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노트르담의 미분자微分子.

ㅂ님 커미션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 공백 포함 11685자


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Christe eleison,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Catholic Chants.

 

 

1.

그가 속죄하는 법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그’라 함은, 노트르담의 그 키마이라을 말했다. 얼룩덜룩한 얼굴, 꼴사납게 일그러진 몸뚱이에 우그러진 등, 이리저리 뻗친 붉은 머리를 지닌 그 존재 말이다. 한때 파리의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서 가고일 상들과 진실한 친구의 대화를 몇 시간이고 나누던 꼽추. 소문에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을 때의 얼굴은 괴물의 것이 아니었다 하였다. 시체를 끌어안고 절규하던 사람. 아마도 그 얼굴은 사람의 것이었으리라 누군가 속삭인다.

 

그 ‘괴물’은 여기 살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노트르담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척추는 굽어졌으나 성당 천장의 늑골이자 공륭은 건재했으므로. 건물이 살아있는 한 그는 살아 있었다. 종탑은 그의 둥지였으며 거대한 종 마리와 작은 마리, 또 다른 마리, 그리고 자매 종 자클린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모두 합해 열다섯의 든든한 친구들은 거기 존재했다. 가고일 상은 여전히 우직하게, 마치 콰지모도 그 자신처럼 침묵했다. 모든 것은 마치 변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콰지모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빼면. 마치 그 존재가 없었던 그러니 우리는 종지기 콰지모도가 ‘살아 있었다’라고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종이 울렸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어 가고 있음은 자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속죄의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자기 자신을 죽인다. 그 과정은 요란하지 못하다. 어그러진 맷돌 사이에 천천히 으깨어지는 올리브처럼. 느리고, 고통스럽게. 그 안에 들은 생명 같은 액체를 쥐어짜내면서 이루어지는 일인 것이다. 그는 노트르담의 골격에 기대어 말라 죽어가는 한 마리 벌레와도 같았다. 스스로 불러낸 긴긴 겨울이 올 것이다. 그는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이 겨울 속에서 언젠가 자신의 숨이 멎을 일만을 기다린다. 죄 진 자의 속죄란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이루어진다. 요란스럽지 않게, 그 누구도 모르게. 삼베옷을 입고 평원을 기는 들짐승처럼, 그는 몸을 낮추고 어머니 노트르담의 뼈 위를 기어 다녔다. 나무껍질 속의 벌레처럼. 그는 육체의 죽음 대신 먼저 정신의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본디 그는 말이 없었다. 그는 오직 종에게만 말을 걸었다. 프롤로에게 가끔 애원하던 일은 이제 없을 것이었고,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할 작정도 아니었다. 그는 서서히 돌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저 자신이 바라던 돌 안의 부조浮彫들이 된 것 마냥. 그는 침묵했다. 혀가 굳은자의 마음이 굳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새벽,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면 종지기 콰지모도는 가장 먼저 종을 친다. 그 소리가 파리의 사람들을 깨울 때, 그는 비틀어진 입으로 밧줄에 매달린 채였다. 어두컴컴한 종탑 안에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종을 치고 나면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틀어막았다. 구역질나게 힘이 드는 그 과정을 그는 매일같이 채찍질처럼 자신에게 가해 댔던 것이다. 식사는 마른 빵껍질이든, 버터 발린 흰 빵이든 상관하지 않고 입으로 우겨 넣었다. 맹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음 종이 칠 시간까지 그는 자신의 작은 은신처에 조그만 짐승이 된 것처럼 기어들어가 잠을 잤다. 종을 치지 않는 시간동안 콰지모도는 잠드는 것 이외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격렬하되 고요한 마비를 생각해 보라. 생각과 감정은 온전히 죽음의 연습 같은 잠 속에 젖어 들어갔다. 콰지모도는 스스로를 죽이기 위한 겨울잠을 자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콰지모도는 종종 악몽을 꾸곤 했다. 피가 묻은 베일을 쓰고 나타난 에스메랄다가 마치 헤롯 왕 앞의 살로메처럼 일곱 베일의 춤을 추는 꿈을. 단 한 번도 프롤로에 대한 꿈은 꾸지 않았다. 오로지 에스메랄다, 그녀뿐이었다. 꿈에서 깨어나고 나면 그는 허겁지겁 질그릇에 담긴 물을 마셨다. 그러나 그 물 한 방울이 다시 그에게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콰지모도는 숨통이 막혀 오는 것 같은 감각에 종종 물을 마시다 그대로 넘기지 못한 채 뱉어내고는 했다. 그 흉측한 얼굴이 마치 그의 머리칼처럼 꼴사납게 붉어진다. 한참을 숨을 몰아쉬다가, 마침내 불쌍한 꼽추는 울었다. 녹이 슨 호각처럼 작은 소리로. 단 한 마디의 말이 소리를 타고 흘러 나왔다. “에스메랄다.”

