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열차번호 007의 열애사

DAY.1




스물아홉 정성찬은 팔자에도 없는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에 서 있었다. 나 러시아 가려고. 친구들에게 처음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조차 황당할 만큼 뜬금없는 소리였다. 네가 좋아하는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프로 축구 리그의 팀) 경기를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EPL(*영국 프로 축구 리그)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닌, 왜 갑자기 러시아냐고.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갈 땐 그저 만끽할 수 있는 자유가 좋았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던 이십 대. 아무리 시간이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해도, 눈 한 번 깜빡하니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이 둥그런 원형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나는 뭘 위해 살아온 걸까. 입대와 제대, 대외활동, 졸업, 취업과 이직, 그리고 사랑. 물론 가벼운 연애는 꾸준히 했으나 누군가가 첫사랑은 언제였어요? 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냥 2주에서 한 달 정도 사귄 것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서 뺨 맞고 차인 것도 처음 겪으면 첫사랑인가?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그 어느 것도 확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늘 그렇듯 누군가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된다.

"데이터도 거의 안 터졌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여행 좋아하기로 소문난 옆 팀 인턴이 자신의 여행기를 뽐내던 중, 성찬의 귀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감상평이 꽂힌 것이다. 인턴의 감상평이 종알종알 이어진다. 눈이 엄청 많이 오는데 낭만도 있고 제 인생 최고의 추억이었거든요....  성찬은 그날 블라디보스토크행 티켓을 발권하고, 한 달 뒤 사직서와 함께 러시아로 향했다. 모든 걱정은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생각하자. 답은 어떻게든 나올 것이다.


열차번호 007의 열애사

DAY.1


호기롭게 20인치 캐리어 하나만 챙기는 게 아니었다. 보드카로 추위를 이기는 나라 아니랄까 봐, 눈은 마치 재난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뼈가 시리는 추위에 성찬은 자신이 어떤 옷을 챙겼는지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7박 8일의 일정. 약 164시간의 소요 시간과 일곱 번의 시차가 바뀐단다. 성찬은 코를 훌쩍이며 발권한 티켓을 확인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일등석, 열차번호 007, 8호차, 11번. 좁은 복도가 끝없이 이어진다.

과연 자신과 마주 앉아서 갈 사람은 누구일까. 문을 열자 성찬은 자신의 동행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 탔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벽에 머리를 붙이고 곤히 잠든 금발의 남자. 성찬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히 캐리어를 옮기지만 우당탕 소리에 금발의 남자는 잠에서 깬다. 놀라지도 않은 눈으로 상황 파악을 하더니 영어로 된 가벼운 인사와 함께 통성명이 이어진다. 정성찬과 오오사키 쇼타로. 성찬은 통성명을 하며 쇼타로를 몰래 눈으로 훑는다. 명품 브랜드 코트, 24인치 캐리어 두 개, 반짝 빛나는 피어싱. 그리고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까지. 


"저, 한국말 할 줄 알아요."


배웠거든요. 쇼타로가 흐흐, 기분 좋게 웃는다. 그냥 배웠다는 것치곤 꽤 잘하는 편에 속하지만 성찬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라 웃을 뿐이다. 일주일 동안 심심하진 않겠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캐리어를 마저 정리하고 맞은편에 앉는다. 그리고 긴 침묵.

침묵이 깨진 건 기차가 출발할 때쯤이었다. 여행으로 왔어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괜히 간지럽다.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어라서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걸까. 성찬은 테이블 위에 놓인 탄산수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인다. 네, 여행. 생각 정리하고 싶어서요. 쇼타로는 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그렇구나아. 기분 좋게 웃는다. 쇼타로는 웃을 때 광대가 동그랗게 올라가는 편이었다. 귀여운 소동물을 닮은 얼굴. 성찬은 곰곰이 닮은 동물을 생각해 본다. 수달, 해달..... 첫 만남에 무슨 무례인가 싶어서 재빠르게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예의상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럼, 쇼타로도 여행으로 왔어요?"

"그렇게 보여요?"

