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2월 내로는 쓰지 않을까요 하고있어요... 프롤로그정도로 봐주십사...🙏

zz by 도로롱담비
13
0
0

푸른 하늘. 그와 맞닿은 푸른 잔디. 따스하게 빛을 내는 태양까지. 그와 어울리는 듯 조금은 습한 남자가 언덕을 오른다. 호기롭게 오른 남성은 어느새 습기를 모두 날린 채다. 바스락거리는 밀밭같은 머리를 한 남자는 언덕 위에 올라 그 아래를 살핀다. 부드러운 바람이 남자의 얼굴을 간질이고, 남자는 헤헤. 웃음을 지어본다. 진창을 지나온 남자치곤 깨끗한 웃음이다.

"나-비야."

언덕 위는 너른 평야. 평야 한가운데 자리잡은 나무로 향하며 남자는 나비를 부른다. 나비야-. 거친 목소리가 다정을 꾸민다. 어디갔냐-. 목소리를 길게 빼낸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럴리가 없는데. 아까까지만해도 곁에 있던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도 그닥 조급하진 않다. 설렁설렁 걸음을 옮긴 남자는 휴, 숨을 내쉬곤 나무에 기댄다. 또다시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그를 감싼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 아마 익숙해져야 할 곳.

언젠가 더 높은 언덕을 올라야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지금은 이곳이면 족했다. 평생 족할지도 모르고. 그리 생각하니 온 몸이 나른하니 풀어진다. 하품을 길게 빼낸 남자는 한쪽 눈만 슬쩍 떴다가, 팔짱을 낀 채 나무에 몸을 깊게 기댄다. 그래, 급할 거 없다. 한 숨 자고나면 나비도 와 있겠지.

오면, 글쎄 뭐부터 해야하지.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눈이 꿈벅꿈벅 감긴다.

뭐가 됐던 놈과 함께라면 즐거울게 뻔하니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듀오론 녀석과 같이 하는거면 뭐든 재미있을테니까.

-

삐삐삐-!

크지 않은 침실이 떠나가라 알람이 울린다. 반쯤 있다 만 커튼, 반쯤 입다 만 남자 둘, 가끔 켜지는 간접조명과 스프링이 조금 가라앉은 침대에서 유일하게 멀쩡한게 자신이란 걸 과시하듯 울어대던 붉은 탁상시계는 검은 문신이 가득한 남자의 손에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진다.

"쉔우 집에 시계는 그것밖에 없다고 했지않나..."

"괜찮아 더... 쿨"

"책장은.... 쿨"

시계가 놓인 쪽에서 자고있던건 듀오론이라 그가 조금 만 더 두꺼웠어도 시계대신 봉변을 당할 뻔 했으나 남자는 유난히 가늘었고, 부순 쪽은 유난히 두꺼웠다. 내려찍은 손이 아프지도 않은지 그대로 듀오론을 품에 끌어드리는 손길이 익숙하다. 해가 떴으니 일어나야하는데, 생각하면서도 듀오론 또한 금새 잠에 든다. 잠에 취한 쉔의 품은 거절하기엔 지나치게 따끈했다. 일어나면 시계나 사러가지고 해야겠어. 이번엔 알람기능이 없는걸로 확실히.

다음 날 침대 협탁에 놓인 시계는 삼일 정도 명을 유지했다. 그 다음은 오일정도였고. 결국 듀오론은 벽걸이형을 샀다. 술을 마시고 잔 날이던, 아닌 날이던 쉔의 잠버릇은 지독했고, 그걸 고칠 방법을 찾을 바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게 편했다.

"나도 내가 잠버릇 있는지는 몰랐네."

"그걸 말이라고 하는건가?"

"깊게 자 본적이 있어야지 알지."

"나는 얌전히 잔다."

"너 옆이라 편하게 자서 그런가보지."

큭큭거리며 넉살좋게 붙어오는 쉔을 내치는 법을 모르는 듀오론은 금새 쉔에게 허릴 내어준다.

"벽도 좀 어떻게 해볼까."

"음?"

"뭐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 안 그래?"

"흠."

내키는대로.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지 않나. 듀오론은 말하는 대신 제 뒤에서 고개를 부벼오는 놈의 머리카락을 사박사박 만졌다. 간질간질한 기분이 손끝, 발끝에서 잔뜩 뭉치는 기분이 달갑지 않지만 쉔이 하는거라면 뭐. 그냥 괜찮을 것 같았다.

"저녁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저어 골목에 새로생긴 주점 있더만 거기 가자."

고갤 끄덕이는 듀오론을 빤히 보던 쉔이 왕- 하고 장난스레 듀오론의 볼을 문다. 듀오론은 느리게 뭐하냐는 듯한 얼굴로 쉔을 보지만 답을 정말 답을 원하고 한 행동은 아니라 그저 쉔이 웃는 것에 맞춰 제 표정을 변화시키는 것에 그친다.