 

여기 없는 이의 이름을 불러 무엇 하겠는가.

 

그는 몸뚱이의 온기를 기억한다. 끌어안은 몸이 얼마나 따스했던가. 단 한 번도 그렇게 닿아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죽음의 세상으로 떠나고 난 이후를 제외하면. 그 사실이 오히려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죽은 듯이 살았던 이 해체된 거인에게 감정이란 얼마나 강렬한 불씨였는지. 감정으로 살아난 골렘의 맹목적 사랑. 그는 스스로에게 불씨를 전해 주어버린 불행한 프로메테우스라. 사랑이 그에게 찾아왔을 때는 카프카스 산에 매달린 꼴이 되었을 때였다. 그는 그것을 기억했다. 입가에 닿은 질그릇과 다정한 손길들. 가끔 콰지모도는 돌바닥에 몸을 뉘인 채 수많은 시간들을 되돌이킨다. 그러다 종내는 흐느껴 우는 것이다. 웅크린 채 꿈틀대는 벌레의 꼴로. 손등과 팔을 물어 가며 그 울음마저도 꾹꾹 눌러 대는 꼴을 생각해 보라. 그는 자신의 팔과 굽은 척추를 차라리 부수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나는 무지하고 흉측한 괴물인데. 그 상냥한 손길은 내게 무엇을 주었던가? 되돌이킬수록, 그는 안으로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내뱉어 무얼 하겠는가.

 

그래서 이즈음의 콰지모도에게 고통은 소리가 되어 터져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어 대느라 늘상 그의 입가나, 어딘가에는 찢어진 잇자국과 멍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불길함을 주었던 것이다. 마치 한창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던 날벌레 한 마리가 잠잠해졌을 때처럼. 불길하고,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기이함이 그들으로 하여금 종탑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게 만들었다.

 

 

2.

속죄는 쉬이 고행苦行을 향해 간다.

 

시간이 지나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종탑에서 어떠한, 통성痛聲같은 것들이 터져 나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사십 일에 한 번씩. 마치 종이 울리는 것처럼 때를 맞추어 터져 나왔다. 그레브 광장에서 이집트 여인이 목이 매달린 지 꼭 세 달 째가 지난날들이었다.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고통의 소리에 기겁을 하고서, 종탑을 향해 뻗었던 손가락질들을 거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게 무슨 소리야?” “사람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수군댄다. 때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 근처로 그런 말이 나오고는 했다. “저기 사는 건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모양이야.” “황소 대가리를 가졌대.” “미노타우루스 같은 꼴이래, 저기가 저 괴물의 미궁인가보아.” “쉿, 쉿!”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경멸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혐오이자, 일종의 공포였다. 사람들은 소리로서 콰지모도가 무언가에서 격리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이미 스스로를 정말이지 괴물로 여기고 있었다.

 

이 증언은 하나의 사료史料이나 다름없다. 어째서냐 묻는다면, 종지기 콰지모도는 등껍질처럼 노트르담 대성당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겠다. 그는 그 건물을 진정으로 사랑하였다. 그 우그러진 등은 노트르담이 담고 있는 우리 어머니의 거대한 뼈, 그러니까 바위와 닮은 것이다. 그의 정원은 성당 서쪽 입면의 거대한 장미창으로 충분하였으며, 그는 성당의 홍예문이 아닌 다른 곡선은 꿈꾸지 않았다. 요컨대, 그는 노트르담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모든 울룩불룩한 틈에 꼭 들어맞을 만치 그 건물과 밀착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증언은 곧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증언과도 같으리라.

 

그는 점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악몽은 늘어만 갔고, 마비 대신 찌르는 듯한 후회의 이미지만이 남는 잠. 그래서 그는 잠을 내려놓기로 대번에 결정한 것이다. 불면의 나날이 계속될 때, 콰지모도는 죽은 듯 가라앉았던 모든 감정들이 울컥대며 그를 삼키는 것을 알았다. 가끔 그는 자신과 그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을 죽여 버리고픈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로, 생각보다 더 무겁고 잔인한 삶의 굴레가 있는 법이다. 그는 종을 쳐야만 했다. 여전히 그 열다섯의 형제이자 친구인 종들은 콰지모도의 손길이 아니면 제대로 울려 댈 수 없을 것이리라. 꼽추 또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 그는 아마도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문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황소 대가리를 지니고 목에 종을 건 괴물. 묵묵히 등에 진 쟁기와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괴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사십 일에 한 번씩. 그는 죽음을 경험하고자 했다.

