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관목

크리캐시

13월 32일 by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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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꽃피는 계절

"캐서린, 여기가 네 집이다."

다정하게 속삭이는 외숙의 목소리를 들으며 캐서린 스미스는 생경한 기분으로 눈앞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본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데도 외가를 제대로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캐서린의 아버지가 그녀와 외가의 연이 끊기지 않게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아니, 사실 아버지는 가끔 그녀와 폭스워드 가 사이에 어떠한 연관관계도 남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출장 중 배가 침몰하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만 뒤 어린 그녀의 양육권을 얻어낸 사람이 외숙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캐서린은 정말로 기뻤다.

아버지 쪽 집안인 스미스 일가는 대부분 별 볼 일 없는 작자들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개중 유일하게 자수성가를 이뤄낸 사람이었다. 그 탓으로 캐서린의 집에는 언제나 금전을 구걸하는 ‘무슨 무슨 스미스 씨’가 각다귀 떼처럼 몰려들었다. 아버지가 그들을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로 일축하며 그중 누구에게도 문을 열지 않았으니, 캐서린이 이날에 이르기까지 스미스 가 사람의 이름은커녕 안면조차 전혀 외우지 못한 것은 그녀의 탓이 아니었다. 그러니 외숙은 그녀가 얼굴과 이름 모두 숙지하고 있는 유일한 친척이었다.

외숙은 캐서린이 아버지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보다도 외숙이 더 좋을지도 몰라. 구태여 두 사람 사이의 순위를 정확히 매기려고 든 적이 없으므로, 제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는 그녀 자신조차도 잘 몰랐다.

크리스토퍼 폭스워드, 결혼 적령기를 넘기긴 했으나 여전히 젊고 매력적인 폭스워드 백작. 그자가 바로 캐서린의 외숙이었다.

캐서린은 그를 크리스 숙부라고 불렀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구강 구조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그녀가 그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자 외숙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칭으로 불러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기 때문이다.

‘외숙은 정말로 다정해.’

무뚝뚝한 아버지와는 달리 다감한 성정을 지닌 외숙은 흐린 날 하늘처럼 희끄무레한 머리색에 물 빠진 녹색 눈동자를 한, 안개 뒤에 한 겹 감싸인 듯 오묘한 색채에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미남자였다. 그의 눈 색은 캐서린의 것과 완전히 똑같았으며, 마치 캐서린과 숙질지간이라기보다 차라리 부녀지간처럼 보일 만큼 닮아 있었다.

"네가 네 어머니를 쏙 빼닮아서 그래."

그리고 캐시는 나와 쌍둥이처럼 닮았었지. 언젠가 그녀가 자신이 아버지보다도 외숙과 더 닮았다는 사실에 신기해하자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이 터울이 꽤 지는 남매지간치고는 드문 일이었다고도 덧붙이면서.

캐서린이 외숙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외숙의 하나뿐인 손아래 누이. 아버지의 아내. 캐서린을 낳고 얼마 안 되어 산욕열로 죽은 어머니.

캐서린 폭스워드 스미스.

"저와 이름이 같네요?"

"네 이름을 네 어머니에게서 따와서 지었으니까."

"하지만, 숙부는 항상 어머니를 캐시라고 부르셨잖아요."

"그건 그냥 애칭이야. 입에 붙었으니까."

"그러면 저는 왜 캐서린이라고 불러요?"

"그럼 네가 캐서린이지, 캐리는 아니잖아?"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캐서린은 입을 비죽거렸으나 이내 저도 애칭으로 불러달라고 조르기를 관뒀다. 아버지는 제 이름을 어머니에게서 따왔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어머니에 관해서 물어보면 "네가 다 크면."으로 무뚝뚝하게 일축하기 일쑤였다. 캐서린은 내심 아버지가 사실은 어머니를 미워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그녀의 어머니를 알던 사람이라면 전부 깜짝 놀라면서 “어머니를 똑 닮았구나”라고 말하곤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미워하듯이 그 딸인 자신 또한.

그러니 외숙의 화까지 돋울 수는 없었다. 캐서린은 지금처럼 다정하게 대해주는 '크리스 숙부'까지 딱딱한 아버지처럼 돌변해 버린다면 너무 외롭고 슬플 것 같았다.

외숙에 대한 첫 기억은 다섯 살 무렵이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너무 어렸을 때라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미 그때부터 그녀는 외숙을 익숙하게 여기고 있었음은 확실했다. 아마 그녀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그는 꾸준히 스미스 가를 방문했던 것이리라. 캐서린의 '첫 번째' 외숙은 검은 중절모와 얇은 코트를 말쑥하게 차려입고, 한 손에 하얀 꽃을 든 채였다. 모자를 가볍게 들었다가 다시 머리 위에 얹어 보이며 그는 캐서린에게 인사했었다. "안녕, 캐서린."

외숙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기 때문일 터였다.

