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대만] 세계행복론
릴레이 소설 합작
태섭의 대답을 듣고 크게 웃는 대만이었다.
“아니, 러브레터를 줘놓고선 사실대로 말 안 하면 어떡하냐?”
길거리 농구코트에서 함께 누워있다가 송태섭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정대만을 바라보았다. 송태섭은 억울한 표정으로 정대만을 본다. 말하지 말할 걸 그랬나. 송태섭은 몰려오는 후회 속에서 입을 꾸욱 닫았다.
그러니까... 이건 그들이 고백하고 사귀기 전과 관련된 이야기다. 꽤 최근 이야기.
송태섭과 정대만은 우당탕탕 맞짝사랑이라는 삽질로 시간을 허다하게 보낸 뒤, 연인이 되었다. 언제 된 건지는 비밀. 이들의 주변인 누군가는 눈치를 채고, 누군가는 모르는 채로 아주 뜨거운 열애를 하는 중이시다. 누군가 고백을 했고 누군가 고백을 받았다.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특별하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평소와도 같았을 뿐. 그게 둘에게 맞는 페이스였기에 서로 웃으며 즐기는 연애 생활.
오늘은 같이 원온원을 하고 헤어지는 날이었어야 하는데. 날씨도 좋았고 옆에 애인이 있어 들떴나? 송태섭은 숨기고 있던 비밀 하나를 꺼냈다. 있잖아요. 전에 선배가 받았던 러브레터 기억나요? 어? 기억나지.
“그 러브레터, 사실 제가 적었어요.”
그래. 인정한다. 잠시 미쳤던 게 분명하다. 왜 말했지? 이 사람이 크게 웃는 걸 보니 있는 사랑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사랑은 그대로지만... 아니, 웃지 말라고요. 이 사람아.
이 일의 시작은 사랑을 전하기 위한 편지를 적은 송태섭으로 시작된 거였다. 그때의 송태섭에겐 ‘상대에게 자신이 사랑한다고 보내는 편지’는 처음이었다. 짝사랑 전문가 송태섭은 불러서 고백할 줄은 알았어도 편지로 적는 방법은 몰랐다. 그 순간 번뜩! 생각나는 아이디어. 지금의 송태섭은 판단의 실수를 했다고 느낀다. (지금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자신을 들키지 않고 보낸다면? 익명 고백 작전. 평소 쓰는 글씨체로도 적지 않고 일부러 왼손으로 천천히 적었다. 적은 편지를 겨우 벌벌 떠는 손으로 편지를 정대만의 사물함에 넣을 때까지만 해도 그 뒤 벌어질 일을 상상하지 못했다. 망할 선배가 그걸 자랑하고 다닐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그 상태에서 적은 사람 저예요! 라고 말하면 놀림감이 되거나 공개 연애가 되어버린다. 최악이다... 그걸 누가 자랑해요...? 라고 대놓고 꼽을 주기엔 자신도 그럴 것 같아서 차마 뭐라고 하지 못했다. 아, 짜증 나. 많이도 신나셨네... 자신의 진심을 팔랑팔랑 흔들며 자랑하는 모습이 조금 웃겼다. 내가 쓴 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도 꽤 지난 이야기니까 이젠 추억으로 몇 마디 말할 수 있지만. 그땐 뭘 몰라서, 처음이라서, 모르겠어서... 아무튼 그랬던 건데.
“선배는 진짜 최악이네요...”
“네가 안 적으니까 모른 거잖아! 아, 아까워... 그럼 그때도 날 좋아했다고?”
“좋아했죠... 좋아하니까 지금도 그러지!”
“우와......”
“우와는 뭔 우와.”
아무튼 기껏 보인 진심인데, 이럴 때는 또 웃는단 말이지. 그래도 결국 말했으니까. 송태섭은 그런 정대만의 진심을 알았다. 순수한 진심. 알려주고 싶지 않은 건 어떻게든 잘 맞추더니 알아줬으면 할 땐 모른다. 이제야 내 진심을 깨닫다니, 이제 후배 좀 아껴주시죠?
“아니. 나도 그때... 너 꼬시려고 했단 말이야.”
“언제요?!”
