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워다나즈 사망, 볼라디 배그렉 실종.
사망 소재 주의.
-이한 워다나즈 사망, 시신 수습 실패, 볼라디 배그렉 실종.
이게 무슨 일이냐?
오수 고나달테스는 드물게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라그린데 교수와 우레걸음 교수, 번개걸음 교수까지 갔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제국 동부 쪽에서 마취 물약에 들어가는 약초가 많이 발견되었다. 치유학파의 물약인 만큼 라그린테 교수가 확인하기로 했고, 연금술도 필요하니 우레걸음 교수가 동행하기로 했다. 바쁜 라그린데 교수가 일차적으로 확인 후 우레걸음 교수에게 인계를 마친 후 복귀하기로 했고, 그다음부터 우레걸음 교수가 수고해 줄 것이다. 더불어 빠른 탈것이 필요하니 번개걸음 교수가 함께해야 했다. 호위로는 당연스럽게도 배그렉 교수가 붙었다. 치유학파의 학생들과 연금술 학파의 학생들도 잡일 담당으로 같이 외출하기로 했다.
치유학파는 워낙 바쁘니 일부 인원만 차출되었고, 연금술 학파는 그다지 바쁘지 않으니 절반 정도의 학생이 선발되었다.
학생들의 통제는 두 학파의 수석을 모두 차지한 워다나즈가 맡았다.
“치유학파는 이쪽, 연금술은 이쪽으로. 가이난도. 넌 치유학파 소속으로 가는 거니 중간에 라그린데 교수님과 함께 복귀한다.”
“아, 아닌데? 나 딴 생각 안 했는데?”
“그래. 내가 무슨 말 했나?”
“아니……. 근데 복귀할 때 호위는 누가 맡아?”
“배그렉 교수님이. 탈주할 생각 하지 말도록.”
동부의 가을은 상당히 안전해 보였다. 남부 지방과 가까워서 그런지 여름이 지났음에도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한은 지금 숙소에서 살짝 떨어진 공터에서 잠시의 휴식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돌아가기 싫다는 가이난도를 배그렉 교수님 손에 들려 보냈으니 아마 하루 정도는 방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허튼짓하지 않도록 분신까지 세워두었으니, 오늘만큼은 괜찮겠지!
“몰아쳐라, 페르쿤트라의 벼락이여!”
안 괜찮군. 항상 긴장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이한이 급히 마법을 시전했다.
마령관이 후계자를 들였다는 것은 이제 제국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고나달테스의 후계는 15살에 이미 두각을 드러내 자격을 증명했고 17살인 지금은 대마법사로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을 실력이라고.
마법 범죄자와 반마법주의자, 악신숭배자들의 귀에도 워다나즈의 소문이 흘려들었다.
그들은 직감했다. 이한 워다나즈가 더 성장한다면 자신들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손을 잡았다.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만큼 평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아주 강력한 공동의 적이 있을 땐 아군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법.
마법 범죄자들은 아티팩트를 제작하고 반마법주의자들이 전략을 짰다. 악신숭배자들이 전위를 담당하고 마법 범죄자의 절반은 후방에서 지원을, 나머지 절반은 전방에서 대처를, 반마법주의자들이 좌우에서 워다나즈를 공격할 것이다. 고작 17살 난 소년 하나를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비웃겠지만, 대상이 그 소년이라면 전혀 과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당당했다.
에인로가드에 잠입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외부 임무를 나왔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거기에다 에인로가드의 임무에 거의 항상 대동하는 배그렉 가문의 전투 마법사와도 떨어질 때를 노려야 한다. 조건은 까다롭지만, 그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으므로, 그들은 인내했다.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단 한번뿐인 기회를 그들은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소음 차폐의 결계가 씌워졌다. 전투의 소리라도 들리면 친구들이나 교수님이 오겠건만! 어찌나 정성을 들였는지 쉽게 부서지지도 않는다. 마력을 모아 폭발시키면 부술 수야 있겠지만 제국 인구의 절반은 모인 듯 쏟아지는 적을 막으며 집중을 분산하는 건 쉽지 않았다.