날짜, 요일, 절기 같은 것을 모를 만큼 어린 나이였을 적에도 캐서린은 어렴풋이 외숙이 매해 두 번, 같은 날짜에만 스미스 가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 하루는 캐서린의 생일이었다. 캐서린은 생일이 ‘내가 태어난 날’이라는 사실까지는 잘 몰랐지만 다들 자기를 축하해주는 특별한 날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생일이 되면, 그녀의 외숙부는 근사하게 차려입고 커다란 선물 상자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서 자신을 찾아왔다. 명실상부 자기가 주인공인 날이었으므로 캐서린은 생일이 좋았다.

‘하지만, 내 생일이라서 삼촌이 우리 집에 오는 거라면, 다른 날도 뭔가 특별한 날이니까 삼촌이 들르는 것일 텐데.’

그렇지만 캐서린은 그날이 대체 뭐 하는 날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제 생일이 아닌 날에 외숙이 스미스 가를 방문할 때면 늘 정원의 관목에 꽃이 피어 있었다. 아버지나 외숙의 허리춤 좀 못 되는 키의 관목으로, 봄철이면 가지 하나에 조막만 한 노란 꽃망울 여럿이 만개했다. 그러니 외숙의 방문이 매해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무리 어린 캐서린이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외숙의 옷매무새며 소지품도 이상했다. 노란 꽃이 피는 계절이라면 그걸 꺾어서 오면 될걸, 외숙부는 언제나 검은 정장 차림에 그와는 반대로 하얗고 머리가 큰 꽃을 들고 대문을 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건 국화였다. 노란 관목이 꽃 피는 그날은 어머니의 기일이었던 것이다….

"캐서린. 집에 오니 어떠니? 마음에 들어?"

어깨에 두 손이 부드럽게 감겼다.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는 머리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캐서린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측면으로 살짝 치켜들자 입매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는 외숙의 얼굴이 보였다.

"네? 아, 네. 정말로 좋아요… 숙부의 집인걸요. 처음 보는 곳이지만, 단박에 깨달았어요. 저는 이곳을 사랑하게 될 거예요!"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기쁘구나. 들어가자. 날이 풀린 지 얼마 안 돼서 정원이 조금 엉망이긴 하지만… 이해해 줄 수 있지?"

"물론이죠."

“이 정원을 네 마음대로 꾸며도 돼. 나는 아내가 없으니 이제 네가 폭스워드의 안주인이다.”

“와, 정말요? 정말 기뻐요….”

외숙이 여전히 그녀의 뒤에 선 채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캐서린은 어깨를 붙든 그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정문이 서서히 열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02. 꽃피는 관목

"아직 해가 지면 쌀쌀한데, 왜 아직도 들어가지 않고 있는 거야?"

발음이 불분명하게 뭉개지는 오라비의 목소리를 듣고서 캐서린 폭스워드는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늘 위로 올라가는 하얀 연기였다. 연기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올렸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리자 입술 사이에 다 타서 불이 꺼 연초를 물고 있는 크리스토퍼가 보였다. 그는 실내에서나 입을 법한 단출한 드레스셔츠 차림이었고, 심지어 팔을 반쯤 걷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두툼한 가디건에 숄까지 걸친 채였다. 어이가 없어진 캐서린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춥기는 네가 더 추워 보이는데?"

"나는 괜찮아. 난 건강하고 기운이 넘치는 젊은이거든."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뭘 보느라 여태껏 정원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거야? 이 나무?"

"…여기 꽃이 피려는 게 보여서 슬슬 정원 정리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아하. 어머니가 아프시니 네가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고 고생이네."

"어차피 결혼하고 나면 남편의 집에서 내가 계속 맡아야 할 일이야.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좋지."

“…너 내가 네 맘에 안 드는 소리 했다고 그러는 거지?”

“마음대로 생각해.”

"예습이라, 글쎄, 너무 이르지 않나. 어머니는 곧 나으실 테고, 넌 아직 약혼도 안 했어."

"크리스, 네가 내게 혼담이 들어오는 족족 파투 내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

캐서린은 숄을 여미며 냉담하게 받아쳤다. 크리스토퍼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는 뭐라고 대꾸하려는 듯 성급하게 입을 벌렸다.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저를 고정하고 있던 입술 사이가 헐거워지자 연초가 곧장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는 그것을 허둥지둥 두 손으로 받아냈다. 캐서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불은 이미 꺼친 상태였지만 그래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니, 아무리 다 피운 꽁초였대도 적잖이 뜨거웠을 테다. 아마 손에도 화상이 생겼겠지... 멍청이 아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넌... 안으로 들어가서 찬물에 손이나 씻어.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아니? 금방 들어갈 거면 나도 너랑 같이 갈래."

"무슨 헛소리야? 손 안 다쳤어?"

"어차피 반쯤 다 식은 거였어. 그리고 너 같은 여자애 손에 흉이 나야 큰일이지, 다 큰 남자 손에 상처가 뭐 별일이라고."

"그렇게 살다가 패혈증으로 죽어버리라지."

"오빠한테 말 좀 곱게 쓰자."

크리스토퍼가 맞받아치며 캐서린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원래도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몇 걸음 만에 금세 그는 캐서린과 나란히 서 있게 되었다. 그가 팔을 위로 뻗더니(그러면서 드러난 손은 정말로 꽤 멀쩡해 보였다) 관목의 가지 중 삐죽하니 유독 위로 솟아오른 것을 한 손에 쥐었다.

