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파이어
"마시멜로우라도 있었으면 구워먹는 건데." "진심이세요?"
늦은 밤, 동현은 당직근무를 서느라 혼자 행정반에 있었다.
창 밖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감상적이군. 동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물컵을 홀짝였다. 그리고 이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에 당직 부사관이라도 있었으면 괜한 눈치를 주면서 시간을 버릴 수라도 있겠는데…. 10분이 넘도록 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근무 인솔하러 나가서는 동기와 노닥대며 늦장부리는 모양이었다. 늘 그랬듯이.
행정반에 혼자 앉아서 뭐가 어떻고 저떻다는 생각을 해봐야 큰 쓸모는 없었다. 어쩌겠는가? 당직인 이상, 그리고 동현이 당직사관인 이상, 아침점호 후 브리핑까지는 깨어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근취도 반납하게 될지 몰랐다. 대령님 혼자 부대에 남겨두기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동현이 건전지가 다된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통신보안, 1중대 당직사관-”
“어, 신동현이.”
동현의 말을 끊은 상대가 동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예, 대령님.”
“지금 지휘통제실로 올 수 있나?”
동현은 잠시, 행정반을 비워뒀다가 생길 문제와 대령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생길 문제를 저울질했다.
곧 당직 부사관이 돌아올 것이다. 어차피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으니, 잠깐 정도는 당직 부사관에게 맡겨도 괜찮겠지.
“네, 대령님. 바로 가겠습니다.”
상대 쪽에서 통화를 끝냈다. 동현은 잠시 통화 종료음이 울리는 수화기를 내려보다가, 벗어뒀던 전투복 상의를 챙겨입었다.
“충성, 중사 신동현.”
대령은 조용히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대령님-”
“빨리 왔군. 자, 가세.”
대령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걷던 동현은, 대령의 손에 피가 묻어있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복도 끝, 막다른 곳에 다다른 대령이 동현에게 눈짓했다.
뭘 하려는 거지?
동현은 금속 셔터에 달린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조만간 비밀번호를 더 쉬운 걸로 바꾸는 게 어떻겠나? 내가 기억을 못하니.”
그렇게 말하는 대령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하지만 그게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지금 자신이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 마땅한지 모르는 눈치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동현이 비밀번호를 전부 입력하자, 셔터가 천천히 올라갔다.
무채색의 계단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피?
동현은 피비린내인지, 쇳내인지 모를 냄새를 맡았다.
대령이 동현을 제치고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동현도 따라 걸었다. 동현은 대령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봤다. 대체 저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계단을 다 내려가자, 동현은 이것이 피 냄새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정확히 어디서 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신동현. 시체 치우는 것 좀 도와주게.”
대령은 그렇게 말하며 동현에게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권총, 흩뿌려져 피가 흥건한 서류뭉치, 시체.
시체는 바닥에 약간 끌려있었다. 채 1m도 안 되어 보이는 거리였지만.
나름 옮기려고 노력한 건가?
동현은 시체를 봤다. 그리고 제 손을 내려다봤다. 제 손에도 방금 대령에게서 묻은 피가 눌어붙어 있었다.
“…아는 사람이겠지?”
대령이 적막을 깨고 물었다. 동현은 그제야 시체를 관찰했다. 견장에 달린 별 하나가 형광등의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네.”
“역시 그런가.”
특별한 죄책감이 묻어나는 대답은 아니었다.
동현이 대령을 돌아봤다.
동현과 눈이 마주친 대령은 미소인지 뭔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동현이 다시 준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가슴팍에 한 발, 머리에 두 발. 충동적으로 쏜 건가? 말싸움이 있었다거나….
“대령님은 어쩌고 싶으십니까?”
“나는…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대령이 감정이라곤 전혀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저런 사람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하다니, 하고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동현은 알고 있었다. 준장을 죽인 건 지금 제 앞에 서있는 이 남자가 아니란 걸.
분명 대령‘님’이었겠지.
“그럼, 우선 치웁시다, 대령님.”
동현이 준장을 안아 들었다. 체격 좋은 성인 남자의 시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동현은 그날 처음 알았다. 몇 번 몸을 휘청이고 이내 중심을 잡은 동현이 허공을 봤다.
코 앞에서 풍기는 신선한 피 냄새, 시야를 조금만 내려도 보이는 죽은 이의 얼굴….
의식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크게 보면 이것 또한 동현이 자초한 일인 것을.
당직 부사관은 동현이 없으니 옳다구나 하고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경계근무도 그리 삼엄하지 않았으니,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고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따위로 할 거면 경계근무를 왜 서는 거야. 동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으로선 그것도 꽤 고마운 일이었다.
사실 대령이 사람을 죽인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뭐, 부대의 사령관이 사람 하나 죽였다고 놀랄 것이면 전쟁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달랐다. 죽은 이는 준장이었다. 대령보다 직급이 높은…. 기왕이면 몰래 처리하는 편이 좋았다.
동현이 준장을 바닥에 눕혔다. 차가운 땅바닥의 냉기가 발을 타고 동현의 몸을 기어올랐다.
“태워야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서, 대령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에 동현도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폐허 서울에서 사람이 실종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당장 부대에도 탈영병이 많았다. 하지만 죽은 준장같이, 핵이 터지기 전부터 헌신적으로 군에 몸담던 사람이 탈영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럼, 역시 흔적도 없이 죽인 다음 발뺌하는 편이 낫겠지. 실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조용히 넘어갈 것이고, 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들 저들이 어쩌겠는가. 되레 겁먹고 잠잠해질 것이다.