‘좋아. 그럼 광역으로 폭발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워다나즈의 마력이 순식간에 응축하더니 공터와 그 주변의 숲을 날려버릴 듯 폭발했다. 공격을 위해 접근하던 적들이 마력에 휩쓸려 조각났다.
‘맞다. 약초!’
짧게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때다. 다시 결계가 씌워지기 시작했지만 잠깐의 틈을 벌었으니 괜찮다. 공중으로 솟구친 이한이 결계를 벗어나 마른 나무로 변환시킨 바닥으로 화염 덩어리들을 쏘아댔다. 불길이 치솟자, 적의 대열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한은 기다리지 않았다. 배그렉 교수님이 항상 말씀하시지 않았나. 수상하면 먼저 쳐라, 확인 사살은 중요하다. 적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공격을 멈추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후방에서 대기하던 적들은 계획을 뛰어넘는 워다나즈의 실력에 이를 악물었다. 공중을 날며 수옥탄에도 꺼지지 않는 불덩이들을 쏘아대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격하는 이 미친 전투 마법사를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배그렉 가문의 전투 마법사가 없어서 다행이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에겐 전투 마법사를 여러 번 상대해 온 전략가가 많았다.
순서에 맞게 쓰려고 준비해 온 아티팩트 전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저 마법사의 마력은 무한대라고 보아도 무방하지만 인간인 만큼 체력과 집중력의 한계는 분명하다. 전후좌우에서 성가신 공격을 끊임없이 날리면 모든 인간은 지치기 마련이다. 그들의 아티팩트가 차례로, 무작위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에인로가드로 지금 복귀한다! 다들 나오도록!”
“지금 당장 대피해라! 워다나즈는! 워다나즈는 어디 갔냐?”
우레걸음 교수와 번개걸음 교수가 학생들이 모인 숙소에 급히 들어와 외쳤다. 우레걸음은 불길한 마음에 워다나즈의 행방을 찾았지만 온데간데없었다. 아까 흘끗 봤을 땐 학생들 관리하나 싶더니만 분신이었냐! 그럼 이 녀석이 있을 만한 장소는 단 한 군데밖에 없지. 소리가 들리는 곳!
전투용 물약을 챙긴 우레걸음 교수가 공터를 향해 달렸다. 나무가 드문드문 뽑히거나 불타고 있고, 땅은 불규칙적으로 잔뜩 패여 있다. 누가 보아도 명확한 전투의 흔적에 우레걸음이 발을 재촉했다.
“워다나즈! 워다나즈, 거기 있냐!”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추락하기 직전 가까스로 물체가 멈췄다.
“워다나즈?”
“교수님?”
그 물체가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손짓으로 방어막을 만들어 내며 대답했다. 우레걸음이 물약을 던져 막을 강화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로 시야가 탁해졌으나 지혈할 시간이 없어 소매로 피를 대충 훔쳐냈다. 아주 작정을 하고 왔는지 집을 몇 채는 살 수 있을 만큼 비싼 스크롤과 시약을 망설임 없이 찢고 터뜨려 마법을 끝없이 무력화시킨다. 아무리 방어한다 한들 마법이 풀리자마자 사방에서 공격이 몰아치는데 한 번도 맞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배그렉 교수님은 언제 오십니까!”
“연락은 보내뒀다. 후퇴해라! 다른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지원군을 불러올 거다!”
“저놈들은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후퇴하면 다들 위험해집니다. 교수님, 배그랙 교수님이랑 교장 선생님 좀 빨리 불러와 주십시오!”
“아니, 너 지금 죽을 것 같다, 이 녀석아! 나도 있고 이모님도 있으니 피해라! 어떻게든 막아볼 수 있을 거다.”