"요것보다 맛난 만두가 있다고 하더라고."

어서가자, 쉔이 말하고 듀오론은 따랐다. 딱히 챙길 겉옷이 있는 두 사람이 아니었기에 공간을 나서는 건 쉬웠다. 그대로, 잠금장치따위 없는 문을 밀면 밖이었다.

다음날엔 듀오론보다 쉔이 먼저 깼다. 선잠을 자는 건 듀오론보다 쉔에게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밝은 쇼핑센터는 익숙치 않았다. 대신 쉔은 어릴적 간간히 일을 돕던 시장에 가 페인트 몇 통과 조금 큰 벽시계를 샀다. 벽지도 바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전문가가 아니면 이상해질거라는 사장의 말에 이번만큼은 꼬릴 내리기로했다. 바닥에 뭘 깔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듀오론이 깼을 땐 바닥이 반 쯤 페인트를 먹은 후였다.

아침에 부시럭거리는 것 하나 없이 쌩 나가버린건 놀랍지 않았다. 행동가짐이 철저하지 않다는게 그가 조심성 없다던지, 강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걸 눈치 못 챌 정도로 잠들어버린 제 태도가 더욱 놀라울 일이었고, 그보다 더. 더 놀라운건 쉔우의 꼬라지였다. 잘 빠진 얼굴과 홀라당 벗어버린 웃통이 우습게 보이려면 이정도는 해 줘야 하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일어나자마자...."

"재미있지. 일상을 재미있게 해주는 남자랑 사는 기분이 어때 듀오론."

"흐, 그래. 나쁘지 않네."

아침을 거르고 같이 벽에 페인트를 발랐다. 익숙치 않은 건 듀오론도 마찬가지라 나중가선 바닥 뿐 아니라 온 몸이 페인트 투성이었다. 그래도 저물어가는 해와 비슷한 시간으로 흘러가는 시계를 벽에 걸 때 마주본 서로의 얼굴은 웃고있었다.

듀오론은 하얗다. 쉔은 그 점을 좋아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깊어서, 듀오론을 닮은 침묵을 만들었지만 하얀 피부는 제 주인과는 달리 시시가각 색을 달리했다. 특히 석양을 받은 지금처럼 붉은 빛을 받을 때면

"나랑 있는 거 좋지?"

"그렇군. 맞아. 나는 너와 있는게 즐겁다. 쉔 우."

제 주인은 모를 사랑스러운 색을 만연히 드러내는 것이. 그것이 좋았다. 앳된 얼굴이 저를 향하며 웃음을 짓는다. 저 때의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나, 쓸데없는 상념을 하기엔 눈앞의 웃음이 지나치게 따뜻했다.

"내일은 바닥을 어떻게 해야겠어."

"아무래도 그렇네."

"이왕 할 거 파격적인 색으로 해 볼까?"

"마음대로."

쪽, 하고 짧게 듀오론의 볼에 쉔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쉔이 얼굴을 들이대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던 듀오론이 반박자 늦게 눈을 뜨자, 이번에 입술로 쉔의 입맞춤이 짧게 맞닿고 떨어진다. 듀오론은 느리게, 하지만 확실히 웃음을 지어보인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먹었군."

"나는 듀오론 입술 먹어서 배부른데."

"그렇군. 나는 먹은게 없다."

뻔한 수작에도 웃어주던 듀오론의 얼굴이 금새 평소로 돌아온다. 나도 나지만 참 너도 너다. 생각했지만 말로 뱉지는 않는 쉔이다. 대신 페인트가 아닌 조잡한 타일로 이루어진 부엌으로 가며 조금만 기다리라 말했다. 웍을 들어올리고 불을 트는 행동이 익숙하다. 다만 요 근래 편하게 자는 게 습관이 된건지. 계란을 깬다는 걸 부숴버렸다. 선잠을 자고 하루종일 안 하던 일을 해서 그런걸까. 몇 년 전의 제가 들었다면 비웃었을 행동에도 쉔은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항 뿐이다. 알게 뭐람, 그런거.

그렇지만, 그래도. 선잠을 자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제 청소년기를 꼬박 보냈다는 것은 웃긴 일이다. 좋은 웃음은 아니고, 자조와 방관에 가깝다. 편한 건 이리도 쉽게 몸에 붙는데 진창의 습기를 빼는 건 지겹게 오래도 걸렸다. 치이익, 계란 껍질이 구워지기 전에 꺼내면서 인생도 이러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좋은 건 놔두고 나쁜 건 솎아 내고. 허나 지금 이것들을 편히 솎아 낼 수 있는 이유가 제 손에 박힌 굳은 살 때문이란 걸 생각하면 전부 부질없게 느껴지는 일이다. 가벼운 상념과 가벼운 자조. 그리고 가벼운 손놀림으로 접시에 음식을 담아낸다. 어이 듀오론 먹어라- 말하는 목소리에 거실에 있던 듀오론이 오는 발걸음이 들린다. 거의 들리지 않아 집중해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이젠 익숙하다. 버리지 않아도 될 익숙함이 생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요리는 언제 배웠지?"