참 알 수 없는 말이다. 그렇게 보이냐는 말에 성찬은 다시 한번 쇼타로의 행색을 본다. 보통 여행하는 (혹은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십 대 중반이 이렇게 다니지 않나. 응, 여행처럼 보여요. 성찬이 답하자, 쇼타로는 그렇게 보이면 다행이라며 유쾌하게 답했다. 여기서 다행이라는 말은 뭘까. 여행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일 텐데. 아, 그리고 타로라고 불러요.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화제 전환을 하는 이 이상한 금발의 남자 덕분에 성찬은 하나의 대화 주제에 영 집중을 할 수 없어졌다. 비록, 크게 본다면 오오사키 쇼타로라는 남자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만.

타로, 타로, 타로. 성찬이 세 번 정도 발음하자, 쇼타로는 발음하기 편하죠. 넉살스럽게 웃었다. 성찬은 최근 삼 개월 중 오늘, 그것도 지금, 처음 본 금발의 남자 앞에서 가장 많이 웃었다는 걸 깨닫는다. 한 번 더 시선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리며 빙긋 웃어주는 이 남자는 절대 모를 것이다. 성찬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한다. 캄캄한 밤 사이로 흰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 사실, 해외여행 처음 해 봐요."

"첫 여행부터 횡단 열차라니."

그냥 좀... 떠나고 싶었어요. 테이블을 접고, 이불을 펴고 누웠을 때 성찬은 속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이럴 땐 무슨 대화를 하더라. 가장 좋은 건 자신의 패를 까는 것이었다. 자신의 패가 웃음거리로 소모된다고 해도 뭐,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면 괜찮은 흥정 아니겠는가. 하지만 쇼타로는 웃지 않는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는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린다. 성찬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망설이다가 침묵을 유지하기로 한다.

왜 사라지고 싶은 걸까. 친화력도 좋고, 귀엽게 생겨서 인기도 많을 것 같은데, 브랜드 옷을 보니 부잣집 도련님처럼 보이기도 하고. 역시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은 다 있는 거구나. 성찬은 누운 상태로 머리맡의 창가를 바라본다. 눈을 깜박이자 빼곡한 별이 자신에게로 쏟아질 것 같다. 아름답다. 쏟아지는 눈과 쏟아질 것 같은 별. 하늘 예뻐요. 성찬이 속삭이자, 쇼타로는 응, 아름답다. 작게 화답한다.

오후 열 시, 기차의 모든 곳이 소등된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음, 그리고 서로의 숨소리. 완연한 어둠이 깔리자 성찬은 낯선 잠자리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꼭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복도. 이 열차엔 수많은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허허벌판을 달리고 있다. 괜히 뒤척일 때마다 문 쪽에 시선이 꽂힌다.

"타로, 자요?"

"아니, 아직 안 자요."

왜요? 겁 따위 없는 말랑한 말투에 성찬은 안도한다. 아니, 좀... 무섭지 않아요? 때아닌 고백에 쇼타로는 곧 푸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비웃는 게 아닌, 갑작스러운 고백 타이밍이 웃겼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옆 칸에서 어떤 남성의 괴성과 함께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성찬은 으악! 짧은 비명과 함께 몸을 웅크렸다. 와, 이런 애가 어떻게 러시아 여행을 하려고 한 거지? 쇼타로는 한 번 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는다. 덩치는 문짝만 한데, 겁은 또 뭐가 이렇게 많은지. 쇼타로가 몸을 일으켜 머리맡에 있는 조명을 켜자, 울상인 성찬의 시선이 마주한다.

"...저 사실 공포영화도 못 봐요."

"러시아 엄청 무서운 나란데."

"옆 칸에서 싸우는 걸까요?"

"그냥 술 취해서 소리 지르는 거 같아요."

쿵쾅쿵쾅 차장의 발소리와 함께 옆 칸의 문이 열리더니, 곧 다시 기차는 침묵이 유지된다. 공포영화도 못 보면 스릴러도 못 보나? 쇼타로는 머리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둥실둥실 떠올리다가 불 끄지 말까요? 예의상으로 한번 묻는다. 정말 예의상으로 묻는 질문이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냉큼 고개를 끄덕이는 성찬의 모습이 퍽 웃겼다. 꼭 겁먹은 대형견 같지 않은가. 알았어요, 안 끌게요.