이한이 지팡이를 휘둘러 방어막이 해지된 사이 날아든 포탄을 멀리 쳐냈다.
“저만 노리고 있으니 제가 이동하면 다들 위험해질 겁니다. 일단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 대피시킨 다음 돌아와서 도와주십시오! 빨리!”
“아니……. 그래도 되겠냐? 시간 안에 안 오면 일단 먼저 출발하라고는 해 뒀다만!”
“배그렉 교수님 오실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교수님, 빨리요!”
“아, 알겠다. 바로 돌아오마! 이 물약들도 갖고 있고!”
“왜 너만 돌아오냐?”
“워다나즈가 학생들 대피시키고 지원해 달랍니다! 제가 전투에 끼어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어차피 저놈들은 자기만 노리고 있으니까 자기가 후퇴하면 다들 몰려올 거라고…….”
“그렇다고 진짜 두고 오면 어떡하냐! 다른 학생들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일단 마을로 대피시키고 서둘러 돌아가자!”
“배그렉 교수에게서는 연락 왔습니까?”
“아직. 제대로 받았으면 연락할 틈도 없이 오는 중이겠지. 자, 근처 마을로 이동한다! 너희는 기사들과 협력해서 사람들을 인근 마을로 대피시키도록!”
“비상 상황이니 멋대로 이탈하지 말고! 여긴 에인로가드가 아니다!”
라그린데 교수와 치유학파 학생들을 에인로가드에 돌려놓고 파견지로 돌아가던 볼라디에게 종이새가 도착했다.
-반마법주의자, 마법 범죄자, 악신숭배자 다수 출현, 목표는 워다나즈, 빠른 복귀 요망.
볼라디 교수의 붉은 눈이 시뻘겋게 타올랐다. 3학년인 만큼 웬만한 전투에는 대응할 수 있도록 가르쳐 두었지만, 세 집단이 워다나즈 하나만을 노리고 공격하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터. 게다가 에인로가드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자신이 없을 때를 노릴 정도라면 준비도 치밀하게 했을 것이다. 볼라디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우레걸음과 번개걸음 교수가 볼라디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늦지는 않았나. 하늘에 광탄이 수십 발 떠오르더니 적을 향해 떨어졌다. 이어 바닥에 물이 깔리더니 얼어붙었다. 빙판이 지뢰처럼 여기저기서 폭발하며 적들을 연기와 함께 날려 보냈다.
잠깐의 시간을 번 볼라디가 혈액 시약을 과하리만치 들이키더니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유리병이 짓밟혀 으스러졌다.
“피아식별은 가능한 거겠죠?”
“모르겠는데……. 피해야 하나…?”
우레걸음과 번개걸음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볼라디는 아군과 적군을 정확히 구별하고 있었다. 붉은 선이 공중을 가르고 지나가자 적들의 머리가 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워다나즈는 어디에 있지.’
분노한 볼라디가 살기를 감추지 않은 채로 두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배, 배그렉 교수?”
“워다나즈는. 어디 있습니까.”
“어…….”
“그게 말이오…….”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우레걸음과 이마를 긁적이는 번개걸음이 우물거리며 말을 흐렸다. 기다리던 볼라디가 다급한 마음에 말을 끊고 마력 감지를 시도했다.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는 워다나즈의 마력이 불안감과 의아함을 동시에 불러왔다. 볼라디의 핏줄이 이마 위로 투둑 솟아났다. 그가 전투 복기를 위해 쓰던 마력의 역추적을 남아있는 마력의 잔향에 걸어 워다나즈의 마력이 끊긴 곳을 찾아냈다.
됐다. 볼라디가 고개를 휙 쳐들었다.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볼라디의 모습에 두 교수가 불안한 듯 그 뒤를 따랐다. 앞서가는 뱀파이어 마법사의 발에 부러진 뼈와 아티팩트의 잔해, 찢겨진 스크롤 등이 밟혀 산산이 조각났다. 그의 눈은 오로지 한 점만을 향하고 있었다.