동현은 보일러실에서 기름 한 통을 들고 왔다.
군화, 군화는 잘 안 탈 것이다. 해봐서 안다. 동현이 준장의 군화를 벗겨냈다. 그리고 준장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축하게 적셨다.
대령은 옆에 쭈그려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딱히 구경할 만한 건 아닌데. 동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제지하지 않았다.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도 아니고…. 이내 동현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담배를 피나?”
대령이 대뜸 물었다.
“…아뇨.”
동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대령이 그렇군, 하고 퍼더앉았다.
“대령님, 그렇게 앉으시면 정복이 더러워집니다.”
“그럼 이참에 한 번 피워보는 건?”
대령은 동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흔들었다. 동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령의 손에 들린 담뱃갑을 봤다.
디스 플러스.
PX에 남아있던 건가? 용케도 찾아냈군….
동현은 아포칼립스 소설을 몇 번 읽어본 적 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담배같은 기호식품이 재화로 사용되곤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건 현실에서도 매한가지였다. 동현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니 그런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현은 대답 없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어 불을 붙였다. 찰칵, 라이터에서 피어오른 불이 나뭇가지에 옮겨붙고, 그걸 준장의 몸에 떨어뜨렸다.
준장 곁에 주저앉아있던 대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아, 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불에 그슬린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불이 원래 이렇게 크게 나나?”
동현이 빤히 쳐다보자, 대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담뱃갑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들어, 여전히 피가 묻은 손으로 동현에게 하나 건넸다.
“자.”
“저는 안 피웁니다.”
“정말?”
대령이 짓궂게 웃었다.
“그분이 피우시던 것도 이것 아닌가?”
동현의 숨이 턱 막혔다. 그런 건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때, 이제 피우고 싶어졌나?”
동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령을 내려다봤다. 대령은 여전히 예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현은 말없이 대령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제 입가로 가져다댔다. 동현이 담배 개비를 입에 문 후, 라이터로-
“잠깐, 나부터.”
대령이 재촉했다. 동현은 하는 수 없이 대령의 얼굴 앞에서 라이터를 켰다. 찰칵, 하고 불이 켜지자, 작은 광원이 대령의 얼굴을 비췄다. 담배 개비의 끝이 붉게 타올랐다.
“하….”
대령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뱉었다.
불타고 있는 시체를 눈앞에 두고 비위도 좋아. 동현이 그렇게 생각하며 제 담배 개비에도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켰다.
찰칵, 찰칵, 찰칵….
대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동현쪽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아, 기름이 다 됐나보군.”
동현은 주머니에 라이터를 쑤셔 넣었다.
동현의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시체가 보였다. 어느새 준장… 이었던 것에서는 고기라도 굽는 듯, 노릇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걸 불씨 삼아 피우는 건 좀 그렇지.
대령은 이걸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쿡쿡 웃었다. 그러면서 담배 연기를 뻐끔거렸다. 동현은 대령을 흘겨봤다.
그러고 보니 대령이 올해로 몇 살이더라? 설마 내가 지금 미성년자한테 담배를 쥐여준 건 아니겠지. 너무 당당해서 그런 건 생각을 못 했는데….
동현의 그런 시선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대령은 뒷짐을 진 채로 눈썹을 들어 올렸다.
“으응?”
대령이 웃음을 참으려 애쓰며 피식거렸다. 동현은 그런 대령의 속내를 영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쿡쿡대던 대령이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마치 어서 하라는 듯이, 동현에게로 고개를 돌리곤 담배를 까딱였다.
지하에서만 해도 무슨 감정 없는 기계처럼 굴었으면서, 역시 제가 불리할 때만 어린 척하고…. 제멋대로가 따로 없었다. 동현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허리를 굽혔다.
치익, 하고 불붙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현이 연기를 빨아들였다.
“…!”
동현이 무릎에 손을 짚고 콜록거렸다. 매캐한 연기 탓에 절로 눈물이 돌았다.
“저런~”
대령이 짐짓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안 피는 건 줄 알았더니 못 피는 거였군.”
그러고는 하하 웃었다. 동현은 귀 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몇 번 숨을 고르고 나니 담배 연기도 나름 들이킬 만했다. 대령은 어느샌가 주위에 있던 큰 바위 하나에 앉아있었다. 동현도 그 곁으로 가 앉았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캠프파이어 같지 않나?”
동현이 흘끗 대령을 봤다. 시체가 타오르면서 일렁이는 주황색 불빛이 대령의 얼굴을 비췄다.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말이 없던 대령이 다시 물었다.
“자네 혹시 삼국지 읽어봤나?”
“아뇨.”
“…그래.”
둘은 한참을 그러고 앉아있었다. 잠자코 있던 동현이 물었다.
“근데, 그래서 왜 죽이신 겁니까?”
“음….”
대령이 고민하듯 말을 끌었다. 그러다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까먹었네.”
“아, 네.”
불은 한참을 타올랐다.
해가 떠오르고 새들이 지저귈 무렵, 불은 자연히 꺼졌다. 뼈와, 거기에 눌은 고깃덩이, 그리고 아마 옷이었을 무언가들만이 엉겨붙어 새벽공기에 식어갔다.
대령은 가만히 앉아 동현이 그것을 파묻는 걸 구경했다. 그리고 동현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도 밤에 당직 안 서고 이렇게 뺑끼부리니까 좋지?”
아, 맞다. 당직.
머리가 지끈거렸다. 질린 표정을 한 동현을, 대령은 키득거리며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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