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접시
코코룬은 느리게 눈을 떴다. 오, 휘황찬란하군. 거대한 샹들리에가 낯선 천장에 박혀있었다. 삶의 역사를 되짚어보건데 처음보는 화려함의 극치다.
생각보다 구실은 못하는지 시야는 어두웠다. 얼굴에 어룽거리는 빛은 마치 느지막한 밤중에 잠에서 깬 기분을 들게했다. 잠결을 닮은 얇은 웃음소리가 나지막히 울렸다.
[이런. 인간은 무척 말랑하다는걸 잊어버렸네. 기억이 날아갔으려나.]
울림. 그것은 소리보다 울림에 가까웠다. 귀를 통해 고막을 타고 들어오기보단 머릿속에 잉크를 풀어둔 느낌이었다. 코코룬은 소리를 따라 몸을 일으키다 미묘하게 빛을 발하는 풍경에 잠시 말을 잃었다. 샹들리에로도 기가 막히던 돈지랄이 거대한 방안에 가득했다.
이곳은 마치 식사를 기다리는 어느 귀족가의 식당같았다. 검은 커튼, 붉은 카페트 바닥, 방 한가운데를 차지한 기다란 식탁, 곳곳에 놓여진 촛불, 단 하나뿐인 의자.
그러나 코코룬이 살아왔던 세계와는 동떨어진 이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양식들. 말로는 잡아내기 어려운 본능적인 불편함. 불순물 섞인 공기층이 방 안을 눌러왔다.
[아. 이 모습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겠어.]
여전히 인기척은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민간인이 아니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해보았으나 답은 알 수 없었다. 어느 시야에서도 볼 수 없었으니 코코룬은 뒤를 돌았다.
그것은 라라펠의 형상을 띄고있었다. 짙은 초록빛의 머리와 눈. 샹들리에의 빛조차 삼켜버리는 깊은 숲의 색. 정장까치 갖춰입은 그가 눈을 맞추고는 코코룬에게 작게 인사했다. 그것은 코코룬이 알고있는 귀족식 예법으로 보였으나, 코코룬이 알아오던 어느 것과도 비슷하지않았다. 같은 정의로 쓰일 뿐, 본적 없는 몸짓이다. 마주 인사를 할까싶었으나 코코룬은 본론을 물었다.
“절 데려온 이유가 뭐죠?”
낯선 천장에서 눈을 떴으니 당연히 납치겠고, 마지막으로 기억나는건... 오늘 아침 메뉴인 크림스튜를 준비하며 물을 끓이려 냄비에 불을 올려뒀다는 것. ...누군가 껐겠지. 쨌든, 한두명도 아니고 열여덟이나 되는 머릿수다. 굳이 저를 골라온 이유라면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 설마 실수는 아니겠고. 제일 약해서? 위즐이 더 약하지 않나. 그나마 가장 그럴싸한건…
“요리를 해주겠어?”
역시나다. 코코룬은 짧게 고민했다. 저 존재는 제 앞의 라라펠이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뽑기는 잘 뽑아도 운은 없군. 저 돈지랄이면 각국의 유명한 요리사를 초청할 것이지, 굳이 외딴 커르다스 서부고지에 처박힌 절 찾아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딱,
생각을 끊어내듯 눈앞의 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어느순간 코코룬의 앞에서는 부대집 부엌이 존재했다. 코코룬이 자주 사용하던 화덕과 도구들, 선반들.. 재료는 두는 기다란 탁자. 마치 요리를 시작하기 전처럼 탁자 위엔 재료들이 올려져있었다. 그것을 ‘재료’라고 인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좀 낯설지? 이걸 인간들의 언어로는…으음.”
마치 수없이 짓밟혀 제 색을 잃어버린 젤리같이, 그것은 축축하고 질척하며…불쾌했다.
“공포.”
공포라고 부르던걸.
