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논컾)

생일 (백업)

모두가 축복받는 날이잖아

백업 by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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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날짜: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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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알고 있는 쿠키를 놀라게 하는 법이 뭐가 있을까?"

"응?"

샌드위치는 포장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정작 질문을 던진 크루아상의 시선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방금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버린 생각인 모양이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이야? 새 연구 주제 같은 거?"

"응? 어? 나 방금 입 밖으로 말했나?"

역시나 눈을 크게 뜨고 되물어온다. 되묻는 와중에도 여전히 눈의 초점은 흐린 게 아무래도 방금의 질문이 크루아상에게 최근 들어 가장 큰 고민인 것 같다. 예전부터 크루아상은 자신이 한 번 빠진 주제는 해결될 때까지 생각하고는 했다. 간만에 옛 생각을 하며 샌드위치는 크루아상의 질문(비록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에 응해주었다.

"그래서 무슨 고민인데? 모든 걸 알고 있는 쿠키는 친구?"

"아, 응. 친구…… 라기보단 직장 동료? 같은 느낌이지. 모든 걸 안다는 건 그러니까, 말 그대로 내가 뭘 할지 다 알고 있는…… 아! 그래. 눈치가 엄청 빨라."

크루아상은 둘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 친구라는 단어는 좀 적절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시간관리국의 위계질서를 팔아먹고 말았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직장 동료' 씨도 딱히 크루아상과의 상하 관계를 강조하지는 않으니 대충 넘어가 줄 것이다. 

"모든 걸 안다고 말할 정도면 정말 눈치가 빠른가 보네? 대단하다! 그 쿠키한테 깜짝 파티 같은 거라도 해주려는 거야?"

"비슷해. 곧 생일이거든. 나랑 만난 후로 처음 돌아온 생일이어서 좀 제대로 챙겨주고 싶은데, 뭘 준비하든 다 알아버릴 것 같으니 그럼 특별함이 좀 부족하지 않나 해서……."

"확실히 그런 건 뭔지 알아버리면 분위기가 안 살지. 근데 이렇게 고민하는 걸 보니 많이 친한 동료인가 봐?"

친한 동료?

"아무튼 소중한 쿠키인 거지?"

소중해? 그러니까…… 시간지기가? 크루아상은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 시간지기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은 이와 딴판이다. 귀찮고, 성가시고, 종잡을 수가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가끔은 두려움까지 있다. '친하고 소중한 동료'라니, 이건 시간지기가 들어도 웃을 거다.

"딱히 그런 건 아닐걸. 나 아니면 생일 축하해 줄 쿠키도 없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일 뿐이고."

"뭐! 시간관리국에도 사내 왕따, 이런 거 있어?"

"아니, 왕따는 아닌데. 이걸 뭐라고 말하지. 그냥 아는 쿠키가 나밖에 없는 거야……."

샌드위치는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 이상 잘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애초에 크루아상을 제하면 시간관리국 직원 중 그 누구도 시간지기의 존재 자체를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냥 대충 오해받게 두는 수밖에 없었다. 위계질서를 흩뜨리는 걸로도 모자라 국장을 왕따로 만들다니……. 시간지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죄를 짓는 기분이다. 제멋대로 산 건 시간지기인데 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야 하는 거야!

"아무튼 그런 쿠키가 있으면 진작 말해주지. 다음엔 같이 와!"

샌드위치가 포장을 끝낸 샌드위치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같이 오라는 말에 크루아상은 반사적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시간의 틈새에서 보고 있을 게 분명한 시간지기가 갑자기 튀어나오진 않을까 걱정된 탓이다. 다행히 아무도 튀어나오지 않았고, 그제야 크루아상은 답했다.

"그래. 아, 맞아. 이 가게 샌드위치, 좋아하더라."

"정말? 그럼 최근에 샌드위치 좀 더 많이 사가기 시작한 게 그 친구랑 나눠 먹느라 그런 거였구나?"

"어, 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보다 친구 아니라니까."

