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을 위한 만찬

한 접시

수면속 by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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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룬이 사라졌다고?”

 

파묻히다 싶히 눈구덩이에 들어있던 두 라라펠이 일제히 표정을 굳혔다. 무스가 헉헉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이 주변을 뺑뺑 돌았는지, 좀처럼 지친 모습을 보기 힘들던 그가 숨을 고를 여유도 없어보였다. 사사도가 머뭇이는 낯으로 짧게 침음했다.

 

“음… 잠깐 산책이라도 나간 것 아니오? 아무래도 요새 상태가 좀, 예민했으니 말이오.”

 

사람의 예민함에야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사사도였으나, 상대가 상대였다. 그 요리사는 전투실력이라곤 쥐뿔도 없는주제에 눈 앞으로 마수가 다가와도 눈만 껌벅이던 이었단 말이다. 민간인이라면 기절할 법한 상황에서도 지극히 담담한.

 

그런 그가 요 며칠 새, 정말로 유난했다. 예민함으로 똘똘 뭉쳐서 부대내 최고가라는 로로미야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이름값 하던 이가 그걸 맞부딪히지않고 봐주고 있는 것은, 날서있는 제 것과 달리 코코룬의 예민함이 경계심에 가까웠기 때문이리라.

 

생각이라곤 식단표짤 때나 굴리던 코코룬이 의심과 의문의 경계에서 부대원들을 대하고 있었다. 본인마저 혼란스러운 낯인지라, 머리가 모이기만 하면 그의 얘기를 꺼내는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총대를 쥐고 말이라도 꺼내볼 참, (리프넬리:내가?)(로로미야:그럼 제가 할까요?)(무무카:얘 성격 버릴 일 있냐.) 때마침 나타난 눈사람대가리가 그들을 진정시킨 것이 엊그제다.

 

‘대화는 나눠봤는데, 일단 혼자서 정리할 시간을 좀 갖고싶대.’

 

진상을 파악중인지 알아낸건지 모르겠는 눈사람은 확신없는 답만 안겨주곤 금새 사라졌다. 몇몇은 수긍하고, 몇몇은 걱정하고, 몇몇은 생각많은 얼굴로 해산했다.

 

그렇게 분위기따라 날씨도 기승인 상황, 오늘 아침까지도 아침인사를 받는둥마는둥, 부엌을 바쁘게 오가던 코코룬인지라 사사도는 고개만 기울였다. 사라졌다는 단어가 터무니없기도 했다. 돈 될것도 없고 원한 살 일도 없어보이는 그가 납치를 당했겠나, 아니면 때늦은 봄바람이 불어 가출을 결심했겠나. 말을 뱉음과 동시에 불어오는 냉풍에 걱정도 일었다.

 

“탱커가 숨이 찰정도로 달려서 찾아내지 못한 거리까지, 민간인이요?”

 

반면 생각이 다른지, 평소보다 가라앉은 낯의 네네레오가 삽을 지지대삼아 단숨에 눈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눈보라가 거세졌다. 라라펠 발자국이라면 사라지는데 5분채 걸리지 않을 날씨였다. 산책보단 실종이 적절할 날씨지. 불안함을 미뤄두던 사사도도 결국 따라서 도약했다.

 

“발을 헛디뎌 굴러가버린 쪽이 더 가능성 높겠군”

“날씨덕에 골절은 면했을테니 빨리 찾는게 일이겠네요.”

 

사사도는 굳어있다 못해 창백한 무스를 풀어주려, 네네레오는 정말로 가능성을 고려하며 무스를 끌고 부대집으로 향했다.

 

“…저거, 연기아니야?”

 

무스의 멍한 목소리에 한박자 늦게 두 라라펠의 시선이 향하고, 응하듯 부대집의 창문이 깨지며 불길이 치솟았다. 방향은 부엌이다. 더 오가는 말은 없었다. 발걸음이 거칠게 눈을 박찼다.

 

1층은 이미 제법 타들어갔는지 연기가 매캐하게 깔려있었다. 불길한 탄냄새와 연기를 뚫고 넘실거리는 시뻘건 불길. 네네레오의 발끝으로 유리병이 채였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에테르병이다.

 

병이 굴러온 방향에서 에테르가 움직였다. 바닥이 진동한다. 불길을 밀어내며 모습을 드러낸 녹색 소환수가 날개를 퍼득였다. 거센 바람이 뻗어오는 불길을 막아세웠다. 자칫하면 부대집을 통째로 날려버릴 에테르를 조절하느라 집중한 소환사의 몸이 불안정한 바닥에 휘청였다. 그와중에도 눈을떼지 않는 몸뚱이를 사사도가 잡아챘다.

 

“물은?”

 

이미 몇병 쏟아부었는지 바닥으로 에테르 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울루카가 절 잡아세운 이와 그 뒤의 둘까지 파악하고는 다시 불길로 시선을 박았다.

 

“수도관은 동파되서 빨간놈이 주정뱅이 찾으러 갔고, 2층 잠만보들은 하얀놈이 깨우러갔고, 온실녀석들 중 조용한건 축사로, 시끄러운건 온실로 갔어.”

 

총무랍시고 일호가 최근에 데려온 이 예민한 상의 라라펠은 빠르게 상황을 알렸다. 제대로 불린 이름이라곤 없었으나 파악은 쉬웠다. 펑! 유리병이 터졌는지 불길이 거세게 일었다. 울루카가 낮게 혀를 찼다. 공중에 뜬 마도서가 거칠게 낱장을 넘긴다. 불길 번진 푸른 눈동자 위로 순식간에 에테르빛 마법식이 그려졌다.

 

“망할 눈사람대가리를 찾던가 멍청한 도련님이 와서 얼음마법이라도 퍼붓지 않은 이상 진압 안돼요. 불은 2층까지 번져서 무너지기 직전이라 강한 마법은 못쓰고, 눈보라는 역풍이고, 빨간놈이 봐야 정확하겠지만.. 일반적인 불이 아닌거같아요.”

 

수십가지의 연산을 때리느라 본분을 잊은 말투가 해결책까지 내놓았다. 괜히 데려온건 아니군. 겉으로 보기엔 일반적인 화재와 다를 것없는 불길에서 고개를 돌린 사사도가 네네레오와 무스에게 눈짓했다. 일호라면 진작 일어나서 활동할 시간이지만 그가 어디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면, 세 라라펠이 빠르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난 로로미야와 함께 무무카를 찾아보겠네.”

“전 2층으로 가죠. 의뢰 나간 사람은 없나요?”

“없어. 전부 자고있다면 2층 인원은 8명이에요.”

“손 부족하겠네. 나도 갈게. 넌.. 혼자 있어도 되겠어?”

 

무스의 시선이 울루카에 머물렀다. 남은 둘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제 소환수가 일으킨 바람에 휘청이던걸 본 참이었으니 유난이랄것도 없었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신경질어린 낯이 입을 열려는 순간 어깨 위로 손이 잡혔다.

 

“내가 있을게.”

“헤이즈씨.”

“여차하면 상황을 알려야할 사람도 필요하지? 한명정도는 있는게 맞아.”

 

마찬가지로 여기저기를 뛰었다녔는지 그을음과 먼지투성이가 된 헤이즈가 얇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가라는듯 손까지 저었다. 유사힐러도 있으니 안심이다. 세 남자는 제 위치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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