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태웅 / 사와루

[우성태웅] 감기 주세요

월간우웅 11월호 : 감기

  • 산왕 우성 x 산왕 태웅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가을. 하늘은 높고, 식욕은 왕성하고, 알록달록한 단풍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 그 명성만큼 아름답고 선선한 날씨를 기대했건만, 기온은 변덕스레 요동친다. 쌀쌀해진 날씨에 꺼내 입은 춘추복이 땀에 젖어든다. 야, 이게 가을이냐? 여름 아니냐? 이미 셔츠를 벗어던진 한 학생이 짜증스레 소리쳤다. 낮에는 그리 덥더니, 해가 지기 시작하자 다시 기온이 뚝 떨어진다. 학생들은 벗어던진 가쿠란을 주섬주섬 집어 입고 집으로 돌아간다. 최고기온 24도, 최저기온 1도. 일교차가 크던 요즈음이었지만, 오늘은 정도가 심하다. 그러나 오로지 농구밖에 모르는 두 바보가 일기예보를 챙겨 볼 리 없다.

해가 졌다. 밖은 어둠으로 뒤덮인 지 제법 오래다. 정규 연습이 끝나기가 무섭게 농구공을 들고 슬쩍 다가오는 예쁜 후배 덕에 정우성은 매일같이 강제 야간연습 중이다. 원온원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기라도 한 건지, 서태웅은 지치지도 않고 원온원을 갈구했다. 유독 피곤했던 과거의 어느 날, 거절해 본 적도 있었다. 서태웅은 생전 처음 거절당한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며 희미하게 당황한 티를 냈다. 예쁜 눈을 천천히 깜박거리더니, 꾸벅 인사를 하곤 저 멀리 쫑쫑 걸어간다. 간도 크다. 1학년 신입생이, 당돌하게도 이명헌에게 원온원을 요구한다. 으아악 아니야, 태웅아! 내가 해줄게! 정우성이 급하게 서태웅을 따라갔다. 왜인지 이명헌과 단둘이 농구공을 튕기는 서태웅을 상상하니 기분이 별로였다. 원온원은 나랑만 해. 그날 이후, 정우성은 후배에게 그렇게 선언했다. 그러니 아직 벚꽃이 피어있던 그때부터 단풍잎이 떨어지는 지금까지,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도 서태웅에게 붙잡혀 원온원 머신이 되어있는 건 제 업보이자 낙이었다.

"태웅아, 이제 가자."

"... 웃쓰."

지칠 대로 지쳐 바닥에 퍼져있던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우성이 내민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정우성이 운동복 위로 저지를 걸쳐 입는 사이에, 서태웅이 먼저 라커룸을 나선다. 뒤늦게 따라간 정우성의 눈에, 체육관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후배가 보인다. 정우성이 실실 웃으며 얼른 그를 향해 달려간다.

"나 기다리고 있었어? 가자!"

"추...."

끼이익. 철문 열리는 소리가 서태웅의 말을 자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반도 채 열리지 않은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도로 닫힌다.

"추워요."

"으악! 날씨 왜 이래?"

땀에 푹 젖은 운동부 학생 둘이 문을 사이에 두고 굳었다. 낮에는 분명 더웠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춥다. 어제저녁엔 분명 쌀쌀한 정도였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추워져도 되는 건가? 기숙사까지 걸어서 10분. 이 정도 추위면 땀이 식으며 더욱 춥게 느껴질 것이었다. 정우성은 서태웅을 훑어본다. 얇은 체육복 외에는 걸친 게 없다. 추위도 잘 타는 녀석인데 오늘은 늘 챙겨입던 저지마저 없다. 

"태웅아 너 저지는?"

"짝이 우유 쏟았어요."

"헉, 오늘 우유 급식 초코우유였잖아!"

"네. 그래서 세탁해서 내일 준다고 했어요."

하필 오늘. 이렇게 추운 날. 정우성은 이름 모를 서태웅의 짝을 원망하며 제 저지를 벗었다.

"자. 이거 입어."

정우성은 최선을 다해 멋진 선배의 얼굴을 지어 보이며 옷을 건넸다. 서태웅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선배는요?"

"나는, 추위를 안 타."

거짓말이다. 방금 체육관 문 열었을 때 아주 살짝 들어오는 찬 바람에 기겁하며 문을 닫아버린 장본인이다.

"얼른."

망설이는 후배에게 억지로 옷을 쥐여준다. 서태웅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옷을 꿰어 입는다. 곧 다 입었다는 듯 다시 정우성을 쳐다본다. 그 눈길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그래. 얼어 죽기야 하겠어.