아무리 봐도 친구인데. 물론, 이유는 모르겠지만 크루아상이 친구라는 말을 질색하는 것 같았으므로 샌드위치는 굳이 생각을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 친구 아니라는 누군가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샌드위치 봉투를 안고 가게를 나서는 크루아상을 배웅할 뿐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정작 놀라게 하는 방법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못 했잖아! 대화라는 게 늘 그렇지만, 중요한 주제처럼 보였기에 겉돌다가 끝난 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도 가게에 자주 오니까 다음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그때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곧 크루아상도 생일인데. 둘이 생일이 비슷한가?"

"그동안 나한테 주려고 샌드위치를 더 샀구나~."

"뭐야, 듣고 있었어?"

시간관리국으로 돌아오는 길, 시간지기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 싶자 언제나처럼 갑자기 등장했다. 이젠 안 놀랄 법도 한데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종일 자기만 지켜보다가 내킬 때 튀어나오는 쿠키한테 익숙해지는 게 더 이상하다! 크루아상은 자기가 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렸다.

"하긴, 안 들었을 리가 없지."

"감동이야~."

시간지기는 시간의 틈새에서 종일 크루아상의 대화를 들으면서, 막상 틈새 밖으로 나오면 크루아상의 말은 듣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말을 하면 좀 들으라고 화도 내보고, 자신도 시간지기의 말을 무시해보기도 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봤으나 시간지기는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꾸준히 자기 마음에 드는 말만 들었다. 누가 뭐래도 '일관되게 제멋대로'라는 웃기는 성격을 고수하는 쿠키는 전 세계에 시간지기가 유일할 것이다.

"내가 연구에 빠져 있으면 네가 꼭 하나씩 집어가니까. 내가 먹을 게 모자라서 더 산 거야."

"너도 은근히 부끄러움이 많네~."

"이건 또 무슨 소린데……."

"그냥 나 주려고 샀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잖아~."

"나 지금 벽이랑 얘기하나?"

뭐가 그리 즐거운지 소리 내 웃으면서, 시간지기는 등장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다. 그러고 보니 가게에서의 대화를 들었다는 건 놀라게 하는 방법이 어쩌고 하는 얘기도 들은 건가. 이거 벌써부터 험난할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조금 이른 듯한 걱정을 하며 눈을 돌린 크루아상의 눈에 주변의 가게들이 들어왔다. 옷, 장신구, 케이크, 꽃……. 무수히 늘어선 가게들은 저마다 남에게 선물하기 좋을 법한 물건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지기에게 대체 뭘 주면 좋을지. 가지고 싶은 물건이라면 뭐든 가질 수 있는 능력자를 만족시킬 만한 선물을 고르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둘이 원래 같은 존재였음에 기반해 생각해 보아도, 크루아상이 생일날 받으면 기쁠 선물은 새 공구나 관심 있던 분야의 신간 정도인데…… 시간지기는 그런 것에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이니 이런 생각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뭘 줘도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냥 간단하고 무난하게 케이크 정도로만 준비해도 될 걸, 한 번쯤은 놀라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상한 집념이 솟아나 그러지 못하게 했다.

"뭐, 아직 시간은 좀 있으니까……."

생일까지 앞으로 일주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 기간 안에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

6

창밖에선 거센 비바람이 울렸다. 오늘은 내내 관리국 안에 틀어박혀 있을 예정인 크루아상과는 별 관계 없지만, 퇴근해야 할 직원들은 좀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지금은 남 걱정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손 끝에서는 녹슨 금속 냄새가 풍겼다. 누군가는 이상하게 여길지 몰라도 크루아상은 이 냄새를 제법 좋아했다.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음을 확인받는 느낌이었으므로.

"이건 언제까지 하는 거야~?"

시간지기도 여전히 이 냄새를 좋아할까? 돌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타이밍 좋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계속 비슷한 것을 고민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좋아할까, 아니라면 넌 어떤 걸 좋아할까. 그런 것들 말이다.

"나도 몰라. 흠, 아마 끝날 때까지?"

