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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섭대만] 5일의 침입자

1. 료타는 집을 좋아한다. 보통 사람들은 쉴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 집을 얘기한다. 미야기 료타도 그랬다. 몇 번이고 자신과 가족이 드나드는 집. 그곳만이 미야기 료타에게 발붙이고 푹 잘 수 있는 곳. 집은 가장 안전한 곳이자 도피처다. 아무나 올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관계로부터 완전한 해방. 미야기 료타는 그래서 집이 좋았다.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이니까. 그런데 침입자가 나타났다.

 

“누구 없어요?”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평소에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지만 한 번은 들어봤던 것 같았다. 료타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도 기억에 없어 찡그렸다. 누구지? 오는 사람이 드물어 료타는 잔뜩 긴장한 채로 문을 바라봤다. 안나도 내 옆에서 바라본다. 안나 친구도 아니었나. 그러면 올 사람은 없었다. 료타는 집에 데려오는 친구는 없었고 엄마도 데려오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료타의 생각과 달랐다. 그때 옅게 미소 짓고 우리를 지나치며 문을 열어주는 엄마가 눈에 보였다.

 

“어서 오렴.”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료타는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초등학생?

중학생이거든...

 

일주일 전에 봤던 녀석. 이름은 모르지만, 혼자 농구하고 있을 때 다가온 녀석이다. 저 녀석이 왜? 료타는 놀란 기색을 걷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라보던 와중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번쩍! 드는 정신에 후다닥 안쪽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료타는 집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 집마저도 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됐다. 여기를 왜 온 거야? 터벅, 터벅. 들리는 발소리.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료타는 혼란스러웠고 싫었다. 집마저도 쉴 수 없다면 어디서 쉴 수 있는가. 료타는 자신의 방에 숨어들었다. 엄마가 무어라 외치는 소리도 들렸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눈을 꼬옥 감고 구석에 앉아 빨리 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그런 료타의 바램과 달리 한 시간이 지나도 그 녀석은 나가지 않았다. 한 시간하고도 조금 지났을 때 안나의 말소리가 방문 앞에 들렸다.

 

“료쨩~. 밋쨩이랑 같이 놀자.”

“료쨩?”

“응. 우리 오빠. 밋쨩, 아까 못 봤어?”

“으응. 못 봤어. 료쨩, 같이 놀지 않을래?”

 

싫어. 그렇게 부르지 마. 안나는 뭐가 좋다고 한 시간 내내 저렇게 노는 건지. 안나랑 노는 건 좋지만 그 녀석이랑은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료쨩. 같이 놀자고오~.”

 

벌컥, 열린 문에 료타는 몸이 갸우뚱, 뒤로 넘어갔다. 평소 문을 잠그고 가는 편이 아니어서 그냥 닫아만 뒀는데. 안나가 열었다. 그게 문제였다. 넘어가는 몸과 함께 보인 건 깨달았다는 듯이 보는 그 녀석이었다. 우리 집 침입자. 그것도 나를 얕보는 녀석. 하필 이런 모습을 제일 보여주고 싶지 않던 녀석에게 눈앞에 보여주다니. 꽈당! 넘어간 료타는 부끄러움과 짜증이 솟구쳤다. 나가, 나가라고. 자신의 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꾹꾹 밀어냈다. 그 녀석은 힘을 주어 나가지 않더니 기어코 말한다.

 

“...초등학생?!”

“중학생이라고!”

 

최악이다...

료타는 결국 문을 열어주게 됐다. 문을 열어서 그 녀석은 안나에게 자신과 만난 적이 있다면서 멋대로 떠벌렸다. 네가 멋대로 온 거면서... 료타는 어서 나가길 기다렸다.

 

“료쨩, 있지. 내 이름 알아?”

 

또 뭐라고 할 게 남았나. 자신에게 쉽게 대하는 녀석을 보니 몹시 언짢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몰라.”

“료쨩이 마음에 안 들어? 네 이름이 뭔데?”

“...료타.”

“료타. 이렇게 부르면 돼?”

 

료타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좀... 이상하게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 그 덕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료쨩으로 불러.”

“료쨩은 복잡하네.”

“료쨩은 료쨩이니까~.”

“안나. 문 멋대로 열지 마.”

“알았어, 알았어.”

 

사실 안나가 열지 않았어도 언젠가 마주봐야 할 녀석이긴 했다. 안나가 열어서 그게 지금이 되었을 뿐.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던 거야. 미야기는 눈썹에 힘을 주고 그 녀석을 올려다봤다. 그 녀석은 이상하게도 활짝 웃었다.

 

“내 이름 모르지?”

“그냥 밋쨩으로 부르면 되잖아.”