"갈까?"

그 목소리가 사뭇 비장하다.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연다. 찬 바람이 문틈으로 거세게 들이닥친다.

"빠, 빨리 갈까?"

거센 운동으로 데워진 몸이 빠르게 식었다. 괜찮은 채 하려 해도, 턱이 덜덜 떨렸다. 점점 더 빨라지는 정우성의 발걸음에 맞추어 서태웅도 그 뒤를 졸졸 따라간다. 도착할 무렵에는 거의 달리고 있었다.

"킁. 태웅아, 꼭 따뜻한 물로 샤워 해야 해."

정우성이 시린 바람에 새빨갛게 물든 뺨을 하고는 후배에게 당부의 말을 건넨다. 혹여나 추위에 약한 후배가 감기에 걸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었다. 착하게 끄덕거리는 후배에게 멋진 웃음을 지어주고, 정우성은 제 방으로 향한다.

'정우성, 오늘 멋졌다.'

지옥같은 10분이었지만, 서태웅에게 늠름한 선배의 모습을 보여줬으니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식판을 깨끗이 비운 서태웅은, 문득 허전함을 느꼈다. 두세 번은 더 받아먹는 다른 농구부원들과는 달리, 서태웅은 식판 가득 한 번(밥 많이 주시면 고맙겠어요.)으로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배가 덜 찬 느낌일까. 서태웅은 급식실을 나서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정우성이 안 보인다. 평소대로라면 급식실 문 앞에 정우성이 서 있어야 했다. 2학년이라 먼저 급식을 먹은 후, 매점에 들려 봉지 가득 간식거리를 들고는 뒤늦게 나오는 서태웅을 기다리는 게 정우성의 점심 일과였다. 정우성의 부재를 알아채자 허기의 원인도 분명해졌다. 정우성은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는 꼭 빵과 우유를 사 왔다. 졸려 하는 서태웅을 흔들어 깨우며 '태웅아 배고프지? 이거 먹어.'라며 입에 빨대를 물려줬다. 정우성 딴에는 아침잠이 많아 아침밥을 많이 못 먹는 서태웅을 챙기려는 것이었으나, 이제 서태웅은 그 빵을 먹지 않으면 허기를 느끼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정우성이 약속을 어긴 것도 아니고, 그가 찾아오는 게 의무인 것도 아니었지만, 서태웅은 왜인지 조금 쓸쓸했다. 그가 느꼈던 허전함은 배가 덜 차서가 아니었다. 늘 만나던 선배의 부재가 서태웅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쉬는 시간만 되면 책상에 엎어지던 서태웅이 졸린 눈을 비비며 뒷문을 뚫어져라 본다. 문이 열릴 때마다 감겨가던 눈이 번쩍 뜨였지만, 기다리던 얼굴이 아님을 확인하면 다시 스르륵 감긴다. 그 서태웅이 제 의지로 졸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주 드문 일인데, 그걸 오후 내내 해내고야 만다. 그러나 오후 수업들이 모두 끝나고, 종례 시간이 다 되어도 정우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다. 서태웅은 정우성이 무조건 있을 그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태웅은 라커룸에 들어서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우성과 같은 반이라던 선배는 이미 환복을 끝내고 나갔는데, 정우성의 라커는 굳게 닫혀있다. 왜 없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빡빡이들 사이에 묻힐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혹시나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다시금 라커룸을 두리번거린다. 

“태웅. 뭐 찾아용?”

이명헌이 오늘따라 유독 산만한 후배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우성은 없어용.”

“… 왜요?”

“감기. 뿅.”

서태웅이 입을 헤 벌렸다. 놀란 듯 크게 뜬 눈에서 서서히 힘이 풀린다.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눈썹이 미약하게 내려간다. 맹한 얼굴에 걱정이 차오른다.

“많이 아파요?”

감기라니. 어제 옷을 빌려줘서 그런가. 얼마나 많이 아팠으면 농구 하러 오지도 않았을까.

“아침엔 열이 많이 났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용.”

“수업도 안 간 거예요? 병원은요? 지금 어디 있어요?”

많이 아플까. 약은 먹었나. 밥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농구도 못하고. 어떡하지….

“하루 쉬면 낫는다면서 그냥 기숙사에 있어용.”

이명헌이 물음표 고양이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서태웅. 감정표현이 풍부하지 못한 후배의 귀한 모습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서태웅이 불안한 눈빛으로 이명헌을 바라본다. 기숙사에 혼자 있을 정우성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찌르르 아파졌다.