"대답이 불친절하네~."

"네가 평소에 했던 대답들부터 돌이켜보고 말하지 그래……."

적당히 답하면서 크루아상은 다른 고민을 했다. 좋아하는 게 크루아상과 다르다면, 솔직히 크루아상이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히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지기 같은 쿠키가 좋아하는 게 뭔지 누가 추측할 수 있겠냐고. 그렇다면 이제 직접 물어봐야 하는데…… 생일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주제는 어떻게 물어보든 상당히 수상할 게 뻔하다. 아니, 샌드위치네 가게에서의 대화를 들었다면 의미도 없는 고민이긴 한데.

그러는 동안 시간지기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든 별 관심도 없는 듯, 작업실 뒤쪽의 책상 위에 놓인 공구들을 아무렇게나 한쪽으로 치우고 걸터앉았다. 무거운 쇳덩이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놀란 크루아상이 바로 돌아보았다.

"의자 놔두고 왜 굳이 거기에 앉는 거야?"

"여기가 더 높잖아~."

"좀 성의 있는 이유를 대면 안 돼?"

"모르겠는데~."

이거 봐, 누가 누구한테 대답이 불친절하다는 거야. 잔뜩 투덜거리던 크루아상은 문득 시간지기의 무신경을 느꼈다. 이 정도면 자기 생일도 잊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럼 서프라이즈를 하기 쉬울 수도 있지만, 시간지기라면 '생일? 이런 거에 아무 의미도 없는데?' 같은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다다랐다.

아니, 잠시만. 왜 갈수록 걱정이 늘어나는 건데! 애초에 생일을 축하해주자는 생각부터가 잘못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이해하지 않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게는 어떤 축하의 말도 의미가 없을 수밖에. 하지만 시작이 같았던 자신만큼은…… 시간지기를 이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크루아상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넌 진짜 세상에서 제일 골치 아픈 쿠키야."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은 창밖의 빗소리와 언제나처럼 즐거운 웃음 뿐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냐고.

5

돌이켜 보면 첫 만남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분명히 동료는커녕 적대관계에 가까웠던 시작에서 지금까지. 둘이 둘 나름의 타협점을 찾는 데 성공했고, 그 이후로 시간지기가 정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완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과거를 멋대로 바꿔놓으려는 정신 나간 짓은 한 적 없으니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치겠다. 사소한 장난(시간지기의 표현을 빌린 것이지만, 솔직히 크루아상은 이게 장난으로 넘어갈 일인가 싶었다) 정도는 쉽게 수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분하게도, 시간지기는 정말 유능했다. 아, 유능하다는 것은 시간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으로 절대 일을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미리 밝혀 둔다. 크루아상이 시간지기를 만난 이후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일은 단 두 번 뿐이었는데, 그 두 번 모두 시간지기가 너무도 쉽게 해결해버렸기 때문에 인상에 깊게 남고 말았다.

크루아상이 국장의 실체를 알기 전 국장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착각한 건 관리국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였다. 얼마나 시간을 수습하느라 돌아다니길래 출근도 안 하지, 그냥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거기에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소문까지 더해져 대충 '모든 시간을 수리하는 강하고 멋진 국장' 뭐 이런 이미지가 생겨났던 것 같은데…….

사실 지금도 새벽에 국장에게 샌드위치를 뜯기는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직원, 그러니까 크루아상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크루아상은 그게 웃기면서도 좀 억울하다고 느꼈었지만, 시간지기가 손쓸 수도 없이 완전히 뒤틀린 시간을 간단히 복구하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며 생각했다. 그런 소문이 따라붙을 만 하다고. 시간지기가 아무리 일을 안 해도 관리국 직원 오십 명을 합친 것보다도 능력이 뛰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크루아상은 시간지기와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다는 생각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미래의 자신을 따라잡고 싶다니, 자기계발서에나 들어가면 좋은 문구이겠지만 크루아상에게만은 비유가 아닌 현실이었다. 내가 시간지기만큼 강하다면. 그 힘을 가지고 어딘지 모를 틈새에 틀어박혀 음침하게 다른 자신을 지켜보기나 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돕는 데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심정을 시간지기에게 털어놓자, 시간지기의 감상은 이랬다.

