 기댔다. 나란히 서로에게 기댄 자세였다. 그러면서 침묵을 유지했다. 딱히 본인의 곁에 있는 이가 싫거나 불편해서 유지하는 침묵은 아니었고. 둘은 반려였기 때문에, 침묵조차 편안했다. 단지 그 뿐이다. 

"생각할 것이 아직도 남았나?"

그리고 반려인 만큼 서로의 속을 파악하는 것에 능숙했다. 둘은 오랜 기간 함께해왔고, 서로를 억압하거나 통제하지는 않았지만 금방 상대의 생각을 읽어버리기 일쑤였다. 다른 생각 중인 것을 딱 들킨 히메지마 교메이는 머쓱함에 살짝 눈물을 흘렸다. 어지간히도 눈물이 많은 사람. 새삼스럽게 그리 생각하며 키사라기 루리는 말을 잇는다.

"변명할 말이 있으면 하도록 해."

"그대의 얼굴을 매만지는 습관이 언제 생겼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도 참 속이 깊어."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말이었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키사라기 루리의 말 속 의중을 파악하고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아서."

"그럼, 내친 김에 함께 생각해보도록 할까. 그대가 모르는 것도 내가 알아내야 쓰겠거든."

눈물을 흘리며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는 히메지마 교메이였으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눈을 감았다. 제대로 과거를 되짚기 위한 행동이었다. 키사라기 루리 또한 가만히 감기는 그의 눈꺼풀을 보고 두 눈두덩이를 접어 감았다.


첫 번째 기억이다.

"까악! 보주 키사라기 루리, 중상! 지원 요청, 지원 요청!!"

"···!"


그 키사라기 루리가 애먹을 정도면 필시 상현일 것이었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속도로 까마귀의 안내를 따라 키사라기 루리가 있을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열심히 달려서 도착한 곳에는 애석하게도 키사라기 루리의 핏자국만 낭자할 뿐 혈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십이귀월이었나?"

"······."

대답도 하지 못할 만큼 지쳐 잠든 것이리라. 히메지마 교메이는 조심히 몸을 숙여 가만히 눈을 감고 나무에 몸을 기댄 키사라기 루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키사라기 루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려고 했다. 교메이는 그녀가 눈을 감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세상 그 어떤 이가, 자신의 반려가 무방비하게 잠든 것을 목도하고 사랑스럽다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히메지마 교메이는 손을 뻗어 잠든 키사라기 루리의 왼 볼에 손을 올려 엄지손가락으로 쓸었다. 흉터는 여기쯤. 손에 느껴지는 울퉁불퉁하게 새로 돋은 살의 감각. 그렇지, 이곳이다. 

이번엔 흉터 아래로 엄지손가락을 내려 그녀의 입술을 쓸었다. 많이 거친 입술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싸우는 도중 연지가 안 번질 리 없다. 

다음은 엄지손가락을 제 검지 옆에 밀착해 흉터 밑의 상처를 쓸었다. 이건 새로 생긴 상처인가. 아직 축축하고 눅눅해. 금방이라도 선혈이 터져나올 것 같아. 히메지마 교메이는 그렇게 키사라기 루리의 얼굴을 촉각으로 한참 느끼다가 손을 뗐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몰랐겠지만, 이 때의 키사라기 루리는 몽롱한 의식으로나마 깨어 있었다. 단지 입을 열지 않았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의 감촉을 느끼며 한참을 있었던 것이다. 타인에게는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교메이와 루리에겐 아니었다. 서로를 느끼는 행위. 감촉으로, 존재를 증명받는 행위. 오직 서로만이 줄 수 있는. 오직 반려만이 줄 수 있는···.


두 번째 기억이다.

"꿈에 그대가 나왔어."

"어떤?"

"내 볼을 어루만지는 꿈이었지. 참 이상해.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나비 저택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키사라기 루리가 쓴 탕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면서 한 말이었다. 아마 그 싸움에서 자그마치 삼 일이 지난 후에 눈을 떴었지. 히메지마 교메이는 괜히 루리의 말을 듣고 가슴 속이 따끔따끔해 모르는 척 응수했다. 물론 키사라기 루리는 한 번 떠 본 것이었다. 

"별나군."

자신은 그녀가 말한 '꿈'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뻔뻔하게 말을 마치고 문득 히메지마 교메이는 그녀의 흉터 밑에 위치한 새로 생긴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리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교메이는 손을 뻗어 저번처럼 루리의 왼 뺨에 손을 올리고 흉터 밑 아물고 있는 상처를 본인의 엄지로 살살 쓸었다. 키사라기 루리는 본래 쉽게 당황하지 않는 성정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당황했다. 방금까지 모르는 척 굴었으면서. 이렇게 뻔뻔히 굴 줄도 아는 사내였나. 

히메지마 교메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키사라기 루리의 뺨을 쓸었다. 이번엔 순서가 반대다. 상처, 그 이전이라 함은 입술이었지. 그러고 보면 며칠간 누워 있었기에 치장할 틈이 없었을 테다. 키사라기 루리의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고 교메이는 엄지로 그것을 쓸어내리며 무심코 말했다.

"참 거칠어. 가공되지 않은 원석처럼."

이어서, 그녀의 흉터로 검지를 옮겼다. 키사라기 루리는 히메지마 교메이가 내뱉은 문장을 듣고 가만히 있었다. 분명 자신이 했던 '내 볼을 어루만지는 그대'같은 건 허언이다. 그냥 떠보기 위해 한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어찌 이리 꿈에서 느꼈던 것만 같을까. 단순히 내가 몽롱할 때 매만짐을 받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당신과 함께 있는 게 기분 좋아서 그런 것일까? 키사라기 루리는 잡생각을 하며 교메이의 손에 살포시 기대고 눈을 감았다.


"·········."

어느덧 생생하게 머릿속에 이유가 떠오른 히메지마 교메이는 두 사건 이후로 자신이 유독 촉각으로 자신의 반려를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부끄러움에 못 이겨 땀과 눈물을 동시에 흘리기 시작했다. 키사라기 루리는 능청스레 이제서야 떠올렸냐는 듯 비꼬는 말을 했다.

"깨달았나? 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대가."

"내가?"

"몰라도 되는······"

"몰라도 된다?"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히메지마 교메이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키사라기 루리였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깨달았으니."

부릅떴던 눈이 천천히 풀어졌다. 다시 평소의 평온한 무표정으로 돌아가더니 교메이의 어깨에 기댔던 제 머리를 슬며시 빼내는 키사라기 루리였다. 그녀는 몸을 돌려 히메지마 교메이의 앞으로 가 그의 손을 잡고 얼굴에 대며 말했다.

"한 번 더 느껴보도록 해,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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