말갗게 웃은 라라펠의 형상이 익숙한 단어를 전했다. 공포. 그럼에도 낯설게 다가오는 단어를 혀로 굴렸다. 그러니까 저걸 요리하라고. 코코룬은 말없이 눈만 깜박였다.
...아무래도 맛은 상관없겠군.
맛의 여부가 필요치않다면 어쨌든 안심이다.
“나의 부탁은 간단해. 그것, 공포를 이용해 정찬을 차려줘. 오늘밤 그분을 위한 만찬이 열릴 예정이거든.”
“그분?”
“들어도 알지는 모르겠으나 주인을 소개하는 것은 아랫것의 도리지.”
씨익 웃은 라라펠의 형상은 무대인사라도 하듯 손을 내밀었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마치 독백처럼 울렸다.
“세계의 순환에서 벗어난 것들은 저들끼리 무리를 이뤄, 고이고 고여가지. 그렇게 고여서 자기들만의 순환을 만들어. 우리는 그것을 늪이라 칭하지.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늪의 주인, 혹은 이단자라 불리는 것들의 아버지… 하하, 전혀 이해를 못한 얼굴이네. 너희의 지식과 영혼을 고려해서 말한건데 말이야.”
그다지 기대는 없었단 얼굴로, 그는 어깨를 으쓱댔다. 코코룬은 이해못할 것은 내버려두고 접시 안을 흘긋댔다.
“이걸 요리하는 것에 의미가 있나요?”
“오, 물론. 안타깝게도 이걸 대체할 인간의 언어가 없네. 아아, 그래...”
맛을 보겠어?
어느새 탁자 앞에 선 그가 코코룬을 향해 접시를 밀었다. 반동으로 접시 안의 그것, 공포가 끈적한 물결을 일으키곤 이내 잠잠해졌다. 맛이라니. 맛이 느껴지는건가. 접시 안을 내려다본들 시각적으로 가늠하자면 절대 ‘맛있다.‘라는 감상은 나올 수 없는 생김새다.
뚜렷한 방안이 없다. 코코룬은 스푼을 쥐었다. 공포라 불리우는 것을 떠낸다. 질감과 달리 그것은 마치 푸딩처럼 부드럽게 뜨여졌다.
어떤 세계는 숟가락에 감정을 담아내는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입을 열었다. 검은 덩어리가 혓바닥 위로 미끄러졌다.
아.
방의 주인이 감탄을 뱉었다. 흥미와 희락이 말간 낯 위로 어렸다. 여태까지 데려왔던 인간들은 모두 공포를 맛보고는 정신이 나가버렸다.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넘어가 장을 통하는, 몸의 곳곳에 스며드는 직접적인 공포를 감당해내기에 인간의 정신은 무척이나 얄팍했다. 요리를 기대하기는 커녕, 금새 죽어버리고 말았지.
이번이라고 다르겠나 여겼으나 그럼에도 행한 것은 오로지 여흥이다. 인간을 ’감정의 덩어리‘가 아니라 생명체로 마주할 기회는 몇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저 작은 인간은, 덧붙이기엔 나열할 수 없는 감각들이 차올라 그는 뱉어냈다.
“그대, 이것의 맛을 느꼈어?”
그는 태어나길 인간의 감정에 무척 예민했으며, 수많은 인간들을 거쳐 그들의 희노애락을 맛보았으나, 눈 앞의 인간이 보이는 색색의 감정들을 정의할 수 없었다. 다채롭다. 다채로웠다. 희열과 허무, 갈망과 해방, 무지와 깨달음. 수많은 감정들이 불꽃처럼 피어났다 사그라들었다. 이름을 붙이기엔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폭죽같은 순간순간이 여명처럼 지나가고, 마침내 황금색의 눈동자가 그를 마주했을 때, 그는 아주 강렬한 감정, 나아가 영혼을 느꼈다.
“그대는 아주 오래도록 이를 갈망했구나.”
그가 훗날 되새기길, 그날 데려온 것은 요리사가 아니라 예술가에 가까웠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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