"음침하다니 너무하네~."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거야?

아무튼 처음의 사이 그대로였다면 이렇게 생일 선물을 고민하고 있을 여유도 없었을 텐데. 시간지기는 정말로 자신의 생일조차 잊어버렸을까? 만일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면 크루아상의 생일도 기억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물을 절대 기대할 수 없겠지만. 시간지기가 챙겨주지 않아도 매년 친구들과 축하하고 있으니 괜찮다.

그러나 시간지기는 다르다. 샌드위치에게 말했던 대로 크루아상이 아니면 누구도 축하해줄 수가 없다. 크루아상은 그게 왠지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축복받아 마땅하다는 날을 혼자 보낸다니. 그건, 그에게 이미 '크루아상'으로 태어난 날은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가만 두고 보기 힘든 일이다. 크루아상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드디어 선물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4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크루아상은 이제 슬슬 겨울 이불을 꺼내자고 결심했다. 겉옷도 더 두꺼운 걸 입는 게 나을 텐데, 저번 봄에 분명 마지막으로 여기에 벗어뒀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연구실 문을 연 순간 먼저 온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

누구인지는 굳이 서술할 필요 없겠다. 이 정도는 크루아상에게 이미 굉장히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인사를 받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대충 대답을 던지고 손님을 지나쳐 어딘가에 두었을 겉옷을 찾으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뭐 하러 왔어?"

"우리 사이에 딱딱하게 그런 게 필요해~?"

그래, 사실 기대하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대충 대답을 던졌을 뿐이었으니. 그러나 최근 들어 생일 선물이라는 주제로 둘의 사이에 대해 꽤 오랜 시간 동안 많이 고민해왔기 때문인지 되물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우리 사이라는 게 뭔데?"

"누구보다도 비밀스럽고~ 소중하고~ 흠, 또~ 특별한 관계~ 지?"

물론 돌아온 것은 언제나처럼 어이없는 대답이다. 크루아상은 연구실 구석에서 찾아낸, 방치되어 다 구겨진 겉옷(아무래도 새로 다림질을 해야 할 듯 싶었다)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예의 빙글거리는 눈과 마주치자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발 부탁이니까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돼?"

"네가 먼저 물어봐 놓고선~."

"내가 언제 그런 걸…… 아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구겨진 겉옷을 쑤셔 넣은 가방을 적당히 구석에 내려놓으려다 크루아상은 문득 가방을 둘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옷이 처박혀있던 곳만 해도 그랬다. 주변에 온통 두꺼운 책들과 멋대로 분류해둔 보고서들이 널려서 너저분했다. 크루아상에게는 연구에 몰두하면 주변을 잘 정리하지 않게 되고 마는 습관이 있었는데, 관리국에 들어온 이후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구실이 이런 상태가 되고 말았다. 크루아상은 나름대로 둘 곳을 정해 정리하듯 놓고 있었던 거라 방의 상태를 별로 자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막상 깨닫고 보니 상당히…….

"방이 언제부터 이랬지?"

"응~?"

시간지기는 크루아상의 얼떨떨한 표정을 한 번, 그리고 어지러운 방 안을 한 번 둘러본 다음 웃으며 답했다.

"내가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이미 이랬는데~."

"어……?"

아까 생각했다시피 요즈음의 공기는 제법 쌀쌀해졌다. 슬슬 겨울 날씨에 접어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청소를 하는 게 좋겠다. 크루아상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학교에 있을 땐 혼자만의 연구실이라는 걸 거의 갖지 못했으니 같이 사용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방을 치웠었지만, 관리국에 들어온 이후로는 생활도 혼자 하고 연구실도 혼자 쓰니 정리라는 개념을 반쯤 잊고 살았다. 그러니 말하자면, 지금의 방은 크루아상이 관리국에 입사한 후로 단 한 번도 정리된 적이 없는…….

