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 이번에는 제가 이겼습니다.

진혼기 NCP

雪月夜 by 보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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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영도의 사랑四廊 설영랑은 생전, 자비로운 마음씨를 지녀 무수한 생명을 도왔습니다. 또한 흉신이라는 누명에도 굴하지 않고 대재앙신을 퇴치하여 신국의 평화에 이바지했습니다….”

백언의 목소리가 백운선원의 사당 앞에서 울렸다.

상복을 입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맨 앞줄에 서 있던 서검과, 무원, 화운도 표정을 딱딱히 굳힌 채 유골함과 위패를 바라봤다.

*

그날은 겨울의 초입이었다.

백송월은 사벌주로 가는 중이었다. 1년 전의 어느 날부터, 서라벌의 초옥으로 보내는 편지가 빈번히 돌아왔다. 심부름을 나선 낭도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기이한 안개가 막아서고 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백호영도, 아니 화랑도는 설영의 초혼이 어떤 경지에 이르러 방해해선 안 되는 순간이라고 여겼다. 조만간 반가운 소식을 들고 찾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어제, 편지 심부름을 보냈던 낭도는 구깃구깃한 종이 하나를 잡고 선도산의 백운선원을 부술 듯이 들어왔다.

그 아이가 말하길 초옥 근처를 둘러쌌던 안개가 사라져 다가가 보니, 문 앞에 이런 것이 놓여있어 섬뜩한 기분에 즉시 문을 열려 해 보았지만, 문은 굳세게 잠겨 열리지 않았고 외부로 향했던 창문도 모조리 닫혀있었다고 한다.

백언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품위도 잊고 거칠게 편지를 찢어 내용을 확인했다.

‘저는 잘 있습니다. 반드시 찾아내서 데려갈 테니 기다리는 계세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지 않습니까?’

본래도 달필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단정한 편에 속했던 설영의 글씨가 흔들렸다.

‘…그리고 슬퍼하지 마세요.’

먹이 묻은 자국을 보면 무척 오래된 편지 같았다. 설영의 형제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큰 바위가 연달아 늘어섰고, 나무가 우거진 곳. 평평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험준한 산길 어딘가에 설영의 초옥이 있다. 세 사람은 수행하는 낭도와 화랑도 없이 이곳까지 말을 타고 달려왔다.

초옥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풍파에 조금 더 낡았을 뿐. 영기에 민감한 화랑들은 즉시 알아차렸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끌어당기는 듯한 영기의 운용이 사라졌다는 것을.

백언은 즉시 문을 밀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힘주어 밀자 그제야 삐거덕 소리를 내며 묵직하게 열렸다. 작은 방 한 칸의 오랜만에 햇볕이 쏟아졌다.

천장에는 금척이 매달려 있었으며, 오른편에 놓인 작은 서안 위에는 ‘설영’이라는 이름이 적힌 낡은 책력이 놓여있었다. 그 옆 상자에는 빼곡히 자신들이 보내던 편지들이 담겨있었다. 벽에는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듯한 피풍의가 한 벌 걸려있었다.

올 때마다 설영의 영력을 가져가고 있던 그 진법.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듯했다. 그 주위에 반듯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설영이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녹지 않는 눈꽃이 널려있었다. 백언은 말없이 설영에게 다가섰다. 설영의 몸은 이미 싸늘했다. 그러나 얼굴만큼은 눈 속의 태양처럼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뒤이어 송옥이 다가왔다. 설영의 이마를 짚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설영을 불렀다.

“설영아.”

효월은 문간에 털썩 앉으며 쾌활한 소리를 냈다.

“이놈아, 막내야. 응? 눈 좀 떠보거라. 형님들이 왔는데 잠들어 있다니.”

“대랑. 제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모양입니다.”

“설영아.”

널린 초혼부들이 그간의 생활을 짐작게 했다. 봉인된 미타의 무덤을 건드린 대가. 두 사람을 깊은 구덩이 속으로 밀었다.

하지만…. 설영의 마지막은 쓸쓸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지금까지 설영이 구했던 영혼들이 그들을 행복한 세상으로 인도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쓸었다. 눈꽃의 차가움이 손끝에 닿았다가 사라졌다. 주변의 눈꽃이 퍼진 걸 보면…. 삼천세계 어딘가 두 사람만의 설원으로 갔을 것이다.

“이제 그런 건 안 해도 된단다.”

백언은 딱딱하게 굳은 설영을 품에 끌어안고 울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진을 부수고 뛰어 들어갔으면 막을 수 있었을까.’

백언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그만둘 설영이 아니었다. 이미 영혼에 새겨진 운명을 거슬러 가로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림자影는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 때마침 눈이 내리네요.

마냥 헛된 미련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상선, 이번에는 제가 이겼습니다. 

어째 저는 내기 하나 제대로 질 줄 모르네요. 

하지만 저는 제 안에서 안식처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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