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접시
불은 여전히도 숨을 죄여왔다. 남들에 비해 배는 호흡이 힘들 일호가 마른 기침을 한번 뱉어냄으로써 주의를 모았다.
“자.. 작전은 다들 숙지했지? 바람을 막는건 우리 위즐의 특급에테르병을 맛본 총무가 할거고, 베넬리와 로로미야가 맞불을 놓는다. 하네코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보호막을 걸거고. 나머지는 건질 수 있는걸 건지고, 2층에 불이 번지는걸 최대한 막는다.”
“응..”
“제일 중요한건 모두 무사한거야~ 건물 무너질거같으면 바로 말해. 무무카.”
“알았다.”
그럼 시작해보자고.
일호의 신호에 거대한 에테르 흐름이 움직였다. 자연이 만들어낸 바람과는 다른 감각의 순환.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가 에테르의 흐름에 방향을 꺽고 원을 그렸다. 수십의 계산식과 연산이 허공을 수놓고, 법칙 속에서 에테르가 재배열된다. 바람이 뭉개진다. 녹색의 소환수가 공기를 밀어내며 날개를 펼쳤다.
팔랑-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지극히 정적으로 울렸다. 하네코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보호막을 걸었다. 소환수 주위로 뭉치는 에테르에 피부가 쭈볏댔다. 스치기라도 하면 살이 찢겨나갈 공기다. 녹색의 소환수가 제자리를 빙글 돌아 바람을 일으켰다. 들이닥치는 눈바람에 정통으로 맞부딪힌 공기. 형태없는 것들이 소리없이 충돌했다. 순간 고막이 기이하게 울었다.
“윽..”
“지금!”
그리고 바람이 멎었다. 가시지않는 울림 사이로 일호의 목소리가 스쳤다. 다시한번 목덜미가 움찔거리며 거대한 에테르의 흐름을 눈치챘다.
붉은 빛이 번뜩이는 지팡이와 세검. 에테르의 발화. 불이 말그대로 터져나갔다.
“불조절 해~! 부대집 싹다 고칠 셈이야?”
“뜻대로 되는데 아니라구요!”
“부셔본적 밖에 없어서 모르겠네요?”
마룻바닥에 붙은 불길이 금새 부피를 키웠다. 불과 불이 맞붙는다. 두 마법사의 턱을 타고 더운 땀방울이 떨어지다 산화되었다.
“안사그라드는데 저거?”
“무슨 불이...!”
쏟아지는 불덩이에도 부대집을 태워오는 불길은 멎을 생각을 하지않았다. 오히려 로로미야와 베넬리의 에테르를 집어삼키려는듯 덩치를 부풀려왔다.
“부족한가 본데요. 대체 어떤 에테르가 섞여서...”
“네코. 보호막 좀 걸어줄래? 론도한테도~”
어느새 베넬리와 로로미야 사이에 선 일호가 손을 풀고있었다. 장갑은 어디에 뒀는지 흉터 가득한 맨손이 수둔이 뭐였더라..하며 손가락을 꼼질댔다. 옆에는 평소에 들고다니던 무기와 달리 나무 지팡이를 쥔 론도도 함께였다.
“뭘 하시려고요?”
“설마 저 안으로 들어가게요?”
“그.. 그건 제가 아무리 보호막을 강하게 둘러도 위험해요...”
세 마법사가 저마다 한마디씩 꺼내놓았다. 듣는척도 안한 론도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바람이 얇게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다. 시험이었는지 금새 그쳤으나 상황을 파악한 세 마법사들의 표정이 나란히 굳었다.
“아무래도 로로미야가 봤다는 그 에테르 자체가 문제인거같단 말이지~ 최초로 불이 붙은 물건, 에테르도 거기 깃들어있을테고. 둘은 불길 그대로 유지해. 론도가 길 뚫으면 로로미야가 물건을 특정해주고~”
“저 불난리 속에 들어가겠다고요?”
“누가 가든 마찬가지인걸~”
평소와 같은 말투로 재잘거린 일호가 내 탈에 보호막 이중으론 못걸어?라며 네코에게 우는 소리를 했다. 그 그안에 하나 더 있잖아요! 무슨 소리야? 하나만 있을리가 없잖아~ 위즐의 에테르병 뚜껑을 따 입에 문 론도가 눈사람탈의 당근을 당겼다.
“보호막.”
“아... 네!”
“우우! 내 코! 우우! 내 당근!”
론도는 불의 코앞까지 와서야 눈사람코를 놓아주었다. 일호가 제 코를 더듬였다가 기겁했다. 얼마나 쎄게 쥐었는지 당근이 짜부라져있었다.
“너 이 코가 얼마나 귀한 코인데!”
“수둔이나 외워.”
훌쩍이는 와중에도 일호의 손이 인술을 그렸다. 론도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물줄기가 두 라라펠의 주변을 감싸며 녹빛의 바람과 섞였다. 녹빛 어린 물회오리가 주위를 감싸며 일렁댔다.
“방향.”
“12시요.”
론도의 말에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떠낸 로로미야가 방향을 집었다. 바람이 거세진다. 목적지가 명확해진 에테르가 불길을 향해 부딪혔다. 라라펠 하나가 지나갈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자자, 한번 더 봐달라고. 로로미야~"
불길 너머로 새까맣게 불이 붙은 부엌이 보였다. 화덕과 넓은 식탁.. 조리대... 항상 코코룬의 손길이 닿았던...
