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을 위한 만찬

두 접시

수면속 by 영도
5
0
0

“집 안에 코코룬씨가 없는건 확실하죠.”

“응. 코코룬이 눈사람만큼 은신에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은 집에 없어.”

 

불은 이미 2층 제일 안쪽의 방 두어개를 집어삼키고 그 옆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울루카의 바람에 기세가 약하긴 했으나 완전히 막진 못했다. 불은 끊임없이 번지고 있었다.

 

“제일 안쪽은 이미 비었어요.”

“그 다음 방이라면…”

 

쿵소리와 함께 문을 부시며 복도로 세 라라펠이 굴러나왔다. 카난이 얇은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상대를 보호하며 구르느라 충격이 더한 탓이다.

 

“아야야… 이게 무슨 일이야.“

“살살 깨워…”

 

카난의 몸에서 빠져나온 리프넬리와 유리케가 아린 몸을 주물렀다. 어리둥절한 얼굴들이 상황을 알지 못한 빛이었으나 곧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에 표정들이 굳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론도씬 제가 맡죠. 옆방에 베넬리씨와 네코씨가 있을거에요. 셋이 가세요.“

“그럴필요 없을거같은데.”

 

작게 콜록인 카난이 아린 뺨을 닦아냈다. 쿵!! 네네레오가 막 들어서려던 방이 문채로 날려갔다. 몸을 피해서 망정이지 제대로 엊어맞았을 것이다. 녹빛의 보호막과 허공을 수놓은 별무리, 그리고 방금의 충격파를 만들어냈을 강한 에테르. 연기가 거칠게 걷혀갔다.

 

평소와 달리 굳은 얼굴의 베넬리와 손가락을 까닥여 별을 치워낸 론도, 창백한 낯으로 마도서를 끌어안은 하네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리리샨이 불길을 밀어내고 방에서 나왔다.

 

“제일 문제인 둘만 찾으면 되겠네요. 무무카씨라면 지하에 있을테고.. 일호씨가 어디있는지는 론도씨도 모르는거죠?”

“몰라. 지금까지도 안나타난거면 다른걸 수습중이겠지.“

 

2층의 인원들까지 밑으로 내려오자 금새 부대집이 바글바글해졌다. 이제 어떡해. 블리자쟈라도 날려요? 그랬다간 부대집이 무너질걸. 무무카쪽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는 하는데…

 

“아직도 안꺼졌어?!“

 

온실에서 온건지 풀투성이의 위즐이 기겁하며 외쳤다. 꺼지긴 커녕 아까보다 거세진 불길을 마법사들이 달려들어 겨우 막아내고만 있었다. 이 부대는 화재진압 장치도 안돼있..! 발작하며 외치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물줄기가 터졌다.

 

“아이고, 우리 벽난로! 아이고, 우리 카페트! 아이고, 카난 이불!”

“…”

“카난이 쓰러졌어! 선채로 기절해버렸다고!”

“시끄러워 죽겠다. 리프넬리.”

 

순식간에 부대 1층이 물로 젖어들었다. 부대원들이 쫄닦 젖은 꼴이 되었다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물에 담갔다 건져진 몰꼴로 나타난 무무카가 오만상을 구기며 불꺼진 담배를 입에서 질겅였다.

 

“할배! 동파된건 고쳤어?”

“화재진압장치가 있었…군요?”

“그러게. 목조건물이니 필요는 하겠지만… 별게 다 되어있네. 이 부대.”

“왜 진작 발동이 안된거야?”

“수도관이 동파됐대.“

 

인원이 많으니 한마디씩만 해도 시장통이다. 무무카는 어젯밤의 여파로 웅웅 울리는 머리를 꾹 눌렀다.

 

“부대 전체 수도관이 꽝꽝 얼어서 로로미야가 녹이고 있다. 코코룬이 아침마다 18인분 물이랑 불을 쓸텐데 이 녀석은 뭐하는거야? 안쓰면 이 사단이라고. 드디어 파업이라도 했대?”

 

보통은 부대원이 잠드는 밤부터 주 활동 시간대인 낮까지 동파장치를 해놓는게 맞으나, 새벽부터 일어난 코코룬이 18인분 식사를 준비하느라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사용했으니 낮까지 장치를 돌릴 필요가 없었다.

 

무무카는 굳이 에테르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 에너지 절약을 위해 새벽까지만 장치를 가동시켜놓았고, 코코룬은 꼬박꼬박 수도관을 동파시키지 않고 물을 끌어다 매일 식사를 준비했다. 요 며칠 상태가 안좋더니, 기어코 파업하는 상태까지 왔나. 무무카는 골치아픈 낯을 숨기지 않았다. 전부 고치려면 큰 공사가 될 것이다. 코코룬에게 맡겨둔 것도 문제긴 하다만… 진짜로 파업했냐?

 

“그보다 저거… 안 사그라든거 같은데.”

 

쭈볏 손을 든 유리케가 그대로 부엌 쪽을 가리켰다. 손가락 방향을 따라가면, 아까보단 진압되었으나 여전히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저거 왜… 안꺼지냐?”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일반적인 불이 아니라고.”

“뭐야 저거, 어떻게 꺼?”

 

그 사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던 물줄기가 멈췄다. 아, 멈췄다. 누군가 작게 중얼거리자마자 불길이 다시 거세졌다. 우아악! 대체 무슨 불이야 저게?

 

“아직도 안꺼졌소?”

 

옆구리에 로로미야를 낀채 들어온 사사도가 질렸다는 얼굴을 했다. 에테르가 부족한지 창백한 로로미야도 다시금 타오르는 불에 짜증어린 한숨을 뱉었다. 동시에 사사도를 밀어내곤 제 발로 섰다.

