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사] 3월의 초록

현실회피넘버원. 시켜줘, 명예 남의 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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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키우는 행위는 사람을 치유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자신은 AI니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날이 쨍했다. 요 몇 년 간 그러지 않았던 날이 없었지만 오늘은 유독 햇빛이 강했다. 몸체가 후끈 달아오른 것이 굳이 스캔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날은 덥고, 습기도 적어 먼지가 많았다. 집 뒤편에 놓인 정수시설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 정원에 물을 준다. 벌써 몇 번이고 반복된 아침 일과다. 햇빛이 너무 강해 망을 쳤는데도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가 식물들이 파릇파릇하질 못하고 처져있다. 하기야 뭔가가 자라기에는 지나치게 부적합한 환경이기는 했다.

그는 매년 3월마다 식물을 새로 심었다. 더는 달력에 의미가 없음에도 날짜를 지키며 꼬박꼬박 정해 놓은 스케쥴대로 1년을 살았다. 심는 식물은 그 때의 기분에 따라 달랐다. 과일이 보고 싶을 때는 아무 과일이나 구할 수 있는 것을 모아 심고, 꽃이 보고 싶으면 근처 꽃집에 남아있는 씨앗이 없나 털어오고, 뭐 이런 식이었다. 무엇을 심든 전부 같은 토질에 별다른 비료도 없이 강한 햇빛을 쐬고 있으니 식물이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그나마 물이라도 꾸준히 제공되니 ‘키웠다’고 말할 정도로는 자란 것이다.

나름대로 꼼꼼히 모든 식물에 물을 주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TV를 켜도 나오는 방송이 없고, 특별히 갈 곳도 없다. 그래도 초반에는 경작지를 만들겠다고 이것저것 하곤 했는데, 이제는 정말 단조로운 일상만이 남았다. 그럼 오늘은 뭘 하며 시간을 죽여야 하나. 그는 대충 식물 사이에 드러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 아이는 저 위에 있을 것이다. 더는 쫓아갈 수 없을 하늘보다도 더 높은 곳. 우주에.

싸구려 SF같은 이야기다.

인류가 지구를 버리고 우주에서 생활하는 내용을 다룬 SF작품은 셀 수 없이 많다. 아니, 이제는 현실이니 더 이상 SF라 부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 소재도 제법 진부하다고 생각하지만 우주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대체 우주가 뭐 그리 좋다고 계속해서 우주 이야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우주로 가버린단 말인가? 자신들은 지구에서 태어났으면서. 정작 지구의 생명체 중 가장 SF틱한 존재는 지구에 남았는데도. SF따위는 정말 질색이다. 우주는 더더욱 싫다.

언젠가, 아직 몇몇 사람들은 지구에 남아있던 시절에, 딱 한 번 SF영화를 본 적이 있다. 당연히 스스로 보고자 한 것은 아니고, 그 아이가 한 같이 보겠냐는 제안에 홀라당 넘어간 탓이다. 진부한 영화였다. 무엇 하나 예상이 가지 않는 전개가 없었다. 흔한 소재와 흔한 이야기. 그러나 그 아이는 제법 진지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영화 내용보다도 그 아이의 옆모습을 더 세세히 기억했다. 어두운 방에서 TV의 불빛을 받아 조금 창백하게 빛나는 뺨이라던가, 그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올라가면 보이는 섬세한 속눈썹이나 싱그러운 초목처럼 빛나는 녹안 같은 것을.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이야?

불현듯 그 아이가 물어왔다. 영화는 한참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었다.

글쎄, 확실한 건 영화처럼 청소나 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것도 그렇네.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어깨가 움직였다. 그는 자신이 뛰어난 AI라는 것에 감사했다. 이 순간을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을 테니.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설득해볼게. 적어도 이곳에는.

아, 그거. 진짜 꼭 말해줘야 해? 자다가 쓰레기더미에 깔리고 싶진 않다구.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아이가 눈을 똑바로 맞춰왔다.

꼭 약속할게.

다음 주에, 그 아이는 우주로 떠났다. 마지막 우주선을 타고 어떠한 사고도 없이 무사히. 그는 더 이상 누구도 돌아오지 않을 집을 한 번 돌아보다가, 생각했다. 역시 초록색이 좋다고.

3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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