“그건 별명이잖아. 이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거야.”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그런 게 중요한가. 사람들은 이름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그러니 여러 별명을 만들어서 멋대로 붙이지 않는가. 그런 세상이 당연하지 않나? 료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모두 멋대로 판단해버리고 마는 세상 속에서 그 녀석은 달랐다.

 

“내 이름은 미츠이 히사시. 잘 부탁해.”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원하면 밋쨩이라고 불러도 돼. 모두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안쨩에게도 그렇게 부르라고 했거든.”

“맞아. 밋쨩이 친구는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했어.”

료타는 입을 열려다가 꾸욱 닫았다. 지금 넘어가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렇게 불러주기는 싫었다. 그런 걸로 입을 삐죽 내밀면서 그의 특기인 강한 척을 내보였다.

 

“됐거든. 내가 알아서 부를 거야.”

“에, 밋쨩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보다~ 밋쨩, 료쨩. 안 놀 거야?”

“놀아야지. 료쨩도 놀자. 원래 함께 놀아야 재밌어.”

 

료타는 어쩔 수 없이 저들의 놀이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왜 어울려주냐고? 료타는 생각했다. 변명이라고 봐도 좋겠지만... 저 녀석은 어차피 금방 가버릴 사람이고, 안나가 놀고 싶어하니까. 지금은 자신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사실 이 상황을 막을 힘 같은 건 없기도 했지만...) 큼. 그러니 조금은 같이 놀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절대로 자신도 놀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러니 료타는 집에 찾아온 침입자에게 특별 사면권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이면 될 거니.

료타는 먼저 자신의 방에서 내쫓는 일을 했다. 그 녀석과 안나는 거기서 놀자고 했지만 료타도 양보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이 방에는 들어오지 마. 단단히 일러두었다. 이러면... 들어오지 않겠지. 안나는 언제든 들어와도 괜찮다. 사실 안나는 이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겠지. 하지만 저 녀석은 아닐 거다.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료타는 그걸로 충분했다. 마침 장난감은 거실에 두기도 했으니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는 충분히 댈 수 있었다. 다행히 저 녀석과 안나는 결국 거실에 있는 장난감을 모아둔 상자로 갔다. 나도 그쪽으로 따라서 거실로 들어갔다. 저 녀석은 상자 주변을 보다가 내일 사슴벌레 잡으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사슴벌레 잡으러 간지도 좀 오래 됐는데... 안나가 먼저 좋다고 해버렸다. 윽. 내일 사슴벌레 잡으러 같이 가야겠지. 그러니 좋지 않다고 하거나, 싫다고 할 수 없었다. 근데 내일도 있는 거구나. 내일 밤에 가겠지? 저 녀석은 상자를 뒤적이다가 유리구슬들을 꺼냈다. 이걸로 내기하자. 료타는 거기에 동의했다. 놀고 싶은 건 아니고, 그러니까... 그, 그래. 내가 받아준 것이다! 상대가 내민 승부는 피하지 않는다. 그게 료타의 강한 척이니까.

세 명이서 하는 구슬치기 내기는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다. 저 녀석이 이기면 안 되는데. 료타는 고개를 올려 시계를 봤다.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어버렸다. 언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마침 엄마가 불렀다. 안나는 그 소리에 우다다 달려나갔다. 료타는 안나 뒤로 나오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테이블은 네 자리. 엄마 곁에 안나가 앉아버리면 저 녀석과 자신은 같이 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럴 수는 없어! 료타는 후다닥 뛰었지만 좁고 짧은 복도에서 먼저 뛴 안나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뒤늦게 테이블에 앉았다. 자신의 옆에 녀석도 앉았다. 여기 있는 건 봐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니. 그건 좀... 그랬다. 슬쩍 앞자리를 보니 깨달았다. 안나가 앉아주지 않았으면 마주봤을지도 모른다고. 그것보단 옆에 앉는 게 낫긴... 나을... 윽, 이것도 싫은데. 짝! 소리와 함께 잘 먹겠습니다 이야기하고 먹기 시작했다. 료타는 밥을 먹으면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녀석은 너무나도 잘 먹었다. 잘 먹는 건 좋은 모습이라고? 그래. 그럴 수 있지. 자신도 안나랑 엄마가 잘 먹는 모습은 좋아했다. 하지만 그게 낯선 사람이 잘 먹는다고 기분 좋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은 안나나 엄마에게도 편하게 말을 걸었다. 료타는 녀석이 있어서 조용한 식탁이 시끄럽게 변하고 있었다. 이거 맛있어요 잘 먹어서 다행이구나 당연하지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는 건 늘 짱이야 그런 것 같네 같네가 아니야 늘 맞거든 하지만 우리 엄마도 맛있게 만들어 료타는 무시하려고 애썼다. 왜 다들 기쁜 건지. 료타는 저 밝은 분위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료타의 세상은 식탁이 아니었고 료타의 마음은 밥과 소음으로 채워넣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변화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꾸역꾸역 밀어서 넣는 느낌. 료타는 젓가락으로 쌀을 조금 떴다. 입에 넣어도 무어라 느껴지는 맛이 없었다. 그렇게 식사하는 동안 억지로 집어넣다가 결국 체해서 화장실 가서 게워냈다. 비워내고 나오면서 녀석에게 그럴 줄 알았어 너 급하게 먹더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또 나올 뻔 했지만 다행히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말한 뒷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둘이 같은 방에서 자는 게 좋겠네. 으웩. 그렇게 지금 현재 둘은 료타가 절대로 들여보내기 싫던 방에 녀석과 자게 된 처지가 되었다.

