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접촉

박사팬텀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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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팬텀."

"난 여기에 있다."

박사는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비스트를 훈련시키는 것 같은 몸짓이다. 팬텀은 박사의 장갑 낀 손가락을 보았다가 페이스가드를 보고 다시 한번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다. 무슨 행동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 궁금함을 연극적으로 표현하는 몸짓이다. 박사는 그의 행동에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귀를 쓰다듬고 온 몸을 포옹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 욕구를 간신히 억누르고 요구하는 것은 그의 머리나 몸이 아니라 손이다.

"손 내밀어줘."

팬텀은 다시 한 번 박사의 손을 보다가 다가가거나 손을 그 위로 얹지 않고 조심스럽게 박사의 손 위 공중에 박사와 똑같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말 그대로 손을 내밀라고 해서 손을 내밀었다. 표면상으로는 박사의 말에 그대로 따랐다. 그 모습에 박사는 비실비실 새는 웃음을 막지 못하고 작게 어깨를 떤다. 역시나. 박사는 가죽 장갑 아래에 쌓인 얇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팬텀은 사귀기로 한 순간부터 어떻게든 은근하게 가리고 있지만 박사는 안다. 이건 전부 접촉을 하지 않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박사는 재빠르게 손을 위로 올렸다. 위에 겹쳐져야할 팬텀의 손이 순식간에 뒤로 쏙 빠진다. 고양이도 이보단 빠르지 않겠어. 박사는 다시금 팬텀의 손을 노리고 손을 움직였지만 팬텀이 그보다 더 빠르게 손을 망토뒤로 숨겨버렸다.

"박사?"

팬텀은 여전히 모른척 하고 고개를 기울인다. 박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표현한다. 정말 귀엽네. 차라리 귀를 노려볼까 하지만 박사의 눈빛이 닿자마자 귀는 슬쩍 뒤로 넘어갔다. 팬텀은 눈치가 빠르다. 암살자인 이상 타인의 기척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모른 척 아닌 척 하면서 은근하게 거리를 둔단 말이지. 박사는 팬텀이 왜 스킨십을 극도로 피하는지 모른다. 둘은 사귄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키스는 커녕 손조차도 잡아보지 못했다. 왤까? 박사는 강한 호기심과 의문을 느꼈다. 그리고 탐구하고 싶고 스스로 알아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이렇게 은근하게 숨기는 이상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게 뻔하다. 결국 박사는 슬그머니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준비한 서류를 내밀었다. 일부러 모아둔 부피가 많고 무거운 것들.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벅찰 정도의 양이다. 박사는 반은 자신이 들고 반은 팬텀에게 주었다. 순식간의 팬텀의 양손이 종이에 묶인다. 그대로 손목을 노려도 좋겠지만 팬텀은 능숙하게 아츠를 부릴 줄 알지. 그의 생각과 의식을 흔들어야 한다. 박사는 한 발자국 움직여 사무실 내의 책장으로 먼저 이동했다.

"팬텀."

"무슨 일이지?"

방금 전까지의 탐색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팬텀은 답한다. 박사는 앞서서 한 걸음 걷다가 책장에 다가가기도 전에 빙그르 돌았다. 그리고 의아한 연기를 하는 팬텀을 바라본다.

"스킨십 한 번만 하자. 응?"

스킨십 이란 말에 팬텀의 눈이 강하게 흔들렸다. 박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들었던 종이를 바닥에 다 쏟아내고 그대로 팬텀의 손목을 낚아챈다. 박사의 행동에 팬텀의 손에서도 종이가 떨어져 공기의 흐름을 타고 마구잡이로 흩날린다. 겨우 잡았다. 박사는 손아귀에 쥐인 손목을 아주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팬텀의 얼굴과 눈동자를 주의깊게 살펴본다. 왜야? 왜 나를 피해? 팬텀. 이유를 알려줘.

"아..."

탄식같은 소리와 함께 종이 너머로 박사는 주변을 어지럽게 살피는 동공을 보았다. 세로로 길게 째졌던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되어 검게 물든다. 정말로 고양이 같네. 감상은 아주 짧았다.


허억허억 과한 호흡이 반복된다. 얼굴을 창백하게 질렸고 두통 때문에 미간은 이미 잔뜩 좁혀졌다. 기절이라도 할 것 같이 눈가는 바르르 떨리면서 조금씩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다. 커헉 헉 제대로 들이키지 못하는 숨이 기침으로 튀어나오다가 다시 들어키는 숨에 먹힌다. 과하게 부풀어오는 흉근은 나풀나풀거리는 천의 움직임을 더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바닥을 긁으며 기는 모습에 박사는 잡은 손목을 놓지도 못하고 나약하게 무너지는 팬텀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커흑..어흑."

"팬텀?!"

"쿨럭 헉윽.. 윽."