 

“에테르가 섞였내요. 그것도 아주 불순한…”

 

로로미야의 회색 눈동자 위로 붉은 불, 그 안에 섞인 검녹빛의 에테르가 잡혔다. 로로미야는 금방 눈을 떼 질끈 감았다. 오래 마주하기엔 좋지못한 에테르다.

 

“원하는걸 태울 때까지 멈추지 않을거같은데요. 물로는 안꺼질거예요.”

“원하는게 뭔데?”

“그을쎄에. 아무래도 우리 부대집이려나~?”

 

불쑥 튀어나온 눈사람 대가리가 말을 이은 것은 그때다.

 

“일호!”

“어머, 일찍히도 등장하셔라. 부대가 이 꼴이 되었는데 말이에요?”

“난 할 수 있는거 다했다. 눈사람. 수도관 고치기랑 부대집 수선은 당장 못해.”

“저 불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아주 시끌벅적 하구만~”

 

일호가 진정하라는듯 양 손을 뻗어 흔들었다. 새삼 마주한 그의 모습도 평소와 미묘히 달랐다. 뭐가 다르냐면… 넥타이? 거칠게 풀어낸건지 휑한 카라깃이 어수선했다.

 

"그래그래, 대충 상황은 알겠으니까… 자, 총무씨? 계산 좀 때려봐. 어디까지 잃는게 우리한테 득일지.“

 

낑낑거리며 에테르병을 열다 포기하고 늘어진 울루카가 시선을 치켰다. 저 친구, 애착모자는 어디에 뒀담! 후다닥 달려가 에테르 병을 깐 일호가 휘청이는 로로미야에게 병을 건넸다. 로로미야, 일단 마셔! 너 곧 쓰러지겠어! 내 에테르 병이거든? 내 에테르가 더 딸리거든? 울루카가 힘없이 으르렁대곤 시선을 멀리 던졌다. 아까와는 다른 빛의 수식이 연산되고 있었다. 혀를 짧게 찬 울루카가 짧게 일갈했다.

 

“부대집은 포기해. 2층은 살린데도 1층이 이래선 제 구실 못할거야. 그나마 온실은 남겠지.”

“뭐어?!"

“내 방... 내 침대...”

“그럼 우린 어디서 잔담. 농장친구들 사이에 낑겨야하나..”

“불을 끌 방법은?”

 

일호가 질문하며 손을 꼼지락댔다. 눈사람 장갑이 잘못 들어갔는지 엉거주춤 돌아갔다. 어지간히 급하게 왔군. 울루카는 저 완벽주의자가 흐트러질 정도로 다른 큰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했으나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손이 멈춘 불길이 몸을 부풀렸다. 진압은 무리다. 그렇다면...

 

“맞불. 부대집을 포기하겠다면 맞불을 놓는게 가장 확실해. 얼음이나 물 마법을 쓴다해도 꺼질거라는 확신이 없으니까.”

“맞불이라...~ 바람이 이렇게나 부는데 말이지~”

 

불길에 깨진 창으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바람이 제멋대로 불어쳤다. 불을 놓은들 아차하면 역으로 거세질 위험이 컸다.

 

“누군가는 바람을 제어하고 나머지가 불을 붙여야지.”

“우~ 내 풍둔은 나한테만 소용있어~”

“댁껀 바라지도 않아.”

“너무하네? 에테르병은 얼마나 있어~?”

 

일호의 말에 마법사들이 저마다 주머니를 뒤적였다. 두고왔다...! 홀쭉한 주머니를 짚은 하네코와 론도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돌아가기엔 늦었을거같은 제 방들만 흘긋 보고 말았다. 이는 베넬리도 마찬가지였다.

 

“한... 한병...!”

“아주 쓸모있겠네요.”

“위즐~?”

 

겨우 한병을 소매주머니에서 찾은 베넬리가 번쩍 에테르병을 들어올렸으나 그것도 먹다 남았는지 절반 채 없었다. 로로미야의 한심한 목소리를 뒤로, 눈사람 머리는 안절부절 불길만 보는 위즐을 향했다.

 

“뭐, 뭐야?”

“시중에 판매되는 것보다 효과좋은 에테르병이 있는걸로 아는데~?”

“뭐라구요?”

“어머.. 마법사가 이렇게 많은 부대에 그걸 숨기고 있었단말이에요?”

“시장가보다 좋다고?”

“그 그걸 어떻게...! 아무튼 그건 판매용이 아니야. 비상금이라고!”

 

위즐이 팔짝 뛰며 손을 내저었으나 다섯명의 마법사가 눈을 밝혀왔다. 위즐이 동앗줄 찾듯 세세얀을 향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있었던 당신이라면 알겠지..! 그건 보통 물약이 아닌...!

 

“...”

“그쪽은 마법사도 아니면서 왜 눈이 돌아갔는데!”

 

위즐이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듯 머리를 쥐뜯었다. 어느새 눈앞으로 눈사람머리가 바짝 다가와있었다.

 

“자아... 안됐지만 부대를 위해서 옆구리를 털려줘야겠어. 걱정하지마~ 자금은 제대로 계산 때려서 돌려줄테니까. 물론 부대 할인이 적용된채로~?”

 

결국 울며쥐어짜기 당한 위즐이 에테르병을 내놓았다. 그 사이에 불길을 막느라 마지막 병을 비운 울루카가 혀를 내둘렀다. 이거 꽤 값이 있겠는데. 물론 입밖으로 꺼내진 않고 하나씩 챙겼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