 

“료쨩. 왼쪽에서 잘 거야? 오른쪽?”

“아무데나...”

“그러면 내가 오른쪽에서 잘게.”

“빨랑 자. 자고 나가.”

“알았어. 빨리 잘게. 그런데 나 여기 한동안 있다가 가.”

“뭐?”

 

같이 자기 위해 이부자리를 피다가 료타는 피던 걸 멈추고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루만 있다가 가는 게 아니었다고? 내일 밤에도 이렇게 자야 하나? 료타는 낯선 사람이랑 같이 자게 되면, 잘 자게 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자기 앞에 있는 녀석이랑 계속 자야 한다니.

 

“엄마랑 아빠가 출장 중이라... 출장 끝나면 데리러 오신댔어. 친척 집에 맡기자니 친척 집이 너무 멀어서. 아는 직장 동료에게 부탁했다고 하더라. 그게 너희 어머니일 줄은 몰랐네.”

 

녀석이 더 말했지만 료타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금 느꼈다. 결국 녀석은 역시 우리 집에 찾아온 침입자라고. 료타는 마저 피고 누웠다. 더 듣다간 뭐라고 외칠 것 같아서. 익숙하던 것들이 저 녀석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까. 녀석이 침입자니까. 속으로 여러 변명을 댔다. 끈다? 탁. 불이 꺼졌다. 료타는 눈을 감았다.

 

2. 료타는 꿈을 좋아한다. 마냥 달콤한 게 아니라고 해도 좋아했다. 달콤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달콤한 부분이 없었다면 마냥 달콤하지 않다고 느낄 곳이 없었을 거니까. 꿈속에선 누구나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것들을 보면서 료타는 위안을 얻었다. 꾸는 날마다 좋았지만... 단 꿈을 일찍 깨운 사람이 있었다. 그런고로 료타는 아침부터 저조했다.

 

다행히 아침밥은 괜찮았다. 연어에 후리카게, 밥, 된장국. 평소와 같은 아침에 좀 나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녀석의 말이 별로 없었기도 했고.

 

지금 료타는 사슴벌레를 잡으러 밖에 나왔다. 그것도 녀석과 안나랑 함께. 앞에 녀석이 서고 그다음은 료타, 맨 뒤는 안나가 서서 나란히 올라간다. 산 위로 올라갈 수록 사방에서 찌르르- 우는 매미 소리가 들린다. 산에 올라가는 건 꽤 힘이 드는 일이다. 잘 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료타의 앞에 있는 넓은 등은 잘만 올라갔다. 왜 이렇게 잘 올라가는 건지. 자주 왔나 보지? 료타는 심술이 나서 작은 돌들을 신발코에 맞춰 툭 찼다.

“저기 있어~! 료쨩, 밋쨩.”

안나의 쪽에 있는 나무 위에 사슴벌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료타는 들고 있는 잠자리채로 휘적, 휘적 잡으려고 애썼다.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채를 휘적거리다 큰 손에 막혔다.

 

“그거 그렇게 하지 말고...”

 

료타의 작은 손에 녀석의 큰 손이 겹쳐졌다. 가까운 거리, 풀이 가득한 여름. 료타, 채는 이렇게 잡고... 으응, 소쨩. 료타는 자신도 모르게 잠자리채에 힘을 주어 쥐었다.

 

“나 혼자 할 수 있거든?”

 

녀석의 품에서 녀석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녀석은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왜 그렇게 바라보는 거야. 나 혼자서 할 수 있단 걸 보여주겠어...!

 

턱. 이게 무슨 소리지? 위를 올려다봤다. 잠자리채가 나무에 부딪힌 소리였구나. 그러면... 사슴벌레는?

 

아, 날아가버렸다...