무슨 겁이 이렇게 많을까. 귀신의 집은 물론이고, 피가 터지는 영화도 못 보는 건 타고난 태생과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좋은 것만 보고 살 수 있는데, 굳이 무서운 걸 봐야 하는 이유도 없었으니까. 다시 잠잠해진 기차에서도 성찬은 묘하게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기류를 쇼타로도 느꼈는지 가벼운 한숨을 푹 쉬더니 팔을 뻗어온다. 잘 때까지 손 잡아줄까요? 다 큰 성인 남자 두 명이서 손을 잡고 잔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성찬은 그냥, 쇼타로의 손이 잡고 싶었다. 괜찮은 척 굴 수 있었지만, 그런 연기까지도 가능했지만, 이상하게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낯선 잠자리가 불편했으니까. 기댈 수 있으면 좋으니까. 쇼타로는 다 괜찮다는 듯 성찬의 손등을 엄지로 천천히 문지른다. 애기네, 애기...... 놀리는 말투지만 비웃음은 없는, 하여튼 이상한 말투였다.

물론 그것보다 더 이상한 건, 정말 이상한 건 손 하나 잡았다고 안심이 되는 이 상황이었다. 만약 옆 칸의 남자가 또 소리를 지른다면, 이번엔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직감. 그렇게 만들어진 안정감과 함께 잠이 기다렸다는 듯 밀려온다.

"타로, 언제 자요? "

"자는 거 보고 잘게요."

잘 자요. 밤 인사를 하곤 성찬은 눈을 감았다. 곧 성찬은 잠에게 잡아먹힌다. 어둠을 뚫고 이동하는 기차와 곤히 잠이 든 사람. 이젠 언제 손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쇼타로는 손을 놓지 않았다. 놓으면 성찬이 악몽을 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일 일어나서 악몽 꿨다고 말하면 괜히 제 탓이 될 것 같아서. 손이 참 많이 가는 사람이구나. 쇼타로는 모든 잠을 성찬에게 뺏긴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억울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사라지고 싶었던 일주일 동안 행복하진 않아도, 불행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쇼타로는 잠든 성찬의 얼굴을 구경했다. 다소곳하게 감긴 두 눈, 새근새근 잠에 푹 빠진 소리.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다. 겁이 많은 것치곤 꽤 잘 자는 편이구나. 낯선 타국에서 만난, 타국의 사람. 분명 한국어를 배운 걸 후회한 시기가 있었다. 그래도 이 추운 나라에서,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기쁜 일이구나. 불행한 기억을 아주 조금은 덮을 수 있지 않을까? 쇼타로는 괜히 이상한 희망을 걸고 싶었다.

분명 그는 떠나고 싶다고 했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떠나는 것보다 정착이 어울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서. 떠나거나 사라지는 건 자신 같은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법일 텐데. 참 특이한 경험이 쌓인다. 횡단열차에서, 낯선 남자와 손을 잡고 자는 경험이라니.

생각이 끝날 때쯤 쇼타로는 시선을 옮겨 창가를 바라본다. 이런 경험으로 사람은 살아가는 거겠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빼곡하게 빛나는 별이 눈부시다. 그대로 자신에게 쏟아질 것 같다. 쇼타로는 미간을 좁히다가 곧 눈을 감는다. 일단 흰 눈이 쏟아지는 걸로 충분하다. 별은 나중에 쏟아져도 좋으니. 눈이 질릴 때쯤. 익숙해져서, 눈이 부시지 않을 때쯤. 악몽 꾸지 마요. 쇼타로는 잠이 들기 전, 작게 속삭였다.