"음, 아마 열 여섯 살 때였나. 열 일곱 이었나. 몸싸움 도박질에 뭔 돈이 필요하겠냐 했는데 참가비가 있더라고."

"의외군."

"왜, 나라면 훔쳤을 것 같냐?"

"신청하러 가는 상대를 붙잡아 빼앗는 쪽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꼭 그게 이유였던건 아니긴한데. 쉔우는 입 안에서 두어번 제 말을 굴려보곤 말하길 관뒀다. 대신 눈앞의 사내가 제가 해준 걸 먹는 모습을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실은 열 일곱살 때도 아니고, 도박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또한 딱히 못 할 말도 아니긴했다. 딱 너만할 때였는데- 로 시작하기엔 그때의 제 얼굴보다 듀오론의 얼굴이 보기에 훨 나았기 때문이다. 낫기만하랴. 이쪽은 사랑스럽고 그쪽은 투견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강아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미인과 강아지라. 꽤 좋은 조합이 아닌가. 이딴 생각으로 치부할 정도의 과거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표정이 그런건지 모르겠군."

"그냥 가끔은 집에서 먹는 것도 좋네 싶어서."

"흠."

거짓말이 능숙하군. 쉔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듀오론이 모르긴 어려웠다. 평생을 숨어 관찰과 인내로 살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쉔도 딱히 들키길 염려하는 것 같지 않았다. 전이었다면 캐냈을까, 생각해보지만 이젠 쉔에게 무엇을 캐내는 자신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차라리 설거지를 제때 하라고 닥달하는 모습이면 모를까. 도박판에 끼어들기 위해 정직하게 일하는 쉔우를 잠시 상상해보지만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날 뿐이었다.

이래도 되는걸까. 싶던 것도 쉔을 생각하면, 더 나아가 바라보면 자꾸 될대로 되라지. 놓아버리는 모습은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당연히 익숙해지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 안 된다. 아직 할 것이 산처럼 남아있다. 비단 나만의 일이었다면 달라졌을까. 이 생각조차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이라는 점이 심장을 조인다.

"설거지는 네가 하고. 나는 남은 거 버리고 오련다!"

그럼에도 오감으로 다가오는 남자는 이 모든걸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버린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준다면서 뻔뻔하게 내빼는 모습이 친근하다는게, 쉔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밌는 남자와 산다는게. 정말로 재미있어져버린걸까.

쉔은 남은 것들을 버리며 웍 설거지는 애한테 좀 과했으려나 생각했고 집에 들어와서 웍이 아니라 접시부터 걱정했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인트 뒤집어 쓴 김에 같이 씻자며 수작질을 할 생각이었으나 그게 다 날아갈 수준의 사태였다. 어떻게 설거지를 했길래 이게 다 깨지냐는 물음에 그냥 씻었다. 라고 답하는 모습에 화가 나진 않았다. 귀엽고. 좀 웃겼다. 도련님이 한 건 했네. 하자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는 안 하면서도 한층 언짢은 시선을 보내오는 건 더 귀여웠다.

한 번 닦는 꼴을 보자니 그제서야 싱크대가 듀오론의 키에 비해 좀 낮다는 것과, 듀오론이 정말. 정말 평생 해온 짓이라곤 사람 죽이는 일 아님 그걸 위한 일 뿐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은 쉔이었다.

"할 거 많아서 좋네!"

"미안하다."

"일단 같이 씻는 것부터 하고!"

나머지는 차근차근 해 보자고. 쉔이 씩 웃으며 듀오론의 머리를 헝클였다.

"내가 치울테니 먼저 씻어라."

"됐다 인마. 내가 할테니까 같이 씻어."

낯설고 어딘가부족한 공간이 차근차근 매워졌다. 아무리 호텔이 좋다한들 집이 아니듯, 아무리 질나쁜 곳이라도 반대인건 아니었다. 공간은 착실히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듀오론과 착실하게 씻는 과정에서 욕실이 더 넓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당장은 안 될 일이니 언젠가의 계획으로 미뤘다. 대신 듀오론을 본 쉔은 부엌은 어떤식으로 고칠지를 정했고. 다음날 잠겨있던 방의 문을 열었다가 잡동사니에 깔린 쉔을 구출하며 그곳의 채광이 좋다는 걸 알아차린건 듀오론이었다.

채광이 좋은 방은 손님방으로 쓰기로 했다. 말이 좋아 손님방이지 둘이 몸을 풀 공간에 간이 침대를 가져다 놓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쉔은 제법 뿌듯해 했고, 그 방에 처음으로 손님이 오기로 한 날 듀오론이 가출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