 

그 후로 한참이나 돌아다녔지만 사슴벌레가 잡히지 않았다. 잡으려고 가면 결국 놓쳐버렸다. 각자 순서대로 녀석, 나, 안나 순으로 채를 돌려쓰면서 도전해봤지만 모두 다 실패. 왜 이렇게 잘 도망가는 건지. 료타는 잘하는 편이 아니긴 했지만, 녀석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나 보다. 헹, 뭘 가르쳐 준다고. 료타는 입술을 꾸욱 물었다.

 

“우리 이제 돌아가자아~.”

“벌써? 좀 더 있으면 볼 지도 모르는데...”

아쉽다는 듯이 바라보는 녀석, 언제나 저렇게 보는 걸까. 료타는 안나의 손을 잡았다. 사실 셋은 점심도 대충 가져왔던 주먹밥으로 떼웠다. 그러니 안나가 더 이러는 거다. 배고프니까.

 

“안나가 원하잖아. 가자. 안나.”

“응!”

“에엑... 한 마리는 잡아줘야 하는데.”

“당신이나 열심히 잡고 와.”

“뭐?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야, 잠깐~!”

 

뒤에서 후다닥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사슴벌레를 봐버렸다. 얘 아까 놓쳤던 애 아냐? 쟤가 왜 여기에 있지?

 

“...저거만 잡자.”

 

료타도 잡지 못하는 건 싫었다. 꿈에서 제 눈앞에 놓인 걸 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꿈이라도 한 번씩 생각나곤 했으니까. 그냥 그런 것과 똑같다. 녀석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가 아니다. 그냥, 료타가 원해서. 안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볼을 부풀렸지만 이내 알았어 짧은 대답을 내놨다. 녀석은 조금 놀란 눈으로 이번에야말로 잡는 거다? 하면서 료타를 바라봤다. 료타는 녀석이 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아차, 내 차례였구나.

 

안나는 조심조심 채집통을 열었다. 료타는 잠자리채를 꽉 잡고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레 다가갔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할 수 있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해낼 수 있어...

“쫄지 마. 료쨩.”

 

녀석은 장난스레 웃으면서 말한다.

 

“안 쫄았어...!”

 

료타는 잠자리채를 휘익, 소리와 함께 휘둘렀다.

다행히 돌아갈 때 채집통에 사슴벌레 한 마리를 넣고 갔다. 지친 나머지 도착하고 거실에서 셋이서 잠들었다.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온 엄마는 나중에서야 우리를 깨웠다. 안나는 비몽사몽한 채로 밥을 먹다가 다 먹고 잠들었다. 나랑 녀석은 깨끗하게 먹었다. 산에 가서 그런지 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찍 자자고 하는 녀석을 보다가 끄덕였다. 사슴벌레는 료타 방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방구석에 젤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딸깍, 불이 꺼졌다. 내일 뭐 하고 놀지 안 정했는데... 료타의 옆에는 오늘 하루가 끝나는 게 아쉽다는 듯이 말하는 녀석이 보였다. 내일도 이렇게 놀 생각인가.

 

“...내일은 뭐할 건데?”

“그러게. 뭐하지~. 료쨩은 하고 싶은 거 없어?”

“딱히.”

“료쨩. 여기 와서 느꼈는데...”

 

뭘 느꼈다는 거지? 료타는 놀란 눈으로 녀석을 봤다. 자신이 녀석을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너 농구 좋아하지?”

 

농구? 갑자기? 료타는 당황스러워서 주변을 둘러봤다. 농구화. 농구잡지. 농구 유니폼. 포스터. 아, 이래서...

“그냥... 하는 거야.”

“응? 너 농구 좋아하잖아. 엄청.”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야.”

“아니야. 너 엄청 좋아하는 거야.”

 

료타는 기가 찼다. 왜 이렇게 확신해서 말하는 거야? 굳이 따지자면 농구를 좋아하는 편이긴 했다. 싫어하는 편이었다면 계속하지 않았을 거니까. 하지만 정말 좋아한다... 한다면 료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확신해서 말하는 건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 농구 잘하잖아.”

 

농구 잘한다니. 왜 갑자기 칭찬이람... 료타는 낯간지러워서 일부러 등을 돌렸다. 처음 만났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실력이 좋다고... 빈말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게 끝이야?”

“어. 음... 더 말해야 해? 이 방에 농구화도 있고, 잡지도 있고. 공도 있고, 포스터도 있고. 근데... 넌 정말 농구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건 대충 봐도 알잖아.”

 

녀석은 고민하는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 펴졌다. 뭐가 떠올랐나 보지. 료타는 농구를 계속했다. 즐겁다면 즐거운 것이었고 괴롭다면 괴로운 것이었다. 그래도 농구를 계속했다. 꿈속에서도 농구를 계속했다. 자신 앞에 놓인 그 사람과 함께... 그래서 꿈을 좋아했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으니까. 농구할 때는 그런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래서 했을 뿐이란 감상. 단지 그뿐이었는데.