엣치. 이명헌을 향하던 두 눈이 질끈 감긴다. 라커룸의 먼지가 서태웅의 코를 간질였다.

“이런. 태웅도 감기, 뿅?”

이명헌의 어조는 평소와 같이 담담했지만, 분명 장난기를 담고 있었다. 정우성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후배를 진정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서태웅은 이명헌의 의도 따위 읽을 생각도 없었다. 머릿속이 정우성으로 가득 차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 떠올라버렸다.

“엣-치.”

“……”

“감기. 인 것 같아요.”

다소 작위적인 재채기 소리에 부자연스러운 말투. 서태웅이 난생처음으로 꾀병을 부린다. 이 당돌한 후배는 선배들 앞에서 기죽는 일 없이 늘 시선을 올곧게 마주해왔다. 그런데 지금, 서태웅이 눈을 도르륵 굴리며 시선을 피한다. 거짓말이 더럽게 서툴다.

“갑자기. 뿅?”

“… 엣-치.”

뾰횽. 이명헌이 한숨을 내쉰다. 서태웅이 다시 시선을 마주해온다.

“목이 간질간질해용.”

콜록. 마른기침까지 내뱉는다.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는지, 다시 마주한 눈빛이 제법 당차다. 이명헌이 피식 웃는다. 진심을 호소하며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저도 몰래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귀엽다.

“연습 못하겠어용?”

“네…. 콜록.”

“태웅은 무단결석이 한 번도 없으니까,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예용. 마스크는? 뿅.”

“없어요.”

“이거 써용. 감기 옮을 수 있으니까. 뿅.”

서태웅이 받아든 마스크를 곧바로 쓴다. 성인용 마스크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 흘러내린다.

“감기 옮으면 죽는다. 뿅.”

정우성이. 뒷말을 생략한 경고에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상관 없다. 이명헌은 기숙사에 누워있을 정우성을 떠올렸다. 처신 잘 해야 할 텐데, 서태웅에 한해서는 과하게 유한 태도를 보이는 후배가 영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어, 서태웅 왜 그냥 가냐?”

“감기. 뾰횽.”

엑, 서태웅도? 이명헌은 신현철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걸릴 게 분명하니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바닥엔 농구 잡지와 만화책이 널브러져 있고, 침대 옆으로는 밥그릇이 올려진 쟁반이 놓여있다. 그 난장판 사이에서 정우성은 고롱고롱 잘도 잔다. 서태웅은 마스크를 고쳐 쓰며 정우성에게 다가갔다.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을 보니 걱정이 배가 된다. 심지어 쟁반 위의 밥그릇에는 먹다 남은 죽이 조금 남아있었다. 평소에 밥을 그렇게나 많이 먹는데, 죽 한 그릇을 다 못 비우다니. 속상함도 배가 된다. 침대 밑에 깨끗이 비워진 밥그릇이 3개나 쌓여있는 건 발견하지 못했다.

서태웅이 손을 뻗어 정우성의 이마를 짚는다. 숨 찰 때까지 원온원을 한 직후만큼이나 뜨겁다. 이게 다 제 탓인 것 같다. 서태웅은 옷을 받지 말걸, 자책하며 가방을 열었다. 간호를 해본 적은 없지만 어디서 본 건 있다. 이마가 뜨거우니 식혀줘야 한다. 어제 깨끗이 빨아온 보송한 수건을 꺼내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을 흠뻑 적시고, 물기를 꽉 쥐어짰다. 너무 잘 짰다. 촉촉 보다는 버석에 가깝게 물기가 없다. 아무래도 이마를 차게 식힌다는 목적에는 걸맞지 않아 보였다. 서태웅은 다시 수건에 물을 적셨다. 이번엔 힘을 빼고 조금만 짜냈다. 차갑고 축축한 수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호오.”

이정도면 충분히 열을 식혀줄 것이다. 서태웅은 얼른 정우성의 방으로 향했다. 옆으로 살짝 돌아간 머리를 위를 향해 돌리고, 그 위에 수건을 올린다. 철퍽. 물기가 가득한 수건이 이마를 감싼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이 머리와 베개를 적신다. 시원해 보여, 만족스럽다.