 

예수가 광야에서 사십 일을 보냈다면, 콰지모도는 종탑 위에서 사십 일을 쪼개 가며 보냈다. 그는 정말로 소리를 질러 댔다. 고통에서 비롯된 것을. 그러나 정신의 고통을 입 밖으로 내기에는 지나치게 깊은 죄책이 그 안에 있어서, 그는 대신 육체의 고통을 빌려 소리를 질렀다. 콰지모도는 엄중한 심판자였으며, 비틀린 죄인이었다. 그는 매일 한 끼씩을 먹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는 뜬 눈으로 멍하니 새벽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빵껍질 하나도 제대로 삼키지 못할 만큼 입이 마른다. 종을 치면 여전히 토기가 올라올 정도로 몸이 후들대고, 쓰러지듯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자고 나서야 그는 물 몇 모금을 넘기는 것이다. 빈창자가 요란스레 꼬여 대면, 그는 배를 움켜쥐고서 이마를 돌바닥에 찧어댔다. 쿵, 쿵. 살갗 위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제야 뱃속이 조용해진다. 콰지모도는 그렇게 사십 일을, 어떤 때는 가끔씩 소금 덩어리 몇 개만 삼켜 가며 견뎌냈다.

 

고요한 죽음. 속에서부터 자신을 깎아 내려가는 죽음. 콰지모도는 자신이 한없이 저열하고 또 저열한 존재라 느꼈다. 영혼이 있다면 검게 타락되어 있을 것이 분명한 존재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입으로 무언가를 들이기를 거부하고, 제 몸을 혹사시켜가며. 법정도 교회도 아닌 그 자신이 내린 벌을 받는 것이다. 콰지모도에게 법정이니 교회니 하는 것들이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그 꼽추는 오로지 노트르담이라는 건물 안에서 살아 있었던 것을.

 

가끔씩은, 정말 가끔씩은. 콰지모도는 샛노랗게 질린 채 얼굴을 땅에 대고 신음했다. 견딜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은 정신의 고통을 잊게 해 주었으나, 동시에 그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다. 가끔씩 그는 환각을 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굶고 난 후에 종을 칠 때면, 그는 정말로 괴로웠다. 절뚝이는 다리로 종탑을 내려오다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불길이 넘어오는 것만 같은 목구멍을 붙잡은 채 자신의 작은 동굴로 돌아오는 것이다. 문을 열고, 다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넘어진다. 다시 그는 벌레가 기어가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배를 발로 세차게 걷어차는 기분을 느낀다. 창자가 뒤틀리는 것이다. 그 발길질이 지나치게 익숙해서 또 그는 몸을 웅크린다. 눈 위로 검은 수사복이 넘실대고 있었다. 아니, 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이던가? 뱃속에 꽉 들어찬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그는 입을 벌린다. 그러나 먹은 것이 없어 괴로운 소리를 빼면 그 목구멍에서 나올 것은 없다. 콰지모도는 기어간다. 이미 부르튼 손가락으로 돌바닥을 기어, 자신이 아침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이부자리를 향해 기는 것이다. 유일하게 안식을 주는 잠을 향해, 아니, 어쩌면 죽음을 향해 기어 가는 것이다. 그런 그를 어떤 발 하나가 막아선다. 그를 걷어차는 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로 그러하던가?

 

알 수 없다.

 

콰지모도는 고개를 숙인다. 어찔어찔한 정신이 저 절벽 같은 종탑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깊은 심연 속으로, 누군가에게는 지상일 곳으로. 그러나 그리도 높은 곳에 자리한 사람이 떨어질 곳은 지상일지라도 심연인 것이다. 검은 빛 수사복 자락이 펄럭인다. 밤하늘 아래, 그는 기이한 목소리를 듣는다. 네가 예수라도 된 것 같으냐? 콰지모도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인다. 눈가에 옷자락이 스칠 때, 그는 머리를 쥐어뜯는다. 다시, 이부자리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가며 그는 눈을 들지 않으려 애쓴다. 사십 일 간의 자발적 고행. 그러나 그것은 어떤 고귀함을 위한 것이 아닐진대. 그는 환각을 본다. 자신이 만들어낸 분노에 찬 환각이다. 누군가의 모습을 하고서 나타내어지는, 너무도 생생한 광경.