 

“농구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드리블 잘하지도 않았을 걸. 그런 실력이면 그동안 농구를 열심히 한 거잖아. 아니야?”

 

료타는 자신의 실력을 믿는 편이긴 했지만 이런 소리까지 들을 줄은 몰랐다. 익숙하지 않은 칭찬에 볼을 긁적거렸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야 하나...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자는 척했다. 료쨩~? 료쨩, 자? 얼른 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눈을 꽉 닫고 자는 척을 했다.

 

3. 료타는 이사 오고 제일 첫 번째로 다행이라고 느낀 건 이사한 곳이 바다와 가깝다는 점이었다. 다른 건 마음에 안 들어도 그거 하나는 좋았다. 이사 왔을 때는 매일 바다에 갔다. 바다에 가서 한참 앉아있다 돌아가면 한결 나았다. 집이 안식처라면 바다는 도피처다. 그 도피처 속에 몸을 두고 있으면 그 바다가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료타는 바다를 두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겠지. 료타는 바다를 좋아한다.

단지 그런 이유다. 아침부터 녀석이 어디 갈까? 하면서 고민할 때 바다에 가자고 말해버린 건.

그럴까? 녀석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바다에 가자고 말했다. 안나는 나 오늘은 친구랑 놀기로 했는데.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뭐라고? 그러면 둘이서 놀아야 한다는 건가. 료타는 놀라서 먹던 밥도 내려두고 안나를 바라봤다. 그러면 둘이서 가야 해? 료타는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웃었다. 하필...

 

안나가 아침부터 나가버렸다. 어제랑 어저께 안나가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오늘은 안나가 없다. 료타는 고민하다가 녹화된 경기 기록을 틀기 위해 거실 책장에서 비디오를 하나 뺐다. 이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어색하지도 않을 거고, 말도 별로 안 하게 될 거고. 시간 떼우다가 낮에 다녀오는 게 좋겠지. 녀석은 농구라면 환장하나보다. 관심을 가지고 오는 걸 보면.

료타는 비디오를 틀었다. 약간 끊기고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잘 나온다. 료타는 안심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보기로 했다. 녀석도 료타 옆에 앉아 보기 시작했다. 아, 농구하고 싶다. 료타는 농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하고 싶다. 왜 이럴까.

 

“료쨩, 료쨩.”

“옆에 있는데 왜 불러.”

 

갑자기 불려서 조금 놀랐다. 왜 부른 거야. 나는 볼 때도 말하는 타입이 아닌데. 말하는 타입이었나. 방금까지 잘 본 걸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료쨩이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야? 보통 농구를 좋아해도 취미로만 가지는 애들이 많단 말야. 이렇게까지 농구 좋아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라서 궁금해.”

 

료타는 고민했다. 좋아하는 선수? 료타는 특별한 선수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냥, 부산물. 남겨진 것. 그런 것이다. 그냥 반복해서 잡지를 읽고, 용돈을 모아 하나씩 사고. 좋아하는 선수를 굳이 고른다면... 오키나와 출신 미야기 소타 선수가 산왕을 이겼습니다!

 

“......”

 

녀석은 갑자기 끄덕거리더니 내 등을 두드렸다.

 

“이해해.”

 

뭘 이해하는 건데.

 

“좋아하는 선수가 많을 수 있지. 나도 전에 그랬어. 정말 고민해도 한 명만 고르는 건 힘들더라고...”

 

아아. 이 녀석은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라니까. 녀석은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많아서 고르기 힘들다고 생각하나보다... 그런 게 아니지만 굳이 정정하고 싶지 않아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한 명만 고를 수 있긴 한데...”

 

료타는 녀석을 무시하고 경기 영상을 계속 봤다. 둘이서 경기 영상을 보다보니 점심이 지나가버렸다. 나가기 전에 점심밥을 먹었다. 엄마가 만들고 카레로. 다 먹고 나니 녀석은 장난감을 모아둔 상자에서 삽과 양동이를 꺼내들었다. 우리 집인데... 이렇게나 익숙해져도 되는 건지. 료타는 녀석을 참아주기로 했다. 늘 바다를 보고 지나가지만 이렇게 각 잡고 놀러가는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대가 된다.

 

햇살 쨍쨍한 도로에서 걸어갔다. 아스라이 피어나는 아지랑이. 뜨거운 도로. 둘은 그곳에서 걸어가고 있다. 늘 가던 길인데 왜 이리 다른 길처럼 느껴지는 건지. 이 느낌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새로웠을 뿐. 새로워서 들뜨는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료타는 옆에 걸어가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후다닥 내달렸다. 녀석은 놀란 눈으로 료타를 보다가 료쨩~! 같이 가야지! 료타를 뒤따라왔다.