이마의 열을 식혀줬으면,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 정우성이 덮고 있는 이불은 평범한 솜이불이었다. 그마저도 엉망이 되어, 배만 겨우 덮고 있다. 서태웅은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고, 다시 방을 나섰다. 솜이불은 덜 따뜻하다. 그는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추위를 잘 타는 서태웅을 위해 부모님이 일찍이 두터운 극세사 이불을 갖다줬었다. 제가 쓰던 이불을 망설임 없이 척척 접어 들어 올린다. 보드랍고 보송한 이불이 한 아름 안긴다. 정우성의 솜이불 위로, 제 극세사 이불을 올렸다. 턱 끝까지 빈틈없이 덮으니 이제야 좀 따뜻해 보인다. 다 됐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서태웅은 침대 옆에 앉았다. 얌전히 자던 정우성이 끙끙거린다. 많이 아픈가 봐. 걱정 되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손을 뻗어 배로 추정되는 이불 위를 토닥거렸다. 서태웅은 정우성이 뒤척거리며 이불을 걷어내려 할 때마다 다시 꼼꼼히 덮어주고, 고개를 돌려 수건이 떨어지려 할 때마다 다시 올려주며 곁을 지켰다. 조용한 방, 따끈한 정우성. 서태웅도 결국 졸음을 못 이기고 고개를 꾸벅거린다. 폭. 정우성의 가슴께에 고개가 박힌다. 


정우성은 풀밭에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다녔다. 어, 저건 농구공. 저건 고양이. 태웅이 닮은 구름이네.

“앩.”

고양이? 구름이 아니라 진짜 고양이다. 까맣고 작은 아기고양이가 이마를 핥았다. 아, 간지러워. 그만. 그만… 축축해! 

그 작은 혀로 얼마나 핥아댔는지, 순식간에 이마가 흠뻑 젖어 축축했다. 고양이를 떼어내려는데,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어느새 손과 발이 무성히 자란 잔디에 묶여있다.

“먕.”

이마를 핥던 고양이가 펄쩍 뛰어오른다. 배에 올라탔는데도, 작아서 그런지 무게가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양이의 몸집이 점차 커진다. 주먹만 하던 덩치가 눈 깜박할 새 정우성을 능가한다. 커다란 고양이가 온 몸을 짓누른다. 뜨끈하고 무겁다. 답답함에 몸을 뒤척여도 소용이 없다.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 올려 꾹꾹이를 시작한다. 가슴이 꾹꾹 짓눌린다. 더워, 무거워, 답답해! 설상가상으로 축축한 이마를 타고 내려온 물기가 눈가를 적신다. 앗 따가워!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떴다.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익숙한 기숙사의 천장이 보인다.

“와, 악몽….”

정우성이 잠긴 목으로 중얼거렸다. 실제로도 눈이 따가워, 비비려고 팔을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

이불에 꽁꽁 쌓여 팔을 빼낼 수가 없었다. 두터운 이불이 두겹이나 덮여있고, 이마엔 물이 줄줄 흐르는 수건이 놓여있다. 그리고 가슴 위로는 예쁜 후배가 볼이 꾹 눌린 채 자고 있었다. 순식간에 잠기운이 달아났다. 답답하던 가슴이 간질거렸다. 지금 나 간호해주러 온 거지? 태웅이가?

서태웅이 깨지 않도록, 이불 속에서 팔을 조심스럽게 빼내고, 이마에 올려진 수건을 치워버렸다. 자유를 찾은 손으로 서태웅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곤히 자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이렇게 잘 자는데, 깨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정우성은 서태웅을 쓰다듬으며 필사적으로 참았다. 너무 덥다. 그런데 깨울 수 없다. 하지만 더워 죽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떻게 얘를 깨워…. 

다행히 인고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서태웅이 천천히 눈을 떴다. 잠에 취한 얼굴로 부스스 일어난다. 정우성은 서태웅이 고개를 들자마자 이불을 급히 걷어내었다. 서태웅은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이불이 걷어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주섬주섬 다시 덮어주려 했다.

“어어… 태웅아?”

“… 추우면 안 돼요.”

저를 생각하는 서태웅의 마음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고맙고 귀엽지만, 도저히 다시 덮을 수는 없었다.

“으응. 태웅아, 나 지금은 안 추워. 다 나았어.”

“정말요?”

“응!”

엣취! 기막힌 타이밍에 재채기가 나왔다. 잠에서 막 깨어 말랑하던 서태웅이, 순식간에 표정을 굳힌다.

“안 나았잖아요.”

째릿. 노려보더니 곧 시선을 내린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 속상해하고 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농구도 못하고.”

“… 아니, 태웅아.”

“내일도 아프면 내일도 농구 못 해요. 빨리 나아야 하는데, 어떡하죠….”