"이걸 언제 다 치우지."

"도와줄까~?"

"……네가?"

상당히 많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어차피 시간지기도 크루아상, 정리 같은 걸 안 하고 사는 건 마찬가지일 거다. 거기에 최소한의 눈치조차 보지 않는 시간지기라면 크루아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할 리가 없다. 안 그래도 평소에 도움이 되는 일이 없는 시간지기가, 가뜩이나 잘 못 하는 정리에 동참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혼자보단 둘이 낫지~."

"낫겠냐고……."

"안 나은가~?"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시간지기가 이미 구석에 쌓인 서류 더미를 들쑤시고 있었기 때문에, 크루아상은 자신이 허락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한 번 흥미를 보인 일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으니까. 마침 얘기를 좀 하고 싶기도 했다. 시간지기에겐 뭔가 숨긴다는 게 불가능하니 방 안에 있는 서류 중 보여서는 안 될 것도 없고.

"그래, 같이 하자."

청소는 상상 이상으로 고된 일이었다. 처음 방의 상태를 자각했을 때부터 막막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상상도 굉장히 거창했었는데,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고되었다는 이야기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당연히 창문 열기였다. 이르게 쏟아지는 찬 공기를 맞으며 온갖 곳에 흩어진 종이들을 주워 담아 항목에 맞게 분류했다. 크루아상은 나름대로 정한 자리에 둔 거였기 때문에 눈 감고도 찾아낼 수 있어 분류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양이 너무 많았다. 어찌나 많은지 연구실 한쪽에 자리한 책장을 가득 메울 때까지 통 끝나질 않았다.

고된 이유는 옆에 있는 쿠키가 정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시간지기가 옆에서 한 거라고는 구석에 쌓인 서류뭉치 들여다본 뒤에 아무 데나 다시 내려놓기, 책장에 멀쩡하게 꽂혀 있던 책도 들쑤셔놓기 등등…….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졌다. 이럴 거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어?"

"으응~?"

시간지기는 늘 짓던 난 모르겠는데, 하는 표정으로 응수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지기는 자기 물건은 잘 정리하고 있을까? 만일 제대로 정리를 안 하고 있다면(사실 당연히 하지 않을 것 같다) 시간지기의 생활공간은 시간의 틈새 그 자체니까 시간 아무 데나에 자기 물건을…….

"그러고 보니 넌 대청소 같은 거 안 해?"

"대청소?"

"보통 계절 바뀌기 전에 많이들 하잖아. 내 방처럼 심각한 모습이 아니어도."

"음~. 청소할 데가 없는데~."

"……중요한 물건들은 어디다 보관해?"

"나한텐 그런 거 없어~."

방바닥에 쌓여 있던 마지막 책을 집어 들며 크루아상은 생각했다. 곧 생겼으면 좋겠다, 하고.

3

어느덧 생일이 바짝 다가왔다. 생일이 다가오면 설레는 건 대부분이 그러겠지만, 올해는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줘야만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몇 배는 더 두근거렸다. 꼭 어린애로 돌아간 기분이다. 생일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올해는 어떤 선물을 받을지 기대하느라 잠을 설치던 날들에…….

관리국을 나서자 이미 한밤중이었다. 별들이 촘촘히 박힌 하늘 아래 잠잠한 거리를 홀로 걷고 있자니 들지 않던 생각들도 떠오른다. 결정한 선물은 과연 잘 한 걸까, 내년에도 생일을 축하해 줄 기회가 올까. 그러다 보니 새삼 생일을 축하해주자고 결심한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둘 사이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았고, 지금의 관계는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다. 크루아상이 느끼기엔 그랬다. 내년의 생일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시간여행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일지 몰라도, 지금을 소중히 해야 한다. 모든 시간을 오가며 과거와 미래의 경계가 누구보다도 옅은 그들에게도 '현재'가 가까이 느껴질 수 있도록.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천 년 뒤의 미래에 다다르고, 손짓 하나만으로 천 년 전의 과거를 뒤엎는 너에게도 현재가 의미 있기를 바란다. 무한히 돌아갈 너의 시간에 생일이라는 날이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게. 나는 말이지. 이제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고, 어떤 날도 특별하지 않은 너의 삶이 너무 슬프게 느껴져.