 

쏴아아. 밀려드는 파도. 부딪히고 흩어지는 포말. 눈부신 햇살. 건조하고 짠 냄새. 다시 뒤돌아가는 파도. 곧 여름이 끝나가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빛나는 바다. 료타는 한참을 바라보고 싶었다. 바다에 가면 모든 걸 내려둘 수 있었다. 내려두고 흘려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래성 만들자~!”

 

녀석은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왔다. 료타 옆에 앉아서 삽으로 모래를 파내어 료타 앞에 붓고 다시 파내어 붓고. 유치하다. 이게 재밌는 걸까. 료타는 말없이 보다가 물을 부었다. 튼튼하도록. 어릴 때는 자주 했는데. 어느 샌가 안나도 나도 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처박혀있던 걸 녀석이 꺼낼 줄은. 안나는 바다로 가는 일이 드물었고 나는 자주 갔다. 톡톡. 모래성이 단단해진다. 자주 가서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그러고 집에 갔다. 모래가 한 층 더 쌓인다. 우울할 때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랬다. 물을 좀 더 붓는다. 오키나와에 있을 때도 그랬다. 모래를 두드려서 촘촘하게 만든다. 무너지지 않도록. 그래. 거기서부터...

 

“료쨩은 바다 좋아해?”

“...뭐만 하면 좋아하냐고 물어보네. 당신.”

“지금 즐거워 보이거든. 료쨩이 하고 싶은 거 잘 안 알려주니까~.”

“...바다는 좋아해.”

 

료타는 모래성을 두드렸다. 누구랑 바다에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러니 말이 나온 건... 단순한 변화다. 그냥, 이 정도는 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 그러니까... 어차피 한동안 여기 있어야 한다면. 바다에 같이 오고 농구도 같이 하고. 그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료타는 녀석에게 침입자라는 딱지를 떼었다.

 

“그렇구나. 나도 바다 좋아해. 예쁘잖아.”

 

튼튼한 모래성이 만들어져간다. 료타는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랑 함께 한다는 건 꽤 좋은 일 같다. 여기 와서 잊고 있었지만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 그것이 정말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래서 좋아해. 예전부터 좋아했어.”

 

모래성을 완성하고도 료타와 녀석은 한동안 바다에 있었다. 바다를 구경하기도 하고, 바다에 들어가 서로 뿌리면서 놀기도 하고. 다 젖고 난 뒤에야 끝이 났다. 료타는 정말로 즐겼다. 녀석도 그런 것 같았다.

 

돌아와서 씻고 난 뒤 저녁을 같이 먹었다. 오늘 저녁은 볶음밥이었다. 오늘 저녁밥은 맛있다. 료타는 오늘 같은 날이 한동안 가는 거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4. 료타는 영원한 게 없다는 걸 잘 안다. 영원한 건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알았다. 영원하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무언가를 가지기보단 바다에 흘려보내기를 택했다. 이런 욕심을 가지면 료타는 괴로울 걸 알았으니까. 누군가를 들여오기보단 혼자 있길 택했다. 그러면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료타는 그게 편했다.

 

“안나랑 병원에 다녀올 테니 놀다가 오렴.”

 

엄마는 아침밥을 먹으면서 안나랑 병원에 간다고 했다. 안나는 싫어. 나는 료쨩이랑 놀래. 앙탈을 부렸지만 그게 통하지 않는 걸 깨닫고 이내 조용해졌다. 녀석은 료타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농구하러 갈래?”

“...어. 갈래.”

 

료타는 다시 제 안식처를 찾았다. 밥 먹는 식탁이 오랜만에 즐거운 느낌이었다.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밥을 얼른 먹고 료타는 미리 준비하러 갔다. 셋이서 무어라 대화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료타는 방으로 들어가서 잘 들리지 않았다. 농구화는 저기에 있고, 나중에 나갈 때 물통에다 물 받아야지. 농구공도 저기 있고. 앞으로는 녀석이 나랑 종종 해주려나. 료타는 더플백에다가 넣었다. 농구공이랑 농구화를 넣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준비했어?”

“아직. 물 안 넣었어.”

 

료타는 녀석의 물통까지 받아 물통에다 물을 채웠다.녀석도 가져왔던 가방 하나를 들고 나갔다. 저기다가 농구화 넣어왔을까. 저 사람이야말로 농구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료타도 따라서 나왔다. 잊지 않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면서. 이 아파트에는 농구 코트가 없어서 조금 멀리 가야했다. 료타는 가면서 큰 등을 바라보게 됐다.

 

“...길 잘 아네.”

“응? 아아. 여기 친구가 살아. 그래서 이쪽에서 논 적이 있어. 여기 주변에 농구 코트는 저쪽밖에 없지 않아?”

