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사단장
총 9개의 포스트
탕-! "안되겠습니다, 대령님. 꼼짝을 안하는데요." "참 내⋯." 대령이 이마를 짚었다. 그러는동안 동현은 문고리를 돌려봤다. 문고리는 무리없이 휙휙 잘만 돌아갔지만, 그 안의 부품 하나가 문이 열리는 걸 막고있는 듯 싶었다. 동현은 권총의 손잡이로 몇 번이고 문고리를 내리쳤다. 덜컥, 덜컥. "괜히 힘빼지 말고 이리 오게." "예, 대령님." 동현은 침
나는 아직도 종종 그 시절을 생각하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이것은 내가 스물두살일 적부터 마흔 무렵에 이르기까지의, 장장 이십여년에 이르는 긴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 긴 여정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내 또래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신동현이었는데, 그냥저냥 평범한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굉
2024년 07월 14일에 포스타입에 올렸던 글을 옮겼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는 민주주의가 돌아왔다. 마치 사라진 적도 없었다는 듯이 뻔뻔하게도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세상을 다시 한번 뒤집어놓았다. 공무원들, 민병대, 엽우회, 어딘지는 몰라도, 그들이 시작한 일종의 계몽운동이 빛을 발한 셈이었다. 제일 먼저 부활한 것은 행정부였다. 곳곳에는 민주적인
2022년 10월 20일에 포스타입에 올렸던 글을 옮겼습니다. 민들레가 군화에 밟혀 뭉개졌다. 돌 위에 히마리없이 뉘여진 민들레를 몇번이고 문댔다.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무참히 으깨졌다. 4월의 찬바람이 목께를 훑고 지나갔다. 폐까지 으슬거리는 기분이었다. 내게 담배를 태우는 취미라도 있었더라면 조금이나마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2022년 07월 30일에 포스타입에 올렸던 글을 옮겼습니다.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떨어졌다. 날짜를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남자가 옥상에서 담배를 피던 그날은 12월이었다. 그의 날짜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가 몰랐던 정확한 날짜는 2033년 12월 12일이었다. 2033년의 서울에서 시의적절한 계절이란 존재하기 힘들었다
“임 소위님, 아직 퇴근 안하셨습니까?” 행정실에 들어가자마자 신동현 중…? 상? 중사가 방긋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달리 밝은 낯이었다. “아, 맞아. 임 소위님, 관사 샤워실 수도관에 문제가 생겨서 말이죠, 모레까진 샤워실 사용 금지입니다. 아까 전파 드린 것 확인하셨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작위적인 웃음을 지었다. “퇴근하
늦은 밤, 동현은 당직근무를 서느라 혼자 행정반에 있었다. 창 밖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감상적이군. 동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물컵을 홀짝였다. 그리고 이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에 당직 부사관이라도 있었으면 괜한 눈치를 주면서 시간을 버릴 수라도 있겠는데…. 10분이 넘도록 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근무 인솔하러 나가서는 동기와 노닥대며
수근이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늘 똑같은 공관 침실의 천장. 벽지 구석에는 곰팡이가 슬어있었고, 조금 찢어져 있긴 했지만, 뭐 요즘 같은 서울에서 이 정도면 괜찮았다. 벽이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물론 기관지에는 안 좋겠지만, 너나모두 배곯는 요즈음에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있던가. 물론 언젠가 공관을 다시 지을 수 없냐고 물어본
동현의 떨리는 숨소리가 총성에 묻혔다. 지하의 온도가 매섭도록 찼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숨결에 맞춰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이런 씨발... 그렇다고 진짜로 상관을 쏴? 이제 아주 막 나가겠다 이거군..." 피로 흥건한 제 손을 내려다보던 동현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수근이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자넨 뭘 또 그리 놀란 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