크루아상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들을 주의 깊게 생각하고 곱씹었다. 집에 갈 때까지 잘 기억해야지. 이것도 생일 선물의 일부니까. 잊어버리기 전에 종이에 옮겨둬야 한다.

2

크루아상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생일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좀 더 여유 있게 준비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뭘 해도 시간지기가 알아버릴 거라고 생각하니 최대한 늦게 시작하고 싶었다. 덕분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으나 이 정도는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청소도 하루 만에 끝냈고, 매일같이 관리국에 밤늦게까지 틀어박혀 며칠 치 일들을 한꺼번에 해결해 버렸다. 그렇게 이틀 정도는 생일 준비에 전념해도 무리 없을 일정이 완성되었다.

첫 번째 선물은 당연 케이크였다. 이건 음식이기 때문에 당일날 사야겠지만 종류 정도는 미리 정해두자 싶어 빵집에 먼저 들렀다. 그런데 시간지기는 뭘 좋아하지. 내가 취향껏 사 온 샌드위치도 맛있게 잘 먹었으니 케이크도 대충 내 취향대로 사면 되나? 그치만 그건 나 먹으려고 사 온 걸 시간지기가 멋대로 뺏어 먹은 거고, 이건 시간지기 먹으라고 사는 건데……. 꼬리를 무는 생각을 달고 걸음을 옮기는 크루아상의 시선을 문득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제일 인기 많은 케이크인 모양인지 화려한 장식으로 둘려 있어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긴 했지만, 아마 아무 장식이 없었어도 크루아상의 눈엔 들어왔을 것이다.

"이거……."

크루아상의 손가락이 케이크가 담긴 유리 진열장에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안쪽의 케이크는 평범한, 누구나 케이크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모양새였다. 딸기가 얹어진 생크림 케이크, 이런 게 눈을 사로잡은 이유를 말하자면 조금 지나간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지금의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생일 축하를 받았던 그 날까지.

샌드위치와 히어로가 아침부터 어쩐지 분주해 보이던 날, 실은 조금 짐작하고 있었지만 애써 눈치 없는 척을 하며 강의에 집중했었다. 필사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에 기쁨 반, 즐거움 반이 섞여 자꾸만 표정으로 드러나는 웃음을 눌러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렇게 점심 즈음 수상한 거짓말에 이끌려 향한 빈 강의실에서 두 친구가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가 딱 이런 모양이었다. 제일 무난한 케이크. 그건 샌드위치와 히어로가 친구가 된 후 처음 맞는 크루아상의 생일이었으므로, 친해진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때였다. 서로의 취향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무난한 선택지가 가장 훌륭한 선택지일 수밖에 없었겠지. 생각에 젖어 있자니 조용히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시간지기에게도 친구가 있었겠지?

시간지기가 샌드위치를 즐겨 먹는 걸 보면, 분명 시간지기의 친구도 그 둘. 그러나 크루아상이 생각하기에 시간지기가 있는 세계선에서 친구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닐 것 같았다. 그들이라면 크루아상이 시간지기처럼 극단적인 변화를 택할 때 절대로 말리지 않을 리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게 나쁜 기억으로 남진 않았을 것 같다. 말했듯, 시간지기는 아직 샌드위치를 즐겨 먹으니까. 보기만 해도 괴로워지는 추억이라면 가까이 하지도 않을 테다. 그럼 너도…… 이 케이크로 축하를 받았을까? 

거기까지 미치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크루아상은 케이크를 정하고 가게를 뒤돌아 나섰다.