 

료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그 코트에 왔더라.

 

농구 코트는 마침 비어있어 원온원하기에 좋았다. 더플백을 내려두고 농구공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녀석도 보다가 료타의 앞을 막아서면서.

 

료타는 더욱 더 드리블을 낮춰 뚫으려 했다. 역시나 찾아온 건 압박 수비. 이 느낌을 기억해. 녀석을 뚫자 녀석은 뒤로 콰당 넘어졌으면서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료타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료타는 웃고 있었다.

 

다시 원온원 재개. 료타는 농구부에 들었지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디서 든 걸까. 그건 실력 차이였다. 료타는 순전히 노력으로 드리블에선 수재가 된 타입이다. 하지만 이 나이대는 취미로 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수재가 되려 노력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즐기면 끝인 농구. 하지만 지금 료타 앞에는 노력으로 수재가 된 녀석이 있었다. 료타가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것을 녀석은 쉽게 보여준다. 학년의 차이지만 조금 더 높은 실력을 보여주는 건 료타에게 승부욕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녀석은 심리를 흔들기 위해서인지, 정말 가르쳐주고 싶은 것인지. (성격을 본다면 후자겠지...) 료타에게 슛을 쏘는 방법이나 (림 뒤를 봐! 아니거든? 림 앞을 보는 거야. 뒤가 더 편하다니까? 앞은 잘 안 돼. 림 뒤를 봐. 아니야! 림 앞이 편하다고!) 료타에게 더욱 더 강하게 뚫어보라는 듯이 압박수비를 보여주거나. (자! 이쪽에 좀 더 힘을 줘야지. 빠르게 하면 이 정도는 뚫어! 아냐! 그걸로 못 뚫어. 내가 장담한다!) 원온원은 한동안 계속했다. 점심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친 둘은 코트 위에 누웠다.

 

료타는 깨달았다. 자신이 농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무척이나. 그래. 나는 농구를 좋아하는구나. 료타는 자신이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형과 함께 하던 시간이 료타에게 전부였던 시절. 료타는 농구에서 형을 찾고 있었다. 농구를 하고 있으면 형과 함께 하는 것 같았다. 농구하는 건 즐겁다. 앞으로도 농구하고 싶다. 농구하면서 그때처럼 즐거움을 얻고 싶다. 형이 원했던 것을 내가 해내주고 싶다. 이게 료타의 그리움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집이 안식처고 바다가 도피처라면 농구 코트는 료타의 마음 그 자체. 그렇다. 료타는 농구를 무엇보다 좋아한다.

“내일도 같이 하자.”

 

료타는 용기내어 말했다. 같이 농구하고 싶어.

 

“......어, 그. 료쨩. 못 들었어?”

 

예상과 다른 반응에 료타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뭘, 뭘?...

“...뭐? 내가 뭘 못 들어.”

“어쩌다보니 내일 오셔서... 나 내일 집에 갈 것 같아.”

 

머쓱하다는 듯이 웃는 녀석이 보였다. 료타는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아서 머리가 멈췄다. 그리고 띵, 소리와 함께 이해했다. 료타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간다고? 같이 농구도 했고, 어제도 그랬으면서? 한동안이라고 했으면서 나흘이랜다. 료타는 부끄러워졌다. 함께 하고 싶다고 느낀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차피 갈 사람인데. 왜 기대했지? 어차피 가버릴 사람이란 걸 알았잖아. 그런데 왜 좀 더 있어달라는 생각을 했을까.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이 하자고 한 자신이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료타는 일어나서 달렸다. 녀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료타는 이별이 싫다. 료타는 아무리 걸어도 형과 있는 시간뿐이었다. 펜스 안에서 농구하고 웃고 즐거워하고. 아파도 잠깐일 뿐. 료타는 강한 척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도 소타는 강한 척하라고 알려줬으니까. 소타도 겁 먹는 사람이었으니까. 료타는 강한 척하면서 살아왔다. 이별이 힘들어도 강한 척했다. 영원하지 않은 세상. 료타는 어릴 때부터 영원한 게 없다는 걸 알았다. 아빠도, 소타도 가버렸다. 그러니 료타는 무언가를 가지기보단 멀리했다. 그러면 가지지 않았으니 찰나여도 상관없지 않나. 그래서 매달리지 않았다. 료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농구에 매달리고, 바다와 집에. 고향에 매달리고 있었으면서. 그것들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료타는 어리석게도 잠깐 오고 갈 뿐인 사람도 놓지 못했다. 료타는 영원한 게 있을 거라 착각했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필 펜스 안에서 누구랑 농구해본 건 오랜만이라서. 자신에게 다가와서 놀자고 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라서. 사슴벌레를 같이 잡아본 것도 오랜만이라서. 농구를 잘한다고 해준 사람도 오랜만이라서. 모래성을 만들어본 것도 오랜만이라서. 료타가 다른 사람에게 농구하자고 하는 것도 오랜만이라...... 료타는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료타는 결국 영원을 찾고 싶어 했다. 그게 미츠이 히사시이길 바랬다.

