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학교를 제대로 다녀서 졸업을 하는 세계관

일본도 한국도 졸업식 시즌이 아니지 않나?

*모브 1인칭 시점

*캐붕 개인캐해석 날조 급전개 퇴고안함 기타등등 주의!!!!!!

*계절감 사망


오늘은 졸업식입니다.

저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 몸이라 졸업은 아직이지만, 오늘로 1학년 위인 3학년 선배분들은 학교를 떠나고, 제가 최고학년이 됩니다. 덴시티 하이스쿨의 졸업식은 3학년만 참석하도록 되어있지만, 보통은 동아리니, 개인적인 친분이니 해서 1, 2학년도 상당수 참석하는 편입니다. 저 역시 친한 3학년 선배의 배웅을 위해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다지 사교적은 성격은 아니라 아는 선배가 많지 않은 저지만, 그래도 친한 선배 한 둘은 있습니다. 바로 동아리 선배들이지요. 처음에는 잘 할 수 있을지 제법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졸업을 축하해드리고 싶은 선배들과 만날 수 있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속한 동아리는 듀얼부로, 유령부원이 제법 많은 동아리에 속합니다. 제가 막 입부했을 때는 유령부원이 더 많았었는데,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부장선배의 노력 덕인지 제대로 활동하는 회원의 수도 제법 늘었습니다.

어째서 듀얼부에 들었느냐고 하면, 그건 제가 평소에도 듀얼을 즐긴 탓도 있지만 듀얼부에 관심있는 선배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선배를 소개해야 합니다. 이 덴시티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은 들어보았을 이름. 자이젠 선배입니다. 물론 SOL사의 CEO인 자이젠 아키라 씨가 아니라, 그 동생 분인 자이젠 아오이 씨요. 자이젠 선배는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끕니다. 가진 배경, 귀여운 외모나 스타일 탓일까요. 선배의 그런 면에 끌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제가 선배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단지 그런 흔한 이유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저는 입학한 직후, 방과후에 우연히 자이젠 선배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노을이 강하게 들이치는 어딘가의 교실에서 자이젠 선배는 처음보는(물론 저는 그때 막 입학한 신입생이었으니 대부분의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요) 남자 분과 듀얼을 하며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혹여 제가 하는 행동이 두 분을 방해할까 조심한 탓에 무슨 대화를 나누는 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그런 저에게도 보인 것은 있었습니다. 차분하면서 명확한 목소리로 말하는 자이젠 선배라던가, 그걸 듣고 신중히 대답해주는 상대 분의 태도 같은. 그다지 대화가 많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신중히 카드를 내려놓고 듀얼에 임하는 선배 분들을 보면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자이젠 선배는 그날, 그 듀얼로 무슨 대화를 하셨던 걸까요. 수준 높은 듀얼리스트 사이에서는 대화보다 듀얼이 더 소통에 적합하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자이젠 선배와 이름모를 상대 분의 듀얼이 그러한 것이라고,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직 입부 신청을 받지 않고 있던 듀얼부에 달려가 입부를 희망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듀얼부에 입부했다고 해서 자이젠 선배를 자주 만날 수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1학년 때도 그다지 성실한 부원은 아니었다는 자이젠 선배는 최근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친구 분을 돌봐주는 일로 바빠보였습니다. 그 사실에 조금 실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괜찮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듀얼부에 입부한 것은 자이젠 선배만이 이유가 아니었으니까요. 네, 예의 관심있는 선배 말이에요.

저는 그 날, 자이젠 선배와 듀얼을 했던 상대 분이 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노을이 강하게 들어오던 교실은 자이젠 선배 맞은 편에 앉아있던 분에게 강한 역광을 드리워서 멀리 있던 저에게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면의 햇살이 눈부셔 찡그린 채로는 상대의 실루엣조차 알아보기 힘듭니다.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상대의 성별이 남성이라는 것과 진지하게 듀얼에 임하던 상대 분의 손 움직임 정도로 그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이젠 선배가 듀얼을 하던 장소는 이 듀얼부의 부실이었으니, 아마 틀림없이 그 분도 듀얼부에 소속해 있겠지요. 무엇보다 저는 그렇게 카드를 소중히 하며, 동시에 확고한 움직임으로 듀얼을 이끌어 나가던 사람이 듀얼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리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그야, 저는 2년 동안이나 그 선배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으니까요. 