그럼 다음은 두 번째 선물이었다. 정말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시간지기가 좋아하는 것은 짐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루아상은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크루아상이 시간지기라면, 이런 선물을 받는다면 꽤 기쁠 테니까. 정반대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둘이니 이 마음이 같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전에 봐둔 가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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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생일 축하까지 하루 남았다. 생일 축하는 자정이 되자마자 해버릴 생각이었으므로 (아니면 하루종일 신경 쓰여서 할 일을 못 할 것 같았다) 정확히는 몇 시간 정도. 크루아상은 저녁 즈음 관리국을 나서 케이크를 미리 사 왔다. 어제 준비한 선물도 서랍 속에 고이 모셔놨다. 이 일련의 준비 과정에서 시간지기가 얼굴을 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는 나름 순조로운 듯했다. 친구들의 분주함을 애써 못 본 체 하던 크루아상과 비슷한 느낌으로 모르는 척해주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시간지기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건가. 아니, 생각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평소의 이미지라는 게…….

시간지기가 국장 업무를 하나도 하지 않는 이상 할 일이라고는 크루아상을 지켜보는 것뿐이니, 이미 크루아상이 뭘 하고 있는지는 다 봤다고 생각해도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놀라게 하는 일이 아닌 기뻐하게 하는 일……. 겸사겸사 놀라기도 해준다면 참 좋겠지만 시간지기에게 거기까지의 배려를 바라진 않았다. 다 아는 일에 놀라는 척 하는 것, 생일을 축하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던 크루아상에게야 즐거운 일이었지만 시간지기는 아닐지도 모르니까. 크루아상은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정말 오랜만에 해본다.

늘 그랬듯, 깊은 밤 크루아상의 연구실엔 부르지도 않은 시간지기가 함께 있었다. 크루아상의 연구엔 큰 관심도 없으면서 왜 책상에 쌓이는 서류 더미를 매번 기웃거리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따라 시계를 자주 보네~."

"어? 어, 응. 그냥."

이유를 대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무슨 말을 해도 핑계처럼 보일 것 같아 결국 이상하게 말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다 짐작하면서도 놀리려고 물어보는 게 분명한 시간지기니 어떻게 대답하듯 어색해 보일 게 뻔하고. 그렇다면 굳이 구차한 말들을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흐음~."

이쪽도 캐묻진 않는구나. 그럼 처음부터 물어보질 말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 진짜 캐물으면 곤란한 건 크루아상이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슬쩍 본 시계는 12시 5분 전. 슬슬 준비해야겠지. 크루아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도 어디에 가냐는 질문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혹시 그 사이에 어디론가 가버리진 않을까 싶어 당부하듯 말했다.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금방 올 거야."

"그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직도 저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크루아상은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지금 시간지기의 기분이 어떤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되었기에 약간 안심이 되었다. 저 표정은, 분명 기분 좋은 표정이다. 그러니 돌아올 때까지 잘 기다려 주겠지. 한쪽 손엔 선물을 쥐고, 다른 손엔 시원한 곳에 넣어두었던 케이크를 받쳐 들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시계도 마침 적절한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크루아상은 슬쩍 연구실의 불을 끈 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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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어두운 방 안을 촛불들만이 밝히고 있었다. 케이크에 초를 몇 개 꽂아야 할지는 한참 고민했는데, 시간지기가 몇 살인지는 이제 본인도 모를 것 같아 그냥 크루아상의 나이에 맞추기로 했다. 오늘은 크루아상의 생일이기도 하니까. 촛불의 빛은 희미해서 방 저편에 선 시간지기의 얼굴까지는 비추지 못했기에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저편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한 걸음 더 내딛는 순간 시간지기도 이쪽으로 다가와 둘의 거리가 갑작스럽게 좁혀졌다. 제 생일 케이크를 들여다보더니 내뱉는 감탄사는 평소대로 그 자체였다.

"오~."

"반응이 그게 다야?"

핀잔 주듯 말했지만 실은 기뻤다. 적어도 크루아상이 계속 걱정하던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어? 식의 반응이 아님을 확인한 덕일 것이다. 다만 기뻐할 시간이 그리 여유롭진 않았다. 초가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선 초부터 불어."