펜스 안에서 료타에게 다가와준 사람이니까.

 

료타는 가다가 넘어졌다. 형이 나에게 너무 빠르다면서 조심하라고 했는데. 떠오르는 기억이 료타의 눈을 찌른다. 눈이 아프다. 다리도 아파. 다친 다리를 끌고 자신이 아는 도피처로 가기로 했다. 도피처에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울었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울었다. 아직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이별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그럴 거면 오지 말지 그랬어. 친근하게 말 걸지 말았어야지. 한동안이라고 말하지 말지. 왜, 또 할 수 있을 것 같이 굴어서. 료타는 정과 사랑이 많은 아이지만 표현이 서툴러서 원망에 가까운 말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잘 알았다. 영원은 없다는 걸. 한참을 울고 나니 지쳐서 쪼그려 앉았다. 철썩, 파도 소리가 귀를 때린다.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꼴불견이니까.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강한 척. 눈물을 질질 흘리고 나니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눈물샘에서 나올 눈물이 없나 보다. 아니면 건조한 바람에 다 말랐거나.

 

“료타―!”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미츠이 히사시였다.

“드디어 찾았네... 허억, 헉... 너 진짜 빠르다... 어디 갔는지 몰라서 이곳저곳 다 간 거 알아? 집에 없어서 놀랬잖아. 어! 다리 괜찮아?!”

 

녀석은 료타의 다리를 보다가 업어줄까? 하면서 물었다. 료타는 싫다고 하려다가 그냥 얌전히 업히기로 택했다. 막상 걸어가면 엄청 아플 것 같았고... 어차피 내일이면 갈 사람이니까. 녀석은 료타의 무릎과 옷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업히라는 듯이 앉아서 료타는 그 위에 앉았다. 녀석은 료타를 업어주면서 걸었다.

 

“...”

“료쨩.”

“그렇게 부르지 마...”

“또 그러네. 그러면 어떻게 불러줘?”

“...둘만 있을 때는 그냥 미야기라고 해.”

“미야기.”

 

미야기는 녀석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전부터 궁금했던 이야기. 그러지 않았으면 이렇게 정 줄 일도 없었을 텐데.

 

“왜 그때 나한테 왔어?”

“너 혼자 농구하고 있었잖아.”

“응.”

“혼자하면 재미없는 걸. 농구하는 걸 보면 농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가갔어.”

“그렇구나...”

“미야기, 나랑 농구하기 싫었어?”

 

미야기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네. 나랑 농구하기 싫은 줄 알았어.”

“...아니야. 싫지 않아.”

 

미야기는 영원한 것이 없단 걸 알았다. 하지만 기대감 정도는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그 이후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보게 됐다. 기대를 해도 괜찮다면. 어깨를 꽈악 잡았다.

 

“...미츠이 씨랑 앞으로도 같이 농구하고 싶어.”

 

미츠이는 놀란 눈으로 미야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말았다. 미야기는 미츠이의 등에 꽉 붙어 기댔다. 나중에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또 같이 하고 싶어. 미야기는 영원하지 않아도 미래를 기대하고 싶다.

 

“그래. 또 만나서 하자.”

미야기는 이별이 싫다. 앞으로도 이별을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저 한 사람을 자신의 삶에 더 넣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을 뿐. 미야기는 눈을 감았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뭐라고 하려나. 안나도 놀랄지도 몰라. 미츠이 씨도 도착하고 뭐라고 해주려나. 변함없는 일상. 침입자가 들어와도, 들어오지 않아도. 별 다를 것이 없는 일상이다. 미야기는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엄마는 걱정해주고 안나는 자기를 두고 가서 벌을 받은 거라고 했다. 점심을 훌쩍 넘겨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미츠이 씨랑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울어서 지친 건지, 농구하고 바다까지 가서 그런지. 미야기 료타는 일찍 잠들었다.

 

5. 미츠이는 현관 앞에 섰다. 아침밥도 먹었고, 아주머니께 인사도 드렸고. 안나랑도 인사했고... 놓고 가는 거 없이 다 챙겼고. 남은 건,

 

“또 보자. 미야기!”

“...또 봐, 미츠이 씨.”

 

미츠이는 한 손을 흔들면서 미야기 료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또 만나자. 미야기 료타도 미츠이 히사시도 이것이면 충분하다. 또 만나자는 미래를 기약하는 약속. 또 만날 수 있을 거란 확실한 기대.

그렇게 미야기 료타의 침입자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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