서태웅의 진심 어린 걱정이라니. 정우성은 생전 처음 보는 후배의 모습에 심장이 동했다. 귀엽다. 더 아픈 척 하면서 간호 받고, 걱정 받고싶다. 추악한 욕망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저 농구귀신이야말로 감기 걸리면 큰일이다.

“오늘 계속 쉬어서 금방 나을 걸! 태웅이 감기 옮겠다, 나는 괜찮으니까 이제 가.”

서태웅이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계속해서 고개를 젓는다.

“감기 옮으면 태웅이도 농구 못하는데?”

도리도리. 서태웅이 고집스레 고개를 저으며 나가기를 거부한다.

“감기 옮기면 낫는다는데, 그러려고 여기 있는 거야? 얼른 가, 응?”

서태웅이 고갯짓을 멈췄다. 눈을 깜박이며 정우성을 쳐다본다.

“감기 옮기면 나아요?”

“어… 그런 말이 있긴 하지?”

감기는 어떻게 옮기지. 서태웅은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냈다. 태웅아, 엄마 감기 걸려서 오늘은 뽀뽀 못 해. 옮으면 안되니까.

쵹. 서태웅이 정우성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갖다 댄다. 말랑하고 작은 입술을 꾹 눌렀다 떼어냈다.

“… 태웅아.”

정우성이 잠긴 목으로 후배의 이름을 부른다.

“이거 뭐야?”

“뽀뽀하면 옮아요.”

정우성은 시끄러운 속을 달래며 진정하려 애썼다. 지금이라도 보내야지. 진짜 감기 옮으면 어떡해. 아니, 근데 쟤가 먼저 했잖아. 이미 끝난 거 아닌가? 이 기회를 놓쳐? 그러다 영원히 원온원만 하게?

“… 태웅아. 뽀뽀로는 안 옮아.”

이성이 잡아먹혔다.

“확실히 옮는 방법 있는데. 태웅이가 내 감기 가져가 줄 거야?”

서태웅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정우성이 후배의 뒷덜미를 부드럽게 잡는다. 입술이 맞닿는다. 혀로 아랫입술을 살살 쓸자, 서태웅이 어깨를 움찔거린다.

“입 벌려야지.”

정우성이 입술을 겹친 채로 중얼거린다. 착한 후배는 선배 말을 곧잘 따른다. 작은 입을 가르고 두터운 혀가 가득 찬다. 뜨거운 숨이 섞여들었다.


체온계를 아무리 갖다 대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36.5도. 정상 온도이다.

“콜록. 명헌이 형! 저 진짜 아픈 것 같다니까요! 콜록!”

“다시 말해봐. 뿅. 거짓말이면 죽어용.”

“… 태웅이가 아픈데 제가 어떻게 학교를 가요!”

“너 때문이잖아용. 우성, 오늘 연습 끝나고 남아용. 나머지 청소. 뿅.”

“왜요! 저 어제까지는 진짜 환자였잖아요! 무단결석 아닌데!”

“우성이 사랑하는 후배 몫이다. 뿅.”

“태웅이도 아픈 거잖아요, 무단결석 아니잖아요!”

“아, 태웅 감기 다 나을 때까지 면회 금지니까 그렇게 알아용.”

아, 명헌이 형! 그런 게 어딨어요!

정우성의 목소리가 기숙사를 울렸다. 어제는 죽어가더니, 하루 만에 쌩쌩해져서는 아주 날아다닌다.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정우성의 목소리에, 서태웅이 뒤척거린다. 좀처럼 꿈을 꾸지 않는 서태웅이, 악몽을 꾸고 있다. 커다란 강아지가 신이 나서 계속 왕왕 짖어댄다. 귀엽기는 한데,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다.

'시끄러워....'

두 손으로 입을 막아도 소용이 없다. 입을 막는 건 포기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보니 정우성을 닮은 듯도 하다.

"왕왕!"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와락 달려든다. 기다란 혀가 서태웅의 입술을 핥는다. 서태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제 정우성에게 배웠다. 혀를 섞으면 감기에 옮는다. 그리고 혀를 섞는 건....

'남자친구랑만 해야 해.'


산왕 우웅은 후배 태웅이를 우성이가 아주 귀여워할 것 같아서 좋아요. 월간 우웅... 꼭 제 시간에 제출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지각해버렸네요. 변명을 하자면 31일이 있는 줄 알았답니다. 바보였죠... 12월에는 꼭 정시 제출을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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