동이 틀 무렵, 기차가 역에 정차한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성찬은 눈을 떴다. 금발의 남자는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잠에 빠져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 보니 금발은 더 눈부셨다. 마치 간만에 태양이라도 본 것처럼 성찬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뜬다. 하여튼, 오오사키 쇼타로라는 남자는 괴상했다. 괴상하게 다정했고, 그 다정함에 성찬은 두려움이 한층 멀어졌지만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타로가 달래준 것처럼 그의 손등을 엄지로 천천히 문지르며 깨우기로 한다.

"타로."

"......악몽 안 꿨어요?"

"네? 네."

다행이다.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드디어 마주 잡은 손이 풀어진다. 온기가 떨어지는 느낌이 영 이상하지만, 성찬은 잠에서 덜 깬 쇼타로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역에 정차했어요. 아침 먹자.

입김이 펄펄 나온다. 약 삼십 분의 정차 시간 동안 성찬과 쇼타로는 급하게 아침을 먹고 근처 상점에서 간식을 잔뜩 샀다. 무슨 맛 과자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없는 것보다 낫다는 성찬의 의견이었다. 기차에 다시 탑승한 후 쇼타로는 칫솔을 입에 물고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새벽 내내 손을 잡았더니 어깨 한쪽이 뻐근했다. 나이 먹고 이런 건 또 처음이네. 기지개를 쭉 켜는 동안, 성찬은 캐리어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러시아에선 러시아 문학을 읽어야 낭만 아니겠냐며 친구가 추천한 책이었다. 양치를 끝낸 쇼타로가 들어오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힐끔 바라본다. 재미있으면 추천해줘요. 성찬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 옆 칸, 술주정 맞았대요."

"아, 그렇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소리를 지르고 겁을 먹던 자신이 우습고 민망해서 성찬은 어설프게 하하 웃었다. 쇼타로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작게 하품할 뿐이다. 작게 벌어지는 입술, 나른하게 반쯤 누운 몸, 성찬은 키가 커서 자기에 불편하겠다. 웅얼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상대적인 시간. 아주, 느리고 느린. 같은 풍경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니,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하다.

타로, 어제 손 잡아줘서 고마워요. 늦은 감사 인사에 쇼타로는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드는 걸로 답을 대신한다. 기차의 시간은 지루하다. 이 지루함을 그토록 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 맛도 모르고 잔뜩 산 간식이 테이블 위를 굴러다닌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하나 먹어보기로 할까요? 쇼타로의 질문에 성찬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거 버터링 같아."

"한국 과자 되게 잘 안다."

쇼타로는 가위를 먼저 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걸 캐치하는 데 정말 짧은 시간이 걸렸다. 가위바위보 할 때 엄청 많이 졌겠는데. 성찬은 속으로 웃으며, 모르는 척 가위바위보를 척척 이겼고, 쇼타로는 덕분에 가장 먼저 과자를 하나씩 먹어야 했다. 한국 과자 되게 잘 안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통은 한국에 관심이 있다거나, 아님 한국에 살았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할 법도 한데.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과자 포장지에 매운맛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을 때, 성찬은 보를 내서 순순히 졌다. 매운 걸 못 먹는다고 울상을 짓는 쇼타로를 굳이 이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과자는 정말 매웠다. 매운 것에 강한 한국인이 먹어도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잘 졌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이거 먹지 마요. 성찬은 마지막 과자를 휴지통에 버렸고, 쇼타로는 깔깔, 큰 소리로 웃었다. 소소한 게임이 끝난 후 성찬은 책을 펼쳤고, 쇼타로는 다시 곤히 잠에 빠졌다. 어제 늦게 잠들었던 피로가 몰려오는 게 틀림없었다. 잠들기 전, 쇼타로는 지금은 손 안 잡아줘도 괜찮죠? 라고 농담을 던졌고, 성찬은 머쓱하게 웃었다. 잡아주면 고맙고요. 라고 농담으로 던질 수 있었는데,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차마 던지지 못했다.

< 어떤 말할 수 없는 매력이 풍겼고 명령하는 듯하면서도 귀염성이 있어서, 나는 놀랍고 재미있어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내던져 버려도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

성찬은 잠든 쇼타로를 몰래 훔쳐본다. 겨우 16페이지에서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내던져 버려도 좋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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