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
조각글 TYPE / 오마카세 / 뮤지컬 더 픽션
제대로 잠기지도 않는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숨을 돌리고 생각을 정리했다. 최근 몇 년간 안에서 쏟아져나오는 감각에만 집중했던 터라, 쉽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레이 헌트는 천천히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책상 뒤 원고 박스와 대충 섞어서 쌓아둔 편지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레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건 뭐, 전부 뜯어보려면 한나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군. 그는 낡은 편지 봉투 사이에서 트리뷴이라는 글자를 찾아 한데 모아두고 나머지는 아예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이 많은 걸…….”
여태 뜯어볼 생각도 안 했다는 게 신기한 양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던 걸까. 그레이는 이전의 편지와는 달리 두툼한 봉투를 뜯어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작은 탄식을 터뜨렸다.
《그림자 없는 남자》를 읽고 쓴, 무려 열 장에 다다르는 감상문이었다. 그레이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 위로 시선을 옮겼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줄곧 평가와 감상을 혼동하며 살았던 것 같다. 작품을 향한 모든 말을 비난과 호평으로 분류하고 경계를 지어 그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건 글을 계속 쓰기 위한 방법이었고, 최선의 방어였던 셈이다.
스스로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고백하건대, 처음 만났다. 그레이는 트리뷴의 이름으로, 와이트 히스만의 이름으로 온 편지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를 만나기 위해 《그림자 없는 남자》를 쓴 게 아닐까. 괜한 기대인 줄 알면서도, 실망할 걸 알면서도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라도 답장을 써야 한다. 나의 독자에게. 그는 빈 종이를 가져와 마음을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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