 

그가 울부짖는다. 종지기 콰지모도의 굳어 버린 성대 근육이 익숙한 습관을 향해 기어가려 한다. 대신 그는 몸을 움직인다. 뻣뻣하게 굳은 관절과 손가락으로 기어간다. 말은 자꾸만 소리가 되어 흘러나오려 한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굽실대며 애원하던 그 때처럼. 마치 줄에 묶인 개처럼 충성하고자 하는 그 습관이 여기 실존하는 것이다. 콰지모도가 기어가는 것은 존재를 움직여 그것에 저항하고자 하는 필사적 꿈틀댐이었다. 사람의 말이 아닌 소리로, 그는 자신에게서 새어나오려 하는 모든 속죄를 틀어막는다. 그것은 그 환각을, 그 대상을 향해야 하는 말이 아니다. 다시 그가 머리를 바닥에 찧는다. 손끝에 이부자리가 잡히고, 그는 너덜거리는 담요를 끌어안은 채 입 안으로 마구 밀어 넣는다. 어둠 속 마구 흔들리는 샹들리에의 불빛처럼 콰지모도의 눈앞이 점멸한다. 깜빡, 깜빡. 그가 몸을 돌려 꽉 틀어막혀 잘 짜인 돌 천장을 마주했을 때. 수사복 자락은 사라진다.

 

그럴 때면 숨 쉬는 일조차 괴롭다. 헐떡이는 꼽추에게는 공기를 마시는 일 조차 힘이 드는 것이다. 그는 몸을 굴렸다. 어지럼증과 귓가의 이명이 뒤틀린 두개골을 마치 고문 도구처럼 꽉 죄어드는 탓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만히 누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힘에 겨운 육체를 움직인다. 사십 일에 한 번, 예수는 광야에서 사탄을 만났다더라. 콰지모도 또한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아니고, 그가 죽인 그 대상 또한 사탄이 아닐진대. 어찌하여 콰지모도는 자신의 주인이자 악마 같은 성정으로 모든 것을 망가뜨려 버린 그것의 조각들을 보는가. 그 과정이 너무도 괴로워 콰지모도는 가끔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괴물의 소리는 오직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콰지모도의 목에 걸려 있던 목줄은 이제 교수대의 밧줄이 되어 그를 죄어 대고 있었다. 그 고행의 과정을 견디어 내는 정신의 불쌍함을 상상해 보라.

 

그렇게 사십 일이 지나고 나면, 그는 빵껍질을 씹어 삼켰다. 종을 칠 때가 되면, 그는 몸을 움직였다. 종지기 주변의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돌은 어머니의 뼈요, 나무는 형제들의 시체라. 죽은 돌의 영혼이 녹아 철이 되고 납이 되었으니. 한 때 그에게 삶의 장소였던 노트르담은 이제 죽음 위에 지어진 건물이 되었다. 그 돌 위에 꼽추라는 어떤 불행한 바위 하나가 더 얹어진다고 하여 그 누가 알랴.

 

 

3.

고행苦行은 필연적으로 열반涅槃을 위한 것이라.

 

저 바다 건너의 나라에는 탑에 죄수를 가둔다. 그것은 무시무시하기로 악명 높은 감옥이요, 무고한 자들의 묏자리다. 콰지모도는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종탑을 감옥이자 묏자리로 만들었다. 이전에도 그는 두문불출하여 여러 소문을 불러들였으나, 이제 사람들은 불길함 대신 공포로 종탑을 대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종탑, 어디선가 풍기는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울리는 종들. 그것은 숫제 그들을 압도하는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때의 노트르담 주민들은 한 면으로는 지나치게 잔인해서, 그들은 비린내를 맡고 당연스레 죽음을 떠올렸다. 그러니 그 광경을 상상해 보라. 분명 죽음이 있는 것 같은 저 종탑이 때마다 종소리를 울리며 자신의 살아 있음을 건재히 퍼뜨리는 광경을. 누군가는 습관처럼 종소리를 들으며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지켜 달라는 한층 이기적인 기도였으리라.

