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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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834194 by 경위

1973년 11월. 슬리데린 테이블 위로 편지가 한 장 떨어졌다.


연회장의 어린 마법사들은 일상적이고도 화려한 아침 식사를 막 끝낸 참이었다. 얇게 썬 식빵은 껍질과 가루만 남았고, 주황색으로 반질거리던 계란 노른자는 거친 포크와 나이프에 찢겨 베이컨 기름과 함께 그릇 귀퉁이에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다음 퀴디치 시즌을 대비해야 하는 ‘기대주’ 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커다란 문을 열어젖혔다. 반면 학업적으로 성실한 학생들은 이미 자기 몫의 접시를 치운 채 과제용 양피지를 펼친 참이었다. 그리고 아직 고깔모자가 어색해 보이는 신입생들로 말할 것 같으면: 마법약 교수가 새롭게 세운 철칙―가장 늦게 교실에 발을 들이는 꼬맹이는 뒤통수를 두꺼운 교과서 모퉁이로 내리침으로써 본보기를 보이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곧 사라질 커스터드 푸딩에 서로 숟가락을 꽂아대고 있었다. 

그러니 이 아침은 어제와 다르지 않고 한낱 오늘에 지나지 않았다. 아샤 맥길로이는 읽던 퀴디치 잡지를 접어 옆으로 치우고 고개를 들었다. 적갈색 부엉이가 그의 머리 위를 연신 빙빙 돌았다. 가느다란 솜털이 계속해서 떨어졌고 같은 테이블의 누군가가 기침을 했다. 이미 편지는 테이블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랬다. 수신인 애슐리. 발신인 맥길로이. 황동색 그릇 사이에 피어나듯 비스듬히 놓인 편지는 붉은 인장 대신 노끈으로 두어 번 묶여 있을 뿐이었다.

“편지가 올 시간이 아닌데.” 약초학 개론을 다섯 장째 베껴 쓰던 6학년의 딜런 마지가 중얼거린다. 그건 지난 수요일 불시에 벌어졌던 쪽지 시험을 훔쳐본 대가였다. “아샤. 부엉이 좀 치워. 쟤는 왜 돌아가지도 않고 저러고 있는 거야? 차라리 테이블에 부리를 박고 처박혔으면 좋겠네.” 신랄한 투덜거림의 주인은 아까부터 기침이 멎지 않던 4학년의 케이트 앳킨슨이다. 그리핀도르의 타쉬와 함께 벌써 연회용 로브를 고르며 시시덕거리던 7학년 클레이오는 연인의 귀에 속삭였다. “저건 편지라기보다 거의- ‘전보’ 수준이야.” 테이블의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선명하고 정직했다. 애처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허공을 배회하던 부엉이는 붉은빛 깃털만을 하나 떨어트리고 연회장을 떠났다. 누군가 주머니에서 마법과 비-마법 생물 공용 간식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아샤가 편지를 집어 들고 얇은 끈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긴다. 그 순간부터 이 전체적 사건은 그저 타인의 일이 된다. 이례적인 광경에 하나둘 모여들었던 학생들도 각자의 일과를 위해 흩어지기 시작한다. 곳곳에 놓인 라디오의 마법 증폭기 역시 <더 데미가이즈> 의 아침 방송을 마무리를 짓는다. 글리니스 커빙턴은 유쾌한 어투로 말한다. “…… 물론 여러분의 앞에 놓인 것은 평화로운 연말과 새로운 해의 기대감뿐이죠. 이 방송을 듣는 누구든 간에요. 혹시라도 여러분의 일상에 불필요한 소요가 일어나는 일 없기를 바라요! 여러분의 글리니스 커빙턴이었습니다.” 비-마법사 문화권을 평정한 일렉 기타와 드럼 소리 대신 지루한 현악기 소리가 흘러나오다 차차 조용해진다. 어느덧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도 없이 그릇들이 사라진다. 연회장의 테이블은 흔적도 없이 깔끔해진다. “아샤.” 어린 마법사들이 교과서의 귀퉁이를 맞추기 위해 그 위를 탁탁 두드린다. 스니커즈와 가죽 밑창이 직직 끌리며 매끈한 바닥을 지나간다. 네 가지 원색의 천은 온갖 곳에 휘날리다 곧 주변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아샤, 괜찮아?”

“응?”

아샤 맥길로이는 부름에 고개를 든다. 부름은 분명 동급생 중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졌음에 틀림이 없다. 누구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이유는 꽤 많은 수의 친구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피치 못하게 하나의 무리를 형성함에 따라 무언가를 동시에 예감할 수밖에 없는, 한 종류의 동물들이 보이는 모습과도 같았다. 다른 이유. 아샤는 이유도 모른 채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당기기 시작한 편지의 끈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채다. 끈은 그저 편지를 엉성하게 구기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이유. 아샤는 순간 그 모든 친구가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시간은 여러 갈래의 길로 나뉘어 있다.’) 아샤 맥길로이는 숨을 삼킨다. 그리고 대답한다.

“물론이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 반듯하게 웃으며 답한 아샤가 이내 편지를 풀어낸다. 지나가던 모든 유령이 71년도의 입학생들 중 일부를 한 번씩 눈에 담고 냄새를 맡는다. 피투성이 남작은 유령의 대열과 반대로 교차하며 그들을 지나쳐 사라진다. 마침 그때 연회장의 거대한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어젖혀진다. 슬리데린 사감 졸린 그레이브스와 호그와트의 교감 선생이 그들에게 달려온다. 어른이라는 이들조차, 다급함과 비통함을 채 숨기지 못하고.

“애슐리 맥길로이. 당장 집으로 돌아가거라. 네 형이…….”

다들 나에게 뭐라고 할까? 그다음 이어질 말을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면. 아샤는 흐리멍덩한 정신 속에서 의문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그래서 그 거울에서 그저 우리 가족 다섯을 봤던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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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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