"이게 거슬리던 거였지?"

캐서린은 눈썹만 들어 올렸다. 크리스토퍼가 제 심중을 읽어냈다는 사실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토퍼는 그녀를 얼마간 바라보다가, 무언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이윽고 손에 힘을 주어 쥐고 있던 가지를 부러뜨렸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가지는 간단히 꺾여 나가, 이제 언뜻 보기에 모나게 튀어나온 것은 없어 보였다. 그는 캐서린에게 부러뜨린 가지를 내밀었다.

"네 말대로 꽃봉오리가 맺혀 있네. 방에 꽂아두지 그래? 노란 꽃이니, 네 머리색이랑 잘 어울리잖아."

"그렇게 막 꺾으면 절단면이... 됐어. 이제 그만 들어가자."

캐서린은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한숨을 삼키고 크리스토퍼가 내민 가지를 낚아채듯 받아 갔다. 그리고 나머지 빈손을 그에게 뻗었다. 크리스토퍼는 멀뚱멀뚱 그 손을 내보다 "아," 하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캐서린이 저에게 먼저 손을 건넨 사실이 적잖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린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는 그의 팔목을 붙잡은 뒤 억지로 뒤집어 손바닥을 확인해 보았다. 어렵지 않게 곳곳이 울긋불긋 부어올라 있는 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로 안 다쳤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한 것보다도 상태가 심각했다... 그녀는 못마땅하게 혀를 찼다.

"캐시...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나 부끄러운데."

"나 스미스 씨랑 결혼하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 크리스."

"뭐?"

"네가 내 혼담을 죄다 파투 낸 거, 전부 쓸모없는 짓이었다는 뜻이야. 평생 손위 형제의 보살핌을 받으며 노처녀로 늙어가기는 질색이야. 가뜩이나 너도 곧 결혼해야 할 나이인데, 네 부인에게 눈칫밥이나 먹으며 살 바에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겠어."

"캐시! 왜 벌써 그렇게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거야? 그리고 결혼처럼 큰일을 너 혼자서 결정하는 게 말이나 돼? 설마 아버지도 벌써 허락하신 건 아니지?"

"당연히 허락받았으니까 너한테도 말해주는 거야. 아무리 늦어도 올해 안에 식 올릴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스미스 그놈은 물려받은 혈통도 저질에 더럽게 돈을 굴려댄 졸부에 불과해!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몰라서 잘못된 선택을 한 거야. 내가 당장 아버지에게 가서 말씀드릴게. 아직 되돌릴 수 있어."

“난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결정 내린 거야!”

“캐서린!”

흥분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형제의 숨결에선 연초 냄새가 났다. 캐서린은 그게 너무 고까웠다.

운이 좋아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얼굴도 못나지 않아 외견으로 조롱을 들은 일도 없다. 남편 될 이도 제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게 눈에 보였다. 어려울 게 없는 인생이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저 자신이 구름이나 연기를 붙잡는 데 온 삶을 쏟아붓는 멍청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서 뭐든지 손에 쥐고 싶었다. 일정한 부피와 무게를 가지는 딱딱한 것이 이 손안에 들어 있으면, 허망한 마음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오늘은 마침 그것이 이 관목 가지였다. 그러니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거슬리는 가지를 꺾어서 쥐고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너무 높은 곳에 뻗어 있었고 그녀의 키로는 꺾어내기엔 무리였다.

결국에 그것을 꺾어다 그녀에게 바친 사람은 크리스가 되었고, 캐서린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바-연기-를 제 가슴안에 가득 채워 마신 사람도 크리스였다. 오래된 증오와 질투가 불을 지폈다. 그의 손바닥에 난 화상 자국마저도 부러워졌다. 결혼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래서였다. 원래대로라면 양친 모두 동석하신 자리에서 제대로 공표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크리스의 얼굴을 볼 수도 없었으리라. 그도 표정 관리라는 걸 할 줄 아는 종자였다.

더 가까이에서 이 표정을 보고 싶어졌다. 캐서린이 팔을 뻗자, 어스름한 달빛을 받아 얼핏 푸른색으로 보이는 크리스의 머리카락이 손바닥에 와 닿았다. 관목 가지를 떨어뜨리고 자유로워진 손을 남자의 목덜미 위에 얹자 크리스가 곧장 고개를 숙여왔다. 연초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캐서린의 관자놀이며 뺨에 제 입술을 붙이고 그녀의 이름을 속살거렸다. 달싹거리는 입술의 움직임이 전부 피부로 직접 느껴졌다. 캐서린, 캐서린.

"캐시, 제발 결혼하지 마."

문득 바닥에 떨어진 관목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캐서린은 내심으로 중얼거렸다. 스미스 씨의 정원은 무척 황량하다던데, 친정에서 관목 하나 들여오는 정도는 괜찮겠지. 다음에 만나면 물어보자.

크리스가 제 이름을 연신 쏘삭이는 것을 들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듣기 좋은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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