 

그날은 성聖 카타리나 축일이었다. 늘 그렇듯, 허공에는 새들이 맴돌고. 미사가 치러지는 노트르담 안에서는 한껏 경건함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합창단의 소리와 거대한 오르간의 소리가 함께 퍼져 나온다. 자!, 그 소리는 여전히 어떤 신호처럼 콰지모도의 귓전을 때린다. 그는 텅 빈 소리의 공간으로 달려간다. 허약해진 몸이 비틀댄다. 그럼에도 이 불쌍한 콰지모도가 버텨내는 이유는 오로지 그가 잘 훈련된 종지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종에 대한 애정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찬 겨울 공기가 구리쇠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나 종지기는 개의치 않고서, 의식을 치르듯 큰 마리를 어루만진다. 부르튼 손끝이 빨갛게 물든다.

 

“마리.” 하고, 그가 부른다. 목소리 또한 얼어붙어 있다. 그 즈음의 콰지모도는 종을 칠 때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멍한 설치류 짐승처럼 굴었다. 손끝이 종을 매만지다 말고 툭, 떨어져 나간다. 그 종은 어느 때에 울리던가? 가장 큰 마리는 결혼식 때에 울린다. 그날은 순결한 성녀 카타리나의 축일. 18살에 죽은 그 성인의 상징물은 바퀴와 칼이요, 또한 신비한 결혼반지일지니. 그가 예수와 결합하였다고 주장하듯 사람들은 그 날 서로가 서로와 결합하고 또한 하느님과 결합하여 기이한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주장하고자 애썼다. 그러니, 그날은 마리의 날이었던 것이다.

 

콰지모도는 능숙한 종지기다. 그는 평생 몸에 배인 것들을 내버리지 못한다. 그에게는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이 없으므로. 그래서 그는 밧줄에 매달린다. 도르래가 돌아가고, 큰 마리가 천천히 그 청동 몸체를 흔든다. 콰지모도는 눈을 질끈 감고 밧줄을 잡아당긴다. 그는 단 한 번도 종을 칠 때 눈을 감은 적이 없었다. 외눈으로 보기에도 아까운 광경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나, 지금 이 곱사등이에 외눈박이를 보라. 눈을 감은 채로, 온 힘을 다해 힘겹게 종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어금니가 갈리고 땀이 배어나오는 저 필사적 고행자의 꼴을 보라.

 

종이 마침내 제 자리를 찾아가, 마치 고삐 풀린 크레타의 황소처럼 날뛴다. 펄떡이며 뛰는 심장만큼이나 격렬하게 청동으로 된 몸체를 흔드는 것이다. 육중하게, 구리쇠 혀와 부딪혀 소리가 울린다. 저 멀리까지 퍼질 소리, 누군가의 결혼식을 축복하는 소리! 그리고 그 종 아래에는 콰지모도가 매달려 있다. 오로지 그 축복의 도구일 뿐인 불행한 꼽추.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불행한 꼽추, 그는 마리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한 애인으로 여길 만치 가까이 두고서 사랑했다. 그 종은 가고일처럼 침묵하지도, 노트르담처럼 굳건하지도 않았다. 큰 마리는 온 몸을 뒤떨며 울려 댔으며, 괴인 돌들이 떨리고 뼈대가 흔들릴 만큼 크게 움직였다. 콰지모도는 일순 그녀의 움직임에 이끌리듯, 밧줄을 놓고 그 곁으로 기어 올라간다. 턱에 다른 숨이 목구멍을 찢어놓는 것 같아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소리가 울린다. 평원의 일꾼들도 그 소리를 들으며 성호를 그을 수 있으리라. 거대한 청동 몸체가 아가리를 벌린다. 부딪힐 때마다 그것은 환희스럽게 아우성친다. 콰지모도는 귀와 정신을 멍하게 지배하는 종을 바라본다. 소리가 아니라 차라리 멍멍한 진동. 그는 발로 바닥을 구른다. 종은 정신없이 휘둘린다. 탑은 흔들리고, 종은 자신의 몸체를 때려 대고, 굉굉한 소리가 울린다! 콰지모도는 몸을 떤다. 사정없이 와들대는 제 몸체를 양 팔로 끌어안고서, 광란에 사로잡힌 것처럼 종을 노려본다. 그가 삶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인 종을 보는 것이다. 이 소리가 그에게 일깨우던 가장 강렬한 생生의 기운을 떠올리는 것이다.

 

콰지모도는 맹렬한 기세로 종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양 팔로 종을 붙잡는다. 양 무릎으로 종을 끌어안는다. 차가운 몸체가 서럽게 그를 찌르고 든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뒤꿈치로 바닥을 찬다. 온 몸으로 큰 마리를 몰아붙여 대는 것이다. 종이 더 세게, 더 크게 제 몸체를 때린다. 콰지모도는 그 위에 매달려 있다. 그는 구리쇠 혀가 종의 몸체를 치는 것을 그대로 받아내는 것이다. 뎅! 뎅! 뎅! 세 번, 그리고 한 번 더! 콰지모도는 고함을 지른다. 그것은 환희에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가 이끌어낸 절규일 것이다.