자이젠 선배가 말을 섞는 듀얼부의 남자 선배 분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 듀얼을 그 사람만큼이나 사랑하는 분은 이렇게 말하면 조금 실례겠지만, 없어보였습니다. 정확히는 그날 제가 본 사람과 같은 분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시마 선배는 경박한 면이 있습니다. 야마토 선배는 듀얼은 좋아하지만 카드는 조금 험하게 다루시고요. 그나마 언젠가 잠깐 덴시티 하이스쿨에 다녔던 적이 있다며 듀얼부에 놀러오신 호무라 선배가 가장 비슷할까요. 하지만 호무라 선배는 현재 덴시티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다니고 계시니 아닐 것입니다. 사실 직접 여쭤보기도 했는데, 이상한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웃으며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시기에 의심을 거뒀습니다. 마지막 후보는 후지키 선배인데, 후지키 선배는 판단하기에 조금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후지키 선배는 우리 듀얼부의 수많은 유령회원 중에서도 으뜸이니까요. 그야말로 유령회원의 귀감입니다. 가끔 자이젠 선배와 함께 있곤 하던 모르는 선배가 사실 당당히 명단에 이름이 적혀있는 듀얼부 소속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도 아주 오지 않는 건 아니어서, 언젠가 시마 선배에 손에 이끌려 듀얼부에 참석한 후지키 선배의 덱을 구경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뭐랄까 요즘같은 시대에는 보기 힘든 스타일의 덱이라고 할까요. 저도 모르게 '혹시 서브 덱인가요?' 하고 물어볼 뻔한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흔히 '잡카'라고 불리는 카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덱은 나름의 콤보가 짜여있는 것 같았지만 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예상대로 기왕 출석한 김에 부원 몇 명과 듀얼을 하던 후지키 선배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0승이 아니라는 것은 후지키 선배의 센스가 나쁘지 않다는 뜻일까요. 조금 더 제대로 된 덱이라면 분명히 강해지실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후지키 선배를 지켜보던 저는 마음속의 용의자 명단에서 후지키 선배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카드는 소중히 하시는 것 같지만 묘하게 진심이 아니라고 할까, 그냥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 얄팍한 용의자표는 금세 가위표가 잔뜩 쳐진 0점 시험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처음에 생각한 전제부터 틀렸던 걸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듀얼부 소속이 아니었던 걸까요. 그러나 자이젠 선배는 주로 여자 선배분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듀얼부를 제외하면 얘기를 나누는 남자 분이 정말 손에 꼽기 때문에 이 이상 용의자를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친한 선배들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축하인사를 하고, 조금 쓸쓸함 마음으로 헤어지면서, 저는 몇 번이고 혼자 속으로 꺼내본 용의자명단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모든 이름에 가위표가 쳐진 명단은 용의자명단이라 하기에는 초라할 지경입니다. 마지막으로 듀얼부에 들러서 부원 명단을 보고 그 선배에 대한 미련을 깔끔히 버리자고 마음먹은 저는 그대로 조용해진 교사로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덧 선배들도 전부 떠나고 축하하러 온 저와 같은 후배들, 부모님들도 없어진 학교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아직 짧은 해는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지기 시작해 벌써부터 교사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끼며 익숙한 계단과 복도를 지나 듀얼부의 부실이 위한 복도에 들어서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조금 의외여서, 저는 터벅터벅 발소리를 내어 걷던 것을 멈추고 켕기는 것이 있는 것처럼 조심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는 듀얼부 부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인영을 좇으면 예상대로 익숙한 사람이 보입니다. 자이젠 선배입니다.