헛구역질과 함게 입가에서 타액이 흐르다가도 그마저 과한 호흡에 가로 막혀서 다시 숨과 함께 넘어간다. 한 손으로 바닥을 쥐다가 목을 쥐려는 모습에 박사는 다급하게 손목을 놓았다. 팬텀이 바닥에 온전히 엎어졌다. 목을 쥐고 계속해서 기침과 숨을 반복한다. 박사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쩔줄 몰랐다. 그저... 그저 피하려는 팬텀의 손을 잡았을 뿐인데. 장갑 너머로 체온을 느낄 수조차 없는 아주 잠시간의 접촉일 뿐인데. 하지만 왜? 갑자기? 이렇게 까지 발작을?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그의 손목을 잡은 걸로 인해서 과호흡이 유발된게 분명하다. 박사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어났다. 일단 팬텀과 멀어져야한다. 그래야. 그래야 그가 진정할 수 있다. 박사가 한발짝 물러나자 팬텀의 몸의 떨림이 크게 줄어든다. 목구멍에서 쓴맛이 올라오는 것 같아 박사는 이를 꽉 깨물었다. 도와주지도 못하고 어지럽게 눈동자를 굴린다.

"먀아아..."

박사와 팬텀의 사이로 언제 사라지고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미스 크리스틴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그대로 팬텀의 목과 바닥사이로 유연하게 자리잡더니 등의 온기로 그를 받치고 꼬리로 뺨을 쓰다듬는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커헉...흑...우...으...하아..."

팬텀의 과한 호흡에 맞춰서 미스 크리스틴은 부드럽게 몸을 공글리고 팬텀의 얼굴을 몸으로 감쌌다. 박사가 하지 못한 스킨십을 마음껏 팬텀에게 퍼부어준다. 과하게 울렸던 팬텀의 호흡이 아주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과호흡을 막기위한 봉투도, 도구도 필요없다. 정말 일시적인 증상이구나. 박사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팬텀과 시선을 맞춘다. 여전히 동공은 확장되어있다. 그의 금안보다도 넓고 깊게 열린 검은 동공이 주변을 이리저리 살핀다. 박사는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방법따위 모른다. 하지만 팬텀은 그런 박사의 기척을 잡아내지 못한다. 그저 계속 계속 주변을 살필 뿐이다. 박사는 얌전히 팬텀을 관찰했다. 귀가 쫑긋 섰어. 그리고 방금은 방향이 바뀌었지. 그리고 다시금 뒤로 젖혀들었다가. 옆으로 이동해. 소리의 근원을 찾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소음을 내는 존재는 박사와 미스 크리스틴밖에 없다. 박사는 일부러 천천히 무릎으로 기어 팬텀에게 다가간다. 여전히 열린 그의 동공과 귀는 주변만을 살피지 박사를 찾아내지 못했다. 박사는 미스 크리스틴을 바라본다. 미스 크리스틴은 팬텀의 턱 아래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는 손을 내밀었다.

"다가오지 마!"

박사가 그녀의 허락을 받고 팬텀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팬텀이 강하게 외치며 온몸을 뒤로 당기며 넘어졌다. 그리고 박사를, 박사의 너머를 바라보고 혼란스러워 하다가 숨을 두어번 크게 들이킨다. 바닥의 종이와 망토가 어지럽게 풀럭거린다. 팬텀은 발바둥을 치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바닥을 발로 계속 밀칠 뿐이다. 멀리 아주 조금 더 멀리 박사에게 멀어지려고 애쓰는 팬텀의 몸 위로 미스 크리스틴이 올라간다. 그리고 목에 자리를 잡고 부드럽게 체온을 나누기 시작했다. 박사는 그 과정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먀아아."

고양이의 울음소리. 확장된 동공이 주변을 바라보다가 미스 크리스틴에게 고정된다. 분홍빛의 발바닥이 팬텀의 뺨을 누르고 두 가닥의 꼬리가 머리를 툭툭 두드린다.

"메우웅."

꾹꾹 누르는 힘이 강해진다. 팬텀의 동공이 아주 조금 줄어들었다. 바닥을 짚었던 손이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올려지고 몇 번의 헛손질 후에 장갑을 벗은 맨손이 미스 크리스틴을 더듬는다. 따스한 온도에 온몸의 떨림이 조금씩 조금씩 안정되어 간다. 그리고 강하게 그녀의 몸을 움켜쥔다. 그 모습에서 박사는 팬텀이 미스 크리스틴을 지키기 위해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박사는 미스 크리스틴의 경계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약간은 슬프지만 객관적으로 미스 크리스틴이랑 박사가 육체적으로 대결을 한다면 박사가 질 수도 있었으니까. 박사는 육체적으로 누군가를 위협할 존재가 아니다. 팬텀은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확장된 동공은 반쯤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평소처럼 세로로 갈라진 형태는 아니야. 아마 동공안으로 침투하는 빛 때문에 사물의 분간이 잘 안될테지. 박사는 천천히 몸에 걸친 옷가지들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팬텀은 지금 환각을 보고 있다.