 

꼽추는 종을 붙잡고 뒤꿈치로 바닥을 밀기를 멈춘다. 그는 제 이마를 종 위에 짓찧는 것이다. 괴성이 흘러나온다. 종은 너무 거세게 울리고 있어, 콰지모도의 소리는 죄다 묻어버리고. 오직 그의 머리가 느끼는 차가운 청동과 뜨거운 고통의 감각만이 실재한다. 뎅! 뎅! 뎅! 뎅! 네 번, 그리고 두어 번 더! 콰지모도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만 고통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다. 그는 에스메랄다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죽음을! 차라리 죽음을! 육체와 정신이 짓눌리고 깎여나가는 슬픔 속에서 죽음이란 차라리 구원일진대. 그는 종을 끌어안은 채 운다. 그는 큰 마리를 진정으로 아꼈다. 허나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는 이름이 이미 그에게 있었던 것을.

 

에스메랄다! 그 어떤 종이 그 이름을 이길 수 있으랴. 종 위에 피가 묻어난다. 기어이 꼽추는 자신의 이마를 찢어낸 것이다. 비릿한 청동 위 더 비릿한 붉은 액체. 굴곡지고 울퉁불퉁한 얼굴 위로 작게 흘러내리는 그 생명의 액체. 콰지모도는 이마를 찧어대는 일을 멈춘다. 이제 종을 울리지 않아도 될 시간이다. 그는 천천히 찾아드는 큰 마리를 껴안고서, 강인한 팔에 힘을 준 채 고통에 찬 신음만을 흘려낸다. 종소리는 줄어들고, 시간을 따라 육체의 고통도 잦아든다. 종지기 콰지모도가 또 한 번 그의 책무를 다해낸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종이 움직임을 멈추자, 그는 헐떡대며 끌어안았던 것들을 놓는다. 온 몸이 얼얼하여 무감각에 가깝다시피 마비가 된다. 피부도, 손끝도, 진동을 받아내던 어깨도, 바닥을 구르던 뒤꿈치도. 눈과 귀도. 콰지모도는 오른쪽 눈 위로 흘러내린 피를 손등으로 훔쳐내었다. 그는 그 피를 손에 쥐고서, 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다시, 외눈박이의 얼굴에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가 손을 뻗어 자신의 사랑하는 종, 큰 마리를 붙잡는다.

“미안해.” 콰지모도가 말한다. “미안해, 마리.” 말소리 끝에 울음의 떨림이 배어나온다. 그는 숫제 속죄하는 말투로 빈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요. 잘못했어. 그러니 나를 용서하지 말아.”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간다. 콰지모도는 이제 무릎을 꿇은 채, 굽어진 등이 완전히 그를 덮은 것처럼 보일 꼴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 한 손은 종 위에 얹은 채. 그는 절규한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나를 저주해주오! 그래도 좋으니 한 마디만 전할 수 있다면! 에스메랄다, 미안해요!” 마침내, 그 울음은 마땅한 주인을 찾아 울린다. 콰지모도의 절규. “에스메랄다, 에스메랄다!”

한참을 떨리던 종은 대답이 없다. 손 끝이 차갑게 식어들고, 종에 말라붙은 핏방울들이 갈라진다. 콰지모도는 그렇게 울었다. 그는 매번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그 자신의 결혼식을 상상해 보았었더랬다. 그러나 곧, 자신의 터무니없음에 질려 그만두곤 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종지기 콰지모도는 이제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할 것이었다.

꼽추가 몸을 일으킨다. 그는 눈물과 번진 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문질러 닦는다. 여전히, 짐승 같이 낮은 서러움과 죄책감이 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으나. 그는 그것들은 감히 뱉어내지 못한다. 다만, 절룩이는 걸음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다. 다시 자신의 은신처로. 무정형의 것들만이 가득한 그의 요새로. 이번에는 부디 잠 속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바라며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지 못하는 것은 또한 그가 노트르담 그 자체처럼, 그곳에 살아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종지기 콰지모도는 건물 안에 살아 있을 것이며, 그 안의 모든 기둥과 돌과 목재들이 그러하듯이, 영원히, 그러니까 죽어서도 그 안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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