“워다나즈?”
사체가 가득 쌓인 나무 뒤에 볼라디가 멈춰 섰다. 거추장스럽게 널브러진 시신들을 옆으로 던져버리던 볼라디의 손이 멈췄다.
번개걸음이 몸을 기울여 볼라디의 앞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선조의 수염이시여…….”
강력한 마법이 여러 개 새겨진 화살이 쓰러진 이한의 몸에 수십 발 꽂혀 있었다. 화살을 뽑아내자 피가 뿜어져 나오는 대신 주르르 흘렀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아 피가 돌지 않는다는 증거. 즉, 죽었다는 의미의 반응에 볼라디가 침묵했다. 미동도 없이 잠잠한 배그렉 교수의 모습에 불길함을 느낀 두 드워프 교수가 조심히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앉았던 볼라디가 휙 일어섰다. 그의 두 팔에는 이한이 들려있었다. 전투가 끝났음에도 살기가 가라앉지 않아 평소보다 훨씬 붉은 두 눈이 내리깔렸다. 지팡이도 영창도 없이 시전된 마법이 두 교수를 공격했다. 오로지 이한과 자신만을 제외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환된 악마가 얇은 종이처럼 찢겨 역소환되고 물약이 힘을 잃고 허물어졌다. 얼어붙은 물약이 다시 증발하며 폭발했다.
마법이 중첩되며 연기가 피어올라 시야를 어지럽혔다. 땅이 움푹움푹 패이고 흙이 까맣게 불타버렸다. 주변에 남아있던 적군의 시신은 갈가리 분쇄되어 가루로 변해 날아갔고 군데군데 뿌리를 내렸던 잡초들은 모두 뿌리가 뽑혀 온데간데없어졌다. 어두운 연기 속에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난사되던 마법이 잠잠히 가라앉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볼라디 배그렉이 마침내 조용해졌다.
“……. 진정한 건가?”
“끙…. 나가서 확인해 보죠.”
깊게 팬 땅굴 안에 들어가 필사적으로 방어막을 치고 버티던 탐험가와 연금술사가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잠잠해진 것을 보니 진정한 것 같기도 한데 설마 함정이라면. 하지만 배그렉 교수는 원래 냉정했으니 이 정도라면 진정했겠지. 워다나즈는 어쩌지? 정말 죽었나? 학생이?
두 드워프 교수가 굴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연기가 흩어져 몸을 숨길만한 곳은 더 없음에도 배그렉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배그렉 교수?”
“대답하십시오!”
“찾았냐?”
“아무 데도 없는데요?”
“설마 워다나즈도 없냐?”
“아무래도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
“…….”
“일단 교장 선생님에게 연락을 다시 보내야겠군.”
북부의 산맥. 너무나 험하고 추워 어떤 동물도, 사나운 몬스터도, 탐험가도 올 수 없는 오지의 높은 봉우리. 발자국 하나 없이 흰 눈으로 가득해 반사된 햇빛만으로 눈이 멀어버릴 듯한 절벽.
그곳에 볼라디 배그렉이 서 있었다. 그의 품에는 이한 워다나즈가 안겨 있다.
볼라디가 오른쪽 무릎을 꿇고 이한을 정결한 눈 위로 내려놓았다. 이한의 몸에서 흐르는 피가 눈에 붉게 스며든다. 볼라디의 눈물이 떨어져 붉게 물든 눈을 녹인다.
“너무 늦었군. 미안하다, 워다나즈.”
옆구리에 얌전히 달려있던 레이피어가 급하게 뽑혀 나와 자신을 녹슬게 할 마지막 검집으로 달려들었다.*
*《Romeo and Juliet》, William Shakespeare.
O, happy dagger! This is thy sheath; There rust, and let me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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