분명 오빠 분과 먼저 교문을 나서는 걸 봤는데 왜 아직 학교에 계시는 걸까요? 혹시 부실에 뭔가를 놓고 가시기라도 한 걸지도 모릅니다. 도와드릴까 싶어서 인기척을 내고 문을 열려던 순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턴 엔드."

순간적으로 숨을 작게 들이쉬고, 저는 좁은 문틈을 요리조리 노려보며 부실 안을 확인합니다. 저와 정면으로 자이젠 선배가, 그리고 그 맞은편에 누군가 앉아있었습니다.

내 턴이네, 하고 말하며 자이젠 선배가 덱에서 카드를 뽑고 공세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며 저는 그제야 두 분이 듀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듀얼을 위한 최소한의 말 만이 반복되고, 그 외의 대화는 일절없는 조용한 공간. 저는 어쩐지 숨까지 죽이며 그 공간을 훔쳐보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시 한 번 자이젠 선배의 맞은편을 바라봅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여전히 움직임은 잘 보입니다. 카드를 소중히 다루는 손짓. 그러나 공격할 때는 누구보다 확고하고 당당하게 나서는 태도. 틀림없습니다. 지금 자이젠 선배의 듀얼 상대는 제가 찾아 헤매던 그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2년 간 줄곧 궁금해하던 상대를 드디어 찾았지만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균열을 일으켰다가는 이 공간이 그대로 깨질 것만 같은 공포심이라고 할까요, 그런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얼굴을 보이지 않은 상대 분이지만,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했습니다. 그야 저도 이제는 이 학교에 2년을 재학한 몸이니 어지간한 목소리는 익숙하겠지만요. 팽팽하게 이어지던 공방이 마침내 끝나고 승패가 가려진 것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노을은 선명하다못해 점차 보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선배들은 듀얼이 끝났음에도 잠시 말없이 마주앉아있었습니다. 이대로면 나오시는 도중에 마주치겠다 싶어 소리없이 살금살금 계단 쪽으로 숨은 지 몇 분. 마침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이만. …고마웠어."

"그래."

건조한 작별인사가 한 번 오가더니 한 사람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립니다. 구두 소리였으니 아마 자이젠 선배일 겁니다. 저는 이번에야말로 치밀어오르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복도로 얼굴을 내밀고 홀로 서 있는 한 사람을 확인했습니다.

뭐랄까, 조금 허탈한 기분이었습니다.

멀리서 듀얼 디스크를 보며 작게 중얼거리고 있는 사람은 저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으니까요. 허탈함과, 약간의 배신감에 휩싸여 큰 소리로 "후지키 선배?!" 하고 부를 뻔한 것을 가까스로 눌러참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억 속의 실루엣과 후지키 선배는 비슷하다 못해 딱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에 듀얼부에서 보인 태도는 그저 끌려온 귀찮음이 태도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던 걸까요? 후지키 선배를 잘 알지 못하기에 뭐라 추측하기도 힘듭니다. 선배는 본 적 없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듀얼 디스크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고민에 빠졌습니다. 가서 말을 걸어야 할까? 당신의 듀얼이 마음에 들었다고. 듀얼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당신이 자이젠 선배와 한 듀얼에서 보인 태도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전해야 할까요? 한참을 머뭇대고 있자니 후지키 선배는 어느새 듀얼 디스크에서 시선을 떼고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급하게 달려가서 선배를 붙잡고자 마음먹었다가, 한 발을 내딛은 시점에서 그만두었습니다. 그건 어째서일까요? 2년을 찾아 헤맸는데도 말이에요. 그러나 후지키 선배의 표정은 부드러웠고, 동시에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처럼 굳건했습니다. 저는 가끔 듣고는 했던 듀얼리스트 사이의 오랜 격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어떤 대화는 말이 아닌 듀얼로 이루어진다. 저 멀리 이제는 덴시티 하이스쿨의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는 후지키 선배를 보며 저는 그저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졸업 축하드려요, 후지키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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