꼬시려고 했다니, 송태섭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정대만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듯 침묵했다. 묵언수행이냐. 송태섭은 잠시 정대만이 자신의 애인이라는 것도 잊고 한 대 팰 뻔했지만, 정대만이 이내 생각난 듯이 말했다.
“내가 너 포카리 준 거 기억하냐?”
이 일의 시작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 어색한 정대만으로 시작된 거였다. 어느새 자신의 감정을 깨달아버렸다. 그러게. 왜? 모르겠다. 그저 언젠가 시선이 송태섭에게로 갔다. 자연스레 바라보는 대상이 송태섭인 걸 알아버렸을 때 사랑을 깨달았다. 사랑을 알아버린 정대만은 고민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꼬셔야 하지? 정대만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다. 가지고 싶은 건 전부 가지고 싶은 마음. 놓치고 싶지 않아서 소중하게 자기 품에 두고 싶은 마음. 여러 감정들이 뭉쳐 사랑이란 것으로 만들어졌다.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결국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했다. 정대만은 농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농구를 위해 그렇게 노력해도 막상 보이는 건 자신에게 짜증 내고 잔소리하는 송태섭. 얜...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냐. 희망이란 뭉텅이가 결국 가느다란 실로 변해버린 이유는 송태섭에게 있단 완벽한 책임 전가까지. 그래도 우리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좋아하게 됐는데 어떻게 포기해? 정대만은 그 후로 포카리 두 병을 사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 운동부에 가장 중요한 건 몸이었다. 몸이 재산인 선수들. 더더욱 북산은 누군가 빠지면 바로 무너질 수도 있을 팀이라 더 소중히 해야 했다. 정대만은 이에 대해 미뤄뒀다가 처절하게 깨달은 기억이 있었다. 그 후로 포카리를 넣어 다녔는데. 굳이 두 개인 이유는 하나는 자신의 것, 하나는 송태섭의 것으로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쉬고 있을 때 물이 다 떨어서 물병을 탈탈 털어 마시는 송태섭에게 포카리를 주던 것에 사심이 들어갔다. 정대만 자신만의 꼬시는 방법이었기에. 근데 왜 이렇게 안 넘어와? 이 정도면 눈치는 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느 날 송태섭에게 드는 의문이었다. 사랑을 주는데 왜 이리 모르지. 이렇게 몰라도 되나.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멍청한 놈.
“그게 꼬시는 거였어요?”
“당연하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거 본 적 있어?”
절대 없을 거다. 내가 얼마나 널 소중히 여기는데. 내가 사랑하는 후배는 그런 것도 모른단다. 물론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유독 챙겨주는 건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얼마나 아껴줬는데. 정대만은 좀 억울했다. 그동안 정말 몰랐냐? 외치고 싶었지만, 송태섭을 보니 조금 풀린다. 진짜 귀엽지만 않았으면 내가 확 쥐어박았을 건데... 사랑해서 봐주는 줄 알아.
“없기야 없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안 줘.”
“나는 선배가 선배인 척 오진다고 생각했지...”
“겠냐?”
아, 진짜 그런 줄 알았다고요. 이 사람이 이런다고 다른 애들에게 선배라는 소리 듣나. 서태웅에게 들어도 강백호에겐 평생 못 들을 거라고 생각했지. 야, 내 정성이라고 이게. 사실 지금도 하나 더 있어... 마실래? 좀 나중에요... 와, 그게 나 좋아서 하는 거였다고요...? 그렇다니까? 송태섭은 입을 닫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정대만이 줄줄 내뱉을 것 같아서. 근데 말이 되나. 뭔... 맨날 포카리만 가져다줘서 1+1 행사라도 하는 줄 알았지... 여러 비밀들이 있지만 떠오르는 하나의 비밀. 잠시 정대만을 힐끔 보다가 다시 하늘을 본다.
“...이거 말하면 좀 혼날 것 같은데 혼내지 마요.”
