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힐데 100일 (4)

퇴고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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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베르트가 쏜 3발의 총알이 과녁의 중앙에 정확히 명중했다. 힐데베르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1등상을 최윤의 품에 안겨주며 으스댔다.

“제가 드리는 100일 선물입니다.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윤은 품에 안기도 버거울만큼 거대한 인형을 다시 힐데베르트에게 집어던졌다.

“필요 없다.”

“아! 윤! 너무하십니다!”

윤은 저를 뒤쫓아오며 징징대는 힐데베르트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오락실을 나섰다.

발단은 힐데베르트의 ‘저도 뭔가를 해드려야겠다’는 갑작스러운 선언이었다. 그 장단에 맞춰준답시고 운전석도 내어주고 어딜 가나 지켜보았더니 힐데베르트는 센터코어 내의 온 명품관을 전전하며 윤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이게 미쳤나. 알거지 주제에 무슨 명품이야. 너 쓸 돈은 있냐 지금? 힐데베르트는 윤이 다정하게 건넨 걱정에 크게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린애 삥 뜯는 기분이라며 고가의 선물은 일체 받지 않겠다고 하자, 급기야 윤을 데리고 번화가의 오락실로 향한 것이다.

“그럼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지 않습니까?”

아주 울상이었다. 아미가 이 녀석에게서 감동의 눈물을 짜내오라고 했는데 이러다간 다른 방식으로 울리게 생겼다. 윤이 힐데베르트의 머리를 턱 짚었다.

“왜 없어? 지금 네가 가지고 있잖아.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거.”

“뭔데요?”

“네 생체 정보.”

“아, 진짜. 됐습니다! 가세요!”

힐데베르트가 성을 냈다. 뭐 어쩌란 말인가. 달리 필요한 게 없는데.

“너도 내 피 뽑아가던가.”

“싫습니다. 받지도 드리지도 않을 거예요. 자꾸 이러시면 집에 갈 겁니다.”

“그건 안 돼. 저녁은 먹고 가라.”

윤은 어젯밤 잠까지 줄여가며 손질한 재료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힐데베르트는 금세 화난 기색을 거두고 솔깃해했다.

“직접 해주시는 겁니까?”

“어.”

그렇게 배알도 없는 힐데베르트는 백일에 피 뽑아달라는 소리를 하는 애인을 졸래졸래 쫓아 그의 집으로 향했다.

*

“실례합니다…….”

“아미랑 예현은 나갔다.”

“아, 넵.”

힐데베르트는 뻘쭘한 기분으로 거실을 서성였다. 실컷 성내다가 저녁 얘기에 좋다고 집까지 따라들어온 게 제 생각에도 좀 웃겼던 탓이다.

최윤이 능숙한 폼으로 손질된 재료를 꺼내 저녁 준비를 시작하자 힐데베르트가 부엌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 것은 없습니까?”

“없어. 가서 앉아.”

“넵.”

힐데베르트는 얌전히 거실로 돌아왔다. 아무렴 밥 해주는 사람에게까지 꼬장을 부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식사 도중에도 힐데베르트는 힐금힐금 윤을 곁눈질하며 그의 신경에 거슬리게 굴었다. 윤이 반찬을 내왔을 때부터 왜 이렇게 가짓수가 많냐며 놀라더니, 하나씩 맛 보고 넋이 빠진 목소리로 “윤……. 정말 요리 잘하시는군요.” 한 후로는 연신 저러고 앉아있었다. 윤은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라고 윽박지르려다가 최아미가 ‘나는 왜 친구가 없을까? 사회성을 길러주는 43가지 대화법’ 따위의 책을 가지고 저를 괴롭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참았다.

“왜.”

대신 간결하게 물었다.

힐데베르트가 눈치를 살살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으십니까? 연구 재료라던가…….”

아까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였군. 윤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힐데베르트의 생체 정보가 안 된다면, 최윤이 원하는 것은 하나 뿐이었다.

“너.”

곧장 매서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피는…….”

“아니, 너를 달라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힐데베르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저를요?”

“그래. 널 영원히 소유 및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줘.”

이제 힐데베르트는 사색이 되었다.

“그걸로 대체 뭘 하시려고요?”

“뭐든.”

“저 집에 가겠습니다.”

힐데베르트가 사사삭 거리를 벌렸다. 바퀴벌레 같군. 윤은 또 겁을 잔뜩 집어먹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부사수를 달래주기로 했다.

“쫄지 마. 설마 네 목숨에 해 될 짓을 하겠냐? 타이탄의 뇌척수액을 연구하는 것보다는 네가 내 옆에 멀쩡히 살아 숨 쉬는 게 더 중요해.”

“제발 미친 소리 좀 그만해요.”

이것도 틀린 답인가보다. 별스러운 놈.

윤이 자켓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제 물질적인 것 외에는 달리 저 놈을 회유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건네려던 건 아니었지만.

“봐라. 내가 너를 아끼는 마음에서 신경 써 준비한 선물이야.”

윤은 아미가 일러준대로 ‘마음이 담긴 선물’임을 강조하며 금색 리본으로 포장된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물러나던 힐데베르트가 자리에 멈춰섰다.

“너는 내 진심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애초에 내게 귀엽다는 헛소리를 하고도 사지 멀쩡히 살아 돌아갈 수 있는 건 너를 비롯해 셋 밖에 없다.”

“그, 그건 잊어달라고 했잖습니까.”

“들어.”

윤이 잘라 말했다.

“네게 바라는 건 몸 성히 곁에 머무르는 것뿐이라는 소리다. 그러니 진심으로 싫어할 행동은 하지 않아. 네가 떠나려고 들면 내겐 그걸 저지할 능력이 없으니까.”

그는 집요하게 힐데베르트와 눈을 마주했다.

“알아들었으면 와서 앉아라.”

그러나 힐데베르트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지할 능력만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하겠다는 소린가? 일부러 묻진 않았다. 긍정의 답이 돌아올까봐 두려웠으니까. 미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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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생각하는 까마귀

    솔직히 윤이 힐데보다 강했으면... 근데 그래도 힐데는 안굴하고 자꾸 튀어나갔을거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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