“코코룬씨가 보면 기절하겠네요... ... ...근데 코코룬씨가 있었나?”
“어...없...없었던거같은데요?!”
아련하게 불에 탄 부엌을 보던 베넬리가 문득 코코룬을 본지 까마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도 머릿수가 많아서...! 마찬가지인지 하네코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그러고 보니 코코룬씨가 안보였어!!! 론도는 질문대신 고개를 일호에게 향했다. 늦잠꾸러기 세명은 아직 모를 상황이지.
“-냄비에요.”
“일단 이거부터 해결하자고.”
윽... 로로미야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눈을 뗐다. 비틀거리며 제 눈가를 집었다. 순간 불길이 흔들린다. 겨우 뚫어둔 구멍이 일렁이며 좁아져갔다. 누가 먼저랄 것없이 론도와 일호의 발걸음이 박차올랐다. 그 틈새에서 겨우 주문을 마친 하네코가 두 라라펠에게 마지막 보호막을 걸었다.
“조.. 조심하세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불길 너머의 걱정어린 목소리들을 들은 일호가 킬킬대며 알았다고 외쳤다. 매캐하게 뿜어지는 연기에 목이 탔다. 산전수전이야 익숙하지만, 불은 싫다구~제 속소리를 들은건지 우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지체할 것이 없었다.
“자아, 역바람 차례야. 론도."
불길 속으로 들어간 두 라라펠의 등이 맞닿았다. 론도의 지팡이는 다가오는 불길을, 일호의 손은 불타오르는 냄비를 향했다.
“우리의 터를 되돌려받자고.”
각자의 에테르가 움직인다. 에테르를 들이킨 론도가 바람을 일으켰다. 일순간 주변의 불길이 사그라들자, 인술을 그려낸 일호의 손이 바닥을 짚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옅은 진심이 서렸다.
“어떤 놈인지 낯짝도 보고말이야.”
콰앙! 바닥부터 타고 들어간 불길이 냄비를 터트렸다. 그 여파인지 부대집 벽면이 함께 날아갔다. 어랏. 쎘나~ 일호는 문득 무무카의 비명이 들린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 착각이겠지~
“이자식아아아아아이고오오부대집아아아!!”
“누구 술없어? 할배한테 저러다 뒷목잡고 쓰러지겠어.”
“부대집이 걸레짝이 되었구려.”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말이죠.”
“뭐... 온실은 살았으니까.”
라라펠과 그들의 탈것들이 커르다스의 칼바람을 맞으며 옹기종이 모였다. 검댕 투성이가 된 일호와 론도에게 힐을 퍼붓던 하네코가 그들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에.. 에테르가 더는...”
“네코오오오!”
일호가 누운채로 네코의 이름만 울부짖었다. 그럴 기력조차 없는지 론도가 창백한 낯으로 숨만 헐떡였다. 한참 가방을 뒤적이다 마침내 원하는 물건을 꺼낸 위즐이 물약을 먹이고 나서야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았다.
“아아...콜록, 쨌든 불길은 잡혔으니... 모두에게 할 말이 있는데.”
연기를 들이마셨는지 가라앉은 목소리에 두어번 기침한 일호가 영차..몸을 일으켰다. 짜부러진 당근 끝이 불에 타 까맣게 변해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그건 일호뿐만 아니라 모두가 비슷한 상태였다. 불길 속을 뛰어다닌 이들은 물론이고, 에테르를 과하게 사용한 마법사들은 모조리 뻗어 눈밭 위에 누워서 숨만 골랐다.
“최소한의 구비만 하고 셋...아니 넷으로 나눠야겠네. 세세얀, 무무카, 울루카. 너흰 나랑 부대집 고치고, 나머진 셋으로 나뉘어서 림사 로민사, 그리다니아, 울다하로 조사를 나간다. 거부는 없어. 부탁이 아니라 대장으로써 하는 명령이거든.”
부대원들의 시선이 저마다 부딪혔다. 부대장은 론도씨가 아니었나? 뭐 그건 제쳐두고, 그가 이런 방식, 권력을 들이대며 명령권을 이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는 익숙한 혐오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보다 그들의 머릿속을 치고 들어온 생각은 단 하나였을 것이라 본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코코룬과 관련되었나요?”
리프넬리가 떨떠름한 낯으로 입을 열고 로로미야가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코코룬? 어, 그러고보니 코코룬은 어디갔어?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저마다 고개들을 빼곤 푸른 머리카락을 찾았다. 작은 머리통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빨빨 움직였다. 일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다시 시선들이 눈사람을 향했다.
“각국에서 요리사가 실종되었다가 사나흘만에 시체로 돌아온 사건이 발발중이야. 각 총사령부가 조사 중이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잠깐의 침묵. 그가 단지 의뢰차로 명령까지 들먹어가며 이 말을 꺼냈으리라 생각한 부대원은 없었다. 바람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참에 겨우 유리케가 입을 떼냈다.
“..그 사건과 코코룬이 사라진게 연관되어있다는 소리야?”
“그걸 이제부터 조사해오라는거야. 이슈가르드쪽은 아직 소식이 없지만, 그 첫타자가 코코룬일지도 모르지. 아마 가벼운 납치사건은 아닐거라 본다.”
표정없는 눈사람이 낮게 헛웃음을 내리뱉었다.
설마 내가 겨우 민간인 하나 납치된걸 흔적조차 못찾을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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