이 일의 시작은 농구와 정대만으로 행복한 송태섭이 시작이었다. 어느 순간 송태섭과 정대만이 체육관 정리를 맡게 됐다. 왜더라? 생각은 나지 않는다. 꽤 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살랴. 근데 그것도 꽤 한동안. 왜 이렇게 긴지.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정대만을 보면 3점 슛을 넣고 있었다. 그때의 3점 슛을 본 후로 남은 정대만에게 원온원할래요? 자연스럽게 물었고 정대만도 이에 응했다. 그 후부터 학교에서 남아서 하는 원온원이 둘의 루틴으로 잡혔다. 계속 농구 연습하고 원온원을 하고 같이 집에 간다. 가끔 군것질로 라멘이나 타코야끼를 손에 들고 가면서 약간 선배님(현 애인)의 도움으로 잘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좀 같이 있고 싶어서 원온원 대결을 신청했다. 마냥 옳은 감정은 아닌 걸 알았다. 농구할 때를 그런 시간으로 쓰다니. 하지만... 그걸 받아준 정대만의 잘못도 있지 않나? 힐끔거리면서 보던 정대만은 농구하면서 누구보다 즐거워 보여서 입을 싸악 닫았다. 그래, 당신은 이런 걸 좋아했지. 이런 마음으로 있는 건 자신으로 충분하니까. 앞으로도 이 전율을 느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실제로 송태섭은 그거면 충분하니.......
“농구하는데 그런 생각을 해?”
“이럴 때마다 선배랑 연애 안 하고 싶어요.”
“뭣이?!”
“그런데 하겠죠...”
“옳지.”
근데 어떻게 농구할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하냐. 다른 생각이 막 들어? 아니, 신기해서 그래. 나는 농구할 때는 농구하는 것밖에 안 보인다고. 너는 참 시야도 넓다. 평소에도 코트에서 잘 판단하는 건 알았지만 딴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네. 이거 봐주지 않고 해야 되나? (봐준 적 없잖아요.)인마, 내가 봐줬거든? 어떻게 그러지?... 됐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정대만이 입을 우물우물 거리다 송태섭을 따라 눈치를 힐끔 보다가 하늘을 본다.
“근데... 야. 혼내지 마라.”
이 일의 시작은 입을 꽈악 닫아버렸던 정대만이 문제였다. 정대만도 사실은 일부러 도왔다. 체육관 정리를 함께 한 계기는 정대만이 기억했다. 주장 일을 묵묵히 하는 송태섭. 그런 송태섭을 돕기 위해 같이 남아서 도와준 정대만. 그게 계기였다. 그때부터 그랬다. 그렇게 천천히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던 정대만의 노력이 있었다. 눈치 없는(정대만의 시점) 후배 덕에 고생을 같이 한 것뿐이지. 돌아가면서 군것질을 한 것도 그렇다. 선배 모습으로 자신을 좀 더 선배로 느껴지도록 그랬다고. 네가 선배로 안 봐주잖아. 봐주면 좀 안 되냐? 자기 용돈 탈탈 털어서 사주는 선배 모습은 꼬시려고 했던 모습이었다. 용돈이 없을 때도 자기 저금통 탈탈 털어서 돈을 꺼내면서 자그마한 거라도 샀다. 피카츄 꼬치 하나는 들고 돌아가야 기분이 좋다는 정대만의 이론. 아무튼. 이 일 속에서 즐겼던 건 송태섭만이 아니었다. 확신범 정대만도 있었다.
“이야...... 진짜 독하네요. 좋아한다는 말 한 번을 못 해서...”
“야! 너는 했냐?! 했어?!”
“선배도 안 했잖아요! 왜 나만 갖고 그래요?!”
“너도 나만 갖고 그러잖아!!!”
송태섭도 정대만도 시작이었다. 또 무언가를 시작해 버린다. 우당탕. 서로 싸우다가 노을이 다 져버린다. 오늘도 똑같이 원온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 기분은 꼬치인 것 같아요. 나도 그런 듯. 평소와 같은 하루, 원온원, 사랑, 시작. 다시 돌아간다.
내일도 그럴 것이고 모레도 그럴 것이다. 언제든 이런 이야기나 하면서. 이들은 행복할 것이다. 고난이나 시련도 있을 것이다. 그게 인생이니까. 결국 그들은 이겨내든 받아들이든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이다.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고 해도 그건 확실했다. 그들을 사랑과 행복을 방해하더라도 제 나름대로 찾아내서 뚫거나 빈틈을 찾아 정답을 향해 쏠 것이다. 그러니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둘은 행복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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