박사는 겉옷과 페이스가드 장갑을 바닥으로 털어트린 후에 흰 옷가지 위의 끈을 천천히 풀었다. 이렇게까지 어지럽게 움직이는데 팬텀은 주변을 살피고 박사의 기척을 읽지 못하며 여전히 미스 크리스틴을 지키려고 한다. 서서히 맞춰가는 조각. 팬텀이 보는 환각은 촉각을 동반한다. 그 촉각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구분 할 수가 없으니까, 타인을 만지지 않는 것으로 현실과 환각의 촉각을 구분하고 있는 거겠지. 팬텀이 느끼는 환각의 이유는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렵다. 박사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상의를 마저 탈의하고 으슬으슬하게 드러난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미스 크리스틴이 박사를 바라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 박사는 작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스킨십을 두려워하고 촉각을 두려워하는데 팬텀은 미스 크리스틴을 만질 수 있다. 그리고 미스 크리스틴은 팬텀을 안정시킬 수 있다.

"팬텀."

박사는 팬텀을 부른다. 열린 동공이 박사를 바라본다. 양팔을 벌린 박사를 보고 미스 크리스틴은 조심스럽게 폴짝 뛰어 팬텀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녀를 잃은 팬텀이 순간적으로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박사는 그틈을 놓치지 않고 맨몸으로 팬텀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으..아...!!"

신음같은 비명과 같이 몸이 엄청나게 들썩인다. 박사는 힘껏 팬텀을 끌어안고 그게 벗어나지 못하도록 꽈악 힘을 주었다. 미스 크리스틴, 그녀와 박사는 다르다. 그녀가 하는 방식을 박사가 한다고 해서 팬텀에게 통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팬텀은 헛손질을 하면서까지 장갑을 벗었어. 미스 크리스틴은 팬텀의 드러난 피부, 얼굴과 목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렇다면 그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는 굉장히 줄어든다. 접촉과 감촉 어쩌면 온도. 그리고 맨살과 맨살이 부딪혀야 그를 안정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팬텀이 극단에서 겪은 일들을 일부 이해 할 수 있다면... 박사는 그의 뺨을 왼쪽 가슴에 꾹 누르고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니지?"

정말 놀랄만큼 버둥거리던 몸이 멈췄다. 정답이군. 박사는 그대로 팬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연신 속삭인다.

"나 안죽었어. 나 살아있어. 만져봐. 따뜻하고 말랑해. 썩 폭신하진 않겠지만."

허공을 헤매던 팬텀의 맨손이 박사의 등을 잡고 매우 느리게 천천히 움직였다. 맨살과 맨살의 접촉. 긴장감에 식은땀이 배여 차갑게 식어버려린 손바닥이 박사의 등을 집고 천천히 형태를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쓰다듬는다. 박사의 체온이 천천히 손바닥으로 스며든다. 박사는 차가움에 몸을 떨면서도 어떻게서든 팬텀과의 접촉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더 떨어지지 않도록. 강하게 붙잡을 수 있도록.

"박사... 박사. 박사.박사 박사박사."

팬텀이 웅얼웅얼 박사의 품에서 계속해서 그를 부른다. 박사는 응. 나 여기있어. 그래. 괜찮아. 나 살아있어. 안 죽었어. 안 차가워. 안 굳었어. 계속계속 말을 건낸다.

"내 심장소리 들리지?"

당황과 놀람으로 강하게 뛰는 심장박동소리. 분명 들리고 있겠지. 팬텀의 아귀힘이 강해지더니 강하게 박사를 끌어안았다.

"들려. 잘 들려. 드럼같은... 울림이..."

박사는 팬텀이 심장 소리에 집중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천천히 호흡했다. 방금 전에 과하게 놀라고 움직인 탓에 박사도 자신의 심장을 귓가에서 어렴풋하게 들을 수 있다. 둥둥둥둥 울리는 울림.

"...박자가 조금 빠른데..."

하하 박사는 마른웃음을 지었다. 누구탓일까. 누가 지금 내 심장을 이렇게 두드린걸까.

"연주자가 누굴거 같아?"

팬텀은 침묵한다. 박사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품에서 때어냈다. 이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듯 팬텀의 손이 다급하게 박사의 손을 쥐고 얼굴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양껏 문지르기 시작했다. 살갗과 살갗이 서로 비벼진다.

동공크기 안정되었고, 떨림 안정되었고, 근육은 아직 긴장중이군. 박사는 팬텀의 눈동자가 자신의 뒤를 향하는 것을 안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뒤에 있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환각이 박사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건 오직 그의 눈에만 보이는 방해물이다. 박사는 팬텀의 뺨을 강하게 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입술을 깨물고 그의 시야에 자신이 가득 차도록 만든다.

"괜찮아. 이젠 나밖에 안보여."

작은 속살거림. 팬텀의 몸의 긴장이 부드럽게 풀린다. 박사는 느리게 천천히 그의 입술을 다시금 깨물었다. 깜박임 하나 허용하지 못하고 검은 동공 속에 박사를 담아내는 팬텀. 그의 눈동자 안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박사는 미소짓는다.

"스킨십, 아니 키스 한 번만 하자. 응?"

"... ...두 번도 괜찮다."

침묵과 대답끝에 입술이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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