"이런 것까지 해~?"

"당연하지, 생일인데."

"그럼 너도 해야지~."

"어……. 그런가. 그럼 그래. 분다? 하나, 둘, 셋."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같이 끄는 건 생각보다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생일이 같을 뿐인 존재가 아닌 정말로 같은 날 같은 순간 태어난 존재. 이 하나의 날, 하나의 생명은 둘의 몫이다. 나로부터 갈라져 나온 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이의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것은 두려울 정도로 기묘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지기에게는 이것이 축복이길 바란다. 촛불이 꺼진 후 연구실의 불을 다시 켜자 시간지기의 얼굴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아까와 같은 즐거운 표정이다.

"요즘 몰래 뭘 사러 다니는 것 같더니 이런 거였어~?"

"몰랐던 거야? 넌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고 엄청 걱정했는데."

"날 놀라게 해준다는데, 자세한 내용까지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

……역시 샌드위치네 가게에서의 대화, 들었구나. 크루아상은 케이크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숨기려는 부단한 노력이 (애초에 별 기대도 안 했지만) 다 헛된 거였다니. 내년에도 준비할 수 있다면 좀 더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봐야겠는데.

"그래도 축하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맞다, 선물도 있어."

크루아상이 한 손에 줄곧 쥐고 있던 작은 상자를 시간지기에게 건넸다. 곧 시간지기의 손바닥 위에 꺼내진 것은 금빛의 목걸이였다. 작고 긴 원통 모양의 장식이 달린.

"이건 뭐야~?"

목걸이인 것은 당연히 알 테고, 시간지기가 말하고 있는 건 목걸이에 달린 장식이었다. 정확히는 장식의 안쪽에 곱게 접혀서 들어가 있는 작은 종이. 크루아상은 설명하기를 잠시 주저했다. 떠올릴 때만 해도 무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그건…… 편지야. 내가 너한테 쓴."

"응~?"

"너는 이곳저곳 돌아다니잖아. 과거도 가고, 미래도 가고, 지금이야 여기 있지만 다른 데로 떠나버릴 수도 있고, 아무튼……. 내가 언제나 네 생일을 축하해주기는 힘들겠다 싶어서. 내가 축하해주지 못하는 생일에도, 네가 그걸 보면서 네 생일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런…… 편지야."

시간지기는 목걸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표정은 선연한 미소였다. 목걸이는 언젠가 네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도 태어난 날만은, 우리의 시작점만은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쭉 네가 그 목걸이를 가지고 있어 줄 만큼 좋은 관계로 있고픈 욕심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크루아상을 시간지기가 돌아보며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그럼 네가 채워줘~."

"뭐?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생일이니까 그냥 해 줘~."

"나도 생일이거든?"

그래도 결국엔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시간지기 말대로 뭐, 생일이니까. 평소에도 못 이긴 척 들어준 부탁이 백 개도 더 될 텐데 이런 날 어리광 하나쯤 더 들어주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시간지기의 등 뒤에 서서 목걸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크루아상에게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이 말도 해야지~."

"잠깐. 목걸이 걸어달라고 해놓고 뒤를 돌면 어떡해."

"생일 축하해~."

"응?"

놀라는 건 한순간이었다. 크루아상은 곧 웃으며 답했다.

"고마워."

생일 축하는 몇 번이고 받아봤다. 지금껏 살아온 해의 몇 배만큼. 하지만 오늘의 이 생일 축하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것은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다시는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행이다. 널 만나고, 오해를 풀고 제대로 대화를 해서, 지금과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어서. 생일을 축하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럼 이제 다시 뒤 돌아."

"그래~."

목걸이의 고리가 맞물리는 소리를 들으며 크루아상은 생각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이런 순간이 오면 좋겠다고. 함께 축하의 말을 주고받고, 태어난 의미를 되새기며. 몇 번이고 하나뿐인, 우리 둘만의 날을 나누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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